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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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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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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파74 11/1 500-503면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기원 제1세기에 ‘예루살렘’이 최종 포위을 당하였던 시기는 그 도시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실로 미증유의 고통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그것을 뜻밖의 일로 생각할 것은 없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언자는 그 일이 닥치기 수십년 전에 그 사건을 지적하셨기 때문이다. 그 예언자는 그 포위와 그 결과의 참상을 생각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누가 19:41-44.

19세기 전에 ‘예루살렘’에 발생된 사건은 우리에게 단순한 옛이야기로 그쳐서는 안된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던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도시나 한 국민에게가 아니라 전 인류 세상에 닥칠 더 큰 재난을 말씀하셨다. (마태 24:3-37) 따라서, 고대 ‘예루살렘’의 경험으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 교훈을 따른다면 인간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 역사가 ‘요세퍼스’는 이 시대의 역사를 알려주는 주된 근원이 되고 있다. 그는 그 사건을 목격하였으며, 때로는 자기가 기술한 내용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서 필자들과는 달라 영감을 받지는 않았다. 그의 기록은 그가 받들었던 ‘로마’인 상관들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도록 하고 또 ‘유대’ 전쟁의 초기에 ‘로마’ 사람들에게 자기가 항복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정신이 분명히 가미되었을 것이다. ‘요세퍼스’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의 저서로부터 가치있는 배경 지식을 얻을 수는 있다.

‘유대’인의 반란

기원 66년에 일련의 사건이 발단되어, 그로 인해 ‘로마’와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고 ‘요세퍼스’는 말하고 있다. 한 집단의 ‘유대’인들이 사해 근처에 있는 ‘마사다’ 요새를 공격하여 그곳에 있는 ‘로마’ 수비대를 멸하고 자기네 군대로 대치시켰다.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수위대장 ‘엘르아살’이 성전 봉사자들을 설득시켜 외국인들로부터는 예물 혹은 제물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그 결과, 고위 제사장들과 탁월한 시민들의 호소를 물리치고 그들은 ‘로마’와 ‘가이사’를 위해 제물을 바치는 일을 중단하였다.

지도적인 시민들과 고위 제사장들과 저명한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보복이 두려워서 대중적인 회합을 갖고 반란의 어리석음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도 허사였다. 따라서 그들은 ‘플로러스’ 총독과 ‘아그립바’ 왕에게 대표자를 보내어 도움을 청하였다. ‘아그립바’는 호응하여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 다음에 ‘예루살렘’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서 반군파가 승리를 거두고, 그 후 성전 근처 ‘안토니아’ 요새에 주둔한 ‘로마’ 수비대를 멸하였다.

3개월 내에 ‘시리아’ 주재 ‘로마’ 총독 ‘세시우스 갈루스’는 ‘로마’ 군대 제 12군단을 소집 상당수의 보조 군대와 함께 반란을 진압하도록 파송하였다. ‘로마’ 군대는 초막절 기간에 ‘예루살렘’ 성벽 앞에 이르렀으며, 곧장 경계가 삼엄한 성전 벽에까지 침투하였다. 분명히 승리가 임박하였는데, ‘갈루스’는 갑자기 그리고 겉보기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후퇴를 명하였다. ‘유대’ 군대는 그들을 추격하였다. 그들이 공격하자 퇴각하던 ‘로마’ 군인들은 많은 짐과 포위 장비들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구출해주셨다고 확신하고 “‘예루살렘’ 성도(聖都)”와 같은 글을 새긴 주화를 만들기도 하였다.

도망한 사람들

그러나 ‘예루살렘’과 ‘유대’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기억하였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찌어다.”—누가 21:20, 21.

고대의 여러 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그와 같은 예언적 명령을 따라 그때 ‘예루살렘’과 ‘유다’ 땅을 떠났음을 알려 주고 있다. 기원 제 3, 4세기 교회 역사가 ‘유세비어스’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던 전체 교회는, 전쟁 전에 경건한 자들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적 명령을 받고 그 도시를 나와 ‘요단’ 건너 ‘펠라’라고 하는 도시에 거하였다.” 그와 비슷한 시대의 ‘에피파니어스’는 ‘‘예루살렘’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다가오는 포위에 대해 그리스도로부터 예고를 받고 ‘펠라’로 이주하였다’고 알려 준다.

‘로마’군의 대거 침공

그러므로, ‘네로’ 황제가 ‘유대’인들의 폭동을 진압하도록 ‘베스파샨’ 장군을 임명하였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위험 지구 밖으로 나가 있었다. ‘베스파샨’은 자기 아들 ‘티투스’의 강력한 보조를 받으면서 60,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였다. 그는 군대를 지휘하여 ‘갈릴리’ 지방의 도시들을 공격하였으며,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마침내 도시들이 함락되고 ‘유대’인들은 실로 무참하게 살해를 당하였다.

‘타리캐’와 ‘가말라’ 두 도시가 당한 참상은 그 지방 전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잘 보여준다. ‘갈릴리’ 바다 연안에 위치한 ‘타리캐’에서는 ‘유대’인 6,000명 이상이 전투에서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자비한 취급을 받았다. “늙고 쓸모없는” 사람들 1,200명은 살해되었다. 30,000여명은 노예로 팔려갔으며, 튼튼한 청년 6,000명은 ‘네로’ 황제를 위하여 ‘고린도’ 운하를 파는 데서 노역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가말라’에서, ‘유대’인들의 사태가 절망적으로 되자 많은 사람들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성벽 밖으로 내어 던지고 자신들도 몸을 던져 죽었다. 그렇게 하여 5,000명 이상이 그 아래 인공으로 만든 깊은 골짜기에 떨어져 죽었다. 또 다른 4,000명은 ‘로마’ 군대의 손에 살해되었다.

‘예루살렘’ 내의 상태가 악화하다

‘예루살렘’을 살펴본다면, 그 도시는 ‘유대’인들의 두 적대적인 분파—열심당(‘셀롯’당)과 온건파—사이의 전장이 되어 있었다. 열심당은 성전을 장악하고 그것을 자기네 요새로 삼았다.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그들은 약탈과 살인을 자행하였다.

후에,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민중을 일으켜 ‘셀롯’당에 항거하였다. 열전이 벌어졌으며, 결국 ‘셀롯’당은 성전 구내에 포위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나누스’는 전투를 성역 내로 밀고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6,000명의 경비를 시켜 포위된 ‘셀롯’당을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셀롯’당은 비밀리에 두명의 사자를 도시 밖으로 탈출시켜 ‘이두매’ 사람들에게 원조를 청하였다. 얼마 안되어 ‘이두매’ 군대 20,000명이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였다. 어둠과 폭풍을 틈타서 한 집단의 ‘셀롯’당원들이 경비병을 피해 나가 ‘이두매’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성문을 열어 주었다. 유혈 참극이 벌어졌으며, 온건파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아나누스’는 죽임을 당하였다.

‘예루살렘’에 압력이 가중되다

‘예루살렘’이 내분으로 인해 비틀거리고 있는 동안, ‘로마’ 군대는 계속 진군하고 있었으며, 사실상 그들의 전투를 강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변화가 오게 되었다.

‘로마’ 제국 자체도 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고 강력한 세력들이 ‘네로’를 반대하고 일어섰다. 결국 ‘로마’ 원로원은 ‘네로’에게 사형을 결정하였다. ‘네로’는 사형을 당하지 않고 68년 6월에 자살을 하였다.

‘베스파샨’이 ‘예루살렘’으로 진군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에 ‘네로’가 자살하였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 때문에 그는 새로운 황제의 의향을 알고자 공격을 않고 기다렸다. 서로 경쟁하는 세명의 황제들, ‘갈바’, ‘오토’ 그리고 ‘비텔니우스’가 잠간씩 차례로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베스파샨’은 군부로부터 황제가 되라는 요청을 받고(기원 69년에), 전쟁을 지휘하는 일을 중단하고 황제의 자리를 얻기 위해 지위를 굳히는 데 전념하였다.

그 동안에도 ‘예루살렘’ 내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셀롯’당의 행동에 관하여 ‘요세퍼스’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그들의 약탈은 한이 없었다. 그들은 부자들의 집안을 뒤적였으며, 재미삼아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겁탈하였고, 피로 물든 노략물을 집어삼켰다. 그들은 단순히 지루함을 달래고자 여자같은 행동을 하였고 머리를 단장하고 여자 복장을 하고 향수에 몸을 적시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하여 눈 언저리를 물감으로 그렸다. 그들은 진흙 속에서 딩굴었으며, 도시를 온통 매음굴로 만들고 추잡하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도시를 더렵혔다. 그들은 얼굴은 여자같이 꾸몃으나 손은 살인자의 그것이었다. 그들은 살금살금 걸어와서는 불량배로 돌변하고, 옷자락 속에서 칼을 빼내어 지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찔렀다.”

상태도 험악한데다가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셀롯’당은 ‘로마’ 사람들에게 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가진 수단을 다 사용하였다. 탈출한 사람은 누구든지 성문밖에 주둔하고 있던 또 다른 적대파에게 죽임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최종적 포위

기원 70년 유월절 무렵, ‘티투스’의 지휘 하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 앞에 당도한 때까지도 내분은 그치지 않았다. 그때에 그 도시는 유월절 축하객으로 붐비었다. ‘니산’월 14일 유월절날 숭배자들은 성전 지역으로 들어가도록 허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뜻밖에도 무장을 한 그 도시의 한 적대 분파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무기를 감추어 변장하고 들어갔으므로 발각되지 않고 들어갔던 것이다. 그들은 성전 내부와 창고들을 장악하려고 하였다. 폭력과 유혈극이 일어났다.

그후 오래지 않아 ‘로마’군들의 공격 기계가 3중으로 된 ‘예루살렘’ 성벽의 북쪽 외벽을 들이치기 시작하였다. 공격 15일째 이 성벽은 ‘로마’군의 손에 넘어갔다. 4일 후에 ‘로마’인들은 둘째벽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반격하여 그것을 탈환하였다. ‘로마’인들은 굉장한 손실을 입으면서 4일 내에 결국 ‘유대’인들을 둘째 성벽에서 몰아내고 북쪽 성벽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이제 성벽 하나만 남았다.

후에 ‘티투스’는 작전 회의를 소집하고 도시 주위에 벽을 쌓을 것을 제의하였다. 이렇게 하면 ‘유대’인들이 빠져 도망할 수 없으므로 그들이 항복하든지 아니면 그 안에 기근이 들어 점령하기가 용이할 것이라고 ‘티투스’는 생각하였다. 그의 계획이 채택되었다. 병졸들은 그 계획을 수행하도록 조직되었다. 군인들은 군단끼리 혹은 단위 부대끼리 경쟁적으로 그 일을 끝내었다. 개개인들은 자기 상관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열을 내었다. 4‘마일’ 반이 넘는 성벽이 단 3일만에 완성되었다.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의 예언적 말씀 곧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리라.]”는 말씀이 성취되었다.—누가 19:43.

이제 ‘예루살렘’의 기근 상태는 심각하게 되었다. ‘요세퍼스’는 이렇게 기술한다. “지붕들은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로 덮였고 거리에는 벌써 죽은 노인들이 가득하였다. 청년들과 소년들은 부황이 나서 망령들처럼 광장을 어슬렁거리다 아무데서나 실신하여 넘어졌다. 환자들은 자기네 친족을 매장할 힘도 없었으며, 힘이 있는 사람들도 시체가 많은데다가 자기네 운명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그 일을 기피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매장하다가 넘어져 죽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운명을 당하기 전에 무덤을 찾아갔다. 그러한 비참한 상태에서 울음도 탄식도 들리지 않았다.” 성벽 때문에 나물도 캘 수가 없어 “어떤 사람들은 몹시 궁색해져서 하수도를 뒤적이고 오래 전의 쓰레기통을 파헤쳐 거기서 찾은 쓰레기를 집어삼켰다.” ‘로마’인들은 포위 동안에 600,000구 이상의 시체가 성문밖으로 던지웠다는 보고를 받았다.

포위를 계속하다가 ‘로마’인들은 결국 성전 지역 안으로 돌입하였다. 성전에 불이 붙은 다음 그들은 모든 것에 불을 놓기로 결정하였다. 바깥 성전의 마지막 남은 행각(行閣)에는, 약 6,000명이 피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기로 가서 구원의 지시를 받으라고 한 어느 거짓 예언자의 말을 듣고 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인들이 이 행각의 아래 부분에 불을 질렀다. 그러자 많은 ‘유대’인들은 불길 밖으로 뛰어내리다가 죽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에 타 죽었다.

포위 공격이 끝나자 희생자 수는 어마어마하였다. 약 1,100,000명이 죽었는데, 대부분은 질병과 굶주림에 쓰러졌다. 전쟁 초부터 끝까지 잡힌 포로는 약 97,000명에 달하였다. 키가 크고 잘 생긴 청년들은 개선 행진을 위하여 살려두었다. 그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애굽과 ‘로마’에서 중노동을 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로마’의 각 지방으로 보내져서 원형극장에서 죽어갔다. 17세 이하는 노예로 팔려갔다.

포위 공격은 5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의 예언의 성취로서 그것은 과연 ‘예루살렘’에 닥친 최대의 환난이었다. 도시와 그의 성전은 산산히 부서졌다. 단지 세개의 탑과 도시 서쪽 성벽의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 ‘요세퍼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도시를 두르고 있던 나머지 모든 성벽은 완전히 기초까지 부서져 그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거기가 사람이 살던 지역임을 믿지 않을 정도로 되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독실한 제자들은 이러한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하였다.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은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누가 19:4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 24:2.

‘예루살렘’과 그의 거민들에게 닥친 사건들을 보고 우리는 성서 예언에 유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성서에서 “마지막 날”이라고 하는 때에 살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현 시대의 불법과 폭력은 고대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 그 안의 상태와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디모데 후 3:1-5) 그러나 이 “마지막 날”을 종말지을 그 “큰 환난”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다가오는 “환난”은 온 땅을 뒤덮을 것이므로 어느 특정한 지역으로 도망한다고 보호를 받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할 길을 알려 주고 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스바냐 2:3.

당신은 하나님의 의의 표준에 달하려고 노력하는가? 당신은 겸손하게 그분의 규례를 따르는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곧 닥칠 환난 기간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당신의 현재 입장이 어떠하든지, 지금이야 말로 여호와 하나님의 충실한 종임을 나타내도록 행동을 취해야 할 때이다. 기원 제1세기에 ‘예루살렘’에 닥친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거기에 일치하게 행동을 하면 현재의 경건치 않은 사물의 제도에 “큰 환난”이 닥칠 때에 생명을 얻을 것이다.—계시 7: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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