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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2 1/1 13-17면
  • “어깨를 나란히 하”여 여호와를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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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깨를 나란히 하”여 여호와를 섬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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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2
파82 1/1 13-17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여호와를 섬김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순결한 언어로 바꾸어, 신세)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번역) 섬기게 하리[라.]”—스바냐 3:9.

1.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언제나 틀림없이 성취됩니다. 그분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사야 55:11) 이 말은 ‘스바냐’의 중대한 예언의 참으로 많은 세부점에 있어서 참되었읍니다.

2. (ㄱ) 스바냐 2:4-8에는 어떠한 민족 집단들이 언급되어 있읍니까? (ㄴ) 오늘날 그 장소들을 방문해 본다면 예언의 정확성을 어떻게 확인하게 됩니까?

2 예로서, ‘스바냐’는 방향을 바꾸어, ‘블레셋’ 도시들, ‘그렛’ 족속, ‘블레셋’ 사람의 땅, 및 ‘모압’과 ‘암몬’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을 기록합니다. (스바냐 2:4-8) 그 모든 예언들이 그 후 여러 해 그리고 수세기 동안 괄목하게 성취되었읍니다. 오늘날 ‘블레셋’ 족속과 그 도시들이 어디에 있으며, 그 예속된 ‘그렛’ 족속이 어디에 있읍니까? 그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어떠합니까? 예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리[라.]” (스바냐 2:9)

만일 우리가 한때 거만한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 번창하던 ‘요르단’ 지역을 가로질러 여행을 한다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읍니까? 여호와께서 예언하신 대로 황폐뿐입니다! 역사는 ‘이디오피아’ 역시 ‘애굽’과 함께 침공자 ‘바벨론’의 손에 고통을 당하였음을 알려 줍니다.—스바냐 2:12.

“놀라움의 대상”

3, 4. (ㄱ) 여호와께서는 ‘앗수르’와 ‘니느웨’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왜 이것은 믿기 어려워 보였을 것입니까? (ㄷ) 그 예언의 두드러진 성취에 대한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3 가장 놀라운 일은 ‘앗수르’와 ‘니느웨’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스바냐’는 ‘앗수르’의 거만한 수도 ‘니느웨’가 그 영화의 극에 달하였을 때, 그 나라가 성서 역사상 두번째 세계 강국의 자리에서 몰락하기 적어도 15년 전에 예언을 하였읍니다. 누가 감히 그러한 일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읍니까?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국가주의적인 “피 성”을 적대시하셨읍니다. (나훔 3:1, 5) 그분께서는 ‘스바냐’를 통하여 그 나라를 심판하실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여호와가 북방을 향하여 손을 펴서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로 황무케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하며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이가 없다 하더니 어찌 이같이 황무하여(놀라움의 대상이 되어, 신세) 들짐승의 엎드릴 곳이 되었는고! 지나가는 자마다 치소하여 손을 흔들리로다.”—스바냐 2:13-15.

4 당시의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일한 세대가 살아서 그것을 목격하였읍니다! 기원전 632년에 ‘바벨론’의 ‘나보폴라사르’와 ‘메대’의 ‘캬크사레스’가 ‘니느웨’를 포위 공격하여 점령하였읍니다. ‘바벨론’ 연대기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들은 도시와 전의 엄청난 전리품을 노획해 갔으며 그 도시를 황폐한 무더기로 [변모]시켰다.” ‘니느웨’의 황폐는 너무나 철저했기 때문에 여러 세기 동안 그 위치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읍니다. 1800년대에, 그 곳은 재확인되었으며 그 유명한 ‘아수르바니팔’ 2세의 도서실이 발굴되었읍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지역은 이따금씩 짐승의 떼들이 쉬는 불모의 황무지로 남아 있읍니다.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의 얼마나 정확한 성취입니까!

5. 이 예언은 우리 시대를 위한 어떠한 강력한 소식을 담고 있읍니까?

5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도, 그 예언적인 기록은 오늘날을 위한 소식을 담고 있읍니다. 그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 역할을 합니다. (고린도 전 10:11, 12; 로마 15:4; 디모데 후 3:16, 17) 그것은 그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케 한 자만심, 방종한 쾌락 추구, 물질주의적인 사고 방식 및 폭력적인 기질을 피하도록 격려해 줍니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예언들이 오늘날 매우 생생히 살아 있으며 그 최종적인 성취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보존하신 단순한 역사적인 기록이 아닙니다. 그 고대 나라들에게는 현대적인 실체가 있으며, 특히 ‘앗수르’와 같은 군사력을 뽐내는 정치 군사 강국들에게 그러합니다. 여호와께서는 틀림없이 자기의 왕국에 반대하는 그러한 모든 자들을 복수하실 것입니다.—나훔 1:2; 스바냐 1:2, 9.

‘그 압제적인 성읍이 화있을찐저’

6. 지금 어떠한 질문이 있으며, 왜 적절합니까?

6 현대의 전제주의 및 독재주의 정부들은 강력한 ‘앗수르’ 제국의 잔악한 ‘니느웨’와 매우 흡사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보시기에 더욱 비난받을 현 세계 사물의 제도의 일부가 있음을 그분은 명백히 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7. (ㄱ) 어떤 “압제적인 성읍”이 고대 ‘예루살렘’과 상응하며 어떠한 면으로 그러합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은 어떻게 징계를 거절하였읍니까?

7 그것은 ‘스바냐’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주장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의 일부분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국”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그러나 그 교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순결한 가르침을 변절시켰으며, 그 나라들과 백성들은 그 말씀에 세워져 있는 훌륭한 도덕 표준을 따르는 일에서 전락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스바냐’는 이제 하나님이 불쾌하게 여기시는 그 “성읍”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압제적인, 신세) 성읍이 화 있을찐저!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교국 전역에, 그 도시들과 마을들에, 집집으로 자기의 증인들을 보내셨읍니다. 그들은 “아침마다” 그분의 심판을 선포하였읍니다. “낮에” 그분의 의로운 요구 조건들이 명확히 밝혀졌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지도자들과 교직자들은 ‘오만’하였으며 ‘수치를 모르고’ 의로우신 여호와와 그분의 왕국의 이 사자(使者)들을 반대하였읍니다.—스바냐 3:1-5, 신세 참조.

8, 9. (ㄱ) 이제 여호와께서는 친히 어떠한 선언을 하십니까? (ㄴ) 그것은 얼마나 광범위하게 적용됩니까? (ㄷ) 왜 우리는 그 기록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까?

8 자기의 충실한 예언자를 옹호하시어,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 심판의 선언을 모든 나라들에게로 넓히시며 이러한 말로 절정을 이룹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열심, 신세)의 불에 소멸되리라.”—스바냐 3:6-8.

9 그러므로 여호와의 심판 집행은 그리스도교국의 황폐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종교는 성서에 “큰 ‘바벨론’”이라고 묘사된, 전체 거짓 종교 세계 제국과 함께 멸절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계시 18:2-4) 그분의 맹렬한 “진노”와 “열심의 불”의 날은 지상에서 모든 악을 일소할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34:2-8; 예레미야 25:32, 33 참조) 마태 복음 24:21에 나오는 예수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전대 미문의 가장 큰 이 환난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고대 ‘니느웨’의 멸망처럼 “온전히 멸”하시는 여호와의 목적이 달성될 것입니다.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할 것입니다.—나훔 1:9; 다니엘 12:1; 계시 19:11-21.

생존의 길

10. 지금 세계에서 어떠한 ‘불결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읍니까?

10 이 세계 재난의 때에 생존의 길이 있읍니까? 예, 있읍니다! 예언의 바로 다음 귀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순결한 언어로 바꾸어, 신세)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동 번역) 섬기게 하리[라.]” (스바냐 3:9)

세상 나라들은 그들이 수백 가지 언어 중 어느 것을 사용하든지 간에 여호와께 가증한 “언어”로 선전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 대신에 자신들의 국가주의적인 계획을 찬양하며, 이기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분열된 국제 연합을 사용하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을 배척합니다.

11. (ㄱ) 오늘날 어떠한 “순결한 언어”가 말해지고 있읍니까? (ㄴ) 이 “언어”는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읍니까? (ㄷ) 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11 그러면 “순결한 언어”로 바꾸어지는 이 변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리의 소식, 소생시켜 주는 “좋은 소식”,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와 그분의 의로운 목적을 찬양하는 데 사용하신, “건전한 말씀의 본”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 1:13, 신세 참조) 이 “순결한 언어”는 그들을 연합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획기적인 해인 1914년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심을 확증해 줍니다. (계시 11:15) 이러한 소식을 자신의 입술에 두는 참 그리스도인들은 헌신하고, 일치 연합해서 그분께 “거룩한 봉사”를 드림으로 전세계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지상에서 참으로 유일하게 연합된 백성으로서, 그들은 사람들의 가정을 찾아가 여호와의 설립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여호와를 섬깁니다. (마태 24:14; 로마 12:1) 당신은 이렇게 하여 자신을 세상에서 분리시키고, 하나님께 헌신하고 열성스럽게 그분을 섬기는 사람입니까? 이렇게 여호와의 조직된 백성과 함께 일함으로써 당신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읍니다.—요엘 2:32; 또한 호세아 14:1, 2; 히브리 13:15 참조.

12, 13. (ㄱ) 이 “언어”를 배우는 데 어떠한 문제들이 관련될 수 있읍니까? (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섬기는 데 왜 온유함이 요구됩니까? (ㄷ) 우리는 어떻게 온유의 특성을 배양할 수 있읍니까?

12 “순결한 언어로 바꾸”는 일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안이하고 방임적인 방식의 세상에서 나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데 필요한 희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깨끗하고, 훌륭한 표준에 순응하기 위하여 자신의 그릇된 생각, 나쁜 습관 및 이기적이고 방종한 생활 방식을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에베소 4:17, 18, 29; 베드로 전 4:3) 그것은 여호와께서 오늘날 지상에서 사용하고 계시는 하나의 조직에 합당한 인식을 나타낼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과 연합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 ‘종’ 반열의 출판물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이 검토”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하는 데 온유함을 요구합니다.—마태 24:45; 사도 17:11, 신세.

13 “어깨를 나란히 하”여 여호와를 섬기기 위하여, 우리는 ‘스바냐’가 매우 자주 강조한 것처럼 온유의 특성을 배양해야 합니다. 모든 불완전한 인간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가 실수를 범할 때에, 심지어 불완전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도 시정한 것과 같이, 잘못을 선뜻 인정하도록 하십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지난 100년 동안 자기의 연합된 백성들 가운데 세워 오신 숭고한 진리는 결코 비평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다. 그 진리는 시정과 조정에 의하여 “의인의 길”에 점점 더 밝게 빛나게 되었읍니다.—잠언 4:18.

14. (ㄱ) 어떠한 태도가 온유와 반대되며, 그것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ㄴ) 그러한 교만한 자들은 어떻게 발전해 가며, 우리는 어떠한 경고에 청종해야 합니까? (ㄷ) 우리는 어디에서 ‘부족함이 없음’을 발견합니까?

14 때때로 여호와의 백성의 대열 가운데에서, 최초의 ‘사단’과 같이, 독립적이며, 흠을 찾는 태도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일어났읍니다. 그들은 전세계적인 형제애를 가지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섬기고자 하지 않습니다. (에베소 2:19-22 비교) 오히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하여 “굳은 어깨”를 내밀었읍니다. (스가랴 7:11, 12 난외주 참조) 지난 세기에 걸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매우 은혜롭게 가르쳐 주신 “순결한 언어”를 헐뜯음으로, 이 교만한 자들은 예수께서 지상에 모으신 한 “무리”의 국제적인 “양떼”로부터 “양들”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요한 10:7-10, 16) 그들은 의심의 씨를 뿌리고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베풀어지는 영적 양식의 풍성한 “식탁”에서 의심하지 않는 자들을 분리시키고자 합니다. 그 식탁은 참으로 ‘부족함이 없읍니다.’ (시 23:1-6) 그들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에서 작은 집단으로 오로지 성서만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러한 ‘성서 읽기’를 통하여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100년 전에 가르치고 해설한 바로 그 변절된 교리로 되돌아갔으며, 어떤 사람들은 12월 25일의 ‘로마’의 농신제와 같은 그리스도교국의 축제들을 기념하는 일로 다시 돌아가기까지 하였읍니다!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은 그러한 불법한 자들에 대하여 경고하였읍니다.—마태 24:11-13; 사도 20:28-30; 베드로 후 2:1, 22.

15. (ㄱ) 여호와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ㄴ) “겸손하고 비천한 백성”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읍니까? (ㄷ) 여호와께서는 이들에게 어떠한 보증을 하십니까?

15 여호와께서는 그의 예언자 ‘스바냐’를 통하여 자기의 백성에게 자신이 그의 지적 조직 안에 불일치를 뿌리는 수치를 모르는 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너로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니라.”

반대로, 행복하게도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곤고(겸손, 신세)하고 가난한(비천한, 신세) 백성을 너희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찌라.” (스바냐 3:11, 12)

그렇습니다, 그들은 온유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참여할 때에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일합니다. (로마 15:15, 16, 신세) 그들은 교만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이 그 주인으로부터 배운 본을 따라 집집을 방문하는 비천한 일을 합니다. (마태 10:5-13; 누가 9:2-6; 사도 5:42)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피난처로 삼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승리의 왕국에 의하여 입증될 그 영광스러운 이름과 그분의 목적을 선포합니다. (에스겔 38:23; 다니엘 2:44) 여호와의 백성은 그분의 의에 따라 섬기고 생활하기 때문에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는 말씀을 확신합니다. (스바냐 3:13) 그들은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즐깁니다!

즐거이 활동할 때

16. (ㄱ) ‘스바냐’는 자신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ㄴ) 오늘날 어떠한 예언적인 부름이 응답되고 있으며, 누구에 의하여 응답되고 있읍니까?

16 ‘스바냐’ 자신은 여호와의 그러한 보증으로 인해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요청합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스바냐 3:14, 15)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증인들은 그들이 큰 ‘바벨론’의 영적 포로 상태에서 해방된 때인, 1919년 이래 즐거이 공개적 증언을 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여 그분을 섬겨 왔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천적 ‘예루살렘’의 이 자녀들을 심판하시어 승인하셨읍니다. (갈라디아 4:26; 베드로 전 4:17) 감옥들과 강제 노동 수용소도 그들을 다시 영적으로 속박하는 데 무력함이 입증되었읍니다. 이제 그들의 즐거움에는 1935년 이래 주의 “다른 양”의 일부로 밝혀진 반려자 증인인 “큰 무리”가 참여하고 있읍니다.—요한 10:16; 계시 7:9, 10.

17. (ㄱ) 어떠한 보증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거룩한 봉사”에서 인내하도록 도와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잠잠”하시며, 그러나 어떻게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며,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17 여호와께서는 친히 천적 ‘시온’을 대표하는 그의 기름부음받은 자들에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그들의 동료 일꾼인 “큰 무리”에게 지금 이렇게 호소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 뜨리지 말라.” (스바냐 3:16)

오늘날 범죄와 폭력이 끔찍하고, 핵 시대의 도전이 무시무시해 가고, ‘여호와의 증인’에게 임할 박해가 잔인해질지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호와의 친밀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그러한 것들을 극복하게 할 것입니다. “거룩한 봉사”의 쟁기를 우리의 손으로 굳게 잡고, 결코 뒤에 있는 것들을 돌아보지 말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밭을 갈며 전진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도록 하십시다! (누가 9:62; 계시 7:15) 이제 그 예언은 하나님의 한층더 큰 이러한 보증을 알려 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스바냐 3:17)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회복되고 복구된 백성에 대해 사랑을 나타내심으로 편안과 휴식을 발견하시는 가운데 “잠잠”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봉사에서 그들이 나타내는 성실과 열심을 보시고 그분의 기쁨과 즐거움은 더 커집니다. 이 “마지막 날”에, 우리가 그분의 봉사에서 일치 연합하여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 여호와께 깊은 친밀감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디모데 후 3:1, 신세.

18. (ㄱ) 1919년 이래 여호와의 백성은 어떻게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되었읍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섬길 수 있읍니까?

18 1919년 이래,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는 웅대한 회복의 날이 되었읍니다. 충실한 증인으로서 그들은 선교의 열심을 가지고 계속 전파하였으며, 그 결과 여호와의 조직은 땅 끝까지 확장되었읍니다. (로마 10:10, 18) 이 때는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함께 모아야 할 때였읍니다. 그런데 어떤 목적으로 그러합니까? 여호와께서 친히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스바냐 3:20)

행복하게도, 하나님의 백성의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매우 고귀한 이름을 높이 받들음으로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되었읍니다. 이제 이 “천하 만민” 중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왕국의 목적을 알리는 데 “어깨를 나란히 하”여 그들과 함께 일하고 있읍니다. 우리가 변화하여 “순결한 언어”를 말하고 계속 그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면, 아직도 더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도록 도움을 받게 될 것이며, 이들 또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여호와께 숨김’을 받게 될 것이며, 영원 무궁토록 담대히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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