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聖靈)의 열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 5:22, 23.
1. 자기 발전을 위한 사람의 노력은 어찌하여 흔히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가 또 이것에 관하여 어떤 성경구절이 빛을 던저주고 있는가?
태고로부터 사람은 육체적이나 정신적 혹은 도덕적인면을 발전 시키는데 많은 관심을 두어왔다. 그러나 사람의 불완전으로 인하여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흔히 균형(均衡)을 잃고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근육(筋肉)을 발전시키거나 칭찬이나 박수(拍手)갈채를 받는 체조를 하여 큰 자랑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종 후년의 건강을 희생할 때가 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마음과 뜻에 관한 더 좋은 것을 경시(輕視)하는 일이 흔히 있다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 4:8.
2. (ㄱ) 일반종교는 자기 수양의 사상을 어떻게 길러왔는가? (ㄴ)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 유대교에 관련시켜 어떻게 말하였는가?
2 이같이 균형을 잃는것이나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은 사람들이 정신적 혹은 도덕적인 자기 발전과 수양을 구하는 것을 보아서도 확실하다. 그들은 흔히 자기의 성취한것이 현실이든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든 그것을 크게 자랑한다. 이런일은 오늘날의 제도의 일부가 되어 있는 많은 종교의 하나의 지도나 영향을 받어서 행하여 지는때가 많다. 그들은 정하여 놓은 길에 꼭 붙어 삶으로써 금생이나 후생을 통하여 자기의 어떠한 상이나 이윤(利潤)을 확보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이신 참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종교도 이 올무를 피하지 못하였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일』과 반대되는 『성령의 열매』에 관한 말을 갈라디아에 보내는 편지에 어찌하여 기록하게 되었는가? 어떤자가 아직도 유대교제도에 꼭 붙어서 『율법의 행위』나 『유대인의 행위에 따라』 의롭게 될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바로 이 문제에 관하여 말하게 된것이 아니였는가? 바울은 자기의 이전의 행위를 설명한것으로 보아서 이것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다.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라 한후에 화를 내어 기록한바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하였다.—갈라디아 5:19, 22; 2:14, 16; 1:14; 3:3.
3. 이 문제에 관하여 기독교국과 유대교는 어떠한 점에서 비슷한가?
3 유대교 신봉자(信奉者)들이 주장한 것과 대단히 비슷한 의견이나 사상을 기독교국의 여러 종파에서도 찾어볼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안식일(安息日)의 율법까지 포함한 십계명(十誡命)밑에 있으며 거기에 포함된 자세한 요구를 표면적으로 준행(遵行) 하는것만으로써 의롭게 될수 있다고 흔히 믿는다. 또 유대교의 제도에서와 같이 사람이 지은 전설을 많이 부가하였다. 그중에는 스스로 하는 고행(苦行), 단식, 자기부정(自己否定) 금욕적(禁慾的)이며 간소한 생활등이 있어 이 모든 것이 개인을 거룩하게 하고 이것으로써 하늘의 영광속에 그리스도와 함께 할 장래의 생명을 위하여 필요한 징계적 훈련과 자격을 갖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뿐아니다. 어떤자는 임이 육신으로 있을 때부터 완전히 거룩하고 무죄하게 될수 있다는 극단적(極端的)인 주장까지 한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바로 이점에 대하여 사도가 경고한것으로 보아서 특히 그러하다. 그는 말한바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골로새 2:23.
4. 그리스도 교국의 교직자들은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인식하지 않고 있는가?
4 그리스도교국의 종교교직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다는 것과 중보자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새 언약(言約)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혹은 정당화(正當化)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교직자들은 새언약 밑에서 의롭게 하는 힘이 도말된 십계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을 경건하게 변화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않다. 바울은 말하였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신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로마 6:15; 갈라디아 5:18; 에베소 2:15; 고린도후 3:5-18.
5. (ㄱ) 진리를 밝히며 잘못을 청소하는 사업이 어찌하여 점차적인 일이였는가? (ㄴ) 이것은 성령의 열매와 어떻게 관련시켜 볼수 있는가?
5 그렇다면 우리의 근대활동초기(近代活動初期), 즉 1914년 이전이나 그후 얼마동안에 걸처 진리의 복음에 응답하여 계시록 18:4에 명한대로 오늘날의 바빌론의 거짓 종교를 버린 사람들 중에도 그들이 전에 진리로써 받어 드렸던 가르침의 영향을 어느정도 계속하여 받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교리나 실천에서 진리가 밝혀지고 결과로써 바빌론의 더러움을 깨끗이 청소 한다는것은 점차적(漸次的)인 사업임을 언제나 기억하지 않으면 않된다. (잠언 4:18; 이사야 52:11) 이러한 기간에는 보통 말하는 『성령의 열매와 자비』를 발전시키는 문제에 대하여 많은 주의를 하여왔다. 갈라디아 5:22, 23을 토대로하여 연설이나 토론회 같은 제목으로 여러번 선택되었던 것이다. 하여튼 사용된 줄거리는 언제나 각자는 사도가 자세히 기록한 여러가지의 성품을 『인격배양(培養)』과 더부러 어떻게 장성시켜야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한것이 였다. 사실 그당시 진리안에 있는 사람들중에서도 이러한것을 배양하는 일에 제일 중점을 두어 극단으로 흐르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자기들 자신에게 너무 치중(置重) 하는 결과를 가저왔던 것이다. 적은 일이나 환경 하나 하나가 인격배양과 시험과 관련되는 것으로 여기워졌다. 많은 경우에 이것은 거만한것은 아니였으나 자기중심과 이기적인 사람이 되게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너무 익어서 나무에서 떠러졌다고 할수있다.
6. 무엇을 인식할것이 중요한가? 또 무슨 특별한 위험을 피하여야 하는가?
6 이것으로써 우리가 이 문제을 조롱하는것이 되는가? 그것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가운데서 매우 확정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는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우수운 면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우리가 강조하고저 하는 중요한 것은 이 열매를 맺는 문제에 관한 우리의 올바른 견지(見地)를 얻고저 하는 것이다. 이기주의적이 될 위험성에 관하여 갈라디아 5장의 전후문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큰 내부적 원수임을 알리고 있다. 바울은 말한바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갈라디아 5:25, 26.
7. (ㄱ)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볼것인가? (ㄴ) 이사야는 오늘날의 우리의 번영을 어떻게 묘사하였는가?
7 그러면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올바른 견지를 어떻게 얻을수있는가?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시는 방법으로써 우리자신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떠한 것인가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들을 주로 모인 백성 즉 그의 신권조직 시온에 모인 백성으로써 보시며 또한 우리를 취급하신다. 이 모인 백성에 대하여 여러 예언이 말하였으나 그중 한곳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령과 결과적 열매에 연결 시켜 말하였다. 잉태하지 못함과 열매 맺지 못하는 상태에 관하여 말한 후에 이런 상태는 신권조직이 재건될때까지 계속될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이사야 32:15-18) 축복과 증가에 관한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자인가! 얼마나 맛좋은 열매인가!
여러가지 종류의 열매
8. 열매는 문자 그대로나 상징적으로나 모두 같은 것인가? 그러나 그러한 성경의 적용에 전부에서 연상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8 그러나 이점에서 어떤 사람은 앞에 기록한 예언에서 말한 열매가 갈라디아 5:22, 23에서 바울이 묘사한 것과 같은것인지 질문할찌도 모른다. 요한 15장에 널리 알리워진 포도열매의 비유는 어떠한가 거기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요한 15:8) 예수께서는 많은 사랑과 많은 기쁨 등등을 가질것을 의미하고 있었는가? 열매는 다 같은 열매인가? 대답은 물론 아니다라 할것이다. 과일 혹은 열매라는 단어는 성경에 여러번 나오며 선악 양쪽에 관한 여러가지 것에 적용 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을 찾을수있다. 열매는 언제나 어떠한 행위나 행실의 결과로써 생산되는 것 혹은 자연적 또 합리적 결과나 결정 혹은 생산된것을 언제나 연상하게 한다.
9, 10. 왕국의 열매를 어떻게 다른 각도로부터 볼수 있는가? 또 그것을 지지하는 어떤 성경구절이 있는가?
9 하나님의 왕국이 하늘에 설립되고 왕국조직이 지상에 세워저서 그리로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진 오늘날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써 그의 성령의 도움을 받어서 맺는 모든 열매를 왕국열매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이 좋은 열매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될수도 있다. 예수께서 그의 비유에서 보이신 것과 같이 위대하신 자가 뿌리는 씨는 진리의 말씀 즉 왕국 복음이다. 예수는 말씀 하신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옴으로 말 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가 8:15) 그런고로 여러가지 종류의 씨가 각기 종류대로 열매를 맺으며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이 전도한 왕국복음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게 되었는고로 따라서 우리가 생산하여야 될 열매는 같은 소식을 남에게 증거하고 왕국의 이익을 몇배로 증가 시키는 것이라야 한다. 이것이 한 각도에서 본것이며 이사야 32장과 요한 15장에 인용된 열매 맺는 비유에 가장 잘 적용된 사용법이다.
10 그러나 각도가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기쁨을 얻은 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는 말한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였다. (에베소 5:8, 9)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모든 착함』에 밝히 나타내야 될것이 한 종류이다. 또 다른 종류는 『모든 종류』의 야외 봉사에서 진리를 선명하는 면에서 나타나야 될것이다. 사실상 이 두 종류는 붙어 다니는 것이여서 분리할수 없다. 앞으로 우리는 이것을 보게 될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연구에서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성격 그리고 성품에 관련된 종류를 특히 주의하여 보기로 한다. 그리하여 이런것들을 자신이 실천할것을 잊지 말라.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서는 않된다.—야고보 1:22.
성령의 첫째 열매인 사랑
11. 가장 중요한 성령의 열매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일어나는가?
11 갈라디아 5:22, 23에서 말한 성령의 열매를 이루고 있는 아홉가지중에 가장 크고 제일가는 것은 사랑이며 이것은 또한 응당히 그리하여야 될것이다. 우리자신에게 개인적이며 실천적인 점에서 질문을 하여 보기로 하자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는 말이 자기 자신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신적 훈련을 하도록 하고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자기자신에게 「나는 더 사랑하여야 되겠다. 나는 더 사랑하기를 결심한다」 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의미하는가? 자, 만일 그렇게 하여 자기수양의 길을 쫓는다면 그런 방향으로 발전되는 것은 어떤것이던지 사실상 우리 자신의 영외 열매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도가 말한것은 우리 자신의 영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령은 어떻게 활동하는가?
12.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영향을 주며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가를 성경은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가?
12 우리가 진리를 배우기 시작할때에 우리를 감동시키는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인 친절과 선이다. 진리를 더 배울수록 하나님의 비이기적(非利己的)인 사랑을 더욱 감사하게 되며 결국은 그의 초대(招待)에 응할 정도까지 이루게 된다. 하나님의 초대는 이것이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주며.』 (잠언 23:26) 즉 헌신의 정신으로써 우리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저 여호와께 헌신하여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 자신의 솔선력(率先力)으로 발전한 사랑 때문에 된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의 말과 같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기 때문이다.—로마 5:5.
13. 사랑은 우리 형제들과의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13 동시에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길을 걷고 같은 단계를 통하여 온 다른 사람들과 사괴이게 된 것을 인식한다. 그런고로 이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동료(同僚)가 되며 모두가 신세계 사회의 성원인 것이다. 열매가 자연적 생산물이며 강제적이나 제품 된것이 아닌것 처럼 우리의 이 형제 자매들의 관계도 자연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다. 요한의 기록은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우리도 서로 사랑 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되 하나님과 같이 따뜻하고 친절하며 비이기적인 방법으로 할것이다. (요한1서 4:10, 11) 물론 우리는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슴에 충만하고 진리의 지식과 왕국의 소망이 우리 마음에 가득한 참 그리스도인이 될때에 우리의 생활과 성질전부는 필연적으로 바꾸어지며 변화를 받게 된다.
14. 성령의 열매에 관하여 성경구절은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가?
14 이것을 읽는 독자중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매우 단순하고 쉬운 일이라는 인상(印象)을 받은 일이 있는가? 천만에 그렇지 않다. 이 열매는 자기 수양의 문제가 아니라 하여 우리는 뒤로 물러 앉어 비활동적(非活動的)이며 묵묵하게 하나님의 손에만 부탁할것을 잠시라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말한바와 같이 우리 자신과 우리가 담당하여야 될 부분을 적절한 입장에서 보기로 하자.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예수는 말한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하였다. (요한 15:1) 그렇다. 여호와는 모든 왕국열매를 기르시는 위대하신 농부이며 따라서 모든 명예는 그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이 표시한 것과 같이 심고 물주고 잡초를 뽑는 일을 하나님의 지도를 받고 한다. 연이나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시』 는 분임을 잊지말라. 마찬가지로 사도가 계속하여 말한것과 같이 비록 우리 자신은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나 자기의 책임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각각 … 조심할찌니』라. 왜냐하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심판의 날]이 공력을 밝』힐 것이기 때문이다.—고린도전 3:6, 7, 10, 13.
15. 우리의 개인적 책임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잘 수행할수 있는가?
15 사랑에 한하여 성령의 열매를 기르는데 있어서 우리의 행할바는 확실히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랑의 원천되시는 여호와에게서 찾을수 있는 참된 사랑이 무엇임을 더욱더 인식하게 되고 그에게 일치연합되는 가운데 더 가까이 올수록 우리는 그와 같은 성품을 표현하고저 하는 불꽃같은 의욕이 생기게 된다. 사랑은 이와 같다. 사랑은 자체를 표현하기 원하며 활동적이 되고저 한다. 그것은 이기적이 아닌고로 우리에게 그렇게도 커다란 의의(意義)를 가진 것을 다른이도 똑 같이 즐기고 함께 논게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이제 질문한다. 여호와께서 신세계 사회로 모으신 헌신한 사람들의 그 몸과 가능한 한 충분히 또 밀접하게 사괴이는 것보다 어떻게 더 잘 충분한 열매를 사랑이 맺을수 있는가? 또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너희도 사랑 가운데 행하라』는 명령을 자기 지방 회중의 모든 집회와 여러가지 형체의 직접적 야외봉사에 참석하고 활동적으로 참예하는 것보다 어떻게 더 잘 순종할수 있는가? 이런 길을 따름으로써 비이기적이며 하나님과 같은 사랑과 친절과 선을 실천할수 있는 얼마나 끝없고 훌륭한 기회를 우리는 갖게 되는가! 그곳에는 끝이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말한바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말하자면 「이 길로 더 이상갈수 없으리라」는 뜻이다.—에베소 5:1, 2; 갈라디아 5:23.
16. 신세계사회의 성원으로써 우리가 가진 의무는 무엇인가?
16 이것은 매주일 묵묵히 앉어있는 것과 선한것 전부를 흡수하기만 하는 것으로써 축복을 얻을 목적으로 집회에 참석 한다던가 혹은 책임감에서 주기적(週期的)으로 봉사에 참예하는 것과는 매우 틀리다는 것을 주의하라. 물론 과일나무가 태양이나 공기나 흙으로 부터 취할수 있는 좋은것 전부를 흡수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때문에 그렇게 하는가? 다른 이에게 유익하고 원기를 도울수 있는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이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생활과 성질의 열매에도 적용되며 왕국전도의 열매에게 적용된다.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나 세상에서 고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같은 좋은 성품을 인하여 감사하며 기쁨을 삼을수 있게 되어야한다. 당신의 성품은 이러한 이유로써 기쁜 바가 되고있는가?
17.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17 성령의 열매를 생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여온 하나님의 백성과 가능한 한 충분히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임이 인용한 표현을 또한번 보기로 하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며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라. (갈라디아 5:25) 여기에 이 아름다운 열매를 길러서 맺는 비결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사도는 정신적 수양의 과정으로써 자기훈련을 하는 길에 관하여 말한일은 없다. 사실이다. 『성령으로 살고』 또한 『성령으로 행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모여진 백성 즉 여호와께서 성령을 종의 반열에게 부으시고 그의 말씀을 우리 입에 두시며 우리의 선생이 되어 개인적으로 하지않고 한 백성으로써 어떻게 성령으로 살것인지 가르쳐주시는 즉 시은에 모인 백성임을 알어야 할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을바른 길을 걷기 시작하고 신권적 지도하에 계속적이며 질서 있는 발전을 하고 두려움을 갖지 않으므로써 성령의 열매는 여호와의 찬양과 남을 축복하며 신세계에서 생명에 이르게하는 우리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생산될것이다.—이사야 54:13; 59:21.
18. 이문제에 있어 조직은 어떠한 실천적 방법으로써 우리를 돕는가?
18 실천적인 면에 있어서 여호와의 조직은 질서있게 행하며 좋은 발전을 하도록 여러가지로 협력한다. 파수대와 통보를 통하여 또는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와 교훈을 토론하는 집회를 통하여 우리는 올바른 행실과 봉사를 분별하고 그대로 행할수 있도록 격려와 징계로써 언제나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악하고 위급한 날에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것이며 어떤 길을 갈것인지 당황케 되는 문제를 가끔만난다. 이 점에 있어서도 조직에 꼭 붙어 행하는 것에서 참으로 이익을 받게된다. 왜냐하면 사도시대와 같이 오늘날에도 그것을 통하여 장성되고 믿음직한 종들이 준비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과 성품은 좋은 본을 끼치며 비록 그들의 충고가 항상 우리의 기대하는 것이나 소망하는 것은 아닐찌라도 우리를 돕기 위한 목적에서 그들은 존재한다. 바울이 빌립보사람에게 쓴것과 같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형제들아 너희는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빌립보 3:16, 17.
19.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격의 변화가 필요하며 또한 그것은 가능한가?
19 우리의 토론하여 온것중에 이 부분을 결론 짓기 위하여 임이 말한 성질과 성품의 변화에 관하여 우리는 한마디 더 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똑똑히 알어야할 것이다. 「오- 내가 진리에 들어오기 전에도 내 행동이나 성질에 과히 나쁜 점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별하게 변화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튼 우리는 자연 그대로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랑하신 부하고 젊은 통치자 그리고 잘 양육된 청년과 같이 당신익 성질은 매력있는 것이며 당신의 일상 생활은 선한것이였다고 하자 그는 어렸을때 부터 계명전부를 성실히 지켰으며 부족한 것을 알고저 하였었다. 무엇이 부족하였는지 당신은 기억하는가? 그는 성령의 열매인 비이기주의적인 사랑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아니하였다. (마가 10:17-22) 이제 오라! 우리는 정직하게 되어 여호와앞에 겸손하자. 우리 각자는 바울이 편지를 쓴 에베소의 형제들과 같은 지위에 둘것이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저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 (이기적인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 마음에 움직이는 힘으로 새롭게 되어 [자기 수양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에베소 4:22-24, 신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