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의 싸움을 계속함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린도 후 10:4.
1, 2. 무엇이 오늘날의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가?
여호와의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된 것이 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 전쟁과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여러 세기동안 모든 나라들은 그들 사이에 전쟁을 계속하여 왔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조직의 완전한 종말이 오기 전에 얼마동안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있으리라고 예언하신 바와 같다. 우리는 지금 여러 세기동안 기다리던 바로 절정(絶頂)에 살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이 지구로부터 평화가 제거된 시기인 것이다.—전도 3:1, 8.
2 당신은 이 모든 전쟁으로 말미암은 고통 슬픔 잔혹 만행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받어 왔는가? 사랑과 지혜와 자비의 하나님께서 낭비와 파괴와 귀중한 생명의 손실을 가져오는 전쟁을 이르키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결코 그럴수 없다. 오히려 야고보 3:14-16; 4:1-4에서는 탐욕과 다툼과 혼란은 『이 세상 신』인 「사단」으로부터 오는 악귀적인 것임을 명시하였다. 「사단」은 지금 여호와와 동등되겠다는 불 타는 욕망으로 이 땅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 있음은 이 나라들의 사고방식(思考方式)에 명백히 반사되고 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러므로 그들은 더욱 타락되고 있다. 교직자(敎職者)들은 이들 국가사이에 일어나는 무력적인 전쟁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간구하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국가적인 이익이나 종교적인 이익을 위하여 더욱 힘쓴다. 그리고 『평화가 없을 때에 평안타 평안타』고 부르짖는다.—예레미야 6:13, 14.
3. 우리는 왜 성경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가?
3 이 혼란된 세상에서 정직한 사람들이 따러야 할 가장 좋은 길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대로 이 세상 조류를 따를 것인가 혹은 우리를 위하여 계획된 확실하고 더 좋은 길이 있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여호와의 길과 생각은 우리보다 훨신 높다고 교훈한다. 우리는 그의 길을 경솔히 거절할 것이 아니라 잘 생각할 것이다. 올바른 싸움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심중히 생각하고 그것이 이 세상 나라들의 방법보다 얼마나 더 실용적인가를 살펴 보라. 그들 자신의 방법을 따른 자들의 결과에 관하여 우리에게 잘 기록되어 있다. 인류에 대한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히지 아니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그들이 거룩한 생명에 관한 여호와의 법률인 무지개의 언약(言約)을 파괴하고 이 세상과 그들의 군대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6:15; 이사야 34:1-4) 현재까지의 모든 전쟁의 결과는 평화의 확실성을 조금도 가져오지 않었다. 다만 불안과 무력을 필요로 하는 거짓 평화를 가져 왔을 뿐이다.
4. 영적 싸움은 무엇인가?
4 이 세상 나라들 사이의 전쟁은 혈육(血肉)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 대한 성경의 교훈은 영적 싸움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이것은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영적 싸움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하여 싸우는 이유와 싸움의 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손을 맞 잡고 싸우는 것이나 또는 파멸적인 우월한 과학 무기로서 패권을 얻기 위한 싸움도 아니다. 「바울」은 에베소 6장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결코 우리가 오늘날 인간의 정부에 대항하는 것이나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명하신 일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하여 평화스럽고 조용한 생활을 갖도록 왕과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교훈을 받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울 것이라.』 (요한 18:36) 사도 「바울」 이 「에베소」로 보내는 그의 편지에서 싸움에 관하여 말한것은 「사단」의 영적 조직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단」은 수 세기동안 이 지구를 통치하고 지배하여 왔던 것이다.—고린도 후 10:4; 에베소 6:12; 디모데 전 2:1-3.
5.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진리로부터 어두어졌는가?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수 있는가?
5 인간에 대한 악마의 힘 있는 지배력의 결과는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진리의 빛으로부터 멀게 하였다. 면포가 기쁜 소식을 가리고 있음으로 멸망 받을 자들은 이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혼란과 어둠이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로 말미암아 퍼뜨려 졌다. 그들 자신들이 반역으로 말미암아 어두운 구덩이에 감금되어 있다. 기독교국에서 까지도 성경에 대한 무식이 널리 퍼지고 있음을 볼때 그들은 얼마나 잘 성공하여 왔는가? 충실한 교회 참석자들도 몇개의 성경 구절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목적에 대하여 얼마나 무식한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관한 서적을 교회의 허락없이는 읽지 못하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자신의 초대를 잊고 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이러한 결과로 「어두움은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웠다.」 (이사야 1:18; 60:1-3, 19, 20) 이와같은 영적 배교(背敎)의 결과와 싸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사업중의 하나인 것이다. 마치 「기드온」의 군대가 그들의 항아리를 깨트리고 횃 불을 눈 부시게 비침으로 그들의 적을 놀라게 한 것과 같이 오늘날 이 지상에 있는 여호와의 종들도 진리의 밝은 빛을 기독교국의 컴컴한 한 모통이로부터 이교국(異敎國)의 컴컴한 한 모퉁이까지 밝게 비치게 하고 있다.
6. 그리스도인의 싸움과 그의 이득을 설명하라.
6 영적 싸움에 있어서 가장 큰 즐거움을 가져오는 것 중의 하나는 감금되어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옥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선의자(善意者)들에게 끊임 없이 진리를 가르쳐 주며 어려서 부터 씌워진 미신과 종교적 암흑의 면포를 벗겨주는 것이다. 그들이 진리의 지식을 통하여 마침내 자유를 얻게되면 그들의 기쁨은 마치 갇혀 있는 사람이 해방된것 이상으로 또는 소경이 앞을 보게 된것 이상이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바울」이 말한바와 같이 하지 않으면 않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사도 「바울」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었으니.』 (디모데 후 4:2-7) 이것은 이 지상의 사람들이 조금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싸움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이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증진시키고 그에 대한 사랑과 우리 동료들 사이의 사랑을 증가시킨다. 이 싸움은 건설적인 것임으로 심적으로 도덕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선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북돋아 준다. 이 싸움에서 얻는 소득은 오래 계속되는 가치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에 이르게 한다. 이 싸움의 뒤에는 보통 전쟁의 뒤에 오는것과 같은 적개심(敵愾心)이나 지면(地面)의 파괴된 흔적 또는 고역이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모든 민족으로부터 나온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영속적 평화의 띠로 연합시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공통적인 이해를 갖게 한다.
7. 깨끗한 숭배를 위한 싸움의 예를 들라.
7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 세계에서 성경의 지식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이 싸움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이전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한바와 같이 사람들의 가정에 싸혀있는 암흑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바울」은 처음 경험으로 봉사를 위한 싸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협박하기 위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두 시간씩이나 외첬던 「에베소」의 종교적 폭도들의 격노를 우리들에게 상기시켰다. (사도 19:28)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지식을 널리 선포하기 위한 그의 싸움에서 그가 당하였던 음모와 옥에 갇힌 일과 매맞은 일 바다와 육지에서 만난 위험하였던 일과 여러가지 난관과 고독하였던 일을 말하였다. (고린도 후 11:23-27) 이 싸움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단되지 않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폭도들과 금지령과 감금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평화스러운 봉사를 계속하여 왔다. 예를 들면 「트리니다드」에서는 네명의 「왙취타워」 선교인이 근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원치 않는 방문객』이라는 선언을 받었다. 이것은 그들이 「모타」선을 타고 「캐리비안」 군도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하여 연료와 물품을 얻고져 항구에 닿았을 때에 일어난 일이였다. 그외 다른 곳에서도 여호와의 백성들은 폭행을 당하고 조소와 추방을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격리되며 감금 또는 죽엄까지 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참된 투사(鬪士)로서 충성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평화스럽게 그들의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법적으로 거절당하였다. 지금은 다만 이 세상 나라 사이에만 있는 전쟁의 시기가 아니라 진리의 선포를 위한 격렬한 영적 싸움의 시기인 것이다.
당할수 없는 장비
8. 우리는 왜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8 이 싸움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서 싸우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어떠한 군인과도 같이 우리는 먼저 싸우기 위한 장비를 잘 알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싸우는 이유를 이해하고 옳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한다. 「바울」은 그의 많은 경험과 오랜 세월의 선교 봉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가추어야 할 중요한 무장을 열거하였다. 그는 먼저 『진리의 허리 띠를 띨것』을 말하였다. 이것은 진리가 항상 우리 옆에 있어야 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필수품과 같이 생각하고 그것으로 허리를 띠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만 『나도 교회에 다닌다』라고 간단하게 말함으로 성경을 토론하는 것을 미러 놓는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들은 1주일에 한번 또는 두번씩 경건한 모양을 갖는다. 그러나 나머지 시간에는 완전히 버서 버린다. 이러한 사람들은 심지어 진리란 어떠한 성품의 것인지 상상해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신조(信條)까지도 정통하고 있지 못하니 하나님의 말씀에 무식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정확한 진리의 지식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가 참 숭배와 거짓 숭배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우리는 과오를 폭로시키는 싸움에 참예하지 못할 것이다. (이사야 28:17, 18)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분렬되지 않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다만 하나의 참된 믿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당신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믿으며 그것대로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이 지식으로 말미암아 의식(儀式)과 전통(傳統)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통일된 마음을 가질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 5:1; 에베소 6:14; 요한 17:17.
9. 의의 흉배는 무엇을 보호하는가?
9 다음에 우리가 가저야 할 것은 정의의 흉배(胸背)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전파한다면 또한 우리는 진리대로 의롭게 생활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위선자(爲善者)요 여호와의 참다운 종들이 아니다. 우리의 봉사는 온 마음을 다 하는 것이여야 하며 결코 분리된 마음으로 하여서는 않된다. 부도덕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육체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음을 경고 받었다. 그리고 또한 조그만 부패도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좋은 봉사를 어지럽힐 것이며 해롭게 할것이다. 이와같은 육체적인 욕망은 우리 영혼을 대항하여 싸우며 이러한 것은 정의의 흉배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으면 안된다.—갈라디아 5:9, 13; 베드로 전 2:11.
10. 우리가 전파하도록 명령된 기쁜 소식이란 무엇인가?
10 『그런즉 서서 …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에베소 6:14, 15) 이것이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람들에게 갖다 전하여 주는 소식이며 위안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 24:14, 신세)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온 세계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서 즉위하고 계시며 우리는 지금 과도기에 살고 있으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속적인 평화를 갖다 줄것을 말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이사야 52:7) 이 평화와 희망의 소식에 좋지 않은 점이 어데 있는가? 이 기쁜 소식의 사자(使者)들의 발까지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보신다. 그러나 이 평화의 소식은 「사단」의 조직에 대하여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다.
11. (ㄱ) 믿음은 어떻게 보호의 힘이 있으며 믿음은 어떻게 얻는가? (ㄴ) 위대한 믿음의 과거의 예를 들라.
11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라』는 경고를 받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공격을 받을 것을 각오하여야 하며 그것을 물리치기 위하여 여호와께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길수 있으며 우리의 충실한 봉사를 가로 막고있는 장해물을 극복할수 있다. 강한 믿음은 우리를 낙심하지 않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인내력 있는 전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하는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낙심하는 경우가 있다. 「노아」는 낙심하거나 몇해 전하다가 그만 중지하여 버리지 않었다. 그는 하나님이 참되심을 알았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그러나 그는 중지하지 않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에 편지 할 때에 이 예를 인용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사업은 수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갖게하는 지식의 기초가 없이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정확한 지식을 더욱 많이 얻고 더욱 많이 사용한다면 우리의 믿음의 방패는 더욱 견고해 질것이다.—에베소 6:16, 17; 로마 10:16, 20, 21; 이사야 53:1; 65:2.
12. 우리는 어떻게 구원의 투구를 얻는가?
12 「바울」은 계속해서 『구원의 투구』를 당신의 무장의 한 부분으로 쓸것을 충고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과분하신 인자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원을 준비하신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준비로부터 오는 이익을 받기 위하여 이 준비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에게도 강요되지 않는다. 「바울」은 많은 예언의 성취를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로마 13:11) 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구원을 직접 볼수있는 세대(世代)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계시록 12:10) 구원의 대열에 서 있는 사람들은 쉽게 인증될수 있다. 그것은 특별한 의복을 입음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과 사업에 의하여 증명되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같이 생활하고 전도함으로 그들의 빛을 비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13. 우리는 왜 성령의 검을 갖게 된것을 기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 할 것인가?
13 영적 싸움을 위한 무장에 매우 중요한 일부분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에베소 6:17) 이것은 방어와 공격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다. (고린도 후 6:2-10) 무장을 하지 않은 군인이 나은 것이 무엇인가? 또는 만일 무기를 사용할줄 모르는 군인이 있다면 그는 일선에서 얼마동안이나 살아 있을 것인가? 이와같이 성경을 가지고 있는 복음 전도자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할줄 모르고 구절을 찾아서 자기에게 적용시킬줄 모른다면 그는 영적 싸움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직자(敎職者)들이 그러한 상태에 있음을 발견할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의 확실성 즉 영감성(靈感性)을 부인함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는 그들에게 어떠한 지혜가 있겠는가? 「바울」은 성령의 검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베리야」 사람들이 열심히 성경을 상고하고 중명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을 칭찬하였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하여야 할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 대한 그의 목적과 뜻과 생명을 위한 요구조건을 이 말씀을 통하여 나타내신다. 우리는 이 성령의 검으로서 공격을 위하여 무장하고 굳게 세워진 것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힘을 얻게 된것이다.
14.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기도를 들으시는가?
14 「바울」은 그의 영감받은 충고를 계속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기도는 우리가 이 영적 싸움의 지도자이시며 사령관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께 나아가고 교통할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께 그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힘과 지도를 주시도록 간구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기도가 그의 뜻에 일치한다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질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낡은 세상 조직의 피로 물드려져 있는 전사(戰士)들이 사욕적인 이익을 위하여 계속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으실 것을 거절하신다. (이사야 1:15; 에베소 6:18) 『깨여 구하기를 항상 힘쓴』다는 것은 군인에게 확실히 필요한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긴급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스도깨서 이미 아시고 계신바와 같이 그의 재림(再臨)은 여호와의 증인에 의한 대대적인 선포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일반적으로 무관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자고 있으며 그들은 임재(臨在)의 징조로 기뻐하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깨지 않고 있다.—계시록 16:15; 마태 24:42-44.
15, 16. 우리는 어떻게 영적 싸움에 참예하는가? 우리를 위하여 어떠한 준비가 되여 있는가?
15 끝으로 여호와를 위한 모든 투사(鬪士)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려줄수 있는 재능을 가져야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 6:19, 20)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사신(使臣)으로서 기록할 때에도 자유롭고 담대 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싸우는 문제와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군인들은 이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통하여 알게 된다. 이 근원으로부터 그는 또한 믿음과 함께 오는 용기를 얻는다. 이와같은 것으로 광명과 정의의 무장을 완전히 가추고 나서 겁쟁이가 되여 퇴보하지 말라. 밤은 깊어가고 있으며 낮은 가까워 오고 있다. 지금은 행동할 때인 것이다.—로마 13:12.
16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시편 144:1) 그렇다. 전쟁을 위한 장비 적에 대한 지식 용진 할수 있는 힘과 용기 이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지혜롭게 준비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우리의 일을 하여야 한다. 어떠한 인간의 전쟁에도 교련(敎鍊)이 필요하다. 이와같이 영적 싸움에도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는 우리의 무장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마련하신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않된다. 그러한 것은 무엇인가? 연구하는 것과 접촉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우리가 장비하는 것과 준비하는 일에 중요한 역활을 하는 것이다. 연구하는 일은 열심히 그리고 끊임없이 개인적으로 연구하며 또한 활동적으로 회중 연구에 참예하며 또한 싸움을 위하여 우리가 가추어야 할 모든 훈련 계획에 참예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접촉함으로 자극과 자신을 얻게되며 우리 형제들의 전적인 협조를 확신하게 된다. 고립하여 있는 사람으로서 싸움에서 승리를 얻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접촉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봉사에서 우리의 장비를 시험해 볼 기회를 가지며 우리의 지식을 넓히고 성령의 검을 사용하는 습관을 기를수 있다. 여호와의 이와같은 마련을 충실히 사용하라. 당신의 힘을 다하여 이 모든 것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 후 4: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