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야 할 긴급한 때
1. 예수께서는 어떠한 군사적 배경을 가지고 지금 우리가 충실히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경고를 하셨는가? 그리고 어느 쪽에 서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는가?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겉옷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영화롭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긴급한 경고를 하셨다. 오늘날 이 말씀은 전 세계를 무대로 하여 잘 이루어지고 있다. 온 땅과 하늘의 주관자되는 왕들은 지금 전진하고 있다. 천지를 울리는 대군의 발자국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므깃도」 산에서 전개될 우주적 전쟁 혹은 전쟁중의 전쟁은 점점 임박하여 오고 있다. 이 전쟁에 있어서는 중립이 있을 수 없다. 살아있는 자는 누구나 생명이냐 사망이냐 구원이냐 멸망이냐, 그 어느 쪽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해결되어야 할 커다란 주권 문제를 누구나 긴급히 알아야 할 때가 왔다. 이 문제의 올바른 쪽에 서서 충실과 신임을 보이기 위하여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할 때다. 지금 발생되고 있는 일이 오래전에 예표되었는데, 이 예언적 징조 가운데 주어진 이 충고는 참으로 시기에 적합한 것이다. 그 충고는 다음과 같다.
2. 예수께서는 어떠한 예언적 징조를 말씀하시는 가운데에다 계시록 16:15과 같은 오늘날 적절한 충고를 하셨는가?
2 『또 다섯째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의]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또 여섯째 [천사]가 [하나님의 진노의]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겉옷을[신세] 지켜, 벌거 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 [므깃도의 산]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시록 16:1, 10-16.
3.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 「요한」 당시에 「므깃도」 혹은 「마겟돈」이라 하면 「히브리」인들은 무엇을 연상하였는가?
3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 「요한」이 지상에 있었을 때, 「히브리」인에게 「마겟돈」 혹은 「므깃도」를 말한다면, 그들은 역사상 커다란 전쟁이 벌어진 장소를 연상하였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있을 때, 여호와의 사사(士師) 「여호수아」는 「므깃도」 성읍에서 크게 싸워 이방 왕들을 진멸시켰다. (여호수아 12:7, 21) 여호와의 사사 「바락」도 거기서 싸워서 억압하는 「가나안」 왕들을 정복하였다. (사사기 5:1, 19-21)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던 「요시아」 왕은, 『「므깃도」 골짜기』에서 애굽 왕과 분별없는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입어 죽었으며 그 군대도 패전당하고 말았다.—역대 하 35:20-25.
4, 5. (ㄱ) 「므깃도」라는 말을 하나님의 큰날의 전쟁에 적용시킬 때 어떠한 뜻을 갖게 되는가? (ㄴ) 고대 「바벨론」은 어느 왕들 앞에서 망했으며 「유브라데」 강과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4 「므깃도」라는 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우주 전쟁에 적용되었을 때 그 뜻이 매우 깊다. 그 전쟁은 하나님께서 『온 천하 임금』들과 싸워서 그들을 영원히 멸하시는 전쟁이다. 그리고 「므깃도」에서 525 마일 동쪽에 있는 「유브라데」 강 변두리에 있었던 옛 「바벨론」에 의하여 상징되어 있는 커다란 세계 조직 제도가 전능하신 하나님 앞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멸망될 때가 바로 이때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로 상징되어 있는 두 천적 왕들 앞에 상장적인 『큰 강 「유브라데」』가 말라서 그들이 상징적인 「바벨론」으로 들어갈 길을 예비하였다. 상징적인 강이 그 상징적인 「바벨론」을 상업상으로 부유하게 만들었고, 또 「바벨론」을 가로 막아서 보호하여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 강 위에 임한다.
5 벌써 오래전에 즉 주전 539년 10월 어느날 군 공병(工兵)들에 의하여, 실제적 「유브라데」 강물은 하루밤 사이에 완전히 배수되었다. 그때에 「메데」의 「다리오」와 「바사」의 「고래스」의 두 동방의 왕들의 군대들이, 물이 마른 강 바닥을 밟고 건너가서 열려진 성문을 통하여 「벨사살」 왕을 죽였다. 그리하여 세계강국 「바벨론」은 망했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선지자 「다니엘」의 백성들 즉 여호와의 백성들은, 「고래스」 왕의 명에 따라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6. 멸망된 「바벨론」의 현대적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떠한 숭배의 장소가 계속하여 굳건히 서 있을 것인가?
6 이상에 기록된 것을 현대에 비추어 볼 때에 오늘날 상징적 「바벨론」은 왕 여호와와 천국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 앞에 패배할 것이다. 온 땅의 왕들은 「바벨론」을 도우며 구원하러 올 수 없는 것이다. 마귀의 영을 받은 선전과 정책은 「바벨론」을 도와서 해방된 여호와의 백성인 지상의 증인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지금 왕들을 모으고 있다. 여호와의 백성들은 오늘날 그에게 헌신한 땅에 있는 증인들이다. 이러한 행동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을 더욱 촉진시키고 있으며, 옛날에 「므깃도」에서 많은 왕들이 멸망된 것같이 온 땅의 임금들이 패배하여 멸망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적 성전은 계속하여 굳건히 서 있을 것이며, 그의 숭배도 승리 가운데 계속될 것이다.
7, 8. (ㄱ) 누가 참된 성전에서 계속 섬길 것이며 또 섬기는 자들이 왜 더 필요할 것인가? (ㄴ) 우리가 가면 갈수록 왜 더욱 깨어 있어야 하는가?
7 그러나 누가 하나님의 참된 영적 성전에서 계속하여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그들은 예수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다. 마귀같은 선전과 정책에 따라 「아마겟돈」으로 모이는 온 땅의 왕들에 관한 예언 가운데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영적 성전에서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상징적인 「바벨론」을 지원(支援)도 하지 않으며 방어도 하지 않고 이 상징적인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 없어질 것임에 틀림없는 까닭이다. 한편 『여호와의 집의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점점 많아지며 계속 연달아 올라가고 있다. 그러므로 성전 문이 항상 열려 있어야 하며 헌신한 경배자들이 물밀듯이 모여 오는 것을 성전 마당에다 받아들이기 위하여 밤낮으로 문을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이사야 2:2-4; 60:11-13) 점점 불어 오는 경배자들을 위하여 섬기는 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8 이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고자 원하는 불순하고 옳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추려 내져야 한다. 모든 경배자들은 그 영적 성전을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정결하게 그리고 거룩하게 만드는데 힘쓸 것이다. (이사야 56:7) 온 천하의 왕들이 상징적인 용 「마곡의 곡」의 인솔하에, 「아마겟돈」 전쟁에서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 경배자들에 대하여 결사적 공격을 가하려고 하는 이때이니 만큼, 그러한 불순한 자가 들어와서 영적 성전을 더럽히지 않도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어 한다.—에스겔 38:1–39:8.
어떻게 깨어 있는가
9. 잠드는 자는 어떠한 위험을 당하게 되며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배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9 여호와를 섬기는 자로서 그가 지켜야 할 자리에서 잠들어 버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성전의 으뜸 순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들키게 된다. 그 으뜸 순찰자는 「아마겟돈」 때에 도적같이 임하여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모든 종교 부문을 샅샅이 최종적으로 순찰하시어 심판을 집행하실 것이다. 그때 잠자는 자들은 벌거벗길 것이며 상징적 옷을 태워버리게 될 것이다.a 전적 헌신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으뜸되는 순찰자를 사랑하며,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는 자들은 바짝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는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천국의 보배로운 이익을 위하여 살필 것이다. 숭배자들은 어떻게 영적으로 깨어 있을 것인가?
10, 11. (ㄱ) 예수께서 그 예언 가운데 충고하신 것같이 일어나 깨어 있고자 하는 자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ㄴ)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면에서 「바벨론」처럼 될 것을 원치 않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10 사람이 깨어 있으려면 근본적으로 적당한 휴식이 첫째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너무 지나치게 먹거나 마시는 일을 적극 피할 것이다. 예언된 것들이 이루어질 때에 어떠한 징조가 언제 일어날 것인가 하고 제자들이 질문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 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회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셨다.—누가 21:7, 34-36.
11 우리는 「바벨론」과 같은 인간 사회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밸사살」의 잔치를 축하하여 조심성없이 주연을 베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적 군비를 의지하였고, 여호와의 기구를 남용하여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그들은 멸망하는 날 밤에 이 일을 행하고 있었다. 그때에 벽에다 이상한 손가락이 글을 썼으며 그에 대하여 기적적인 해석을 하게 되었다. (다니엘 5:1-30) 그러한 「바벨론」적 방탕과 경견치 못한 세상에 물들면 졸리기 쉽고, 일락을 즐기기 때문에 자신을 잘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은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리도인으로서 그 책임을 게을리 하게 만들며, 성경 원칙에 따라 살려는 자를 연약하게 만들며 그들로 때의 임박함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다만 악한 종 만이 집 주인이 늦게 오리라고 생각하여 먹고 마시며 취할 것이다.—누가 12:43.
12. 이처럼 긴급한 때에 무엇이 우리로 깨어 있게 만드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12 우리가 꼭 깨어 있어야 할 긴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자극성있는 약을 취하여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자극제는 힘을 주는 것이라야 할 것이며, 결코 그의 정력을 소모시켜서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어서는 안된다.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배우며 미래에 약속된 것을 바라보고 전도를 위하여 충분한 지식을 갖출 때, 그것은 곧 그에게 영적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을 구하는 자를 꾸짖지 않으시고 관대히 주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영적 자극제를 정규적으로 그리고 신심깊게 추구하여야 한다. (야고보 1:5) 인격화한 지혜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고 하였다. (잠언 8:34, 35) 행복은 자극을 준다.
13. 우리는 어떻게 공부를 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공부는 왜 발전적이라야 하는가?
13 우리는 공부할 때도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공부를 함으로써 발전이 있어야 하며 지식과 이해력이 더욱 증가되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목적에 대한 지식과 이해력도 계속 발전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지식과 이해력보다 앞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진리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하여야 한다. 어린 아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커서도 버리지 못하는 격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올바른 소망을 더욱 굳게 세워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한다면 항상 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자극을 받아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공부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장성된다.—히브리 5:14; 6:1-3.
14. 우리는 지식과 이해에 있어서 발전한 것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기쁜 일인가?
14 우리가 얻은 지식과 이해를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써 우리가 얻는 지식과 이해가 얼마나 큰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빛나는 새로운 지식으르 충만한다면 저절로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새롭고 발전적인 것을 내놓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것이며, 우리가 함께 사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우리는 여러 곳에서 가지게 된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 회관에서, 혹은 성경 연구 책자를 가지고 회중의 성원들이 주일 마다 집에서 공부할 때도 그러하며, 성경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양과 같은 사람들을 다시 찾아 집집에서 증거할 때도 그러하다. 이처럼 우리가 기쁨으로 발전적인 지식을 남에게 나누어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활용되어 머리 속에 오래 오래 남아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에게 설명하여 주는 그 활동 자체가 우리의 지식과 이해를 발전시키는 방법이 된다.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가 습득한 지식이야 말로 참으로 진취성있는 지식이며 우리 자신의 뼈와 살이 되게 만들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자로서 더욱 장성되게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15. 이러한 자극제가 우리외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15 그러한 자극제는 우리가 미래에 필요한 정력을 감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생기를 주며 미래를 위하여 더욱 큰 힘을 저축하여 준다.
16, 17. (ㄱ) 여호와의 경배자들에게 명령된 어떠한 자극제가 또 있는가? (ㄴ) 오늘날은 왜 이 명령을 더욱 지켜야 할 때인가?
16 우리가 깨어서 전도 활동을 활발히 하며 어떠한 일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하는 또 하나의 자극제는 정규적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일이다. 그 집회에는 같은 영적 성전에서 경배하는 진취성있는 같은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모이고 있다. 같은 경배자들이 집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바다. 여호와의 대제사장의 마지막 순찰을 받으며, 우주적인 전쟁 「아마겟돈」 때에 심판을 집행하실 날이 점점 가까와 오고 있다. 그러므로 영감을 받아서 「히브리」 10:23-25, 35-37에 권고한 말씀을 전심 전력으로 지켜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이다. 그 말씀은 다음과 같다.
17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의 믿는 소망의 공적 증거를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자. 그리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러므로 너희 말하는 자유를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에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신세)
18. 왜 이 차디찬 세상에서 집회를 통하여 얻는 격려와 자극이 필요한가?
18 우리는 충성스러운 형제들과 더불어 집회에서 서로 믿음과 소망을 교환함으로써 모든 용기와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 이 차디찬 세상에서 충성스러운 형제들의 격려와 교훈을 받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러한 것은 마치 독일 「나찌」 정부 밑에서 벌거벗겨서 투옥된 여호와의 증인들이 서로 손바닥으로 때리는 거와 마찬가지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졸려서 얼어죽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맞는 것은 물론 몹시 아팠을 것이나 그것이 또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니라.』 (잠언 27:6) 책망을 거절치 않은 「다윗」은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로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 고 말하였다. (시편 141:5) 그러므로 같은 경배자와 섬기는 자들이 함께 집회에 모이는 것은 힘있는 자극제가 되어 우리로 항상 깨어 있게 만든다.
19. 증거와 경고가 우리 전도를 위하여 왜 필요한가?
19 우리는 여호와의 영적 성전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관한 것을 살펴서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이러한 것을 기억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도활동에 있어서 항상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발전이라는 것은 더 기쁜 결과를 가져오는 동시에, 또한 더 큰 전도의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라고 하였다. (시편 19:7) 사람들은 충성스러운 우리의 동역자들로 구성된 여호와 하나님의 보이는 조직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증거와 경고를 마음 속에 받아들임으로써 지혜를 얻는다.
20.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어떠한 자극제가 마련되어 있는가? 그리고 예수께서 큰 시험 밑에서 이 자극제가 매우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어떻게 알려주는가?
20 우리를 깨어있게 하는 또 하나의 자극제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의 특권이다. 우리는 형제들이 필요한 이상으로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과 우리들 사이에 교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우리가 이러한 것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여야 하며 그것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였을 때에 그는 천적 아버지께 기도함으로써 영적 졸음을 막아낼 수가 있었다. 그는 상당한 시간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었었다. 그가 기도를 끝내고 그의 신임하는 제자들에게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자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간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이와같은 때에 너희가 자며 쉬고 있느냐.』 고 말씀하셨다. (마태 26:36-45, 신세) 그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들어 시험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깨어 기도함으로써 그 큰 시험을 이길 수 있었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항하는 피 흘리지 않는 전쟁에 있어서나, 상징적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나오는 마귀의 영을 받은 선전에 대항하여 싸우는 전쟁에 있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기도가 필요하다.—에베소 6:18.
2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외에 그리스도인 투사들이 또 무엇을 더 하여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는가?
21 사도 「바울」은 이 악한 날에 대항하여 이겨나가는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충고한 외에 또 이와 같이 충고하였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 6:11-20.
22.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와 올 때에 무엇을 하라고 「베드로」는 말하였는가?
22 틀림없이 영감을 받아 사도 「베드로」는 오늘날에 관하여 말하기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하였다. (베드로 전 4:7) 우리는 기회가 있는 대로 기도해야 한다. 또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를 알아야 하며 기도함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겉옷의 상실
23. (ㄱ) 우리가 시대를 잘 분별함으로써 왜 자러 가지 않게 될 것인가? (ㄴ) 으뜸 순찰자가 도적같이 온다는 점에 있어서 어떠한 일을 하는 위험을 피하여야 하는가?
23 우리가 만일 여호와의 목적이 오늘날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면, 자러갈 사이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을 놓칠까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항상 깨어 있을 것이다. 임박한 「아마겟돈」 전쟁 때에 거룩한 심판을 집행하시기 위하여, 도적같이 모르게 오시는 으뜸 순찰자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잠들 수 있겠는가? 우리는 정신을 차려서 깨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매우 위험한 생각을 갖는다. 즉 물질적 위안을 받아 편안함을 얻으려 하고, 또 순찰자의 임할 때가 정하여 있지 않다는 것을 오랜 후에 온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물질적 위안이나 받다가 순찰자가 정말 올 기세가 보일 때에 비로소 깨어 있으리라고 꿈꾸고 있는 자들이 있다.
24. 으뜸 순찰자는 「아마겟돈」이 임할 정확한 시간을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가? 그리 고 우리가 무엇을 안다면 지금 졸고 있지 않을 것인가?
24 어떤 자들이 순찰자가 올 때를 미리 알아서 그 시간을 자명종에다 맞추어 놓았다가 순찰자가 올때쯤 되어 종이 나면 그때야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자기가 언제나 맡은 봉사 자리에서 항상 정신차리고 지킨체 하지 못하도록, 순찰자는 「아마겟돈」의 날을 알리지 않으셨다. 실로 하나님의 자명종은 「아마겟돈」 조금 전이 아니라 지금 울리고 있다. 그러므로 위대한 순찰자가 오기 전에 깨어 앉아서 힘 있는 대로 봉사의 직책을 완수할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지도 않으면서 마치 깨어 있었는 체 하여 위선을 보이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오시는 순찰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그의 기뻐하심을 얻으려고 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오시는 것을 항상 염려하며, 우리가 잠들면 어떠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 졸고 있지 않을 것이다.
25, 26. (ㄱ) 겉옷이 무엇을 상징하기에 그것을 상실한 자는 불행하게 되는가? (ㄴ) 전도의 옷을 벗기는 것은 무엇올 의미하는가? 그리고 보초가 잠들었을 때 왜 그것은 중대한 문제인가?
25 우리가 겉옷을 잘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불행이 올 것이 명백하다. 순찰자는 우리가 그 옷을 입기에 합당치 않음을 알고 옷을 벗겨 태워 버릴 것이다. 깨어서 지켜야 할 전도인의 옷을 벗긴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겉옷을 태워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상징적 겉옷은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 전도의 임무를 받았다는 외부의 증거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 혹은 활동력이 임명받은 전도인들을 도와서 그들의 의무를 다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뿐아니라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할 특권을 주며, 양과 같은 경배자들을 만국으로부터 모아 영적 양식으로 그들을 양육하여 영적으로 보호하게 만들고 있다.
26 전도의 겉옷을 빼았기는 것은 그 사람이 전도에 불충실하며 감사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인정을 상실하여 이 거룩한 봉사의 특권을 빼았기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전도인이 놀기 좋아하며 활동하지 않고, 그 책임 부서에서 잠들어 맡은 바 직책을 완수하지 못할 때에 이상과 같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 교국의 종교적 교직자들이 참다운 전도의 『겉옷』을 입은 적이 없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늘 『벌거벗고』 있다. 오래 전에 「베드로」는 경고하기를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베드로 전 4:17, 18) 어떠한 보초가 잠들었다가 맡은 물건을 잃어버린다거나 더럽힌 것을 순찰자에게 들킨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다. 세상적 군대에서 전시에 보초가 잠들어서 의무를 태만히 하였을 때는 대개 그를 총살하였다. 왜 총살하였는가?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불충실한 보초로 말미암아 위험가운데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27. (ㄱ)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파숫군으로 세웠을 때 그에게 어떠한 경고를 하셨는가? 그리고 「에스겔」은 전도의 옷을 어떻게 지켰는가? (ㄴ) 그들이 잘 조심할 수 있도록 성기는 자들의 감시는 무엇에 대한 감시였는가?
27 잠들은 보초는 성읍이나 공동사회에 임하는 위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여 임박한 위험을 알릴 수 없다. 2,500여년 전에 「예루살렘」이 강한 「바벨론」 군대로 말미암아 멸망되려고 하였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위험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하여 선지자 「에스겔」을 보초로 세워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그러나 파수군의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중에 한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그래서 「에스겔」은 멸망의 칼로 위협을 당하고 있는 악한 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항상 깨어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었다. (에스겔 33:6-9) 「에스겔」은 그렇게 하였다. 불충실한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악한 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더불어 죽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의 예언적 전도의 『겉옷』을 계속 입고 있었다. 그 섬기는 자들의 감시는 많은 귀한 생명을 좌우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경고에서 이 사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브리 13:17.
28. (ㄱ) 파수보는 보초가 잠자다가 옷을 빼았기는 것이 왜 큰 수치가 되는가? (ㄴ) 불충실한 파숫군이 영적으로 『벌거벗기』우게 되는 것이 어떻게 실책에 대한 벌이 되는가?
28 잠자다가 그의 겉옷을 벗겨 태우게 된 파숫군은 신임할 수 없는 자로서 벌거 벗기게 된다. 그는 수치스럽게도 그의 부끄러운 부분을 들어내 놓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몸의 어떠한 부분도 수치스럽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것은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써 타락된 인간에게 부도덕한 감정이 생기게 된 까닭이며, 자존심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국부를 공중 앞에 들어내 놓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조소와 조롱과 천대를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 (창세기 2:25; 3:7; 고린도 전 12:22, 23) 전도의 파수를 불충실하게 하므로 벌거벗기는 것은 그의 실책에 대한 벌이다. 그러한 사람은 양과 같은 사람과 천사들 앞에서 그가 여호와의 봉사에서 역사하지 않았으며 그가 맡은 바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자기가 여호와의 증인이며 전도인의 하나라는 그리스도인의 목적을 성취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실속이 없는 자로 입증된다. (디모데 후 3:5) 그는 충실하지 못하며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고, 생각이 없고 신권적 정신으로 자기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자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귀하게 생각지 않으며 그것을 순결하게 보존하려고도 원치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지적 이익의 증가를 도모하지 않으며, 지상에 있는 여호와의 풍성스러운 중인들의 영적 낙원의 보존과 팽창을 도모하지 않는다.
29. 잠자다가 겉옷을 벗기우게 된 파숫군은 세상적 사람이 벌거벗기운 것 보다도 왜 더욱 부끄러운 일인가? 또 그는 어떠한 벌을 받을 것인가?
29 잠자다가 겉옷을 벗기게 된 파숫군은 세상적 죄인 보다도 더욱 벌거벗기운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한때 명예스러운 그리스도인의 전도의 직책의 옷을 입었으며 그 사실을 더 잘 알며 그의 재임을 완수하고자 노력하여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징벌은 『악한 종』에 대한 것과 같을 것이며 이와 같이 기록되었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 24:48-51) 그러한 사람은 불충실한 자나 위선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 때에 멸망될 것이다. 그 심판은 왕같은 순찰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집행될 「아마겟돈」 때에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소위 하나님의 전이라고 불리우는 그리스도 교국에서 종교의 옷을 입고 위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벌거벗은』 교직자와 더불어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아무런 소망없는 둘째 사망인 것이다.—계시록 21:8.
겉옷을 지키는 자의 축복
30. (ㄱ) 잠자다가 겉옷을 빼앗김으로 오는 불행이 얼마나 큰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더욱 잘 깨닫게 되는가? (ㄴ) 옛날에 임명받은 제사장들의 경우와 같이 우리는 무엇을 사랑으로 수행 할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것인가?
30 잠들었다가 겉옷을 빼앗김으로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오는가를 알게 될 때, 정신을 차려 깨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겉옷을 보존시키는 특권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넉넉히 깨닫게 될 것이다. 「아마겟돈」 때에 도적같이 오시는 왕같은 순찰자가 와서, 우리가 게으르고 일하지 않으며 왕국 봉사에 무활동 상태에 있는 것을 보게 하여 그를 놀라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완전한 시험의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한 것을 사랑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우리는 마치 옛날에 성전 봉사를 임명받은 제사장들이 행한 것과 같이, 우리의 맡은 바 거룩한 사명과 봉사의 임명부서에서 항상 깨어 파수를 잘 보아야 한다. 옛날 제사장들에게도 이와 같이 말하였다.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거하여 여호와의 부탁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레위기 8:35, 36)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키는 충성스러운 파숫군이 감독자에게 신임을 받는 것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순찰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임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31. 겉옷을 계속하여 입고 있으면 우리에게 어떠한 결과가 오는가?
31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겉옷을 입고 하나님의 봉사를 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 우리가 직무상의 겉옷을 계속 입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자라는 인정을 하나님께 계속 받고 있으며 그의 거룩한 봉사 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전 안에서 입는 직무상의 겉옷이 박탈되어 태워버리는 일이 없으며, 또 벌거 벗겨 우주 가운데서 수치를 당하며 「아마겟돈」 때에 멸망될 이 세상의 일부분으로 폭로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아마겟돈」 때에 순찰자이시며 집행자되시는 이가 우리의 생명을 아껴주실 것이다. 의로운 신세계에서 향수할 기쁨에 가득찬 우리의 생명이 보존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영원히 『깨어 있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신세계에서 삶의 기쁨을 영원히 즐기게 될 것이다.—계시록 3:3-6과 비교해 보라.
32. 항상 깨어 있는 봉사자들은 경배 문제에 관하여 어떠한 상을 받을 것인가?
32 계속 깨어서 성전을 감시하여 불순하고 해로운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낸 보상으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숭배의 형식』인 참다운 종교를 지상에서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홀로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대한 경배를 충성스럽게 입증하며, 그의 이름 위에 가하여졌던 비난을 깨끗하게 제거하였다. 홀로 이 경배만이 하나님께 기뼈하시는 바가 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왕국 밑에 전개될 새로운 질서 밑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이와 일치하여 항상 깨어서 시인을 받은 봉사자들은 영원히 경배할 수 있는 상을 받을 것이며 영원한 승리의 왕을 찬미할 것이다. 온 우주에 있는 『생물들』과 더불어 끊임없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고 외치고 있다. (계시록 4:8) 항상 깨어 있으므로 시인을 받은 봉사자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가장 큰 목적, 즉 영원히 사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일을 완수할 것이다.
33. 우리가 지금 커다란 특권에 직면하여 있는데 도적같이 임하는 『여호와의 날』에 겉옷을 입고 있는 것은 어떠한 면에서 우리의 특권이 될 것인가?
33 지금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서 그를 섬기는 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또한 명예스러운 일인가! 오늘날과 같이 어둡고 악한 세상에서도 여호와의 「메시야」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또 『여호와의 날』인 오늘날 그를 섬기는 자로서 합당한 겉옷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아서 입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특권인가! 왜냐하면 여호와의 날에 순찰자가 『밤에 도적 같이』 임하여 그리스도 교국의 위선적 하나님의 전을 없애고, 상징적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온 천하의 임금』들을 멸망시킬 때이기 때문이다. 이 멸망될 자들은 지금 마귀의 영을 받아 선전과 정책으로 「아마겟돈」 전쟁으로 모이고 있다. (데살로니가 전 5:2, 3; 베드로 후 3:9, 10; 계시록 19:19–20:3) 그때까지 깨어서 섬기며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행한 자는 여호와께서 참된 종교의 원수들을 영원히 멸하시고 온 우주 가운데 그의 홀로 의로운 정부를 세우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34. 그들이 벌거 벗겨 수치를 당하는 대신에 합당한 봉사자로서 무엇을 받을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깨어있어야 할 결정적 때는 언제인가?
34 그리하여 벌거벗겨 수치를 당하는 대신에 그들은 놀라운 신세계로 살아 넘어가서, 지극히 높으신 이를 섬기기에 합당한 자로서 아름다운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가 『주인이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 …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이다. (디모데 후 2:21)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서 깨어 있어 상을 얻을 자들은 참으로 복되도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결정적 때임을 누구나 잊지 말라!
[각주]
a 25면 7항 참조, 25, 26면, 9-10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