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1. 하나님께서 그의 은총을 받을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이행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무엇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가 어떤 인생의 과업을 시작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과업의 요구 조건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데 자신을 헌신하는 단계에 이르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은총을 받을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알지 않으면 안됩니다.
2.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여호와께서 사용하시는 보이는 지상의 통로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를 들어,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 만민에게 정확한 지식을 나눠 주시는 데 사용하시는 지상의 통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종류의 씨, 즉 여호와의 씨와 마귀의 씨가 생겼읍니다. (창세 3:1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홍수전 시대에 특정한 사람들, 즉 노아와 그의 아들들을 사용하신 것처럼, 그리고 그 후에 아브라함과 그의 씨를 사용하신 것처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호와께서는 지상에서 자신을 대표하도록 승인하신 사람들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가, 그리고 성령이 무엇을 대표하는가를 인정하는 사람은,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 땅 위에 그의 이익을 대표하는 보이는 조직을 가지고 계심을 인식할 필요가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집단을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라고 부르셨읍니다. (마태 24:45-47) 따라서 여호와의 뜻 행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모든 소유물을 감독할 책임을 맡고 있는 “종” 조직과 연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많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읍니다. 오로지 한 가지 길만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모든 종교가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도하는 각기 다른 길에 불과하다면, 예수께서는 그가 추종자들에게 명하신 그 사업을 위하여 그들을 조직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으로도 충분하였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마태 7:13, 14.
3. 천적 생명과 지적 생명에 관하여 어떠한 점을 알지 않으면 안됩니까?
3 우리가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데 자신을 가납될 만하게 헌신한 것을 상징하는 물의 침례를 받기 전에, 우리는 인간에게 열려진 두 가지 생명의 가능성을 알고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얼마의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늘에 있을 것을 약속하셨으며, 그들을 “적은 무리”라고 부르셨읍니다. 그들에게 예수께서는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12:32) 그 “적은 무리”는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144,000으로 제한되어 있읍니다. (계시 14:4)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따르는 나머지 인류는 요한 10:16에서 “다른 양”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장래 생명은 이 땅이 질병과 슬픔과 죽음이 없는 낙원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놓여 있읍니다. (계시 21:1-4) 한 사람이 침례 받을 때, 그것은 천적 혹은 지적 생명의 가능성 가운데 한 가지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4. 사랑과 평화라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뜻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4 각자의 개인적 생활에 관하여 말하자면, 각자는 하나님의 요구 조건과 일치조화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 하면 두가지 생명의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양자에 공통된 의의 표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침례받기 전에, 우리는 그러한 요구 조건에 일치하도록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검토해 보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여러 가지의 것을 배울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율법 가운데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 22:37-40)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한 사람은 인종이나 국적을 불문하고 그의 이웃과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 13:35)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평화롭고 인자하고, 이러한 면에 있어서 예수의 명령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5. 어떠한 면으로, 개인 생활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켜야 합니까?
5 도덕적 깨끗함과 올바름에 있어서도, 우리는 우리의 개인 생활을 여호와의 말씀에 일치시켜야 합니다. 도덕적 올바름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오래 전부터 요구된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들, 즉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도덕에 관하여 주신 율법 중 한 가지는 ‘간음하지 말라’는 것인데, 십계명 가운데 포함되어 있읍니다. (출애굽 20:14) 이 율법은 결코 취소되지 않았읍니다. 사실상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이 회중적 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회의를 가졌을 때, 그들은 간음을 멀리할 필요성을 재확인하였읍니다. (사도 15:29) 그 문제에 관하여 고린도 회중을 충고할 때, 사도 바울은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는다고 말하였고, 그러므로 “음행을 피하라”고 충고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6:13, 18)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교직자들이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를 음으로 양으로 허용하는 것이 현 실정이기는 하나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는 사람들의 지침인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한 어조로 그러한 행동을 저주합니다.
6-8.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다른 행동들을 비난합니까?
6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가납될 만한 위치에 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피해야 할 더러운 것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피해야 할 나쁜 행동들은 많이 있읍니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율법에 들어 있기는 하나, 그리스도인 회중의 지도 원칙과 법칙 가운데 면면히 흐르고 있는 다음과 같은 금지령을 고려해 보십시오.
7 레위기 18:22은 경고합니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그리스도인의 희랍어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성애를 자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고린도 전 6:9, 10) 소위 카운슬러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러한 악한 행동을 권장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그들은 감정의 억제를 받지 않고 죄 의식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사도 바울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자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로마 회중에 편지하였읍니다.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느니라].”—로마 1:26, 27.
8 과음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의 충고는 다음과 같은 성귀들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읍니다. “술을 즐겨하는 자. . .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취하. . .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라].” (잠언 23:20, 21)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찐저.” (이사야 5:22) 「그리스도인의 희랍어 성경」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 전 6:9, 10에서 폭음을 비난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에베소 5:18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읍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폭음은 부도덕입니다. 여호와의 뜻 행하기를 갈망하는 자는 이 나쁜 악을 행치 않을 것입니다.
9, 10. (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사고 작용을 어떻게 보호해야 합니까? (ㄴ) 헌신과 침례 후에, 하나님이 비난하시는 악행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합니까? 혹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9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도적질, 근친상간, 살인, 탐욕, 욕설, 착취, 거짓말, 거짓 증언, 탐심 등등을 비난합니다. 사실상, 성경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정욕적 혹은 부도덕한 쾌락을 그러한 이야기로부터 얻기 위하여 그러한 악행을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조차도 금하고 있읍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에베소 5:3-5)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받고 있읍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 4:31, 32) 그러므로 여호와께 가납되기 위해, 육체의 악한 행동들을 중단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의 말이 적용될 수 있읍니다. “너희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린도 전 6:11.
10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러한 요구 조건 중 어떠한 것에 대하여 등한하였고, 또 계속 등한하다면, 그러한 사람은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데 가납될 만한 헌신을 할 위치에 있지 못합니다. 여호와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면, 깨끗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 앞에 자신을 제공하기 위하여 자기의 잘못을 시정하였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이유로 변명할 수는 없읍니다. 우리는 육체의 일을 멀리하고 영의 열매를 배양해야 합니다.—갈라디아 5:22, 23.
한 가지 더 요구되는 중요한 조건
11. (ㄱ)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들이 달해야 할 또 하나의 요구 조건은 무엇입니까? (ㄴ) 이러한 행동은 일반 세상 사람들로부터 찬성을 받는 행동입니까? (ㄷ) 이 점에 있어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였읍니까?
11 예수께서 이 땅을 떠나시기 전, 그는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온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또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들을 사람들의 이익을 도모해야 함을 명백히 하셨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 15:19) 예수의 추종자들의 행동은 그들이 마귀를 신으로 하는 악한 사물의 제도 안에 있는 인류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4:4) 이로 인하여 그들은 커다란 압력과 박해를 받을 것인데, 예수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요한 15:20) 예수와 사도들과 제자들 시대로부터 현 세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거민의 대다수는, 주 예수의 추종자들이 예수의 명령과 같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방법대로 여호와의 뜻 행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이러한 반대를 직면할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역사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이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으려고 단호히 노력하였기 때문에 당한 고통과 박해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읍니다. “그들은 그들이 이 땅에서 섬기게 된 어떠한 왕국보다도 하나님의 왕국을 택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죽음도 불사하였다.”—「구세계에서 신세계로」, 유진 에이. 콜리간과 막스웰 에프. 리트원 공저.
12. 우리가 충실할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시리라고 두려워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이러한 분리 때문에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인기가 없읍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신 일을 하려는 사람은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 예수께서 난관과 압제의 때에 나를 버리시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읍니다. 바울은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보증해 줍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 전 10:13.
예수께서 하신 대로 행함
13.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문제에 있어서, 예수께서 하신 대로 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한 개인이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여호와 앞에 제공하기를 갈망할 때 그 사람은 그가 이행하여야 할 다른 책임은 기쁜 소식의 전도자가 되는 책임임을 인정합니다. 주 예수의 참 추종자들간에는 교직자-평신도 구별이 없읍니다. 우리는 기원 제1세기에 있던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주는 데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태 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열두 명을 보내신 기록이 나옵니다. (마태 10:5-7) 다른 경우에 그는 그의 제자들 중 70명에게 사명을 주시어, 성을 다니면서 하나님의 왕국의 임함을 전파하도록 보내셨읍니다. (누가 10:1, 8, 9) 그가 부활되신 다음,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수께서는 그의 열 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보십시오! 내가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겠읍니다.” (마태 28:19, 20, 신세) 제자 누가는 예수께서 부활 후에 그의 제자 중 몇명을 만나신 것과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고 기록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 1:8.
14. 바울의 말은 전파 사업을 활동적으로 해야할 필요성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4 예수가 죽으신지 여러 해 후,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쁜 소식의 전도인이 되라는 훈계를 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 후 4:2) 바울은 에베소 회중의 연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말해 줌으로써 그 말씀을 확장시킬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었읍니다. 그는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쳤다고 말하였읍니다.—사도 20:20.
15. 예수는 하나님의 전도인으로서 얼마나 활동적이었으며, 그는 그의 종들이 이 사물의 제도의 종말에 무엇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5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본을 세우신 분은 예수이십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읍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니[라].” (마태 9:35) 실로 예수는 일하는 전도인이셨으며, 그는 그의 모든 추종자들에게 그가 지상 체재시 세워 놓은 본을 따를 것을 촉구하셨읍니다. 이 요구 조건은 결코 폐기되지 않았읍니다. 사실상, 예수는 이것이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결말을 특징짓는 징조의 일부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14, 신세)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설정되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명령하신 이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한 사람은 여호와께 영예와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그러한 전파 사업에 참여하고자 할 것입니다.
헌신의 서약의 중요성
16. (ㄱ)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서약한 사람은 왜 심중한 행로를 취하는 것이 됩니까? (ㄴ)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의 봉사를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기로 헌신할 때, 그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16 이상 고찰한 바로 볼 때, 그리스도 예수의 참 추종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인생 행로가 아님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행로이며, 영원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행로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충고하셨읍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와 같이 헌신과 침례를 숙고하는 사람도 그에게 요구된 것을 계산해 보도록 충고합니다. (누가 14:28) 예수는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 자였으며, 그는 아버지께 한 서약의 중요성을 알았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전도서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록케 하셨읍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전도 5:4) 현재 헌신과 침례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가 얼마나 오래 살든지 혹은 현 악한 사물의 제도가 얼마나 오래 계속 되든지,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그의 헌신의 서약을 이행하기로 단단히 결심하여야 합니다. 시간 조건이 붙은 헌신은 여호와께서 받아들이시지 않습니다. 특정한 기간 동안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는 말할 수 없읍니다. 사실 그것은 일생의 약속이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가는 자는 그 약속을 지킬 것으로 기대됩니다.
17. (ㄱ) 우리가 우리의 서약에 일치한 생활을 할 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 당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유부단은 지혜로운 행동입니까? 왜? (ㄷ) 어떠한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우리는 여호와께 나아가야 합니까?
17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충실한 생활을 요구하시는 것은 합당합니다. 만약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리라고 하신 약속을 지키리라고 우리는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기시리라고는 일순도 생각할 수 없읍니다. 한편, 여호와께서도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헌신하였을 때, 우리가 충실을 나타내기를 당연히 기대하실 수 있읍니다. 따라서 전도 5:2의 말씀은 시기에 적절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마음 속에 굳게 간직할 필요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읍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동시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기는 하나, 우유부단은 여호와의 승인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 4:17)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아시며, 우리의 동기와 생활 방식을 아십니다. 그는 속임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여서는 안되며, 우리가 여호와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즉 예수께서 가지셨고, 시편 필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가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히브리 10:5-10.
여호와의 축복을 가져 오는 행로
18.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위안이 하나님으로부터 옵니까?
18 여호와 하나님과 가질 수 있는 관계를 이와 같이 인식하게 된 사람들은 분명히 커다란 축복을 받을 대열에 서 있읍니다. 천적 아버지의 보호와 보살핌은 크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한 마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읍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라].”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 9:1, 2, 14-16.
19. 우리 자신을 여호와께 헌신함으로 무엇을 상실할지 모르며,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얻습니까?
19 이러한 행로가 우리의 반대자 될 자들의, 심지어 집안 식구들의 우정을 상실케 함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축복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어떠한 손해도 보상하고 남음이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마가 10:29, 30.
20. 마지막으로, 침례식에서 받은 두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대답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것입니까?
20 위기에 처한 현 “마지막 날”에 사는 우리 앞에는, 세상의 창조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재난 시대가 놓여 있읍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끝에, 이 악한 사물의 제도가 끝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왕국 아래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새 질서가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이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러한 구원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옴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아들을 통하여 실로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읍니다. 천적 아버지로부터 받을 그러한 보상에 비견할 것은 하나도 없읍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언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