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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슬픈 일을 인내할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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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슬픈 일을 인내할 줄 아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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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파63 10/1 379-380면

당신은 슬픈 일을 인내할 줄 아는가?

죽음이 차거운 손을 뻗쳐 자기 배우자나 가족 중에서 사랑하는 자를 빼앗아 갈 때 우리가 받는 충격이란 일생에서도 가장 심한 격동입니다. 특히 자기 배우자를 상실 함으로써 밤에 잠을 못자며 허무한 나날을 지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슬픔을 견디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때에는 슬픈 일을 인내할 줄 아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슬픔을 속에만 간수하고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자 할 필요는 없읍니다. 이렇게 하는데서 증가하는 감정적 압제는 견딜 수 없이 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슬픔이나 섭섭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이런 압력을 제하는 것은 하나도 잘못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되 자기 절제를 잃지만 않는다면 기분이 흔히 좋아질 수 있읍니다.

성경에 기록된 한 족장, 「아브라함」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상실하였을 때 슬픔을 속에 간수하여 두지 않았읍니다. 그는 우는 것으로 그 감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창세 23:2) 「이스라엘」의 「다윗」왕도 자기 아들 「압살롬」이 살육 당하였을 때 그렇게 하였읍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사무엘 하 18:33) 이것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깊은 슬픔입니다.

「다윗」은 한없이 슬퍼하지 아니하였읍니다. 산자는 죽은 자를 도로 살릴 수 없는고로 사랑하는 자의 사망 후에 그들 없이도 생활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다윗」이 자기 아들의 추억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하드라도 만일 그가 속에만 숨기고 홀로 자기 아들과 상상의 세계에서 살고자 노력하였다면 그의 슬픔은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추억의 세계에서 살고자 할 때에는 감정에 받은 상처가 언제나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많이 있읍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자가 살았을 때와 똑 같이 집을 몇년씩이나 간수하는 것으로써 과거에서 생활하고자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슬픔을 연장하는 사람들은 헛되이 과거에서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며 장래를 바라고 삶으로서 받을 수 있는 행복을 희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한 사랑하는 자는 살아남은 자가 필요한 조절을 함으로써 행복하고 생산적인 생활하기를 원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조절을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없어진 까닭에 그 자리가 텅 빈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빈자리를 건설적 활동으로 채우고자 함으로써 감소할 수 있읍니다. 배우자를 상실한 사람 중에는 환란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비이기적으로 도움으로써 슬픔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아마 슬픔을 견디는데 가장 큰 장해가 되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의 사망으로써 무엇을 상실하게 되었는가를 자꾸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는 얼마나 고독한가 또 전에는 자기 사랑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한 일까지 자기가 하여야한다는 따위의 생각을 한다면 슬픔을 점점 견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고 남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때 그의 감정의 상처는 나아지며 생활의 빈틈이 점점 채워질 것입니다. 남이 자기를 사랑하여 주기를 원하듯 자기도 남을 사랑함으로써 남의 생각을 한다면 그는 가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진리는 슬픈자에게 큰 위안이 되며 그에게 사는 목적을 줍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름으로써 오는 걱정도 제거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생명의 창조주께서는 사망한 자가 어떻게 되며 그 사람에게 다시 살 수 있는 어떤 소망이 있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이런 좋은 소망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은 사망한 자에 관하여 위대한 창조주께서 말씀하신 바를 모르는 사람이나 신앙이 없어서 그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쓰라린 비통을 맛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직한 하나님의 말씀은 비통을 훨씬 감소하여 줍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 전 4:13) 사도 「바울」처럼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읍니다.—고린도 후 1:9.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서 인류의 위안과 안녕을 위하여 말씀하신 바를 배운 사람들은 남을 도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 받게 하는 비이기적 봉사를 함으로써 슬픔을 잘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영적 활동은 죽은 자가 남겨 놓은 빈틈을 채울 수 있게 하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비이기적인 건설적 활동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계속하여 생활하여 갈 이유를 주게 됩니다.

슬픈 자는 기도를 하는데서 하나님께 돌이켜 힘을 구할 수 있읍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지 사랑하는 자를 상실한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하여서는 안됩니다. 성경으로부터 죽는 이유와 죽은 자가 다시 살 수 있는 희망을 배움으로써 슬펐던 자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소망이 없다고 생각되는 비참하고 우울한 느낌을 이런 지식은 제거하여 줍니다. (시 46:1) 그것은 슬픔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무한히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희망을 가지고 슬픈 자는 쉽게 자기 생활을 조절하여 사랑하는 자 없이도 계속하여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사랑하는 자가 생명을 맞볼 수 있었고 또 그것을 행복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부활하도록 사랑으로써 마련하여 주신 것을 그는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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