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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7 2/1 10-14면
  •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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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을 나타냄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긴급한 때
  • 열망—어떻게 나타나는가?
  • 모두에게 “빚진 자”
  • ‘좋은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음’
  •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능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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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왕국 봉사—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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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7
파87 2/1 10-14면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을 나타냄

“나에게는 ·⁠·⁠· 여러분에게도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이 있읍니다.”—로마 1:15, 신세.

1, 2.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대개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그들은 전역에서 왔다. ·⁠·⁠· 수백명에 달하는 사람이 자진적으로 두개의 군에 몰려왔다. 음식과 옷가지를 트럭에 싣고 왔으며, 이재민 수용소를 세웠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18-20시간 일하였으며, 제방이 터지는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처음 며칠간 한숨도 자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2 지난봄에 캘리포니아(미국) 중부 지역에 갑작스런 홍수가 닥쳐, 안전한 곳으로 피한 24,000명의 이재민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위와 같이 응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국지적인 홍수로부터 지진이나 핵 사고에 이르기까지 재난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대개 자진적으로 호응하여 돕기 위해 뛰어듭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여러 가지 위험이나 불편함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 심지어 전혀 낯선 사람을 도우려는 열망을 가지고 모여듭니다.

긴급한 때

3. 오늘날 인류는 어떠한 극한적 비상 사태에 직면해 있읍니까?

3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최대의 재난에 직면해 있읍니다. 그것은 인간이 환경을 손상시키고 있기 때문이거나 핵전쟁의 위협 때문이거나 범죄와 폭력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후에도 없을 큰 환난’이라고 지칭하신 것에 직면해 있읍니다. “큰 환난”이 얼마나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알려 주기 위해,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마태 24:21, 22.

4. 그러한 비상 사태에 직면하여,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4 만일 우리 자신의 친지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조만간 그 환난에서 사라지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도우려는 열망을 나타낼 것입니까?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에 관한 에스겔의 예언적 환상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그 사람은 이마에 상징적 표를 받은 사람들만 예루살렘의 멸망을 살아 남을 것이며, 생명을 구원하는 그 표를 할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라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주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라고 그는 보고하였읍니다.—에스겔 9:1-11.

5. 우리는 무슨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으며, 그 일은 얼마나 긴급합니까?

5 당신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함으로 가는 베옷을 입은 그 사람과 같은 자진성과 열망을 나타내고 있읍니까? 여호와께서는 무엇이라고 명령하셨읍니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렇게 명령하셨읍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 28:19, 20) 이 일은 에스겔 시대에 이마에 상징적으로 표하는 일과 같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 명령에 호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수석 심판 집행관의 손에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 1:6-8) 당신은 그 일의 긴급성을 느낍니까?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을 나타냄으로써 그 긴급성을 느끼고 있음을 나타냅니까?

열망—어떻게 나타나는가?

6. “열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6 여호와의 백성은 전반적으로 때의 긴급성을 분명히 느끼고 있읍니다. 우리 모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임박한 “큰 환난”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되기를 열망합니다. 한 사전에 따르면, 열망이란 “추구하는 것에 대한 혹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간절한 혹은 열렬한 욕망”입니다. 무언가에 대해 열망을 품은 사람은 그것을 얻고자 생각과 행동을 집중합니다. 그는 여하한 종류의 장애물과 막는 것도 극복하기 위해 능력껏 모든 일을 할 것이며,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꾸준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봉사의 직무에 대해 바로 그렇게 생각하였으며, 우리도 그를 본받는 것이 좋습니다.—고린도 전 4:16.

7. 바울이 로마에 가고 싶어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예를 들어, 바울이 로마서 1:13-16에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을 고려해 봅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다고 그는 말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이는 너희 중에서도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바울은 설명하였읍니다.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은 어떤 주석가들의 주장처럼, 단순히 로마에 있는 형제들을 방문하여 아마도 그들이 “성령의 열매”를 좀더 온전히 발전시키도록 격려하려는 생각으로 한 것이었읍니까? (갈라디아 5:22, 23)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을 보면, 그는 그곳 로마에 있는 비그리스도인 사회에서 왕국 열매를 거두려는 생각으로 여념이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로마에서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어했으며, 아마도 그곳에서 더 먼 곳으로 가서 전하고 싶어했을 것입니다.—로마 15:23, 24.

8.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 어떻게 “막혔”읍니까?

8 그러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다고 바울은 말했읍니다. 무엇에 막혔읍니까? 개인적인 일이 너무나 바빠서 갈 수가 없었읍니까? 물론, 바울이 바쁜 사람이었지만, 개인적인 일로 바쁜 것은 아니었읍니다. 그가 로마인들에게 편지한 때 (기원 56년경) 쯤에는, 이미 두 차례의 긴 선교 여행을 끝내고 바삐 세번째 여행을 하고 있던 때였읍니다. 때로는 이러한 여행을 하다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른 임명지로 향하는 경우도 있었읍니다. (참조 사도 16:6-9.) 그가 편지에 쓴 것처럼,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를 섬기”기 위해 그곳에 갈 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읍니다. (로마 15:25, 26) 그리고 바울은 그외에도 이러한 종류의 ‘막는 것들’ 곧 방해 요소들을 수없이 겪었읍니다.—참조 고린도 후 11:23-28.

9. 바울은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9 그렇다 해도 바울은 자기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거나, 자기에게 임명된 것이 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추론하지 않았읍니다. 바울은 더 많은 일을 하기 원했읍니다. 사실상, 그는 이렇게 말했읍니다. “나에게는 그곳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이 있읍니다.” (신세) 그것이 바로 열망이 갖고 있는 의미입니다! F. F. 브루스 교수가 자기 저서 「로마인에게 보낸 바울의 서한」(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에서 사도 바울에 관해 이렇게 말한 것은 적절합니다. “그는 복음 전파 활동을 혈기 왕성하게 했으며, 그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의무에서 벗어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는 항상 의무 아래서, 온 인류에게 그가 지고 있는 빚—그가 살아 있는 동안 결코 전부 갚을 수 없을 빚—을 조금이라도 더 갚으려고 했음이 틀림없다.” 당신도 봉사의 직무에 대해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까?

10. 우리 길에는 무슨 ‘막는 것들’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10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은 모두 여러 가지 책임으로 바쁜 생활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읍니다. 다른 면으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나이 때문에 혹은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된 사람도 있읍니다. 그리고 그외에도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막중한 임명을 맡고 있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현 사물의 제도의 때가 짧아지고 있으며, 왕국 증거가 수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읍니다. (마가 13:10) 그러므로 혹시 우리 길에 ‘막는 것들’이 있다 할지라도 바울처럼 우리도 전파 활동에서 힘쓰려는 열망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하고 있는 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므로 자기 만족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고린도 전 15:58.

모두에게 “빚진 자”

11. “내가 빚진 자”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11 바울이 지칠 줄 모르고 좋은 소식 선포에 노력을 기울인 그 배후에는 그처럼 활동하게 한 또 다른 힘이 있었읍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바울은 말했읍니다. (로마 1:14) 바울은 어떤 면에서 “빚진 자”였읍니까? 다른 번역판에서는 이 표현을 ‘나는 책임 아래 있읍니다’ (신영어 성서), ‘나는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다’ (오늘날의 영어 역본), ‘나는 의무를 느끼고 있읍니다’ (예루살렘 성서)로 번역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전파 활동이 하나님 앞에서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짐스러운 의무 혹은 책임이었다고 말한 것이었읍니까? 우리가 긴급성을 잊거나 세상의 매력적인 것에 마음이 쏠린다면 쉽사리 그러한 태도를 발전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염두에 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읍니다.

12. 바울은 누구에게 “빚진 자”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2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릇’이자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었읍니다. (사도 9:15; 로마 11:13) 그러나 단지 하나님께 대해서만 책임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읍니다. 바울은 자기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빚진 자”라고 말했읍니다. 바울은 자기가 자비와 특권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전파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뜻이 바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는 것임을 알고 있었읍니다. (디모데 전 1:12-16; 2:3, 4) 바로 그 때문에 바울은 끊임없이 노력하였읍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책임에 따라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당신은 구역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처럼 개인적으로 빚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 힘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좋은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음’

13. 바울은 좋은 소식을 어떻게 평가하였읍니까?

13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을 나타내는 면에서 바울은 진정 탁월한 본이었읍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과분하신 친절을 깊이 인식하였으며, 그것을 헛되게 하기를 원치 않았읍니다. (고린도 전 15:9, 10) 바로 그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읍니다. “내가 복음[좋은 소식, 신세]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라.]” (로마 1:16) 인간의 견지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인기가 없을 뿐 아니라 멸시를 당하였읍니다. “우리가 ·⁠·⁠·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다고 바울은 말했읍니다. (고린도 전 4:13) 그러나 바울은 지식 세계의 중심지이자 로마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로 좋은 소식을 가져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읍니다. 우리가 전파 활동을 하다가 무관심, 욕설, 심지어 적의에 직면할 때, 바울의 격려적인 본을 떠올려 볼 수 있읍니다.

14. 바울이 ‘좋은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4 사실상 ‘좋은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달리 말해서, “좋은 소식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이 되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이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복음[좋은 소식, 신세]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은 이 말을 뒷받침할 만한 경험을 많이 하였읍니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였다고 바울은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10:5) 유대인의 전통에 대해서든지, 희랍인의 철학에 대해서든지, 로마인의 세력에 대해서든지 좋은 소식은 승리를 거두었읍니다.

15. 열망이 어떻게 바울의 생애에서 활동하게 하는 힘이 되었읍니까?

15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책임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그 책임을 이행하려는 “열망”을 가진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바울이 다음과 같이 자기 생각을 털어 놓은 바와 같습니다.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좋은 소식, 신세]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린도 전 9:16) 이러한 열망은 그가 여러 해 동안 지칠줄 모르고 봉사하게 해주었으며, 마침내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디모데 후 4:7.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능률성

16.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은 무슨 도전에 직면하였을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읍니까?

16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은 분명히 바울처럼 자신의 임명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사명을 완수했다는 훌륭한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읍니다. 그 기록은, 그가 어떻게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냈는지에 관해서 알려 주지 않습니다. (에스겔 9:4) 이 표하는 모든 일이 어떻게 수행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지만, 분명히 그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17. (ㄱ) 제자를 삼는 일을 할 때 어떤 도전을 받게 되며, 그러한 도전들을 어떻게 대처합니까? (ㄴ) 필요한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읍니까?

17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명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가 생명을 구원하는 이 일을 얼마나 능률적으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 일에 참여해야 하며, 좋은 소식을 전할 만한 어떤 기회도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바쁩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그들이 집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을지도 모르며, 있다 해도 대개 무슨 일엔가 몰두하고 있읍니다. 그런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정확하게 기록해 둔 다음, 이야기할 만한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면서 다른 시간에 재삼 재사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읍니까? 두명의 집주인이 보낸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글에 그 대답이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저의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전도는 때때로 여러분의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하여 여러분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호평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래서 저는 제 경험을 알려드리고 감사를 표해야 겠다고 생각했읍니다!”

“우리 중에는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며, 모든 길이 구원으로 인도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무척 많습니다. 전도 대상을 계속 찾고 있는 여러분, 우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모욕하고, 당황하게 하고, 배척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많이 배워 왔으며, 여러 가지 심한 이야기를 들어 왔으며, 여러분을 미워하도록 교육받아 왔읍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여호와의 왕국 소식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18. (ㄱ) 다른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깨닫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읍니까? (ㄴ) 한 전도인은 냉담해 보이는 태도를 어떻게 극복하였읍니까?

18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좋은 소식을 깨닫도록 돕기 위해서는 피상적인 접촉이나 준비된 소식을 전해 주는 일 또는 일부 성서 서적을 전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필요와 관심사,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두려움과 편견을 분별해 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깊이 생각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우리 자신의 열망을 나타낼 필요가 있읍니다. 다음 경험담을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한 전도인이 어느 아파트 문전에서 한 여인에게 전도를 하는데, 그 여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읍니다. 주위에 아이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고 그 전도인은 자녀가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읍니다. 그 여인은 이 아이들은 자기 자녀가 아니라, 외국에서 이민온 지 얼마 안 되는 시숙의 자녀들이라고 대답했읍니다. 곧 비좁은 주택 문제가 화제가 되었읍니다. 그 전도인은 자기에게도 얼마 후에 친척들이 오게 되는데, 대도시에서는 싼 주택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자기가 도와 주겠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부인은 반색을 하면서 자기 시숙을 불러 문으로 나오게 하였읍니다. 대화는 계속되어 그들은 서로 전화 번호를 교환하였읍니다. 그 전도인은 방문 목적을 잊지 않고 재치있게 「영원히 살 수 있다」 책 157면을 펴서 약속된 새 제도에서는 주택이나 고용 문제가 없을 것임을 설명하였읍니다. 그 남자는 깊은 감명을 받아 기꺼이 그 책을 받았읍니다. 후에 그 전도인은 임대 아파트에 관한 전갈을 가지고 다시 찾아갔으며, 또한 성서에 관한 이야기를 재개하였읍니다.

19.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할 때입니까? 계속해서 우리는 무엇에 관해 고려할 것입니까?

19 좋은 소식을 전할 시기는 급속히 짧아지고 있읍니다. “네 천사”가 얼마나 더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을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계시 7:1) 어쨌든, “큰 환난”은 아직 장래 일이며,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아지고 있읍니다. 과연 “밭”은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읍니다. (마태 24:21, 22; 요한 4:35) 지금은 우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이 일을 위해 힘써 노력할 때입니다. 남아 있는 때를 우리는 어떻게 최선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읍니까? 생명을 구원하는 이 일에 더욱 온전히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열망을 계속 나타내도록 우리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이러한 문제들을 다음 기사에서 고려할 것입니다.

로마서 1:13-16에 나오는 바울의 본을 고려함

◻ 그가 로마에 가기를 열망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 그가 가는 것을 막은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러나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읍니까?

◻ 그는 누구에게 “빚진 자”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 그는 좋은 소식에 관해 어떻게 느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 바울처럼 능률적으로 좋은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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