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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파수대—1999 |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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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지만, 끝은 아직 아닙니다.”’—마태 24:4-6.
1. 우리는 무슨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틀림없이 당신은 당신의 생명과 장래에 대해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1877년 당시 C. T. 러셀의 주의를 사로잡았던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후에 워치 타워 협회를 설립한 러셀은 「주의 재림의 목적과 방법」(The Object and Manner of Our Lord’s Return)이라는 책자를 썼습니다. 이 64면 소책자는 예수의 재림 혹은 장래에 있을 오심에 관해 다루었습니다. (요한 14:3) 한 번은 사도들이 올리브 산에서 그러한 재림과 관련하여 이러한 질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언제 이런 일들이 있겠으며, 무엇이 당신의 임재[혹은 “오심”, 「제임스 왕역」]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이 되겠습니까?”—마태 24:3.
2. 예수께서 하신 예언에 대해 설명한 많은 견해들이 서로 상충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당신은 예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 대답은 세 권의 복음서에 나옵니다. D. A. 카슨 교수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성서 해설자들 사이에서 마태 24장보다 그리고 그 평행 성구인 마가 13장과 누가 21장보다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은 거의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데, 그의 견해 역시 서로 상충되는 인간적 견해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지난 세기를 전후하여 제시된 그러한 많은 견해들은 믿음의 결핍을 드러냈습니다. 그러한 견해를 제시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복음서에서 읽는 그러한 내용을 예수께서 말씀하신 적이 결코 없었다거나 그분의 말씀이 후에 변질되었다거나 그분의 예언이 틀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한 견해들은 고등 비평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한 주석가는 심지어 ‘대승 불교 철학의 관점에서’ 마가의 복음서를 연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3. 여호와의 증인은 어떤 태도로 예수의 예언에 접근합니까?
3 그와는 대조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은 성서의 확실성과 신빙성을 받아들입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께서 죽으시기 사흘 전에 올리브 산에서 자신과 함께 있던 네 명의 사도에게 하신 말씀도 포함됩니다. C. T. 러셀 시대 이래로 하느님의 백성은 예수께서 하신 그 예언을 점진적으로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도 「파수대」지는 이 예언에 대한 하느님의 백성의 견해를 좀더 명료하게 설명해 왔습니다. 당신은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였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a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오래지 않아 성취되었던 비극적인 일
4. 사도들은 왜 예수께 장래에 관해 질문하게 되었을 것입니까?
4 사도들은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 틀림없이 그들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떠나 가신다면, 메시아가 할 것으로 기대되는 놀라운 일들을 어떻게 그분이 이루실 수 있는가?’ 하고 궁금해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종말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 일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하고 궁금해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점들을 이해하고자 사도들은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언제 이런 일들이 있겠으며, 이 모든 일이 종결에 이르도록 정해진 때에는 무슨 표징이 있겠습니까?”—마가 13:4; 마태 16:21, 27, 28; 23:37-24:2.
5.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1세기에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5 예수께서는 전쟁, 기근, 역병, 지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미움과 박해, 거짓 메시아들, 왕국의 좋은 소식이 널리 전파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끝이 올 것이었습니다. (마태 24:4-14; 마가 13:5-13; 누가 21:8-19)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는 기원 33년 초였습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깨어 살피던 제자들은 예언된 일들이 실제로 의미심장하게 일어나는 것을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그러한 표징이 그 당시에 성취되었고, 그리하여 결국 기원 66-70년 사이에 로마인들의 손에 의해 유대 사물의 제도가 종결에 이르렀음을 증명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게 되었습니까?
6. 기원 66년에 로마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였습니까?
6 기원 66년 유대 지방의 무더운 여름철에, 유대인 열심당원들의 주도 아래 예루살렘 성전 근처 요새에 주둔해 있던 로마 수비대를 공격하는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 지방의 다른 곳으로까지 폭동이 번지게 되었습니다. 하인리히 그레츠 교수는 「유대인의 역사」(History of the Jews)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리아 총독으로서 로마군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임무였던 케스티우스 갈루스는 ··· 반란이 아무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주변에서 퍼져 나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갈루스는 자신의 군단을 모두 소집하였고, 인근 속주의 통치자들도 자발적으로 군대를 파견하였다.” 이렇게 모인 3만 명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쌌습니다. 얼마의 전투가 있은 후에, 유대인들은 성전 근처의 성벽 뒤로 후퇴하였습니다. ‘닷새 동안 계속해서 로마인들은 성벽을 맹공격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창과 화살 때문에 계속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엿새째가 되어서야 로마인들은 성전 바로 앞 북쪽 성벽의 일부를 허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7. 예수의 제자들이 대부분의 유대인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상황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7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그 거룩한 도시를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유대인들이 얼마나 혼란을 느꼈겠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앞날에 재난이 놓여 있다고 미리 경고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일찍이 이렇게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너에게 그 날들이 닥칠 것이니, 그 때에 너의 적들이 끝이 뾰족한 말뚝으로 너를 둘러 요새를 세우고 너를 에워싸며 사방에서 압박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를 땅에 내동댕이칠 것이며, 돌 위에 돌 하나도 네 가운데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누가 19:43, 44) 그러나 그 일로 인해 기원 66년에 예루살렘 안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었습니까?
8. 예수께서는 무슨 비극적인 일을 예언하셨으며, 그 날들이 단축될 이유가 되는 “택함받은 자들”이란 누구였습니까?
8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에서 사도들에게 대답하시면서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 날은 환난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런 환난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의 시작부터 그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으며,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여호와께서 그 날들을 단축하지 않으셨다면, 아무 육체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택하신 택함받은 자들 때문에 그 날들을 단축하셨습니다.” (마가 13:19, 20; 마태 24:21, 22) 그러므로 그 날들이 단축되어 “택함받은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택함받은 자들이란 누구였습니까? 여호와를 숭배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분의 아들을 배척했던 반역적인 유대인들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요한 19:1-7; 사도 2:22, 23, 36) 그 당시 참으로 택함받은 자들은 예수를 메시아와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그분에게 믿음을 나타낸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기원 33년 오순절에 그들로 새로운 영적 나라 즉 “하느님의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하셨습니다.—갈라디아 6:16; 누가 18:7; 사도 10:34-45; 베드로 첫째 2:9.
9, 10. 로마인들이 공격하는 날들이 어떻게 “단축”되었으며, 어떤 결과가 있게 되었습니까?
9 과연 그 날들이 “단축”되어 예루살렘에 있던 기름부음받은 택함받은 자들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레츠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케스티우스 갈루스는] 용감무쌍한 열성 분자들과의 전투를 계속 진행하여 그러한 계절에 장기적인 군사 행동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가을 우기가 시작될 것이었고 ··· 그러면 군대가 보급품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필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일단 물러나는 것이 좀더 신중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케스티우스 갈루스가 어떤 생각을 하였든 간에, 로마군은 추격해 오는 유대인들에 의해 막대한 손실을 입어 가면서 그 도시에서 철수하였습니다.
10 이처럼 로마인들이 예기치 않게 철수한 덕분에 “육체” 즉 예루살렘 안에서 위험에 처해 있던 예수의 제자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 기록은, 이렇게 기회의 문이 열리자 그리스도인들이 그 지역에서 도피하였다고 알려 줍니다. 장래를 예지하시고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의 생존을 보장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이 참으로 분명히 나타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유대에 남아 있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끝을 보게 되어 있었던 동시대 사람들
11. 예수께서는 “이 세대”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1 많은 유대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그들의 숭배 제도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 이 점을 배우십시오. 그 어린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을 내면 곧 여러분은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압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그가 가까이 문 앞에 있는 줄을 아십시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까지 이 세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24:32-35.
12, 13. 제자들은 예수께서 언급하신 “이 세대”를 어떤 의미로 이해하였을 것입니까?
12 기원 66년이 되기까지 그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복합 표징 중 먼저 일어나게 되어 있는 많은 부분들이—전쟁과 기근을 비롯하여 왕국의 좋은 소식이 널리 전파되는 일까지—성취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사도 11:28; 골로새 1:23) 그렇지만 그 끝은 언제 올 것이었습니까? 예수께서 ‘이 세대[그리스어, 게네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였습니까? 예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반대하는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동시대 사람들의 무리를 종종 ‘악한 세대, 간음하는 세대’라고 부르셨습니다. (마태 11:16; 12:39, 45; 16:4; 17:17; 23:36) 그러므로 올리브 산에서 다시 “이 세대”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그분은 분명히 역사 전반에 걸친 유대 민족 전체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분의 추종자들이 “택함받은 민족”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을 두고 하신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첫째 2:9)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세대”를 어떤 기간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13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는 그 당시 그분이 말씀하신 표징의 성취를 경험하게 될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누가 21:32에 나오는 “이 세대”에 관한 언급과 관련하여, 조얼 B. 그린 교수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셋째 복음서에서, ‘이 세대’(및 관련된 표현들)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목적에 반대하는 일단의 사람들을 의미하였다. ··· [그 표현은] 완고하게 하느님의 목적에 대해 등을 돌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b
14. 그 “세대”는 어떤 경험을 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다른 결과가 있었습니까?
14 표징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던 유대인 반대자들의 악한 세대는 또한 그 끝도 경험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마태 24:6, 13, 14)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 끝을 경험하였습니다! 기원 70년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의 지휘 아래 로마군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또다시 그 도시 안에 완전히 갇힌 유대인들이 당한 고난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하였습니다.c 목격 증인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보고에 의하면, 로마인들이 그 도시를 멸하였을 때 약 110만 명의 유대인이 죽임을 당하였고 약 10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하며, 포로가 된 사람들 대부분은 얼마 있지 않아 굶주림으로 인해 혹은 로마의 극장에서 처참하게 죽어 갔다고 합니다. 참으로 기원 66-70년의 환난은 예루살렘과 유대 제도가 그때까지 겪어 본 적이 없었고 그 후로도 겪어 보지 못할 가장 큰 환난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예언적 경고를 청종하여, 기원 66년에 로마 군대가 철수한 후에 예루살렘을 떠났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혀 다른 결과가 있었습니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인 “택함받은 자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원 70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마태 24:16, 22.
또 한 번 있을 성취
15. 예수의 예언이 기원 70년 이후에 더 크게 성취될 것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15 하지만 그것은 최종적인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예수께서는 그 도시가 황폐된 후에 자신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올 것임을 시사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마태 23:38, 39; 24:2) 그 후 그분은 올리브 산에서 말씀하신 예언 가운데서 그 점을 좀더 명확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다가올 “큰 환난”에 대해 언급하시고 나서, 그 후에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날 것이고 예루살렘은 상당 기간 나라들에게 짓밟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4:21, 23-28; 누가 21:24) 이 말씀은 또 한 번 더 큰 성취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까? 제반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에 환난이 있은 후에 기록된) 계시 6:2-8을 마태 24:6-8 및 누가 21:10, 11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전쟁, 식량 부족, 재앙이 더 큰 규모로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의 말씀은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더 크게 성취되어 왔습니다.
16-18. 우리는 머지않아 무슨 일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까?
16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여호와의 증인은 현재 성취되고 있는 표징이 머지않아 “큰 환난”이 도래할 것임을 증명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현 악한 “세대”는 그 환난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원 66년에 갈루스의 공격이 예루살렘에 닥친 환난의 시작이었듯이, 다시 한 번 시작을 알리는 첫 단계의 사건(모든 거짓 종교에 대한 공격)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d 그리고 명시되지 않은 기간이 지난 후에 끝이 올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원 70년에 있었던 멸망과 평행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멸망이 닥칠 것입니다.
17 예수께서는 우리 바로 앞에 놓여 있는 환난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의 환난 [거짓 종교의 멸망] 후에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그 빛을 내지 않을 것이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하늘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땅의 모든 부족이 가슴을 치고 애곡할 것이며,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마태 24:29, 30.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친히 “그 날의 환난 후에” 모종의 천체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비교 요엘 2:28-32; 3:15) 이 일로 인해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매우 크게 놀라고 충격을 받아 “가슴을 치고 애곡”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거주하는 땅에 닥칠 일들에 대한 두려움과 예상 때문에 ··· 기절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머리를 들 것’입니다. ‘그들의 구출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누가 21:25, 26, 28.
앞에 놓여 있는 심판!
19. 양과 염소의 비유가 성취될 때가 언제인지를 어떻게 확증할 수 있습니까?
19 마태 24:29-31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1) ‘사람의 아들’이 오실 것이다. (2) 이 오심은 큰 영광과 더불어 있을 것이다. (3) 천사들이 그분과 함께할 것이다. (4) 땅의 모든 부족이 그분을 볼 것이다.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 가운데서도 이러한 요소들을 다시 언급하십니다. (마태 25:31-46)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유에서 다루는 시점이, 큰 환난이 시작된 후에 예수께서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심판하기 위해 왕좌에 앉으실 때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요한 5:22; 사도 17:31; 비교 열왕 상 7:7; 다니엘 7:10, 13, 14, 22, 26; 마태 19:28) 누가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이 비유에서는 예수께서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실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이는 마치 그들을 그분의 하늘 왕좌 바로 앞으로 모으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20, 21. (ㄱ)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양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ㄴ) 염소들은 장차 무슨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까?
20 양 같은 남녀들은 예수의 오른편으로 분리되어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기회가 있었을 때 그분의 형제들—그리스도의 하늘 왕국에 참여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7:27; 히브리 2:9-3:1) 이 비유와 일치하게, 수백만 명의 양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영적 형제들을 식별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 “큰 무리”는 “큰 환난”에서 생존한 후에 하느님의 왕국의 지상 영역인 낙원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성서에 근거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계시 7:9, 14; 21:3, 4; 요한 10:16.
21 하지만 염소들에게는 전혀 다른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마태 24:30에서, 염소들은 예수께서 오실 때 “가슴을 치고 애곡”할 것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들은 왕국의 좋은 소식을 배척하고, 예수의 제자들을 반대하며, 지나가고 있는 세상을 더 좋아하고 있다는 기록을 쌓아 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10:16-18; 요한 첫째 2:15-17) 지상에 있는 그분의 제자들 중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누가 염소인지를 판정하십니다. 그분은 염소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영원한 끊어짐에 들어갈 것[입니다].”—마태 25:46.
22. 예수의 예언 가운데 우리가 좀더 고려해 볼 만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22 마태 24장과 25장에 나오는 예언을 이해하는 면에서 이루어진 진보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예언 가운데는 우리가 좀더 주의를 기울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에 관한 예언입니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이 예언과 관련하여 분별력을 사용할 것과 행동할 준비를 갖추고 있을 것을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마태 24:15, 16) 이 “혐오스러운 것”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때는 언제입니까? 그리고 우리의 현재 생명과 장래 생명에 대한 전망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이러한 점들에 관해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a 「파수대」 1994년 2월 15일호, 1995년 10월 15일호와 11월 1일호, 1996년 8월 15일호에 나오는 연구 기사 참조.
b 영국 학자 G. R. 비즐리 머레이는 이렇게 기술한다. “성서 해설자들은 ‘이 세대’라는 표현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초기 그리스어에서 게네아가 탄생과 후손을, 따라서 민족을 의미한 것은 사실이지만, ···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단어 도르의 번역 표현으로 사용된 경우가 아주 많았는데, 그 히브리어 단어는 시대, 사람들의 시대, 혹은 동시대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세대를 의미하였다. ···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되는 기록들 가운데서 이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항상 그분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묵시적인 비난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c 그레츠 교수가 쓴 「유대인의 역사」에 의하면, 로마인들은 때때로 하루에 500명의 포로를 기둥에 못박았다고 한다. 다른 유대인 포로들은, 손이 잘린 다음 그 도시로 도로 돌려 보내졌다. 그곳의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돈이 그 가치를 상실하였다. 돈을 주고도 빵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매우 더럽고 지저분한 음식이나, 한 줌의 짚이나, 한 조각의 가죽이나, 개에게 던져 준 음식 찌꺼기를 두고 필사적으로 싸움을 벌였다. ··· 매장하지 않은 시체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자 무더운 여름철 대기는 전염병이 쉽게 퍼질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사람들은 병과 기근과 칼에 희생되어 갔다.”
d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장래에 있을 환난의 이 부면에 대해 검토한다.
기억하십니까?
□ 마태 24:4-14은 1세기에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 사도 시대에, 마태 24:21, 22에 예언된 바와 같이, 어떻게 날들이 단축되어 육체가 구원을 받았습니까?
□ 마태 24:34에 언급되어 있는 “세대”의 특징은 무엇이었습니까?
□ 올리브 산에서 주어진 예언이 또 한 번 더 크게 성취되게 되어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양과 염소의 비유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성취될 것입니까?
[12면 삽화]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에 새겨진 세부도.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가져온 전리품들이 보인다
[자료 제공]
Soprintendenza Archeologica di 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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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이는 분별력을 사용하십시오”파수대—1999 |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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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이는 분별력을 사용하십시오”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마태 24:15, 16.
1. 누가 19:43, 44에 나오는 예수께서 하신 경고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다가오는 재난을 깨어 살핀다면, 그 재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잠언 22:3) 그러므로 기원 66년에 로마인들의 공격이 있은 후에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그 도시가 포위 공격을 당하고 멸망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누가 19:43, 44)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의 경고를 청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기원 70년에 닥친 재난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2, 3. 우리가 마태 24:15-21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예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예언을 말씀하시면서, 전쟁, 식량 부족, 지진, 역병, 하느님의 왕국에 관해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포함된 복합 표징을 설명하셨습니다. (마태 24:4-14; 누가 21:10-19) 예수께서는 또한 제자들을 위해 끝이 가깝다는 것을 아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실마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태 24:15) 그러한 의미 깊은 말씀이 우리의 현재와 장래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3 예수께서는 그 표징을 설명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읽는 이는 분별력을 사용하십시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 옥상에 있는 사람은 자기 집에서 물건을 꺼내려고 내려오지 마십시오. 그리고 밭에 있는 사람은 자기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그 날에는 임신한 여자들과 아기에게 젖 먹이는 이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철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 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환난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마태 24:15-21.
4. 마태 24:15이 1세기에 성취되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4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서는 부가적인 세부점들을 알려 줍니다. 마태는 ‘거룩한 장소에 서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마가 13:14에서는 그 부분을 ‘서서는 안 될 곳에 서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누가 21:20에서는 이러한 예수의 말씀을 더 알려 줍니다.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때에 그것을 황폐시키는 일이 다가온 줄 아십시오.” 이 말씀은 그 예언의 첫 번째 성취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첫 번째 성취에는 기원 66년에 시작된 예루살렘과 그 성전—당시 여호와께는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니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거룩한 장소였던 곳—에 대한 로마인들의 공격이 포함되었습니다. 완전히 황폐시키는 일은,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이 그 도시와 성전을 멸망시켰을 때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의 “혐오스러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거룩한 장소에 서 있”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아는 것은 현대의 성취를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5, 6. (ㄱ) 다니엘 9장을 읽는 이들은 왜 분별력이 필요하였습니까? (ㄴ) “혐오스러운 것”에 관한 예수의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5 예수께서는 읽는 이들에게 분별력을 사용하라고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무엇을 읽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아마도 다니엘 9장을 읽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 장에는 메시아가 나타날 때를 지적하고 그가 3년 반 후에 ‘끊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예언이 나옵니다. 그 예언은 이러합니다. “혐오스러운 것들의 날개 위에 황폐케 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진멸되기까지, 그 결정된 것이 황폐되어 있는 것 위에 계속 쏟아질 것이다.”—다니엘 9:26, 27, 「신세」; 또한 다니엘 11:31; 12:11, 「신세」 참조.
6 유대인들은 이 예언이 약 200년 전에 안티오코스 4세가 성전을 더럽힌 일에 적용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와는 다른 견해를 표명하셨습니다. 그분은 “혐오스러운 것”이 나타나서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이 앞으로 있을 일이므로 분별력을 사용하라고 강력히 권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기원 66년에 눈에 띄는 군기를 가지고 오게 될 로마 군대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사용되었던 그러한 깃발들은 우상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유대인들에게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a 하지만 로마 군인들은 언제 “거룩한 장소에 서 있”을 것이었습니까? 그 일은 군기를 가지고 온 로마 군대가 유대인들이 거룩하다고 여기던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공격하였을 때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성전 지역의 성벽을 허물기 시작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실제로 거룩한 장소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이사야 52:1; 마태 4:5; 27:53; 사도 6:13.
현대의 “혐오스러운 것”
7. 예수께서 하신 무슨 예언이 우리 시대에 성취되고 있습니까?
7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우리는 마태 24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표징이 더 크게 성취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이러한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 (마태 24:15, 16) 그 예언의 이 부분 역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8. 여러 해에 걸쳐, 여호와의 증인은 현대의 “혐오스러운 것”의 정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습니까?
8 「파수대」(영문) 1921년 1월 1일호에서는, 이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종들의 확신을 표명하면서, 중동에서의 사태진전과 관련하여 이 예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 후 「파수대」(영문) 1929년 12월 15일호 374면에서는 이렇게 명확하게 기술하였습니다. “국제 연맹의 전반적인 경향은 사람들의 주의를 하느님과 그리스도에게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황폐케 하는 것이자 사탄이 만든 것이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그러므로 1919년에 “혐오스러운 것”이 등장하였습니다. 때가 되자 국제 연맹은 국제 연합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오랫동안 인간이 만든 이 평화 기구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임을 폭로해 왔습니다.
9, 10. 큰 환난에 대한 이전의 이해가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게 되는 때에 관한 우리의 견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9 앞 기사에서는 마태 24장과 25장의 많은 부분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견해를 요약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그러한 설명들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의 예언에서는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일을, 예언된 “환난”이 시작되는 것과 밀접히 연관짓습니다. 그러므로 “혐오스러운 것”이 존재한 지가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일과 큰 환난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10 한때 하느님의 백성은 큰 환난의 첫 단계가 1914년에 시작되었고 아마겟돈 전쟁에서 최종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이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계시 16:14, 16; 비교 「파수대」(영문) 1939년 4월 1일호 110면) 그러므로 현대의 “혐오스러운 것”이 제1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거룩한 장소에 서 있었다고 한동안 생각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1, 12. 1969년에 큰 환난과 관련하여 어떤 조정된 견해가 제시되었습니까?
11 하지만 근년에 들어 우리는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 7월 10일 목요일, 뉴욕 시에서 열린 “지상의 평화” 국제 대회에서 당시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부협회장 F. W. 프랜즈는 매우 흥미진진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프랜즈 형제는 예수의 예언에 대한 이전의 이해를 검토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큰 환난’이 기원 1914년에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그 환난이 끝까지 다 진행되도록 허용되지 않았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1918년 11월에 제1차 세계 대전을 중단시키셨다고 하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하느님께서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큰 환난’의 최종 단계를 다시 시작하시기에 앞서, 선택된 그리스도인들인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얼마의 시간을 허용하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12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크게 조정된 견해를 설명하였습니다. “1세기의 사건들과 서로 대응시켜 생각해 볼 때, ··· 그 실체인 ‘큰 환난’은 기원 1914년에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1914-18년 사이에 예루살렘의 현대 실체 위에 일어났던 일들은 ‘진통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 다시 일어나지 않을 그러한 ‘큰 환난’은 아직 앞으로 있을 일입니다. 그 환난은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멸망과 뒤이어 있게 될 아마겟돈에서의 ‘전능자이신 하느님의 큰 날의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큰 환난 전체가 아직 앞으로 있을 일임을 의미하였습니다.
13.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이 앞으로 있을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이것은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때를 분별하는 일과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1세기에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로마인들은 기원 66년에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지만, 갑자기 철수하였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의 “육체”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태 24:22) 따라서 우리는 머지않아 큰 환난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 환난은 하느님의 택함받은 자들을 위해 단축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주요점에 유의하십시오. 과거의 전례에서,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은 기원 66년에 갈루스 장군 휘하의 로마인들이 공격한 일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공격에 상응하는 현대의 사건 곧 큰 환난이 갑자기 시작되는 일은 아직 앞으로 있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1919년 이래로 존재해 온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은 아직은 거룩한 장소에 서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b 그러면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것입니까? 그리고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앞으로 있을 공격
14, 15. 계시 17장은 아마겟돈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14 계시의 책은 앞으로 있을, 거짓 종교를 멸망시키게 될 공격에 관해 묘사합니다. 그 책 17장에서는 ‘창녀들의 어미’인 “큰 바빌론”, 곧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 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하느님과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비교 예레미야 7:4)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거짓 종교들은 오랫동안 “땅의 왕들”과 불법적인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그러한 종교들이 황폐됨으로 인해 끝나고 말 것입니다. (계시 17:2, 5) 누가 그러한 끝을 가져올 것입니까?
15 계시의 책은 한동안 존재하다가 없어진 다음 다시 등장하게 되는 “진홍색 야수”를 묘사합니다. (계시 17:3, 8) 이 야수는 세계 통치자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그 예언에 나오는 세부점들은, 이 상징적 야수가 1919년에 국제 연맹(“혐오스러운 것”)으로 존재하였다가 현재는 국제 연합으로 존재하고 있는 평화 기구라는 것을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계시 17:16, 17은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이 “야수” 가운데 있는 탁월한 어떤 인간 통치자들에게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을 황폐시키려는 마음을 넣어 주실 것임을 알려 줍니다. 이러한 공격은 큰 환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표가 됩니다.
16. 종교와 관련하여 어떤 주목할 만한 사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16 큰 환난의 시작이 아직 앞으로 있을 일이므로,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 역시 앞으로 있을 일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혐오스러운 것”이 금세기 초에 나타나서 수십 년 동안 존재해 오고 있지만, 그것은 가까운 장래에 독특한 방법으로 “거룩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서게 될 것입니다. 1세기에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틀림없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일이 어떻게 있게 될 것인지를 알기 위해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모든 세부점을 알려면 실제로 성취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일부 나라들에서 종교에 대한 반감을 볼 수 있고 또 그러한 반감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일부 정치 요소들은 한때 그리스도인이었다가 참 믿음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합세하여 전체 종교들에 대한 적의를, 특히 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의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시 94:20, 21; 디모데 첫째 6:20, 21) 그 결과 정치 강국들은 심지어 지금도 “어린 양과 싸우”고 있으며, 계시 17:14에서 지적하듯이, 이 싸움은 더욱 격렬해질 것입니다. 그들이 문자적으로 손을 뻗쳐 하느님의 어린 양—드높여진 영광스러운 지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을 대항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참 숭배자들을, 특히 그분의 “거룩한 자들”을 더욱 심하게 반대할 것입니다. (다니엘 7:25, 「신세」 참조; 비교 로마 8:27; 골로새 1:2; 계시 12:17) 우리에게는 어린 양과 그와 함께하는 자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보증이 있습니다.—계시 19:11-21.
17. 독단적이 되지 않으면서, “혐오스러운 것”이 어떻게 거룩한 장소에 서 있게 될 것인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17 우리는 거짓 종교 앞에 황폐케 하는 일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큰 바빌론은 ‘거룩한 자들의 피에 취해’ 있으며 여왕처럼 행동해 왔지만, 그는 반드시 멸망될 것입니다. 이 여자가 땅의 왕들에게 행사해 온 더러운 영향력은, 그들의 사이가 “열 뿔과 야수”로부터 격렬한 미움을 받는 관계로 바뀌면서 극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계시 17:6, 16; 18:7, 8) “진홍색 야수”가 종교적 창녀를 공격할 때, “혐오스러운 것”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그리스도교국의 소위 거룩한 장소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c 그러므로 황폐케 하는 일은, 스스로 거룩한 체하는 믿음 없는 그리스도교국에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도피하는 일’—어떻게?
18, 19. “산으로 도피”하는 것이 종교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무슨 이유들이 있습니까?
18 예수께서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에 관해 예언하신 후에, 분별력 있는 사람들에게 행동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그 마지막 순간에—“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을 때—많은 사람이 거짓 종교에서 도피해 나와서 참 숭배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의미였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첫 번째 성취를 고려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피하기 시작하십시오. 옥상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 말고, 자기 집에서 무엇을 꺼내려고 안으로 들어가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밭에 있는 사람은 자기 겉옷을 가지러 뒤에 있는 것으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그 날에는 임신한 여자들과 아기에게 젖 먹이는 이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 일이 겨울철에 일어나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십시오.”—마가 13:14-18.
19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만 도피해 나올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교 숭배의 중심지에서 나올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요지인 것처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그분의 경고는 종교를 바꾸는 것—거짓 종교에서 도피해 나와 참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한 종교에서 나와 다른 종교로 도피하라고 경고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원 66년에 있었던 공격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과 유대 전역에 있던 유대교 신자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하인리히 그레츠 교수는 도망하는 로마인들을 추격했던 사람들이 그 도시로 돌아왔을 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열심당원들은 (10월 8일에) 환희에 넘쳐서 군가를 소리 높여 부르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심장은 자유와 독립에 대한 기쁨에 넘친 희망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 하느님께서 그들의 선조들을 도우셨던 것처럼 자비로우시게도 그들을 도우신 것이 아니겠는가? 열심당원들의 마음 속에는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도 없었다.”
20. 초기 제자들은 산으로 도피하라는 예수의 경고에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0 그러면 그 당시에 비교적 소수였던 택함받은 자들은 예수의 교훈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유대를 떠나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있는 산으로 도피함으로써,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유대 제도의 일부가 아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밭과 집을 버리고 떠났으며, 심지어 자신들의 집에서 소유물을 챙기지도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보호와 지원을 확신한 그들은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분에게 드리는 숭배를 앞자리에 두었습니다.—마가 10:29, 30; 누가 9:57-62.
21. 우리는 “혐오스러운 것”이 공격할 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습니까?
21 이제, 더 큰 성취에 대해 고려해 봅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에게 거짓 종교에서 나와서 참 숭배를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권해 왔습니다. (계시 18:4, 5) 수백만 명이 그러한 권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예수의 예언은 큰 환난이 시작되고 나서 사람들이 대규모로 순결한 숭배로 향하는 일이 있을 것임을 시사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기원 66년에도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개종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경고에 따라 도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크게 고무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22. 산으로 도피하는 것에 관한 예수의 교훈을 따르는 데에는 무엇이 관련될 수 있습니까?
22 우리가 현재 큰 환난과 관련된 세부점들을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때, 예수께서 언급하신 그러한 도피하는 일이 우리의 경우에 지리적 이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미 세계 전역에 퍼져 있으며, 사실상 거의 모든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도피할 필요가 있게 될 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자신과 거짓 종교 조직 사이에 명확히 구별된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할 것임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겉옷이나 다른 물건을 가지러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 역시 의미심장한 점입니다. (마태 24:17, 18)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적인 것들을 어떻게 여기는지와 관련하여 앞으로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가장 중요합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편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질 구원이 더 중요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도피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난관과 손실을 겪는 일이 관련될지 모릅니다. 1세기에 우리를 전영한 사람들처럼, 즉 유대에서 요르단 강 건너편 페레아로 도피했던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는 필요할 경우 무엇이든 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23, 24. (ㄱ) 우리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어디입니까? (ㄴ)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에 관해 예수께서 하신 경고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합니까?
23 우리는 여호와와 그분의 산과 같은 조직이 계속 우리의 도피처가 될 것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사무엘 하 22:2, 3; 시 18:2; 다니엘 2:35, 44) 바로 그곳이 우리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대다수의 인류를 따라서 “동굴” 속으로 도피하거나 “산의 바위 속에” 숨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큰 바빌론이 황폐된 후에 아주 잠깐 동안 존속할 인간 조직과 기구들을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시 6:15; 18:9-11) 사실, 시대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기원 66년에 유대에서 도피했던 임신한 여자들이나 춥고 비가 내리는 날씨에 여행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게 해 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여호와와 현재 왕국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시는 그분의 아들을 더욱 굳게 의지하도록 합시다.
24 우리는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자신의 제자들이 두려워하기를 원치 않으셨으며, 우리 역시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두려워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마음과 정신의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거짓 종교와 현 악한 제도의 나머지 부분에 멸망이 닥칠 때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형벌을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분별력을 나타내어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는 것”에 관한 경고를 청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단호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러한 약속을 결코 잊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인내한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마가 13:13.
[각주]
a “로마의 깃발들은 로마의 신전들에 모셔져서 종교적 경배를 받았다. 그리고 군기에 대한 로마인들의 숭상심은 그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우월함을 증명할 때마다 그만큼 더 커졌다. ··· [병사들에게 있어서 군기는] 아마도 지상에 있는 가장 신성한 물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로마 병사들은 군기를 두고 맹세하였다.”—「브리태니카 백과 사전」, 제11판.
b 기원 66-70년에 있었던 예수의 말씀의 성취가 큰 환난에서 그 말씀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이 두 경우의 성취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정확하게 상응할 수는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c 「파수대」(영문) 1975년 12월 15일호 741-4면 참조.
기억하십니까?
□ “황폐케 하는 혐오스러운 것”이 1세기에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까?
□ 현대의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장소에 서 있게 되는 것이 앞으로 있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 “혐오스러운 것”에 의한 공격이 계시의 책에 어떻게 예언되어 있습니까?
□ 앞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도피하는 일’이 요구될 수 있습니까?
[16면 삽화]
큰 바빌론은 ‘창녀들의 어미’라고 불린다
[17면 삽화]
계시 17장에 나오는 진홍색 야수는 예수께서 언급하신 “혐오스러운 것”이다
[18면 삽화]
진홍색 야수는 종교를 황폐시키게 될 공격을 주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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