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말씀”—‘요한’에 의하면 그는 누구인가?
1. (ㄱ) 「요한」은 누구였으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셨다고 주장하였읍니까? (ㄴ) 삼위일체를 가르치는 자들은 요한 10:30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까?
「벳새다」시의 「세베대」의 아들 「요한」은 말씀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읍니다. 그는 이 말씀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반려이셨으나, 『육신이 되어』 「베들레헴」시에서 「유대」인 처녀로부터 탄생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약 이천년 전이었읍니다. 「요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명하며, 그의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 되었읍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이상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고 그가 신성인간(God-Man)이 되었다고 주장하기 위하여 말씀에 관한 「요한」의 기록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삼위일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예수께서 몸소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말은 요한 10:30에서 발견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읍니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이다(흠정) 그러나 예수와 「유대」인들 사이에 계속된 쟁론에서 그가 하나님이었다고 말씀하신적이 결코 없다는 것을 증명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였다.』 (요한 10:36, 흠정) 그러나 그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와 그의 아버지가 하나이셨겠읍니까?
2, 3. 「유대」인들은 예수께 무엇을 말씀하시라고 청했으며,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 10:30의 그의 말씀에 이르는 어떠한 대답을 하셨읍니까?
2 예수께서는 자기가 훌륭한 목자이며 자기 추종자들은 양들이라는 비유 즉 예를 바로 끝마치셨읍니다. 그 때 「유대」 인들은 그를 에워싸고 이렇게 물었읍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3 예수께서는 그의 하시는 일이 그를 대신하여 말한다고 대답하셨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오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 10:24-30.
4. 이 하나라는 것은 교직자들이 가르치듯이 왜 삼위일체를 언급한 것이 아닙니까?
4 그들은 어떻게 하나였읍니까? 몸에 있어서 하나였으며, 신원에 있어서 하나였으며, 하나의 하나님을 함께 이루는 하나였으며, 삼위일체 즉 하나의 하나님 안에 셋이 있는 하나였으며, 그의 세번째 성원은 성신이었읍니까? 천만에요! 만일 『나와 아버지』가 삼위 일체 혹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속하여 있다면 그들은 그들중의 둘 이므로 하나가 아니라 삼분의 이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삼위일체는 삼위 즉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신 하나님』을 가지고 있는 까닭입니다.
5.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하나이셨으며, 증거에 있어서 어떻게 하나이셨읍니까?
5 예수와 그의 아버지께서는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는데 있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로서 서로 뜻을 같이 하는데 있어서 하나였읍니다. 그들 사이에는 뜻을 달리하는 일이 결코 없었읍니다. 아버지께서 증거하신 일과 아들이 증거하신 일은 일치하였읍니다.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를 보내신 이(아버지—신세)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요한 8:16-18)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자신과 그의 아버지를 뚜렷한 두 개체로 말씀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중거가 두 분에 의하여 제공된 것입니다. 그것은 적어도 두 증인의 증거가 요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뚜렷한 두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증거 혹은 증언에 있어서 하나이셨읍니다. 그 이유는 두 분이 이 증거를 하시는데 일치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6, 7. (ㄱ) 예언자 「에스겔」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그의 양 같은 백성들을 위하여 어떠한 양치는 마련들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까? (ㄴ) 이 양들과 관련하여 예수와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하나이셨읍니까?
6 아버지와 아들은 또한 그들의 양들을 돌보는데 있어서도 하나이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양과 같은 사람들 위에 충성스러운 목자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에스겔 34:23, 24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찌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왕의 후손으로서 일으키셔서 「다윗」왕 같은 『한 목자』에 관한 이 예언을 성취시키셨읍니다.
7 목자이신 예수께서는 어떤 이리 같은 원수도 그의 손에서 양들은 탈취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이 양들을 자기 아들에게 맡기신 아버지께서도 원수가 그 자신의 손에서 양들을 탈 취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양들을 보호하며 보존하시는데 있어서 뜻이 일치하십니다. 그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그것은 양들을 멸망당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업에 종사하는데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셨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의 일을 『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일에 있어서 그는 아버지의 대행자 즉 대표자로서 행동하셨읍니다.
8. 그들은 수행되어야 할 뜻에 관하여 어떻게 하나이셨읍니까?
8 그들은 항상 뜻의 일치를 보셨으며 결코 불화한 일이 없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한6:38-40) 그는 하나님의 뜻에 실패하시지 않으셨고 그 뜻을 행하기 위하여 온전히 사셨던 것입니다. 그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요한 4:34.
9. 행동의 동기에 관하여 그들은 어떻게 하나이셨읍니까?
9 예수께서는 어떠한 일도 결코 아버지로부터 독립적으로 행하시지 않고 항상 그의 아버지와 일치하게 행하셨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한 5:30)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완전히 하나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러한 연합 때문에 예수께서 「내가 하나님이시다. 내가 나의 아버지시다.」라고 말씀하실 필요는 없었읍니다.
10, 11. 예수께서 자기 아버지께 하신 어떤 기도가 그분들 사이에 존재한 하나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에 관하여 빛을 던져줍니까?
10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에 관하여는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께 하신 양들을 위한 기도 가운데서 증명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기도에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그의 아버지께 말씀하십니다.
1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한 17:3, 6, 20-24.
12. (ㄱ) 예수께서는 왜 자기가 아버지와 『본질상 하나』임을 뜻하시지 않으셨읍니까? (ㄴ)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분류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무엇이 표시합니까?
12 예수께서는 하늘의 아버지께 대한 이 기도에서 그분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으며 또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으며 『우리가 하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그와 그의 아버지가 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뜻하셨거나 혹은 제 삼자는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는 하나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두 위를 의미하신 것이겠읍니까?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삼위일체 신봉자들이 말하듯이 그가 그의 아버지와 『본질상 하나』였다는 것을 뜻하셨을까요? 그 때 육체를 가지고 계셨던 예수께서,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기도와 반대로 어떻게 그러한 것을 뜻하셨겠읍니까? (요한 4:24) 그의 아버지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부르심으로써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입장이라든가, 심지어는 하나님의 일 부분이라든가 하나님의 한 위라는 입장에 있지 않으셨음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버지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아니셨을 것입니다. 사전에 의하면, 『유일』어라는 말은 『그 계급에 있어서 홀로, 같은 계급이나 종류에서 그런 것이 없는, 단독의, 홀로, 독신의, 우월한 까닭에 뛰어난, 우두머리』를 의미합니다. 예수께 의하면, 그의 아버지께서 만 흘로 『참된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유일하신』분이십니다. 예수 자신의 말씀에 의하면, 그는 자신을 하나님으로 분류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13. 이 세상으로부터 예수께 사람들을 주신 분은 누구이셨읍니까?
13 예수께서,그의 아버지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세상에서 그에게 제자들을 주셨다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인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을 주셨다는 것올 의미하시지 않으셨읍니다. 예수의 기도를 듣고 있었던 그의 사도들 중의 어떤 분들은 이전에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었었읍니다. 그러나 「요한」은 신부반열에 대한 권리를 받으신 신랑 예수께 그들을 넘겨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모든 제자들을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읍니다.
14. (ㄱ) 삼위일체가 사실이라면,예수와 그의 아버지께서 하나이신것 처럼 제 자들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 것입니까? (ㄴ) 그렇다면,어 떠한 면으로 제자들이 하나로 만들어집니까?
14 이에 더하여,예수께서는 자기 자신과 그의 아버지 만이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제자들도 하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 .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고 기도 하심으로써, 그의 제자들을 삼위일체에 가입시켜 삼위일체의 성원 즉위를 증가시킬 것을 사실상 의미하시지 않으셨으며, 더는 셋으로 된 하나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후부터는 여렷으로 된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사실상 의미하시지 않으셨읍니다. 그것은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와 아버지가 하나이신 것 처럼 그의 제자들도 하나가 되도록 말씀하셨읍니다.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하나로 만들어지겠읍니까? 이것은 하나의 하나님이 된다든가 많은 위로된 하나의 개체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의 이름을 믿는데 있어서 하나이며, 그들이 같은 영에 의하여 생산하는 열매에 있어서 하나이며, 사업의 종류에 있어서 하나이며, 그들 사이에 조화와 일치에 있어서 하나이며, 같은 목적과 목표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여호와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입증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간 족속의 구원을 가져 오는데 있어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15. (ㄱ) 이상을 기초로 하여볼 때, 예수와 그의 아버지께서는 왜 삼위일체는 의미에 있어서 하나가 되실 수 없읍니까?
15 그들도 하나의 가족 집단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모든 제자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거듭나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이 되며,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되는 까닭입니다. 예수의 이 모든 제자들의 하나가 된 방법이 바로 천적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가 되신 방법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두분은 한 위 이상으로 구성되는 하나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천적 아버지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남아계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보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아들로 남아계십니다. 영으로 탄생된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144,000의 제자들은 아버지 및 아들과 연합하며, 특별한 조화된 가족 관계가 됨으로써 그분들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있다』 (I AM)
16, 17. (ㄱ)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아브라함」이 포함된 어떤 다른 성귀를 들고나와 그들의 논점을 주장합니까? (ㄴ) 그 표현에 관하여 「드리오」 성경 판은 무엇이라고 말하며, 「넉스」판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6 삼위일체 신봉자들이 「요한」의 기록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가르친다고 들고 나서는 다른 성귀가 있읍니다. 그 성귀는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쟁론하시는 요한 8:56-58에 있읍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17 이 표현에 관한 성경 「아베 드리오」판의 해설은 이러합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사실 영원한 하나님인 내가 있다.』 「로날드 에이 넉스」경은 성경 번역의 난외주에 말하기를 『58절의 「내가 있느니라」: 여기에 우리 주께서는 확실히 신성(神聖)의 칭호를 주장하시는 것 같다. 출애굽 3:14과 비교하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애굽 3:14(「듀웨이」)로 넘어가서 읽어봅시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있는자이다. (I AM WHO I AM) 그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있는 그(HE WHO IS)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라.』 그러나 흠정역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있다이다. (I AM THAT I AM) 그리고 그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내가 있다(I AM)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라.』
18. (ㄱ) 『내가 있다』라는 표현은 출애굽 3:14에서 어떻게 사용되었읍니까? (ㄴ) 어떤 현대 성경 번역들이 요한 8:58을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시지 않았다고 표시합니까?
18 『내가 있다』( I AM)라는 표현은 거기에서 하나의 칭호 혹은 하나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히브리」어로는 이 표현이 한 단어 「에예(Ehyéh-אהיה)」입니다. 거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계셨으며 그를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보내고 계셨읍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요한 8:58에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계십니까? 많은 현대의 성경 번역자들에 의하면 그렇지 않읍니다. 다음의 인용문들은 그것을 증명합니다. 「모」: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존재해왔었다.』 「숀필드」와 「한 미국인 역」: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존재하였다.』 「슈타게」(독일인): 『「아브라함」이 있게 되기 전에, 내가 있었다.』 「플린」(독일인):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나는 이미 있었다.』 「죠지 엠 · 람사」는 「시리아」어 「페시타」로부터 번역하였는데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내가 있었다.』 역시 「시리아」어 「페시타」역본으로부터 번역한 「제임스 머독」박사도 『「아브라함」이 존재하기 전에 내가 있었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사오 파울로」 「가롤릭」성경 중앙원에 의하여 발행된 「브라질」의 「거룩한 성경」에도 『「아브라함」이 존재하기 전에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라고 기록되었읍니다.—「비블리아 사구라다」—1960년 제 2판 『아베 마리아』 한정판.
19. (ㄱ) 예수께서는 어떤 말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읍니까? (ㄴ) 현대 번역자들이 한 예수의 말씀의 「히브리」어 번역은 그가 위대하신 『내가 있다』로 가장하시지 않으셨음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19 우리는 예수께서 그 「유대」인들에게 희랍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로 말씀하셨다는 것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요한 8:58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하는것은 그 희랍어를「히브리」어 성경으로 번역한 희랍어 학자들의 현대 번역들 중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읍니다.「프란즈 델리취」박사: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어왔었다.』 「아이삭 살칸슨」과 「데이빗 진스버그」: 『「아브라함」이 아직 없었을 때까지 내가 있어왔었다.』 이 두개의 「히브리」어 번역 가운데서 번역자들은 『내가 있어왔었다.』라는 표현을 위하여 두개의 「히브리」어 단어인 한 대명사와 한 동사, 둘 즉 「아니 하이디」(aní hayíthi)를 사용하였으며, 한 「히브리」어의 단어 「에예(Ehyéh)」를 사용하지 않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요한 8:58에서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방하여 그가 몸소 여호와 즉 『내가 있다』 자신 이라는 인상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애쓰시는 것 같이 말하지 않았읍니다.
20. (ㄱ) 요한 8장에 있는 「에고 아이미」라는 희랍어 표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ㄴ) 많은 성경 번역자들은 이 요한 8:58의 표현을 번역하는데 있어 어떤 이유 때문에 다른 귀절을 번역하듯이 번역하지 않읍니까?
20 「요한」은 무슨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관한 기록을 썼었읍니까? 그것은 「히브리」어가 아니라 희랍어였읍니다. 희랍어 성서에서 쟁론된 표현은 「에고 아이미」(Egó eimí)입니다. 이 말 앞에 아무런 소개의 내용이 없이 이것 자체 즉 「에고 아이미」는 『내가 있다』(l am)를 의미합니다. 이제 이 표현 「에고 아이미」는 요한 8:24, 28에도 나타납니다. 흠정역 즉 「제임스」왕 역, 「듀웨이」역, 그리고 다른 번역들은 이 귀절들을 영어로 『나는 그이다』(I am he)라는 표현으로 번역하였읍니다. 사체(斜體)로 된 대명사 그(히-he)는 그가 부가 되었거나 삽입되었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흠정, 미표, 「영」씨역) 그러나 이러한 사본들은 여기 요한 8:58을 이와 같은 표현 『내가 그이다』라고 번역하지 않고 『내가 있다』라고 번역하였읍니다. 분명히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존재에 관하여 언급하시고 계실 뿐만 아니라 출애굽 3:14를 모방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칭호를 자신에게 주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21. (ㄱ) 희랍어 칠십인역은 출애굽 3:14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에고 아이미」를 사용합니까? (ㄴ) 그러므로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요한 8:58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없읍니까?
21 요한 8:58을 기록하였을 때, 이 사도는 희랍어 칠십인역에서 인용하지 않았읍니다. 칠십인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전에 「애굽」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희랍어를 말하던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성서로부터 번역한 것입니다. 희랍어를 읽는분은 어느 분이나, 희랍어로 된 요한 8:58과 희랍어 칠십인역의 출애굽 3:14의 기록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있다(I AM)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에고 아이미」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희랍어 칠십인역은 『실존자』(「The Being) 혹은 『있는 자』(The One who is)를 의미하는 「호온」 (ho Ōn)을 사용 하였읍니다. 이 사실이 희랍어 「배그스터」의 칠십인역 번역에 명확히 나타나 있읍니다. 거기에 출애굽 3:14은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실존자(THE BEING-ho Ōn)이다. 그리고 또한,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녀에게 실존자(THE BEING-ho Ōn)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말하라고 하셨다.』 「촬스 돔슨」번역 희랍어 칠십인역의 출애굽 3:14은 이러합니다.『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유일한 내가 있다(The I Am–ho Ōn)이다라 하셨다. 그는 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녀에게 유일한 내가 있다가(The I Am-ho Ōn)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말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두 희랍어 귀절 즉 칠십인역의 것과 요한 8:58을 대조함으로써 요한 8:58에서 예수께서는 그가 마치 여호와 하나님이었던것 같이 출애굽 3:14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고자 하고 계셨다는 삼위일체 신봉자들의 온갖 주장의 근거가 제거됩니다.
22, 23. (ㄱ) 「요한」의 기록 중 다른 곳에서 「호 온」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사용 되었으며 적용되었읍니까? (ㄴ)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요한 8:58에서 단지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 따름입니까?
22 물론 희랍어 표현 「호 온」은 사도 「요한」의 기록에 나타납니다. 요한1:18; 3:13(흠정, 「영」씨역) 31; 6:46; 8:47; 12:17; 18:37의 희랍어 귀절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칭호나 이름으로서가 아닙니다. 그래 이 중 네 귀절에서는 그것이 예수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계시록 즉 묵시록에 있어서는 사도 「요한」이 「호 온」(ho Ōn)이라는 표현을 칭호로서 혹은 명칭으로서 다섯번 사용하였읍니다. 즉 계시록 1:4, 8; 4:8, 11:17; 16:5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다섯번의 경우에 있어서 「호 온」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어린양 즉 하나님의 말씀께가 아니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적용되어 있읍니다.
23 예를 들어 계시록 1:4, 8을 읽어보십시다. (흠정 참조)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호 온-ho Ōn)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로 있고 (호 온 ho Ōn) 전에 있었고 장차 올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시록 4:8은 천적 보좌에 계시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 「호 온」이 적용되어 있으며, 계시록 5:6, 7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나중에 그에게 나아오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읍니다. 계시록 11:17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권세를 잡으셨을 때, 그에게 「호 온」이 적용됩니다. 계시록 16:5은 주 하나님께서 심판관으로 행하실 때 그에게 「호 온」이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교직자들이 요한 8:58을 들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려는 것은 실패입니다. 왜냐 하면 「제임스 모」박사에 의한 번역과 「한 미국인」 번역과 기타 번역이 잘 번역하였듯이 이 귀절에서 예수께서는 단지 하늘에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하신 인간 이전의 존재를 가지고 계신 것과 그 인간 이전의 존재가 「아브라함」 탄생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실 따름입니다.
닮았으나 다음 간다
24.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요한 14:9을 가지고 어떻게 주장하며, 예수께서는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는 말씀으로 무엇을 의미하셨읍니까?
24 그러나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당신은 에수께서 사도 「빌립」에게 하신 말씀을 잊고 있지는 않겠지요?하고 이의를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러합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 14:9)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과는 전연 다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단지 「빌립」과 다른 충성스런 사도들에게 그가 그의 아버지 하나님께로 떠나려하는 것을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에수께서, 「빌립」이 자기를 보는 것이 동시에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어떻게 말씀하실 수 있었겠읍니까? 예수께서 그와 같은 뜻으로 말씀하실 수는 없었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그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와 같읍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 14:1)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 자신이셨다면 왜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읍니까? 「빌립」은 에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부탁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가 그때까지 행하여오신 일이 그들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일이었다고 대답하셨읍니다. 그는 그의 천적 아버지께서 무엇을 닮았는가를 보여오셨읍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모방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너무 닮으셨기 때문에 누구나 그를 본 사람은 그의 아버지를 본 것과 같았읍니다.
25, 26. (ㄱ) 요한 1:18을 보건데 예수께서, 왜 사도들이 아버지를 보고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없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요한 5:37에서 무엇이라고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읍니까?
25 예수께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께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분 즉 하나님을 사도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실 수는 없었읍니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지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 .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그가 나타내셨느니라.』 (요한 1:14, 17, 18, 흠정 참조)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심으로써, 그분을 설명하심으로써, 그 분에 관한 기록을 주심으로써 그분 처럼 거하시며 행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예수를 봄으로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역시 보는 효과를 나타내 오셨던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아무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못 하였으며.』 (요한 5:37) 그러나 이들 「유대」인들은 예수의 형용과 그의 음성을 들었읍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선지자 「모세」를 믿었더면 그를 역시 믿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모세」의 기록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산 위에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알고 계셨읍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애굽33: 20) 그러나 이 「유대」인들은 예수를 보았어도 살았읍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결과적으로 요한 14:9도 예수께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27. 예수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하나의 생도로 비기셨으며, 그렇게 하심으로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위치에 두셨읍니까?
27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결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일이나 하나님이라고 부른 일도 없다는 것에 거듭 유의하게 됩니다. 그는 항상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두시지 않고 하나님보다 낮은 자리에 두셨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제자의 자리에 자신을 두셨으며,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로 알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8:28)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스승이시며 예수께서는 생도로서 그의 스승 즉 하나님보다 높지 못하며 또한 그와 동등되지도 않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조직인 「시온」의 다른 자녀들과 자신을 같이 구분하셨읍니다. 그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한 6:45; 이사야 54:13) 예수께서는 그의아버지의 제자 혹은 생도로서 계속하여 그 분으로부터 사물들을 배우셨읍니다.
28. 따라서, 배움의 한 사람인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관하여 행하시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8 요한 8:25-27에는 이러한 취지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읍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 . .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후에 예수께서는 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지금 하나님(호 데오스-ho Theós)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 (희랍어 「안드로포스」-ánthropos)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그는 그의 충성스런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으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한 8:40; 15:15.
29. 따라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대하여 어떻게 행하셨다고 말씀하셨으며, 이것은 하나님과 비교하는데 있어서 예수에 관하여 무엇을 증명합니까?
29 예수로부터 듣고 배울 때 그가 천적 아버지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요한 12:44, 45, 49, 50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그가 보냄을 받으셨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가 하나님과 동등되지 않으며 그의 아버지 하나님보다 낮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읍니다.
30. 몸소 말씀하신 법칙에 의하여 예수께서는 자기가 아버지 만큼 위대하신가의 여부를 어떻게 표시하셨읍니까?
30 이것은 예수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그 자신의 법칙에 근거합니다.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요한 13:16) 하나님께서는 보내셨기 때문에 예수보다 더 크신 것처럼 예수께서는 보내셨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보다 더 크십니다.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섰을 때 이렇게 비교하셨읍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들 보내노라.』 (요한 20:21) 그러므로 더 크신 분이 보다 낮은 자를 보내는 것입니다.
31. 육체적으로 배고프셨지만 그의 음식은 무엇이었읍니까?
31 예수께서는 사자로서 보냄을 받으셨기 때문에 육신을 따라 자기의 뜻을 행하거나 자신을 기쁘게 하고자 오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자기를 보내신 더 위대하신 분의 뜻을 행하려 오셨읍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배고프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한 4:34.
32. 어디로부터 예수께서는 보냄을 받으셨으며, 따라서 그는 어디에서도 낮은 분이셨읍니까?
32 예수께서 보냄을 받으신 것은 땅에 육신으로 계셨을 때가 처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으셨을 때입니다. 이것을 증명하여 그는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요한 6:38, 39) 그러므로 하늘에서도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보다 낮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업을 위하여 시간을 가지고 계시는 동안 그를 보내신 파송자 이신 아버지의 사업을 꾸준히 계속하셨읍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요한 9:4) 이 모든 것은 예수께서 그의 뜻이 수행되어야 할 하나님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하나님보다 낮은 분이었다는 부가적인 증거를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