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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날의 침례의 뜻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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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4
파54 10/1 176-179면

오늘날의 침례의 뜻

요한의 침례는 다만 유대인에게만 한정되었든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메시야를 영접하는 준비사업의 하나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요한의 침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회개하였다는 표였으며 그의 침례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베푼 침례와는 판이(判異)한 것이 였다.

그러면 오늘날의 침례의 뜻은 무엇인가? 오늘날의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행하여지는고로 그 침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본임으로 우리는 마땅이 그 본을 따라야 할것이다. 그런고로 예수의 침례의 뜻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받는 침례의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뜻은 무엇 이였는가? 그 뜻은 아버지의 말씀중에 기록된바 그리스도에게 계시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자신을 헌신하셨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공포하는 상징 또는 표상이였다.

이것은 시편 40:7, 8을 보아 명백히 알수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히브리 10:5, 7에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해당시키고 있다. 『그런고로 세상에 임하실때에 갈아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왔나이다.』

사도 바울은 이 예언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때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 오셨을 때란 언제인가?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예수가 탄생되었을 때인가? 아니다. 왜냐하면 갓난 예수에게는 아직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는 너무나 어리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가 12세 되었을 때인가? 12세부터 30세까지의 예수의 활동은 오직 목수의 일을 배우셨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목수의 일보다 더 크다는 것이 명백하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신 것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며 고난 중에서도 충실하며 그의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을 증명하며 그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함이 었다. (요한복음 18:37; 히브리 5:8; 마태 20:28) 그런고로 『보시옵소서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그 뜻을 18년을 지난 후에야 행하겠다고 하셨을리 만무하다. 예수께서는 30세때 침례를 받으시자 곧 전도를 시작하셨다. 그것은 레위 자손의 성전 봉사를 위한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되는 것이였다. (민수 4:2, 3; 누가 3:23)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지상에 오신것은 그가 침례를 받은 그때이며 따라서 침례는 그의 헌신을 표상(表象)한 것이였다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그 침례는 자기가 헌신(獻身)함을 모든 사람 앞에 공포(公布)하는 것이였다. 만백성을 제자로 삼는 사업의 일부로써 예수께서 명하신 이 침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헌신의 표상인 것이 분명하다.—마태 28:19, 20.

올바른 상징

침례는 어떻게 행하여 져야 하는가? 물을 뿌리거나 혹은 물을 퍼부어서 행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물속에 잠기는 것으로 행할 것인가? 그리스도 교국 내에서 가장 많이 쓰는 형식은 물을 뿌리는 방법이다. 그들도 사도들이 행한 것은 잠기는 방법이 였다는 것에 일치하고 있으나 다만 물뿌리는 것이 편의하다는 이유로 물뿌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물을 뿌리는 것을 침례라고 하는 것은 침례의 뜻을 오해(誤解)하고 있다. 왜냐하면 본래 히랍어 바프티스마(báptisma)라는 말은 물속에 잠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 표면에 떠 있는 때는 물에 잠기지 않고 (바프티스마 되지 않고) 있으나 물 속에 있는 그들은 물에 잠겨 있다. (바프티스마 되어 있다) 라는 문장을 히랍 문학 중에서 우리는 볼수 있다. 또한 해변 가는 오직 바다물결이 덮을 때만 물에 잠긴다. (바프티스마 된다) 라고 씨어진 것도 있다. 로다함이나 윌슨 같은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 고대로 직역(直譯)하였는데 『바프티스마』를 『물에 잠긴다』 또는 『침수(浸水)된다』라고 번역한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침례는 침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을 구름과 바다를 통하여 침례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때 물은 이스라엘 백성 양편에 있었고 구름이 그들 위를 덮었던 것이다. 노아 홍수가 침례로서 임하기 전에 『노아』가 방주(方舟)에 들어가 있었던 것에 관하여 베드로는 말하고 있다. 우연하에도 이 두 경우에는 두가지 침례가 행하여졌다. 그 하나는 여호와의 종들의 구원의 침례요 또하나는 여호와의 원수들의 멸망의 침례였다. 즉 『바로』와 그의 군대들은 홍해(紅海)에서 멸망되었고 노아때의 악한 세상은 대홍수로서 멸망 되었다.—고린도전 10:1-3; 베드로전 3:20.

침례에 관하여 올바른 뜻을 나타내고 있는 구절을 성경에서 찾는다면 문둥병에 걸렸던 스리아 장군 나아만의 예가 있다. 그의 침례에 관하여 70인역에 의하면 이러하다. 『이에 나아만이 나려가서 엘리사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애 살 같아서 그는 문둥병으로 부터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 5:14) 『몸을 잠그니』라고 번역된 히랍어는 『바프티제인』의 과거형(過去形)이며 『스스로 물에 잠근다』는 뜻이다. 70인역에서 기타 『바프티제인』으로 번역된 곳은 이사야 21장 뿐이다. 그 번역은 『잘못이 나를 덮었다』라고 되어 있으나 그 각주(脚註)에는 『잘못이 나를 잠겼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바프티제인』이라는 어원(語源)은 여러번 나오고 있다. 물을 뿌리는 것이 다만 편리(便利)함으로 행한다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요한이나 예수께서도 물을 뿌리는 것이 역시 편리하지 않었을까? 그러나 두분 다 그렇게 생각지 않고 물이 많은 곳을 찾아 강가로 나갔으며 듣고저하는 군중도 뒤를 따라 강가로 나갔다. 이에 관하여 요한복음 3:23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아논에서 침례를 주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침례는 죄를 깨끗이 씻어버리는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獻身)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할 때 잠긴다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물 속에 잠기는 것은 자기 자신의 뜻을 매장(埋葬) 또는 죽이는 것을 상징하며 다시 일키움을 받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살리심을 받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사도 시대의 그리스도인 회중의 예를 보거나 여러가지 낱말의 뜻으로 보거나 또한 이 말이 성경 기록자들에 의하여 사용된 방법을 보거나 또한 상징이 꼭 들어 맞는 것을 보드래도 잠기는 것이 침례의 올바른 형식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어린 아이나 유아에게 침례를 주는 것은 어떠한가? 전술한 바에 의하여 볼때 유아가 침례를 받았다든가 혹은 유아에게 침례를 주라고 명한 곳이 한 구절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들 어린이들이 침례를 받지 않고 죽으면 영원한 불행을 받게 된다고 하나 만일 참으로 그러하다면 예수나 그의 제자들은 참으로 태만하였다고 볼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러한 것을 양친에게 경고하지 않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하여 성경이 한마디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유아는 침례를 받지 않으며 또한 받을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뚜렷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침례는 회개하고 충심으로 진리를 받아들인 자에게만 줄수 있다. 유아는 회개할수도 없으며 진리를 받아드릴수도 없다.—사도 2:41.

오늘날의 침례

사도 시대에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었다는데 관하여 성경은 여러 곳에 기록하였다. 골넬로와 그 가족은 침례를 받기 전에도 성령을 받았다. (사도 2:38; 19:5, 6; 10:44-48) 당시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령적 아들이 되는 것이 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하였다.—갈라디아 3:27; 요한 1서 3:2.

그러나 이 침례는 소수인에게 제한되어 있었다. 즉 144,000명의 『적은 무리』에 한해 있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부(新婦) 또는 몸으로서 천적 영광을 받아 예수와 더부러 천년 동안 통치할 소망을 가지고 있다. (누가 12:32; 계시록 7:2-4; 14:1, 3; 20:5, 6; 21:2)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침례는 그리스도의 령체에 잠기는 것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죽엄을 본받아 그와 함께 매장되는 것이다. (로마 6:4; 골로새 2:12; 디모데후 2:11) 성경의 예언과 그 성취에 의하면 그 수는 거이 찻으며 이들 중에 남은자들의 얼마 지상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수있다. 이 남은자들은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하며 슬퍼하는 자들을 왕국 복음으로 위로할 그들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이사야 43:10-12; 61:1-3; 마태 24:14.

이 전도의 결과 그리스도인의 다른 하나의 반렬(班列)이 생겼다. 이들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다른양』이라고 불렀으며 사도 요한은 그들을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도 능히 헤일수 업는 『큰무리』라고 말하였다. 요한은 이들이 보좌와 어린양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더부러 왕노릇할 『적은 무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요한복음 10:16; 계시록 7:9; 3:21.

그들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救主) 또는 속죄주로 인정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저희들이 하나님께 시인되어 영생을 받되 하늘에서 받지 않고 바로 이 땅에서 받게 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땅이 영원히 있으리라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날 이 땅은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하리라는 것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전도 1:4; 이사야 60:13; 마태 6:9, 10.

마태 28:19, 20에 기록된 예수의 교훈과 일치하여 이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바 아버지의 이름으로 받는다는 것은 그들의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직무와 권위를 인정하며 그들과의 관계를 아는 것이며 아들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의 직무와 권위를 인정하며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 또한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의 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 혹은 활동력(活動力)의 역사와 목적을 인식하며 성령의 도움 없이는 그들이 헌신의 서약을 수행할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명식(任命式)

합동통신은 1953년에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국제 대봉사회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단 침례에 관하여 보도하기를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침례를 하나의 임명식(任命式)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침례받은 각자는 임명된 전도인이 였다고 하였다. 그러면 어떠한 근거로서 그들은 그러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가?

첫째로 침례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행하여짐으로 그로 말미암아 권위있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침례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제 일인자인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겠다는 동의(同意)를 표시한 것이다. 이러한 임명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과 왕국을 위하여 더 효과적이며 일치 조화되는 증거를 주기 위하여 사용하시고 있는 조직 즉 왙취타워 협회로 말미암아 권위있는 인정을 받고 있다. 또한 미국 대심원(大審院)에서는 1953년 11월 30일 규정하기를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법율에 한하여 그들의 침례는 확실한 임명식이라고 하였다. 그 말과 같이 1954년도 여호와의 증인의 연감(年鑑)에는 1953년에 침례로 말미암아 50,665명이라는 전도인이 임명받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전도인 자격을 얻기 위하여서는 신학교에 가야만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사도 바울을 제외하고는 예수나 그의 제자들이 하나도 전도인으로 인정받치 못하였을 것이다. 정말 어떤 사람이 예수의 지식을 기이히 여겨 묻되 『이 사람은 학교서 배우지 않었것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하였다. 또한 당시 교육받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한 것에 놀랐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요한은 교육받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교육받지 못하였다하여 복음 전파를 중지할수 없었다. 또한 그들 뿐만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다 전도하였던 것이다. (요한 7:15, 신세; 사도 4:13; 8:4) 각자는 왙취타워 협회서 보낸 지시 밑에 진행되는 가정성연구나 파수대 공부에 참석함으로써 전도할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신학교에서 받은 졸업장이 선교사업(宣敎事業)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자신이 전도인이 될수 있다는 가장 좋은 증거는 사도 바울이 추천장으로 지적한 바와 같이 자신이 여호와께 헌신한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고린도후 3:1-3.

일단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것을 물의 침례로 표시한 후로는 이 사실을 일시라도 염두에서 떠나게하여서는 않된다. 그것을 서약하고 지키지 않으려면 차라리 서약하지 않는것이 좋은 것이다. (전도 5:5)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동의(同意)한 것을 일시도 잊지 않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것을 잔을 마시는 것과 그가 받으신 침례로서 말하였으며 또한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태 20:22, 23; 누가 12:50) 우리는 신세계 사회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접촉하며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지킴으로서만 임박한 아마겟돈 전쟁때에 이 악한 세상을 살아남을수 있으며 마치 노아와 그의 가족이 홍수 후에 신세계에 들어갔던것과 같이 의의 신세계에 들어갈수 있다.—마태 24:37-39; 베드로후 3:7, 13; 계시록 16:14, 16.

요약하여 말하면 요한의 침례는 회개를 상징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물의 침례(浸禮)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헌신을 표상한 것이였다. 완전히 잠길수 있는 것은 물침례만 행할 수 있으며 또한 헌신을 올바로 표상하게 되는 동시에 자기 헌신을 공중에게 표시하는 임명식(任命式)으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여호와의 전도인이 될 첫째 조건은 신학교서 훈련을 받는것도 아니요 신학교 졸업장도 아니다. 따라서 오로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지킴으로서 이 악한 조직제도의 멸망에서 살아남아 신세계 사회의 한사람으로서 의가 거하는 신세계에 들어갈수 있는 소망을 갖게된다는것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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