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처소를 지키라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편 32:8.
1. 여호와와 관련되는 자신의 처소를 고려한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우주의 위대하신 창조주 여호와는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그 모든 것들의 바른 처소를 알고계시다. 그는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아니라 또한 만물을 위한 처소들도 마련하셨다. 지식이 높은 사람이나 얕은 사람이나 여호와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여호와께서 사람들 주위에 두신 다른 많은 사물들과 생물들에 관하여 매일 묵상한다는 것은 유익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여호와의 권위와 존귀와 위대하심을 인식하게 될 것이며 여호와의 이 경이할만한 우주의 대조직 가운데서 자신들의 처소를 찾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2.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그가 수행하신 일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2 시편기자는 이것을 행한 분이었으며 그의 말씀이 우리를 위하여 시편 104편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그 구절 첫 머리에 여호와는 위대하시기 때문에 여호와를 송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시편 104:1, 2, 미표) 여기에 시편기자는 여호와가 하늘을 그 위치에 『휘장 같이』 치셨다고 말함으로써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사물을 배치하시는 일과 결부시키고 있다.
3, 4. 여호와께서 처소를 마련해주신 것들의 이름을 몇개 들라.
3 하늘을 펴시는 것은 다만 여호와의 여러가지 위대한 배치사업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시편은 계속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천사들로부터 지상의 동물들과 무생물들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사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례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또는 천사]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시편 104:3-5) 성경은 여호와께서 공간에 지구의 기초를 두시었으며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강력한 파괴무기들로써 지구를 파괴한다는 사회적 불안과 위협이 있는 오늘날 주목할만한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다. 이 시편기자는 지구 창조의 내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상에 있었던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 기록하였는데 그 홍수의 결과는 지구 외형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높은 산들과 깊은 바다들이 있는 오늘의 형상을 갖게 되었다고 6-9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있다.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 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물의 경계를 정하여 그 처소에 머무르게 하신 여호와의 능력을 정당하게 인식한 것이다.
4 초목들에 물을 주며 모든 생물들의 음료수를 공급해주기 위하여 물이 바다에 있어서 뿐만아니라 지상 어느 곳에 있어서도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여지가 없다. 여호와는 산 위의 높은 곳에도 물의 처소들을 정하시어 지상 각처에 있는 다른 창조물들의 편의를 도모하시었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 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무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시편 104:10, 12) 여호와께서 중요한 생활 필수품 중의 하나인 그 물의 공급을 얼마나 적절하게 하시는가를 관찰함으로써 사람은 큰 지혜와 조화를 알게된다.
5. 지상의 여러 곳에 있는 생물들을 위하여 여호와는 어떻게 양식을 공급하시는가?
5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물과 함께 식물(食物)도 필요하다. 물과 땅은 합하여 채소나 식물(植物)을 자라게하며 식물(食物)을 풍부히 공급해준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시편 104:13-15.
6, 7. 시편기자는 그 의에 무엇이 각각 그 정확한 처소에있다고 말하는가?
6 시편기자는 생물들을 위해서 양식을 배치한 그 기적과 완전함에 대해서 묵상하고 기록한 다음 여러 곳들의 일정한 동물이나 새들의 배치에 대하여 인식과 이해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생물들은 동일한 장소에 머무러있다.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양목이로다 새들이 그 속에 깃을 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로다.』—시편 104:16-18.
7 다른 피조물에게도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들이 언제나 틀림없이 그 본래의 처소에 있는 놀랠만한 사실은 시편기자의 주의를 끌고 있다.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것을 알도다.』 (시편 104:19) 매우 오랜 세월에 걸치어 여호와는 해와 달 뿐만아니라 해아릴 수 없는 수 10억이라는 별과 유성을 각각 그 처소에 정확하게 붙어 있게 하셨다. 1초도 틀리지 않는 정확한 시계일찌라도 해나 달에 의해서 맞추어 볼 수 있는 것이다.
8. 밤 사이와 낮 사이에 있어서 어떤여러가지 활동이 진행되는가?
8 낮이 되고 밤이 되어 날이 계속 지나감에 따라 지상에는 매우 여러가지 활동이 진행된다. 『주께서 흑암을 지어 밤이 되게 하시니 삼림의 모든 짐승이 기어 나오나이다 젊은 사자가 그 잡을 것을 쫓아 부르짖으며 그 식물을 하나님께 구하다가 해가 돋으면 물러가서 그 굴혈에 눕고 사람은 나와서 노동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 도다.』 (시편 104:20-23) 여호와는 사람 동물 새 물고기 식물 물 땅 해 달 유성 별 산 계곡 하천들의 처소를 정해주시고 각각 특수한 임무 또는 할 일을 주시어 그 목적과 배치가 완전히 일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시편기자가 말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반드시 이르게 된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시편 104:24.
하나님의 통찰력
9. 사람들은 이 창조의 기적을 봄으로써 무엇을 하게되는가? 또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가?
9 시편기자는 이 시편 104편에 계속 창조의 조화와 경이를 더욱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말한 사실만 하드라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게되며 그분에게 찬송과 정당한 경배를 올리고저 원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사도 바울은 사람이 사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하지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 1:19-23) 인간은 창조의 경이와 기적을 보고도 위대하심과 존귀와 권위를 가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창조물 자체를 섬기어 왔다. 오늘날 사람들은 돈과 권력과 명성들을 숭배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것들을 획득하기 위하여 온갖 나쁜 일을 행하고 창조주께서 마련하신 사랑의 특성들은 모방하지 않는다. 사실 인간은 부정한 행동을하며 여호와를 무시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사람의 악행을 보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암시하고있다. 대부분의 인간 사회는 자기중심에서 창조주를 배반하며 그를 망각하고 일들을 제멋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10.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는 일을 다 보신다고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10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신다는 것은 사실인가? 인구가 매우 증대하였기 때문에 일들이 하나님의 힘에 넘치게 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호와는 그러한 약한 하나님은 아니시다. 그는 지혜와 이해력이 무궁하시다. 사람은 더 큰 망원경을 만들어 하늘의 그 헤아릴 수 없는 수 10억의 별들 가운데서 2, 3천개만 더 세워도 매우 지혜있는 것 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그 망원경을 가지고도 겨우 조곰 밖에 보지 못하는 은하계(銀河系)가 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 수많은 별들을 보고 세우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들 전부를 이름대로 부르신다.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시편 147:4, 5) 하나님은 사물들의 행적을 못보시지 않으신다.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하고있는 일을 당신은 대단하게 생각하든지 안하든지 여호와는 알고 계시다. 하나님의 면밀한 주의는 조고만 생물체들에게도 베풀어진다. 머리 주위를 날러 귀찮게 하는 조고만한 하루사리나 피부를 매우 가렵게 하는 거진 눈으로 볼수 없는 작은 벌러지를 생각해보라 이러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리고 많이 생식함에 필요한 기관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부주의로 빠뜨린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들은 살아 가는데 필요한 것을 전부가지고 있다.
11. 무생물과 하등동물들이 그것들의 처소세서 이탈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11 여호와께서 수 많은 물건들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나타내신 그 능력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수 억이라는 수효를 이루지마는 하나님은 그것들을 제각금 알맞는 처소에 머물러 있도록 하셨다. 무생물은 여러 자연의 법칙 즉 인력(引力)의 법칙 원심력(遠心力)의 법칙 및 기타 법칙에 의해서 억제되어 있으며 생물은 『종류』의 법칙으로 제약되어 있다. 어떠한 생물이 다른 족속의 『종류』와 교배하여 어떠한 새 것을 만들든가 또한 여호와께서 마련하시지 않으신 새 처소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엑스 광선(X 光線) 자외선(紫外線) 방부제(防腐劑)등을 구비한 연구실들에서 사람은 아무리 회유적(後東해) 또는 강제적인 노력을 해 왔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종류들』은 형성 또는 창조되지 않었으며 만물은 여호와가 그들을 위해 정하신 처소에 머물러있다. 어떤 사람들은 노새(騾)를 보고 위의 말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노새는 생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본질상 한 족(族)의 종류가 되지 못한다. 노새들은 풍족한 양식과 물을 주드라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멸천한다. 순(純) 『종류』의 생물은 어떤 것이든지 충분한 양식과 물만 있으면 생존해 나아간다.
제일먼저 자기 처소를 떠난자
12. 천사들은 어떠한가?
12 하늘의 천사들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일정한 처소가 있다. 물론 그들은 하급 창조물인 무생물 식물 동물들과 같이 그와 동일한 법칙으로 얽매이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고정된 처소에 머물러 있도록 되어 있으며 그들이 그와 같은 지정된 처소를 떠날 때에는 불행한 결과들이 따르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기 임무를 버린 한 천사 그룹과 그 결과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에덴동산의 감독자로서 임명된 것은 그 천사이었으며 그 천사가 자기 임무를 태만하여 악마 사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사단은 애당초 충족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며 완전하였고 또 여호와의 조직의 일부분으로서 어떠한 지위에 놓이었었다고 한다.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 으로 단장하였음이어 …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이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에스겔 28:12-16) 이 천사는 하나님의 조직에 있어서 어떠한 처소를 배정받었었으나 자기 의무를 이행할 교훈을 순종치 않었기 때문에 여호와의 조직에서 쫓끼어 났다는 것은 매우 명백한 일이다. 어떤 종교 단체들은 오늘날 사단은 『지옥불』이라는 곳의 두목으로서 그는 붉은 옷을 입고 쇠갈퀴를 가지고 불을 쑤시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사단은 여호와의 조직에서 쫓껴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임무만 변경된 것이라고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유다 6절에 표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다르게 증언하고 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조화되어 있는 우주 가운데에는 분렬과 불순종에 대한 처소는 없기 때문에 자기 처소를 떠난다는 것은 멸망 또는 절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한은 상징적 말로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는데 악한 귀신들 전부와 악인들 전부에 대해서 『하늘』과 『땅』이라는 상징적 말을 사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계시록 20:11.
13. 여호와는 사물들을 억제하실 수 있으시다고 하는 어떠한 증거가있는가?
13 오늘날 영계 및 물질계의 두 부문에 존재하고 있는 그러한 거대한 조직을 여호와께서 멸하시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이용하실 수 있는 힘을 잠간 고려해 본다면 그들은 생각을 달리 하게 될 것이다. 수 많은 천사들은 자기들의 처소에 머물러 하나님의 완전한 조직내에서의 자기들에게 맡기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서 어떠한 표적을 보았는데 그것은 수 많은 천사에 관한 것이었다.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다니엘 7:10) 현재 악한 세력과 대항해서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는 천군(天軍)을 묘사하여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만의 2만배 즉 2억]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계시록 9:19, 신세) 여호와께서 다만 한 천사를 사용하여 하루 밤 사이에 185,000명의 군사를 멸하신 것을 볼 때 그 천군의 힘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원자탄은 경각에 60,000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을 살륙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폭발되면 그 폭탄의 힘은 완전히 소모되고 만다. 천사들은 그 파괴하는 일을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다. 이 힘의 수 억배 그리고 그것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누구나 인간의 힘은 하나님의 힘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아니 이를 수 없는 것이다.
14. 여호와의 능력을 신뢰한다면 악인에게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가?
14 이러한 사실과 또 하나님은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계시며 조금이라도 묵과하시거나 못 보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악인에 대해서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는다. 사실상 대부분의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전인류는 여호와께서 선정해 주신 처소를 떠나 있으며 그의 충고를 완강하게 거절하고 있다. 전장(戰場)에 있어서의 수 많은 인명의 소비와 수 십억불의 군비 및 엄청난 인류의 수고도 오늘날 악행을 근절하지는 못하고있다. 도리어 전인간사회는 탐욕과 이기주의와 범죄와 부정 소득과 부패와 불순종과 부정직 등등의 나쁜 수확을 걷우면서 완고하게 계속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이러한 악하고도 거만한 자들의 행동에 대하서 당치도 않게 흥분하거나 악인에 대한 형벌로서 사후에 영원히 고초를 주는 곳들을 날조해 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는 사태(事態)를 다루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를 섬기고 자기자신 불평하지 않는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자를 투기하지 말찌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찌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찌라도 없으리로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 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시편 37:1, 2, 7-10, 12, 13) 불완전한 인간은 악을 근절하겠다고 하면서 그 자신 악을 범한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처치하시고 그의 광대하고도 찬란한 우주의 여하한 곳에도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처소를 절대로 남겨 두시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믿는다.
처소를 지키도록 하는 인도
15. 인간은 자기의 올바른 처소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5 이 약속의 청결은 이성 있고 성실한 남녀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견지에서 자기들의 처소가 어디인가 하는 것을 알고싶어 하게 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떠한 처소에 얽매이게 하는 자연 법칙을 갖고 계시는가? 인간은 그 처소에 강제로 머물러 있도록 되어 있는가? 성경은 인간의 처소가 어디이고 또 그 곳에 어떻게 들어 가며 어떻게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말해 주는가? 다윗은 이 문제에 관한 진리를 말하고 인간은 창조주와 친분을 가질 수 있으며 인간이 이 친분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보호와 구원이 있는 안전한 처소에 들어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셀라).』 (시편 32:7) 이 시편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뜻을 표명한 사람에 대해서 여호와는 다음 두 구절에 대답하시어 여호와께서 인간을 인간의 처소에 두시고 그 처소를 지키도록 어떠한 마련을 하셨는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찌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히 오지 아니하리로다.』—시편 32:8, 9.
16.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인도하심에 동물들과 다른 수단을 쓰시는가?
16 이 두 구절로서 여호와는 자신의 창조물들을 알고 계시며 그 창조물들을 어떻게 그것들의 바른 처소에 머물러 있도록 하실는지 알고 계심이 명백하다. 다른 동물보다 훨씬 우수하고 신기한 두뇌를 가진 창조물인 인간은 지도를 받어야 할 지성(知性)을 갖고 있으며 그 지성은 그를 지휘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등 창조물에 대해서 한 것과 같은 그러한 한계를 정하시지 않고 그를 위해서 충고를 마련하셨다. 그러므로 성경 가운데 여러 곳에 분별성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가치에 대해서 그들이 안내자와 같이 그리고 그들의 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과 같이 말했던 것이며 여호와는 위에 인용한 시편 32편에 인간을 인도하는 수단과 말이나 노새를 인도하는 수단을 대조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다. 말이나 노새는 매우 저렬한 두뇌를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는 곳에 가게 하기 위해서는 물적 수단 즉 자갈이나 굴레로서 인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께 그와 같은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확실히 하나님은 인간을 훨씬 높은 수준으로 창조하셨으며 보다 나은 방법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말이나 노새와 같이 되지 않도록 충고를 받는다. 여호와는 인간을 어떠한 일을 하도록 강제적으로 내 몰지 않으신다. 그는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즉 하나님은 인간이 눈으로 읽고 귀로 들어 납득할 수 있는 충고를 하시어 그지식이 그의 갈 길을 가리키며 그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게 하신다.
17. 이것은 성경을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는가?
17 이것은 명백히 성경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우주의 운행과 완전히 조화되고 있는 처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충성된 인류로 하여금 아담에게 제시되었었던 여호와와의 친분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마련의 하나이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였더라면 그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생존해 왔을 것이며 오늘날도 생존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여호와의 충고를 받아드린다면 분에 넘치는 영생의 선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18. 사람은 자기가 올바른 처소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는가?
18 그야말로 인간의 바른 처소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를 올리는 자리이다. 이것은 어떠한 자들이 해 본 것처럼 수도자나 승려가 되어 자기자신 고립함으로써 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의 목적과 능력 그리고 특성들을 다른 인간에게 공개적으로 선명하여 정당하게 경배를 받으신다는 것을 위대하신 시범자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예수께서는 모든 제자들에게 왕국소식을 선포하는 일에 분주히 종사하도록 권하셨다. 그는 비록 그것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지만 자기자신 그렇게 함로써 자기의 진실성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을 숭배하는 일은 인간의 일상생활중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며 뿐만아니라 인간이 생존하고 있는한 필요한 것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시편 145:2) 그러므로 인간은 이 충고를 받어야 하며 고집센 노새와 같이 거절하거나 피할것이아니라 이성의 인간 답게 순종하여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를 알도록 노력할 것이며 하나님을 은신처나 구원의 거처와 같이 의뢰하여야 한다.
신세계 사회내에서의 처소
19. 어떠한 사회와 교제하는 것이 올바르며 아마겟돈은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그 이유는?
19 오늘날 신세계사회와 교제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렇게 행하고 있다. 그들은 신세계사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안내자로 믿고 그 말씀에 명백히 되어 있는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거할 올바른 처소이라는 것과 악인을 그들의 처소도 남기지 않고 멸한다는 성경의 경고는 신세계사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악인을 멸하고 그들을 제거할 아마겟돈전쟁은 신세계 사회에 대해서는 아무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신세계사회는 온순하게 그 바른 처소에 들어가 있어 멸망을 받을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는것이 필요한 것과 같이 아마겟돈전쟁은 전도를 계속해야 할 필요성을 변경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때에는 이야기를 해 줄 악인은 남어 있지 않겠지만 가르쳐야 할 자녀들과 때가 되면 부활로 말미암아 무덤으로부터 이르킴을 받을 수백만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20. 우리들의 바른 처소를 구하며 지키기 위하여 왜 노력이 필요한가?
20 신권적 조언을 따르도록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권유하는 것은 확실히 지혜로운 충고이다. 당신의 처소를 찾아 그 곳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 지금 신세계사회와 함께 일하라 그러면 아마겟돈 후에도 당신은 신세계사회와 함게 일할 수 있게 될것이다. 신권적 조언을 구하며 또 그것을 따르기 위하여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당신의 희생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계명인 것이다. 『그가[하나님의 아들 예수] 우리를 위하여 영혼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영혼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 1서 3:16, 신세) 우리는 듣기를 원하는 매 사람에게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해야 할 필요를 말해 줌으로써 인간 형제들에게 이 정당한 사랑과 관심을 표시하게 된다. 사실 신세계사회의 외부에는 여호와의 백성을 위한 처소는 결코 없다. 이와 같은 외부의 처소는 다른 백성의 것이다. 그 백성이란 자기자신의 생각대로 살 처소를 구하는 완고한 백성이며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를 곧 깨닫게 될 백성이다.
21.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처소에 들기 위한 요구조건을 몇개 말하라 이러한 요구에 대한 우리외 태도는 어떻게 하여야하는가?
21 오늘날 신세계 사회와 교제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유리한 처소에 대해서 감사하고 그것을 고수하여야 한다. 신세계사회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은 책임있는 직분을 갖고 있으며 또한 모든 사람들은 봉사하는 직분을 갖고 있다. 처소를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영감 받어 성경을 기록한 분들의 조언을 꾸준히 따러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이 걷는 길은 이 낡은 세상 제도와 교제하고있는 사람들이 걷는 길과는 전연 다르다. 그리고 영원히 처소를 지키기 위하여서는 참 그리스도인이 걷는길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사도 바울은 특히 감독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참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많은 요구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외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두 단정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디모데 전 3:2-7) 책임의 직분을 가지고 있는 신세계사회외 특별한 대표자들은 바울의 이 조언 전부와 성경 전체에 걸치어 주어지고 있는 조언을 실행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봉사하는 직분이 여하한 것이든 우리를 도와 그 바른 처소에 들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는 성경을 기록케 하셨으며 또한 보존되도록 하셨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임하는 의무를 피하여 그 처소로부터 버서나려고 하여서는 안된다. 도리어 간절하게 그 책임을 맡어 꾸준히 그 책임을 수행하여야 한다.
22. 성경은 어떠한 조언을 여자에게 말해주고 있는가? 이 세상 사람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단연히 남자가 여자의 지도적 지위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수 있는가?
22 회중내에 있어서의 여자의 바른 처소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또한 성경 가운데에는 상당한 주의를 주고 있다. 바울은 디도에게 편지를 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늙을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저들도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디도 2:3-5) 오늘날 낡은 세상의 여자는 대개 이 직분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한 직분은 자기들의 권리와 저촉된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마련이며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 때만 그의 바른 처소에 있는 것이다. 여자가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마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다스리는 가정에 대한 일반 논평으로부터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마련이 정당하다는 것은 인정되어 있다. 미국에 있어서는 그러한 남자를 대개 『아내에게 눌려 사는 남편』 또는 『줏대 없는 남편』이라고 하며 여자는 『다루기 힘든 아내』이라고 한다. 신세계사회의 여자는 처소에 관한 여호와의 마련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회중외 일을 좌우하려거나 남편의 의무를 빼았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렇케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 남자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며 자기의 바른 처소를 떠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세계사회의 남자는 열심히 남자의 처소를 지키고 마땅히 자기가 할 일을 아내에게 미르거나 않으며 자기의 생각이나 행동을 지배받기 위하여 아내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남자에게 맡기어진 처소에서 버서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에 여자가 되는 것을 피한다.
23.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처소를 든든히 지키어야 할 다른 이유들을 말하라.
23 선교사업에 종사하면서 하나님의 조언을 전부 지키며 자진적으로 자기의 바른 처소에 서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대사가 된다. 그리하여 바른 처소에 섬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다른 사람에게 권할 충분한 자격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전도로서 하나님을 올바로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을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린도 후 5:20) 전도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것은 겸손한 태도를 취하여 자기의 처소를 든든히 지키는 것이다. 더욱 그 결과 전도를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자신도 영생을 얻게된다.
24. 왜 어떤 사람은 여호와외 마련을 받어드리기가 곤란한가?
24 많은 사람들은 이 낡은 세상의 명성 때문에 이 일을 하기가 곤난하다. 대개 지나치게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가 호호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 사업 관계로 아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볼까 두려워하는 수도 있을것이다. 혹은 다만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연단에서 강연하며 큰 집단을 지도하는 것만이 자기의 할 일인줄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또 다년간 사회 사업을 해 오고 많은 남녀들을 감독해 온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신세계 사회에 들어 올 때 남자의 감독에 복종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할것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능력을 생각해서 특별히 남을 지휘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수 십명 수 백명의 사람들의 활동을 훌륭하게 지도하는 세속적 지위에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신세계사회에 들어올 때 자기보다 낮은 사람의 감독을 받는다는 것은 곤난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 감독을 기꺼히 받지 않을찌도 모른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제도내의 바른 처소에 서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고 있다.
하나님은 정하신 일을 고수하심
25. 사람이 다른 것을 바란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자신의 마련을 변경하시지 않는다는데 대해서 성경가운데는 어떠한 예가 있는가?
25 그러나 여호와는 인간 때문에 조직을 변경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조직에 일치하기 원한다면 우리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않된다. 옛적에 한 장군이 여호와의 마련의 혜택을 받기를 원하였다. 그 기사는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 장군은 자기가 높은 지위에 있었으므로 특별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안하였을때 대단히 격분하였다. 그 장군은 아람 군대의 장관 나아만이었다.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열왕 하 5:1-8) 이 이야기는 곧 아람의 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왕은 나아만을 고쳐주기 위하여 간곡한 편지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보내어 선지자의 도움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은 10다란트와 금 6천개와 의복 열벌을 보내었다. 약속이 다 되어 나아만은 예와 같이 말과 수레를 이끌고 선지자 에리사의 집 문 앞에 섰다. 그러나 에리사는 문까지 나오려고도 하지 않고 또한 나아만으로 해서 벅석 그리지도 않고 다만 사자를 보내어 요단강에 가서 그 물로 몸을 씻으라고 전하였을 때 나아만은 자기 나라의 강물이 요단강의 물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면서 불과 같이 대노하여 가버렸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께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매섹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열왕 하 5:10-12) 그의 종 하나가 나아만에게 가차이 가 그의 마음을 진정시켜 말하기를 만일 에리사가 큰 일을 하라고 할찌라도 기꺼히 행하여야 할찐대 하물며 이 사소한 일을 왜 행하지 않는가 하고 말였다. 나아만은 에리사의 말대로 하였을 때 그의 문둥병은 완전히 났게 되었다.
26. 오늘날 어떠한 마련이 있는가?
26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그 군인이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여호와는 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시며 약소한 인간의 이기주의 때문에 그 방법을 변경하시지 않는다. 오늘날 인류에 대한 여호와의 취급도 그와 같다. 여호와는 대속의 희생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의 반렬을 가진 신권제도 자신의 백성에게 진리를 점차적으로 계시하는 일 그리고 그 외에 여러 훌륭한 마련을 하셨다. 이 모든 것은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소망을 준다. 그리고 그 소망은 오늘날 영생으로 인도하는 영적 치료의 확실한 기초가 되고 있다. (마태 24:45-47, 신세) 자기는 딴사람과 다르다든가 또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여호와는 특별한 준비를 만드시지 않는다. 또 어떠한 개인을 택하여 특별한 계시를 준다든가 영을 여분으로 부어주시는 일도 하시지 않으신다. 여호와는 조직적 방법으로 한 집단으로서 백성을 취급하신다. 그리고 그 집단이 서로 어떻게 일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말씀인 성경 가운데에 많은 조언을 하고 계시다. 오늘날 조직이 장성되어 영적으로 번영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진실되다는 것을 명백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 오늘날 수 10만이라는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고 여호와께서 만드신 마련을 받아드리고 있다. 그리고 수 세기를 통하여 여호와를 안 사람들이 그 왕국과 그 축복을 기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왕국의 축복을 기대한다.
27. 하나님의 모든 종들은 어떠한 한가지를 바랐는가? 그 결과 모든 종들은 어떠한 길을 걷는가?
27 의로운 아벨은 그것을 바랐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그리고 선지자들도 그것을 바랐다. (히브리 11:1-40) 예수는 그것을 기도하여 구하라고 가르쳐 주시었다. (마태 6:9, 10, 33) 예수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그것을 믿고 바랐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바란다. 여호와는 충실한 사람을 결코 실망케 하지 않이신다. 여호와는 의의 왕국으로 우주를 지배케 하신다는 이 큰 목적을 변경하시지 않으셨으며 도리어 수 천년동안이나 그 세밀한 마련을 위하여 끊임 없이 일해 오셨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숭배할 수 있고 무엇을 바랄 것인가를 알며 또한 실망하여 소망을 변경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 발에 등이요 그들의 길에 빛」이었다. 그들은 여호와가 지시하는 길에 따라 걷고 있으며 견고하고 평탄한 처소에 발을 딛고 있음을 안다.
28.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는가?
28 이것과 반대로 여호와의 조언을 바라지 않고 이 낡은 세상 조직제도의 위인에게 의존한 사람들은 항상 실망을 느끼어 왔으며 그들의 소망은 낙망으로 변하여졌던 것이다. 계획이나 협정이나 왕들은 계속 진실한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하였고 해결 불가능하게 보이는 많은 말성들이나 문제들만 언제나 남기어 왔다. 그들은 구뎅이가 많이 있는 우툴 두툴한 길을 걸으며 목표를 확실히 보지 못한다.
29. 여호와의 회중내의 처소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29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것이란 이 낡은 세상의 눈으로 보는 위대한 것이라든가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만드신 마련이다.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내의 처소는 비록 낮은것 같이 보일찌라도 그것은 진실로 안전하고 가치있는 처소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구하고 또한 얻어 그 다음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처소이다. 만일 다음의 시편을 쓴 사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을 행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률히 여기소서 내 발이 평탄한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시편 116: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