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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위일체—믿어야 할 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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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위일체—믿어야 할 교리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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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파84 5/15 4-8면

삼위일체—믿어야 할 교리인가?

독자는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진실하게 믿고 있는가? 그리스도교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어쩌면 독자는 항상, 그것이 성서에 기초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을지 모른다. 독자는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가장 초기의 완벽한 삼위일체 해설문 중 하나인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부 성자 성신 삼위가 계시나 삼위께서 다 같은 하나님이 되심이라. 영광도 같으시고 영존도 같으니 성부 성자 성신께서 다 같으시니라. ·⁠·⁠· 성부께서도 전능하시고 성자께서도 전능하시고 성신께서도 전능하시니[라.] ·⁠·⁠· 성부께서도 하나님이시오. 성자께서도 하나님이시오. 성신께서도 하나님이시니 삼위께서 다 같으신 한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나 세 하나님들이 계시단 말은 아니라. ·⁠·⁠· 이 삼위일체에 있어서 어느 분이 더 먼저 계셨거나 능력이 많으신 것이 아니라 삼위께서 다 같이 영원하시고 동등이 되시느니라.”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에 따르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능력과 권세 및 영원성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대한 질문은 이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은 삼위일체를 믿고 가르쳤는가? 그들이 그렇게 했다고 믿는다면, 아주 난해한 여러 가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마가 복음 13:32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 집행]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6면에 나오는 “그 말이 빠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네모 안 기사 참조)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면, 어떻게 아버지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아들이 모를 수 있겠는가? ‘예수의 본질은 두 가지인데, 여기서 그분은 인간으로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성신”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만일 그것이 삼위일체의 세째 위라면 “성신”은 왜 모르는가? 사슬의 강도는 기껏해야 가장 약한 고리가 얼마나 버티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성신”은 삼위일체 사슬의 일부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보다 일찌기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일이 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 ·⁠·⁠·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누가 10:22) 이 경우 역시 “성신”은 어떠한가?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의식있는 부분이고 아버지 및 아들과 동등하다면, 그것이 모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승천하신 지 20여년이 지난 후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누가 주[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 전 2:16) 만일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잠언 8:22-24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지으셨다, 공동번역]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느니라.] [태어났다, 공동번역]”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묘사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삼위일체 학자 ‘에드먼드 J. 포오트맨’은 이렇게 기술한다. “‘바울’은 그것[잠언 8:22-31]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적용시켰다. 변증론자들은 그것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 말씀이 이전에 존재하였으며, 창조시에 역할을 맡고 계셨음을 입증하는 데 사용하였다.” (비교 골로새 1:15-17; 계시 3:14) 그러나 예수에게 한정된 시작이 있고, 땅에 태어나시기 오래 전이라 해도 그분이 ‘지음을 받’으셨고 “세움을 입”으셨고, ‘태어나’셨다면 어떻게 영원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하게 되실 수 있겠는가? 더우기, 피조물(따라서 시작이 있는 존재)만이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요한 6:57.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반복적으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다. 심지어 하늘 영광으로 되돌아가신 후에도 그렇게 하셨다. (마태 27:46; 요한 20:17; 계시 3:2, 12) 열등한 자 곧 숭배자만이 다른 누군가를 가리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을 가리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경우가 단 한번도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아버지나 아들이 “성신”을 가리켜 “나의 하나님”이라고 한 경우를 전혀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하는 질문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되다고 믿고 가르쳤다고 생각한다면, 그 외에도 다소 난해한 것이 또 있다. 그러한 가르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겼을 만한 영향에 관한 기록을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떠한 영향 말인가?

우선, 그러한 가르침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었겠는가를 고려해 보자. 그들은 처음에 분명히 예수를 단순한 인간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비교 마가 6:3)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예수께서 자기가 하나님 자신이라고 그들에게 밝혔다고 해보자. 그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겠는가? 독자라면 자신이 바로 하나님 곁에 서 있다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될 경우 어떠한 반응을 보이겠는가?

19세기에 ‘하아버드 신학교’에 있던 최초의 교수 중 한 사람인 ‘앤드류 노오튼’은 그러한 가망성을 고려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압도당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정말로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분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사실을 항상 가장 강력한 말로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복음서들을 샅샅이 읽어 보더라도 예수의 제자들이 그렇게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 진리를 점진적으로 밝혀 주신 것이다’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되신 지 수년 뒤에 기록된, “신약”의 편지들에서조차 그같이 놀랐다는 흔적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난해하지 않은가?

그 외에도 예수께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가르치셨더라면 틀림없이 일어났을 만한 결과들이 또 있다. “주는 ·⁠·⁠· 오직 하나인 주”라고 믿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의 둘째 위로서 하나님과 동등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성 모독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신명 6:4, 「개역 표준역」 참조) 이것은 두 가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1) “신약”의 필자들이 믿음을 가진 ‘유대’인들을 위하여 이 믿기 어려운 교리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해명하고 예증하고 변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보다 더 설명을 요하는 가르침은 없었을 것이다!

(2)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격렬하게, 열정적으로 반대하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가증스러웠을 만한 그 교리를 공격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보다 더 논란에 휩싸일 만한 교리는 없었을 것이다!a

그러므로, ‘노오튼’ 교수는 이렇게 진술하였다:

“보다 덜 문제시되는 다른 질문들(예를 들면, 이방인 개종자들의 할례)이 그토록 의문과 논란의 대상이 되어 사도들의 권위로도 가까스로 진리를 확립시킬 수 있었는데, 그토록 이상하고, 불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 교리[삼위일체]는 조용히 유입되어 주저함이나 반감이나 반대, 혹은 오해 없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오로지 난해할 뿐이다!

그러므로 “신약” 필자들이 해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대’인 반대자들이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예수나 그분의 사도들이 그리스도교국에서 보편적으로 믿고 있는 것, 즉 삼위일체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 교리는 어디에서 들어왔는가?

삼위일체—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것인가?

‘성경에서 삼위일체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은 나중에 전통에 의해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갈라디아서 1:8에서 바울이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라고 말한 것과 과연 조화하는 것인가?

성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참 그리스도교에서 배교하는 일이 있을 것을 경고하였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디모데 전 4:1) 「신 가톨릭 백과사전」에 의하면 “4세기의 마지막 사반기”나 되어서야 비로소 삼위일체 교리가 온전히 생겨났으므로,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삼위일체 교리는 참 그리스도교에서 배교한 한 가지 결과일 수 있는가? 삼위일체는 실제로 ‘귀신의 가르침’일 수 있는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은 틀림없이 그 교리가 맺는 열매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서 “귀신이 들렸다”는 비난을 받으셨을 때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귀신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라.]” (요한 8:49)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어떠한가? 그것은 우리를 성서의 하나님께 더 가까와지게 하였는가?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더 가까와지게 함으로 그분을 공경 곧 영예롭게 하였는가? 실상은 어떠한가?

‘가톨릭’ 교직자 ‘로버트 개논’은 이렇게 시인한다. “성삼위일체 교리는 설명하기 극히 어려우며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있는 사람들이 믿음의 기초를 갖게 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정신을 충족시키는 설명이 필요하다. 하나님에 관한 개념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아무도 이해 못하는’ 그분에 대한 개념이 그분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가? 참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숭배하는 하나님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오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요한 17:3.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사람들이 아버지께 더 가까와지게 하기는커녕 그분을 밀어내고 말았다. ‘프로테스탄트’ 전통에서는 삼위일체로 인해 성부가 거의 이름조차 없는 미천한 위치로 전락되었다. 그들이 “주를 찬양하라!”고 말할 때 누구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틀림없이 그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 혹은 ‘마리아’—어느 쪽에 더 가까와지게 인도하는가?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 “모든 은혜의 여 중재자”, “인류의 여 공동 구속자” 혹은 “하늘의 여왕”으로 숭배함으로 인해 그 영향이 더 복합적인 것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이 삼위일체를 가르침으로 말미암은 당연한 귀결이다! 「신 가톨릭 백과사전」이 이렇게 설명하는 바와 같다. “‘마리아’는 두 가지 조건, 즉 그가 참으로 예수의 어머니라는 조건과 예수가 참으로 하나님이라는 조건이 이루어질 경우라면, 참으로 하나님의 어머니가 된다.”—‘고딕’체로는 본지에서.

성부가 어느 정도까지 배후로 밀려났는지를 설명하면서 「역사가의 종교 연구」라는 책에서 ‘아놀드 토인비’는 17세기의 ‘프랑스’인 ‘위그노’ 교도인 ‘피에르 바일’의 말을 인용한다. ‘피에르 바일’은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우주를 건네주는 장면을 풍자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 날부터 하나님은 더는 아무 일에도 간섭하지 않고 모든 것에 있어서 ‘마리아’의 경계 감독에 의존하게 되었다. 몇몇 천사들에게 이러한 정부의 변화를 지상에 통고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것은 인류가 장차 기도 활동에 있어서 누구에게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 성모 ‘마리아’에게 나아가면서, 그를 여 중재자나 종속 여왕의 자격을 가진 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주권자이자 절대적인 군주로 여기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적 헌신을 요구하신다! (출애굽 20:5, 신세 참조) 그분은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 주지 아니하”시겠다고 경고하신다.—이사야 42:8.

그러므로 사실들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다음과 같은 점을 알려 준다. 즉 삼위일체 교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가까와지게 함으로 그분을 영예롭게 하는 일을 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심각하게 잘못 대표해 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태 발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참 그리스도교로부터 배교한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

사실상, 삼위일체 신들은 그리스도교가 생기기 오래 전부터 있던 것으로서 고대 ‘애굽’과 ‘바벨론’ 신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한 사상이 그리스도교국에 어떻게 유입되어 들어왔는가? ‘피터 엑클러’가 발행한 「그리스도교의 역사」(History of Christianity)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교가 그리스도교에 의해 정복당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교가 이교에 의해 부패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라고 믿는 면에서만 동료 ‘유대’인들과 달랐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순수한 자연신 교리는 ‘로마 교회’에 의해 삼위일체라는 불가해한 신조로 변질되었다. ‘이집트’인들이 만들어냈고 ‘플라톤’이 이념화한 다수의 이교 신조들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 말에 동의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참 제자들이 “아버지를 ·⁠·⁠· 진리로 숭배”해야 한다고 명백히 말씀하였다. (요한 4:23, 24, 신세) 그렇다. 우리의 숭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나오는 진리와 일치해야 한다. 이 가운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이 포함된다! (요한 20:31; 요한 1서 4:15)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교의 온갖 거짓된 것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독자가 지금 읽고 있는 잡지는 백여년 간 수백만의 진실한 사람들이 유일하신 하나님 곧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를 ‘진리로’ 숭배하도록 도와 왔다.—시 140:7, 신세.

[각주]

a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알려 주는 요한 복음 5:17, 18을 지적할지 모른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러나 ‘요한’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려 한다고 생각한 것은 부정확한 것임을 묘사한 것이다. 이 점을 뚜렷이 알려 주는 것은 그들이 예수께서 안식을 범하였다고 비난한 것도 부정확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비교 마태 5:17-19.

[5면 삽입]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자기들에게 가증스러웠을 만한 그 교리를 공격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6면 네모]

그 말이 빠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큰 환난”의 시기와 관련하여 마태 복음 24:36을 「흠정역」 즉 「제임스 왕역」으로 읽어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But of that day and hour knoweth no mon, no, not the angels of heaven, but my Father only.”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나의 아버지만 아신다.) 다수의 다른 번역판들에는 “아들도 모른다”(nor the son)는 말이 나오는데 이 번역판에는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라. 그 말이 빠져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삼위일체론자들이 이 귀절 때문에 걱정하였음이 분명하다! 만일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다면 아버지가 아는 것들을 어떻게 아들이 모를 수 있겠는가? 대영 박물관의 평의원들이 발행한 「시내산 책자본과 알렉산드리아 책자본」이라는 책은 마태 복음 24:36에 관하여 논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시내’ 산 및 ‘바티칸’ [성서 사본들]에는 ‘하늘의 천사들도 모른다’는 말 뒤에 ‘아들도 모른다’는 말이 부가되어 있다. 교리상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이 두려워 그 말이 원문에서 제거된 것이 분명하다.”

[4면 삽화]

‘프랑스’, ‘타구농’에 있는 14세기에 지어진 ‘성 베드로 가톨릭 교회’의 삼위일체 형상

[7면 삽화]

그리스도교가 존재하기 오래 전부터 삼신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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