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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언된 “징조”의 완전한 성취가 가까왔다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16장

      예언된 “징조”의 완전한 성취가 가까왔다

      1. 왜 우리는 예수의 사도들이 마태복음 24:3에 있는 질문을 예수께 한 데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읍니까?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다음과 같이 질문한 데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읍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며, 또 무엇이 당신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 (마태 24:3, 신세) 그들의 이러한 질문을 받고 예수께서는 길고 자세한 예언을 말씀하셨는데, 파란많은 현 이십 세기에 그 예언 성취의 진전을 볼 때에 우리는 그 정확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읍니다. 이것은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실현에 있어서 우리가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징조”를 분명히 보고 있으므로 우리가 사는 현 시대가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임재 중에 계시는 때이며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강화됩니다.

      2. “징조”의 모든 특징은 어디에 묘사되어 있으며, 이제 우리는 그 기록의 어느 부분을 고려할 것입니까?

      2 그 “징조”는 그 모든 세부점에서, 주의깊은 관찰자들이 오해할 여지없이 전적으로 명백한 단계에 다가가고 있읍니다. 그 “징조”에는 많은 특징이 있음을, ‘마태’의 기록 24, 25장과 ‘마가’의 기록 13장과 ‘누가’의 기록 21장에서 알려 줍니다. 그리고 “징조”의 그 모든 특징이 온전히 나타나기까지에는, 인류의 한 세대의 한 생애가 거의 지나갔읍니다. 앞의 몇 장(章)에서 우리는 ‘마태’의 기록 25장에 묘사된 특징들을 고려하였읍니다. 이제 우리는 ‘마태’의 기록 24장에 설명된 특징들을 ‘마가’와 ‘누가’의 유사한 기록과 함께 고려하겠읍니다.

      3, 4. “언제 이러한 일이 있을 것[입니까]?” 하고 예수께 질문할 때에 제자들은 무슨 일을 지적하여 말한 것입니까?

      3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입니까]?” 하고 질문을 시작하였을 때에 그들은 예수께서 기원 33년 ‘니산’월 11일 화요일 그 날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일을 지적하여 말하고 있었읍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께서는 위선적 종교인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시고 나서 이렇게 계속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형주]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4 예수께서 성전 즉 숭배의 집을 떠나시기 전에 엄숙한 예언의 말씀을 더욱 부가하셨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 23:34에서 24:2.

      5.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5 이틀 전인 ‘니산’월 9일 일요일에 그분은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시다가 길을 멈추시고 다가오는 멸망을 인하여 ‘예루살렘’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셨읍니다. 그분은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끔찍한 멸망을 당할 것을 예언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누가 19:41-44.

      6. 그것은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 제자들에게 어떠한 예언이었으며, 그들에게 어떠한 정신적 문제가 일어났읍니까?

      6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같이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염려스러운 예언이었읍니다. 그들이 속한 세대는 ‘유대’ 역사 중에 그리고 그 이전에 흘려진 무죄한 피에 대하여 벌을 받아야 하였읍니다. 정확히 언제 이러한 일들이 성취될 것입니까? 그들은 이 점을 알기 원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메시야 즉 기름부음받은 자 곧 그리스도이심을 믿었고 또한 고백하였읍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예언된 멸망은, 예수께서 멸망이 정해진 그 도시에 자기의 메시야 왕국을 세우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였읍니다. 그분은 “이제부터” 자기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과, 또한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올 것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그 분은 언제 다시 임재하여 메시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실 것입니까? ‘예루살렘’과 그 곳 성전의 다가오는 멸망은 분명히 ‘유대’인 사물의 제도의 종말을 의미할 것입니다. 거룩한 도시도 성전도 없게 되면, ‘레위’인 ‘아론’ 계통의 ‘유대’인 제사직은 “땅에” 메어쳐질 ‘예루살렘’의 “자식들” 중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그들은 성전 봉사를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루살렘’ 및 성전의 멸망에 대하여 뿐아니라, 또한 “무엇이 당신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 하고 질문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7. 사도들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대하여 질문한 것은 왜 아주 적절한 질문이었읍니까?

      7 그들의 질문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는 ‘유대’인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귀들도 같은 의미로 그 상황을 지적합니다. 히브리 9:26-28은 예수께서 자신을 반복하여 희생할 필요가 없음을 설명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나타나셨느니라.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느니라].” 또한 고린도 전서 10:11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사물의 제도들의 종말들, 신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께서 예언하신 해부터 계산하면 ‘유대’인 사물의 제도는 앞으로 37년이 지나면 즉 40세의 수명을 가진 한 세대보다 짧은 기간에 끝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예루살렘’은 ‘엘룰’월 7일(즉, ‘그레고리’역 기원 70년 8월 30일)에 ‘로마’인들에게 점령되어 멸망 받았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들 중 몇명이나 그 때까지 순교당하지 않고 그 무서운 사건이 있기까지 생존하였었는지 성서 기록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시험과 재난의 때

      8. 사도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께서는 먼저 무슨 일을 말씀하셨읍니까?

      8 사도들의 질문의 대한 답으로 예수께서는 그 세대 내에 ‘예루살렘’의 멸망이 있기까지 발생할 사건들을 먼저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마태 24:4-6.

      9. 메시야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의 진행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 것이며, 무슨 바람직한 사건으로 인도하지도 않을 것입니까?

      9 육체를 가지고 돌아온 예수라고 자처하지 않고 약속된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도, 그들의 동료 제자들도, 그러한 자칭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말아야 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자들의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며 ‘유대’ 민족에게 구출을 가져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원 66년에 ‘로마’인들에 항거한 ‘유대’인의 폭동은 그러한 메시야적 노력으로 의도되었지만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대’ 민족의 분산을 초래하였읍니다. 이들 미혹받은 사람들의 메시야에 대한 희망은 여지없이 좌절되었읍니다.

      10. 전쟁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그리고 제자들은 왜 그러한 전쟁으로 인하여 무서워해서는 안되었읍니까?

      10 이 37년 기간 중에 제자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도 전쟁들이 있었으며, 단순히 전쟁들이 있다는 소식만 들리기도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쟁들이 ‘유대’ 민족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유대’인 사물의 제도를 직접 끝나게 할 전쟁들은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무서워서 성급히 행동해서는 안되었읍니다. “끝은 아직 아니”기 때문입니다.

      11. 예수께서는 무엇이 “재난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까?

      11 예수께서는 전쟁과 전쟁의 소문에 대하여 방금 말씀하신 바를 다음과 같이 확대하여 설명하셨읍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태 24:7, 8. 또한 마가 13:8.

      12, 13. (ㄱ) “재난의 시작”이 될 그러한 일들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임할 것이었읍니까? (ㄴ) 메시야를 알리고 그분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제자들에게 어떠한 일들이 임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12 그러한 참화는 단순히 “재난의 시작”이므로 끝은 “아직 아니”었읍니다. 그러한 참화는 단순히 징후이지 최종적 죽음의 고통은 아니었읍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들에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에게만 임할 일들이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참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알리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계속 말씀하셨읍니다.

      13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 24:9-14. 또한 마가 13:9-13 비교.

      14. (ㄱ) 그러한 일들이 당시 살고 있던 세대 내에 발생하였다는 것을 무엇이 확증해 줍니까? (ㄴ) 무슨 일이 달성되기 전에 ‘예루살렘’과 ‘유대’인 사물의 제도에 끝이 올 수 없었읍니까?

      14 「사도행전」이라는 성서의 한 책은 당시 그 세대 내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증명해 줍니다. 이 책은 기원 61년경에 의사 ‘누가’에 의하여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에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성서의 다른 책들과 영감받은 서한들은 「사도행전」의 기록을 확증하고 또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와 국제적 증오 때문에 고통받은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기록을 부가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은 중동을 지나 소‘아시아’, ‘아시아’ 대륙, ‘아프리카’, ‘유럽’ 및 지중해의 여러 섬에 침투하였읍니다. 왕국의 소식을 전파하는 일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서 수행되고 있었읍니다. 그렇다고 전세계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은 아니지만—결코 그러한 목적을 이루려고 전파하지 않았음—그 결과로 모든 민족에게 증거가 행하여졌읍니다. (골로새 1:6, 23) 거리낌없이 전도하는 그리스도인 증인들에 의하여 이러한 칭찬받을 만한 업적이 수행되기 전에는 ‘예루살렘’과 ‘유대’인 사물의 제도에 그 비참한 끝이 올 수 없었읍니다.

      ‘예루살렘’의 두번째 멸망이 가까왔음이 지적되다

      15.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인 제도의 멸망이 매우 가까왔음을 알리는 것이 무엇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분은 그것을 보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5 예수께서는 “끝”이 오기 전에 있을 일들을 상당히 자세히 말씀하시고 나서, ‘예루살렘’과 그 도시 및 그곳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사물의 제도의 끝이 매우 가까왔음을 알리는 특별한 일을 자세히 말씀하셨읍니다. 그의 말씀은 이러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16. 예수께서 충고하신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이 ‘예루살렘’과 ‘유대’를 급히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6 ‘로마’ ‘유대’ 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개종자들이 불필요한 짐을 가지지 말고, 곧은 길로, 적절한 시기에 전속력으로 나와 그 ‘유대’ 도 밖에 있는 산으로 피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읍니까? 예수께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태 24:15-22.

      17. (ㄱ) 예수의 사도들과 그들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충고를 무시해서는 안되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ㄴ) 그러므로 이제 어떠한 중대한 질문이 생깁니까?

      17 예수의 이 충고를 사도들과 기타 제자들은 잊거나 무시해서는 안되었읍니다. 만일 그들 중 누가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고 나서도 ‘유대’에서 나와 도망하는 일을 지체한다면 그들은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 그들은 환난의 날들이 감하여지기 때문에 구원받는 “육체”로 언급된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 틈에 끼지 못할 것입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이 보이면 그것은 파멸적인 “큰 환난”이 가까왔다는 것을 확증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가증한 것”은 무엇입니까?

      18, 19. (ㄱ) 황폐케 하는 이 가증한 것은 이미 누구에 의하여 어디에서 예언되었읍니까? (ㄴ) 예수의 예언에 대한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그 가증한 것이 무엇일 것인지를 어떻게 지적하셨읍니까?

      18 예수께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의문의 여지없이 밝혀 주셨읍니다. 그 분은 그것이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4:15) ‘예루살렘’의 두번 째 멸망과 관련하여 예언자 ‘다니엘’이 예언한 “가증한 것”은 다니엘 9:26, 27(특히 「히브리어 성서 희랍어 칠십인역」 본문에 의하면)에 묘사되어 있읍니다.a 세속 역사에 의하면, 그 “가증한 것”은 “왕” 즉 지휘자가 인솔하는 이교 ‘로마’ 군대였읍니다. 이것이 예언에 대한 올바른 해설이라는 것은 이 곳에 있는 예수의 예언에 대한 ‘마태’의 기록과 이에 대응하는 예수의 예언이 나오는 ‘누가’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확증됩니다. 누가복음 21:20-24은 이러합니다.

      19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 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찌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다니엘 9:26, 27을 포함한)을 이루는 형벌의 날[혹은, 복수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또한 마가 13:14-20 비교.

      20, 21. (ㄱ)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았읍니까? (ㄴ) 그 가증한 것은 그 곳에 얼마 동안 서 있었읍니까?

      20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황폐케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 즉 ‘예루살렘’과 그 주위에 서 있는 것을 보기 시작한 것은 기원 66년이었읍니다. 바로 그 해에 그리스도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이 계속 통치하는 것을 반대하여 메시야와 관련한 야망을 품고 폭동을 일으켰읍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로마’ 장군 ‘세스티우스 갈루스’는 ‘시리아’에서 내려와 ‘예루살렘’을 “군대들”로 포위하게 하였읍니다. 바로 그때는 ‘유대’인들이 ‘티쉬리’월 15일부터 21일까지 초막절(즉, 장막절)을 축하하는 때였읍니다. 그 절기는 그 해 10월 22-28일(‘그레고리’역)의 7일간에 해당하였을 것입니다. ‘세스티우스 갈루스’ 장군은 자기 군대를, 절기를 축하하는 그 도시로부터 “50 퍼얼롱”(약 10‘킬로미터’) 이내까지 접근케 하였읍니다. 무장을 잘 갖춘 ‘유대’인들은 힘차게 공격하여 ‘로마’ 군에게 얼마의 손해를 입혔읍니다.

      21 그 다음 “3일간 기다린” 후에 ‘갈루스’ 장군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격퇴시키고 자기의 군대를 그 도시로 접근케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군대를 처음으로 ‘예루살렘’ 성내로 진입시킨 것은 ‘티쉬리’월 마지막 날(11월 5일경)이었읍니다. 이제 그는 참으로 ‘유대’인들이 “거룩”하다고 간주하는 곳에 있게 되었읍니다. ‘로마’ 군대는 5일간 성전벽을 공격하였고 여섯째 날에 벽의 기초를 파 들어갔읍니다. 이것은 분명히 ‘유대’인들이 가장 거룩하다고 간주하는 것에 대한 공격이었읍니다. 이제 ‘로마’ 군대는 도시 전체를 아주 쉽게 점령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갑자기, 아무런 타당한 이유도 없이, ‘갈루스’ 장군은 그 도시에서 철수하여 퇴각하였읍니다. 기운을 얻은 ‘유대’인들은 맹추격전을 벌여 퇴각하는 ‘로마’ 군대를 괴롭히고 상당한 손해를 입혔읍니다. 그 결과 퇴각은 패주로 바뀌었읍니다.b 이것은 세계를 정복해가던 ‘로마’인들의 자존심에 통렬한 타격이 되었읍니다. ‘예루살렘’은 해방되었읍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를 기념하여, 한 쪽 면에 “성소 예루살렘”이라고 새긴 새로운 ‘세겔’ 은화 얼마를 주조하였읍니다.

      22.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은 왜 ‘예루살렘’의 독립의 회복을 보고 속지 않았으며, 그들은 어떻게 그들 자신을 보호하였읍니까?

      22 ‘예루살렘’과 ‘유다’ 도에 있던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의 이 땅이 이와같이 독립을 회복하는 것을 보고 속았읍니까? 예수의 예언과 조언을 명심한 사람들은 속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성도 ‘예루살렘’이 진친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실제로 보았읍니다. 그들은 군인들이 신으로 우상화하는 군기를 가진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마가 13:14) 이것을 보고 그들은 “그[‘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아야 하였읍니다. (누가 21:20) 그 때는 ‘예루살렘’에서 나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고 ‘유대’ 도 전역에서 바깥 산 즉 예를 들면 동쪽으로 ‘요단’ 강을 건너 ‘베리아’ 도로 도피해야 할 때였읍니다. 멸망의 운명에 처한 지역이 아닌 그 곳에서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멸망이 정해진 ‘유대’인 불신자들과 함께 사멸되지 않고 하나님의 참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계속 전파할 수 있었읍니다.

      23, 24. (ㄱ) 왜 ‘유대’의 독립은 오래 가지 못하였읍니까? (ㄴ)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은 얼마나 심각하고 위협적이었읍니까?

      23 ‘유대’에 있는 ‘유대’인들의 독립은 단기간 지속하였읍니다. ‘로마’의 ‘베스파시안’ 장군이 ‘갈루스’ 장군의 뒤를 이어 다음해인 기원 67년 초에 ‘팔레스티나’에 이르렀읍니다. 그는 그 지방의 나머지 부분을 지배하에 넣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방비력을 강화하였읍니다. 기원 68년 ‘네로’ 황제 사후에 ‘베스파시안’은 황제로 추대되었읍니다. 그는 ‘팔레스티나’를 떠나 기원 70년 중엽에 ‘로마’에 도착하였읍니다. 그는 그의 아들 ‘티투스’ 장군을 뒤에 남겨 ‘시리아’에 있는 ‘로마’ 군대를 통솔하게 하였읍니다. 70년 ‘유대’인의 유월절이 다가오자 비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그 절기를 축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읍니다. 바로 그 때에 ‘티투스’ 장군은 네 군단을 이끌고 와서 절기를 축하하는 ‘유대’인들을 그 도시 가운데에 두고 포위하였읍니다. 반역한 ‘유대’인들을 굶겨 죽이기 위하여 그는,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 ‘유대’인 아무도 도망하지 못하도록 도시 주위에 약 8‘킬로미터’ 길이의 견고한 방어 목책 즉 “뾰족한 말뚝을 둘러친 보루”를 만들었읍니다.

      24 ‘예루살렘’ 안에 갇힌 ‘유대’인들의 곤경은 절망에 이르렀읍니다. 제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퍼스’는 자기의 저서에서, ‘로마’ 군의 포위 공격으로 인한 참사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유대’인 사망자수는 계속 증대하였읍니다. 만일 포위 공격이 너무 오래 계속된다면 포위된 도시 안에서 생존할 “육체”가 없을 것같이 보였읍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과 ‘유대’에 임할 이 “큰 환난”에 관하여 예언하신 바와 같았읍니다. “만일 주(여호와)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마가 13:19, 20.

      25. (ㄱ) ‘예루살렘’에 임한 그 환난의 날들은 어떻게 감하여졌읍니까? (ㄴ) 생존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예언 가운데 언급하신 “택하신 자들”이었읍니까?

      25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포위 공격 기간은 비교적 짧았으며, ‘니산’월 14일부터 ‘엘룰’월 7일까지 계산하면 단지 142일 즉 음력으로 여섯달에 걸친 것이었읍니다. 다시 말하면, ‘그레고리’역으로 기원 70년 8월 30일까지는 모든 것이 끝났읍니다. ‘요세퍼스’의 기록에 의하면, 얼마의 ‘유대’인 육체 즉 97,000명의 ‘유대’인들이 살아 남을 수 있었지만 그는 1,100,000명은 그 포위 공격 중에 사망하였다고 보고합니다. 그 97,000명의 생존자들은 “택하신 자들”이었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읍니까? 그들을 포로와 노예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르지 않는 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라. 저희가 칼 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 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 21:23, 24.

      26. (ㄱ) 그러면 예수의 예언에 언급된 “택하신 자들”은 누구였읍니까? (ㄴ) ‘예루살렘’에 임한 환난의 날 수는 그들을 위하여 어떠한 면으로 단축되었읍니까?

      26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큰 환난”의 날들을 감한 원인이 된 “택하신 자들”은 그 “형벌의 날”에 여호와의 큰 “진노”를 받은 97,000명의 그 가련한 ‘유대’인 포로들이 아니었읍니다. 여호와의 “택하신 자들”은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수도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대’ 도 전역에서 지체하지 않고 도망하라는 신호를 주셨읍니다. 그분은 그들 모두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본 후에 즉시 도망하라는 예수의 조언에 대한 믿음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위험 지구에서 안전히 나오기를 원하셨읍니다.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장소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들 “택하신” 제자들 모두가 나오게 한 후에 여호와께서는 반역적인 ‘유대’인들에 대한 복수 집행 기간을 짧게 하실 수 있었읍니다.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주[여호와]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단축하실 것이다, 신세].” (로마 9:28; 이사야 10:23)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임한 큰 환난의 날이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단축된 것은 적절하였읍니다.

      27. (ㄱ) 예수께서는 예언의 말씀을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묘사로 끝이셨읍니까? 아니면, 그보다 먼 장래를 내다 보셨읍니까? (ㄴ) ‘예루살렘’이 1914년에 이방 열국에 의하여 짓밟히는 일이 끝났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7 세속 역사 기록은 예수의 예언이 정확함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예언은, 지적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기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대하여 논할 것이 더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기원 70년에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보다 먼 장래를 내다 보셨읍니다. 그분은 누가복음 21:2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예수께서는 일반적으로 이방인의 때라고 부르는 “열국의 지정된 때”가 만료되어 “끝”나는 때를 기대하셨읍니다. 그것은 그분이 기원 1914년을 기대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왜냐 하면 그 해에,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의 손에 메시야 왕국을 둘 ‘예루살렘’의 권리가 열국에 의하여 짓밟히는 일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중동에 재건된 ‘예루살렘’ 시가 1914년 당시 아직도 회교도들인 ‘터어키’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말합니까? 왜냐 하면, 그 해 이방인의 때의 끝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터어키’가 지배하는 지상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에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를 즉위시키셨기 때문입니다.—히브리 12:22.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실체에 임할 성취

      28. ‘예루살렘’의 멸망이 매우 가공할 것임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어떠한 의미로 언급하셨음이 분명합니까?

      28 예수께서 그 예언 가운데서 ‘예루살렘’ 시를 문자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더 큰 다른 어떤 것을 예표하는 모형적 의미로도 사용하고 계셨음이 명백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기원 70년에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 24:21; 마가 13:19)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모두 기원 70년의 ‘예루살렘’의 멸망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대격변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읍니다. 예를 들어, ‘노아’ 시대의 세계적 홍수는 어떠합니까? 그리고 기원 70년 이래 ‘로마’인들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같은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읍니까? 현 이십세기에 있었던 제 1차 세계 대전과 제 2차 세계 대전은 어떠합니까? 예수의 말씀은 과장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분은 ‘예루살렘’을 예언적 모형으로, 전세계를 비슷한 방법으로 멸망시킬 어떤 것에 대한 경고의 본으로 생각하고 계셨읍니다. 그분은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실체, 즉 현대 실체를 생각하고 계셨읍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서로 엇갈리는 수백가지 종파를 포용하고 있는 그리스도교국입니다.—고린도 전 10:11.

      29. (ㄱ) 그리스도교국의 멸망에 부가하여, 예수의 예언은 다른 무엇에도 적용됩니까? (ㄴ) 그러므로, 예수의 예언 이래 ‘예루살렘’의 멸망까지의 기간은 무엇에 상응합니까?

      29 예수의 예언에 대한 이러한 적용은 그리스도교국이 정치적, 상업적, 군사적, 사법적 애인과 함께 멀지 않아 당할 멸망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 멸절로 직접 인도하는 세계 사태에 대하여도 참됩니다. 그리스도교국은 현재 그것의 이십세기 경험으로 볼 때, 감람산에서 주어진 예수의 예언 이래 ‘로마’인들이 기원 70년에 ‘예루살렘’과 그 곳 성전을 멸망시켰을 때까지의 기간과 비슷한 기간에 존재합니다. 그리스도교국에게 정해진 그 기간에 상응하는 이 특정한 기간은 1914년에 “열국의 지정된 때”의 끝에 시작되었읍니다. 그 때 이후의 세계 사건들을 고려하여 보십시오.

      30. 1914년 이래, 그리스도교국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재난의 시작”을 경험하여 왔읍니까?

      30 예수께서는 무슨 일들이 “재난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전쟁, 식량 부족, 지진, 역병이 아니었읍니까? (마태 24:7, 8; 마가 13:8; 누가 21:10, 11) 제 1세기의 그리스도의 사도 시대의 어떠한 “전쟁”들이, 기원 1945년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래의 다른 전쟁은 그만두고라도, 양차 세계 대전에 비교될 수 있읍니까? 기원 33년 이래 70년까지의 기근, 지진 및 역병은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래 그리스도교국과 세계의 나머지 부분 모두가 겪은 식량 부족, 지진 및 역병을 능가하였읍니까?

      31. (ㄱ)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오늘날 누가 받은 고통이 그 기간 중의 제자들이 받은 고통과 상응합니까?

      31 예수께서는 또한 그의 사도들에게 그의 제자들이 심한 박해를 받을 것이며, 환난에 넘겨지고 죽임을 당할 것이며, 그들이 모든 나라에서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또한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고 거짓 메시야가 일어나며, 하나님에 대한 불법이 증가하고, 그 결과 종교가라고 칭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의 사랑이 식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4:9-13; 마가 13:9-13; 누가 21:12-19) 그러한 사태 발전이 제 1세기의 사도 시대의 특징이었읍니다. 그리고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래의 세계 사태는 어떠하였읍니까? 세계가 그리스도교로 대거 개종하여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에 대한 박해가 그쳤읍니까?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보다 “내[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더 받는 종교적 소수 집단이 있읍니까? 1914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받은 것보다 더 큰 종교적 박해가 있읍니까? 누구라도 참조할 수 있는 기록이 있읍니다.

      32. 기원 70년까지 이르는 그 사도 시대를 두드러진 것이 되게 하는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이었으며, 이 특징은 당시 누구를 통하여 성취되었읍니까?

      32 기원 70년 이전 제 1세기 그 사도 시대에는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이 있었읍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반대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태 21:43) 거짓 메시야들이 있었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방인들에게 선포함으로 왕국의 열매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았읍니다.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에 그들은 침례자 ‘요한’의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하늘 왕국이 가까왔다고 선포하지 않았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셨을 때에 종교적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 23:13) 그러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신 예수의 강력한 말씀이 기원 70년 전에 성취된 데 대한 영예는 누구에게 돌아갑니까? (마태 24:14; 마가 13:10) 그 영예는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은 사람들 즉 그의 제자들에게 돌아갑니다.

      33. 누가 1914년 이래 그와 상응하게 국제적으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였으며, 전파된 이 왕국은 그리스도교국이 선포하여 온 왕국과 어떻게 다릅니까?

      33 이와 동일하게,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후 이와 상응하는 기간에,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에 대한 예수의 예언을 현대에 성취시키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면에서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미움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모든 민족에게 증거할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의 전파로 사람이 거주하는 땅을 채웠읍니다. 이것은 제 4세기 ‘콘스탄틴’ 황제 시대 이래 존재한 그리스도교국이 전파하여 온 하나님의 왕국의 소식, 즉 수억의 교회 신도들 속에, 그들의 마음에 있다는 왕국의 소식, 세계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로 개종할 때에 마침내 실현된다는 왕국의 소식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후로 전파해 온 왕국은 그 해에 하늘에 탄생한 실제 정부입니다. 그것은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건설된 왕국이며, 그것은 이 땅의 모든 정치적 정부를 종결시키고 영원한 생명과 평화와 행복으로 지상의 거민들을 축복할 것입니다.

      34. (ㄱ) 이 국제적 왕국 전파는 어떠한 사실에 대한 “징조”의 일부가 될 것이었읍니까? (ㄴ) 왕국 전파의 이 공적은 어떠한 재난이 있기 전에 수행되어야 합니까?

      34 이 주목할 만한 공적, 즉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국제적 증거를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그러한 좋은 소식을 전파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그것은 통치하는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임재” 즉 ‘파로우시아’중에 계심을 알리는 “징조”의 밝게 빛나는 하나의 특징입니다. 그분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즉위하신 해 이후로 그와 같이 호별로 그리고 기타 현대적인 모든 통신 수단으로 전파하는 일이, 반세기가 훨씬 넘도록, 세계적인 전쟁과 기타 대규모적인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에 의하여 수행되었읍니다. 멀지 않아 인류와 제반사를 떠맡을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 대하여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는 일이 완전히 끝날 때는 매우 가까운 것 같습니다. “끝”이 있기 전에 세계적으로 왕국을 전파하는 이 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은 이제 왕국 전파를 들었읍니다. 이제 “모든 민족”은 증거를 받지 않은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제야” 현 사물의 제도에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

      35. (ㄱ) ‘예루살렘’의 황폐가 매우 가까왔음을 “징조”의 어느 특징이 증명하였읍니까? (ㄴ) 제 1세기의 그 세계 강국이 지금 없으므로,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35 “징조”의 또 다른 특징은 오랫 동안 기다린 “끝”이 가까왔음을 보증합니다. 다른 놀라운 일들이 그 위험한 기간 내에 발생할지라도 끝이 즉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재난의 시간이 임박했음과, 안전 지대로 도망하는 일을 늦추는 모든 사람에게 파멸적인 종말이 임박하였음을 증명하는 한 가지 불결한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제 1세기의 ‘로마’령 ‘유대’ 도 거민들의 경우에, 그것은 진을 친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것 즉 서서는 안될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는 것이었읍니다. 그 때는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유대’인들이 ‘유대’에서 도망할 절호의 때였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멸망 즉 황폐케 하는 “가증한 것”과 같은 것을 봅니까? 그것의 출현은 종교적 그리스도교국에게 좋은 전조가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교국은 제 1세기의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현대판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숭배의 그 거룩한 수도는 성서 역사상 여섯번째 세계 강국인 이교 ‘로마’ 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황폐되었읍니다. 그러나 그 제국, 그 강국은 지금 없읍니다!

      36. 오늘날의 일곱째 세계 강국은 왜 가증한 황폐자가 산출하는 영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까?

      36 오늘날, 1914년 이래, 세계 무대는 아직도 일곱째 세계 강국 즉 영미 이중 세계 강국의 지배를 받고 있읍니다. 영국의 왕 혹은 여왕은 영국 국교회의 수반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미국 대심원은 미합중국이 “그리스도교 나라”라고 선언하고 있으므로, 이 일곱째 세계 강국은 그리스도교국의 주요 부분이며 그리스도교국의 견고한 옹호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 강국은 종교적인 면에서, 그 가증한 황폐자가 산출한 영향 중 얼마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7. 계시록 17:9-11은 일곱째 강국이 마지막 세계 강국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알려 줍니까?

      37 그러나, 성서 마지막 책은 여덟째 세계 강국을 밝혀 줍니다. 흥미롭게도, 계시록 17:9-11은 색깔이 붉고, 일곱 머리와 열뿔을 가졌으며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이 라고 있는 짐승의 환상에서 사도 ‘요한’이 들은 말을 알려 줍니다. 그 귀절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혜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38. 사도 ‘요한’의 시대에, 어느 세계 강국들이 이미 무너졌었으며, 당시 어느 강국이 있었으며, 어느 왕국이 도래하여 얼마 동안 존속할 것이었읍니까?

      38 제 1세기 사도 ‘요한’의 시대에 여섯째 세계 강국은 그를 유형지 ‘밧모’ 섬에 죄수로서 억류하고 있었읍니다. 일곱째 세계 강국은 아직 이르지 않았었읍니다. 역사는 그 강국이 18세기에 비로서 이르렀음을 알려 줍니다. 그 때에 대영 제국이 상업력과 해군력에서 해상의 지배자가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이 일곱째 세계 강국은 오늘날까지 2세기가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기간은 여섯째 세계 강국이 지배한 근 18세기의 기간에 비하면 “잠간 동안”입니다. 그러므로 붉은 빛 짐승의 일곱째 머리는 이 일곱째 세계 강국을 대표하였읍니다. 다른 머리들은 그 이전의 여섯 세계 강국 즉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바사’, 희랍 및 ‘로마’를 대표합니다. 이들 일곱 세계 강국들은 모두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종교적 음녀 곧 “큰 ‘바벨론’”과 관계를 가졌읍니다.—계시 17:1-6, 18.

      39. 왜 공산주의 ‘러시아’ 혹은 공산주의 국가 진영이 여덟째 세계 강국이 아닙니까?

      39 그 짐승은 “여덟째 왕”이므로 그것은 여덟째 세계 강국을 대표합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러시아’ 혹은 공산주의 국가 진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와 공산주의 진영은 ‘일곱 중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그 이전의 일곱 세계 강국에서 나오지 않았읍니다. 공산주의 국가 진영에 대하여는,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 올라”올 자라고 말할 수 없읍니다.—계시 17:8.

      40. (ㄱ) 그러면 여덟째 세계 강국은 무엇입니까? (ㄴ) 그 세계 강국은 언제 있지 않았으며, 언제 있게 되었읍니까?

      40 그러면 사도 ‘요한’이 환상에서 본바 붉은 빛 짐승을 탄 음녀인 큰 ‘바벨론’처럼 오늘날까지 거짓 종교의 ‘바벨론’적 세계 제국이 타고 있는 여덟째 강국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적 기구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것은 국제 연맹이라고 불리었으며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그것은 국제 연합이라고 불리워 왔읍니다.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이 기관은 종전후 첫해인 1919년에 조직되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1939년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돌발하였을 때에 무활동과 무능력의 무저갱에 들어갔읍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그것은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기구로서 실제적으로 ‘없’었읍니다. 1945년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그것은 무저갱에서 나왔는데, 이번에는 국제 연합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나왔읍니다. 그것은 그 때 이후로 “있”게 되었읍니다. 오늘날 그것은 144개 회원국을 가진 세계 기구입니다. 이들 모두는 국가적으로 무장을 갖추고 있으며, 그 나라들 중 다섯 나라는 이미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읍니다.

      41. 국제 연합은 왜 그리스도인 기구가 아니며, 왜 그것은 하나님께 가증합니까?

      41 그러면 상징적 짐승인 여덟째 세계 강국인 오늘날의 국제 연합은 왜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읍니까? 그것이 등에 음녀를 태우고 있는 일곱 머리 가진 짐승에 비유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불결하고 그분께 “가증”함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비그리스도인 세계 강국들인 “일곱 중에 속”한 자이므로 그리스도인 기구가 아닙니다. 국제 연합 회원국 중 반수는 그리스도인 나라라고 자처하지도 않지만, 그 안에서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은 비그리스도교 나라 즉 이교국들과 정치적으로 연합해 있음을 봅니다. 국제 연합은 이 세상의 일부이며, “세상의 벗”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야고보 4:4; 요한 8:23; 18:36) 그것을 우상화하는 사람들은 메시야적 희망을 그것에 걸며, 그리스도교국은 그것을 하나님의 건설된 메시야 왕국의 대용물로 받아들입니다. 실로 가증한 일입니다!

      42. 국제 연합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되는 면에서 어느 군대와 같을 것입니까?

      42 국제 연합은 많은 좋은 일을 해 냈다고 간주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황폐시키는 자,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불리울 수 있읍니까? 여섯째 세계 강국인 ‘로마’ 제국은 온 땅에서 ‘로마’ 지배하의 평화를 보존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중동에서 평화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였었읍니다. 그러나 후에 그 군대는 종교적인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황폐시킨 자가 되었읍니다. 마찬가지로, 여덟째 세계 강국인 국제 연합은 “멸망으로 들어가”기 전에 예언된 세계적인 역할을 앞으로 달성할 것입니다. (계시 17:11) 그것은 장차 ‘황폐케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 계시록 17:15-18이 알려 줍니다. 그 곳을 보면 이러합니다.

      43. 계시록 17:15-18은 황폐시키는 일은 어떻게 상징적인 말로 묘사합니까?

      43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한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또 네가 본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44. 그러면 국제 연합은 무엇의 황폐자가 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는 황폐될 것에 대하여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지각있는 일입니까?

      44 그러므로 여덟째 세계 강국인 국제 연합은 그것이 상징적인 국제적 음녀인 큰 ‘바벨론’을 황폐시킬 때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될 것입니다. ‘유브라데’ 강변의 고대 ‘바벨론’은 하나의 도시였읍니다. 따라서 큰 ‘바벨론’은 “큰 성” 즉 대도시로 비유되었읍니다. 그리고 큰 ‘바벨론’은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므로,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을 의미합니다. 지각있는 사람들이 할 일은 거짓 종교의 그 ‘바벨론’적 세계 제국이 멸망되기 전인 바로 지금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과 함께 멸망되지 않을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늘로부터 외치는 영감받은 소리가 권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시 18:1-4.

      45. (ㄱ)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이미 ‘바벨론’에서 나왔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은 왜 큰 ‘바벨론’과 함께 멸망되어야 합니까?

      45 지금 우리는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교국이 그리스도교 나라라고 자처한다 해서, 그리스도교국 내의 수백가지 종파에 속한 교인들은 그들이 이미 큰 ‘바벨론’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교국의 일부로 머물러 있는 한 그들은 큰 ‘바벨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그 죄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그리스도교국 자체는 큰 ‘바벨론’의 일부이며, 사실 그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서 가장 유력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전쟁의 죄가 있고 피에 물든 그리스도교국은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현대 실체이며, 예수의 참 제자들 모두는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도망해야 합니다. 사실, 여덟째 세계 강국(국제 연합)이 큰 ‘바벨론’을 황폐시킬 때, 그것은 또한 큰 ‘바벨론’의 가장 비난받을 부분 즉 그리스도교국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참 하나님과 조화하여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체없이 그리스도교국에서 도망해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대’인 제자들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유대’인들이 매우 거룩한 곳으로 간주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본 후에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도망해 나온 것 같이 해야 합니다.

      46.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경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일찌기 1917년에 어떻게 전해졌읍니까?

      46 기원 1914년 이후 통치하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교국과 함께 멸망되지 않도록 거기에서 나오라는 경고를 받아왔읍니다. 미합중국이 제 1차 세계 대전에 돌입한 후 ‘만인의 설교단 회’가 1917년 7월에 발행한 “종말을 고한 비밀”이라는 책으로 일찌기 경고가 전달되었읍니다. 이 책은 계시록 17장과 18장을 포함하여 「계시록」 전체를 한 귀절 한 귀절 해설하였읍니다. 이 책은 이듬해 일찍 정부의 금지령하에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그 초기의 경고는 1917년 12월 30일 일요일에 광범위하게 전해졌읍니다. 이 일은 그 날 아침 “바벨론의 몰락”이라는 제목의 4면 전도지 「월간 성경 연구생」 제 9권 제 9호의 전국적인 동시 배부로 수행되었읍니다. 강력한 말씀을 실은 이 전도지의 전국적인 일제 배부에 이어 그 일요일 오후 ‘바벨론’에 대한 공개 강연이 있었읍니다.—1917년 12월 15일자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 370면 “자진 봉사자의 날—12월 30일” 제하 참조.

      47. (ㄱ) 제 1차 세계 대전 후, 성경 연구생들은 일찍부터 무엇을 알아내는 데 관심이 있었읍니까? (ㄴ) 1921년 1월 1일호 「파수대」지는 그것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47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현대 ‘큰 바벨론’은 “멸망의 가증한 것”에 의하여 멸망될 것이므로, 성경 연구생들은 종전 후 초기에 20세기의 사태 발전에서 그 가증한 것 혹은 미운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데 관심이 있었읍니다. 국제 연맹이 설립되고 ‘팔레스티나’에 대한 통치가 대영 제국에게 위임된 후에, 1921년 1월 1일호 「파수대」(영문) 12면 “‘다니엘’의 말한 바”라는 제목하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 그 땅은 여호와께 속하여 있으므로 (계시록 13장에 있는) 문제의 짐승은 ‘팔레스티나’ 땅에 대하여 지배력을 행사할 아무런 권한이 없읍니다. 인간이 만든 국제 연맹(그 권위 하에서 대영 제국이 ‘팔레스티나’에 대한 위임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은 주께 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미운 것은 서서는 안될 곳에 서 있읍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마지막에 도달하였음을 알리는 더욱 확증적인 증거에 유의하십시오. 즉, 멸망의 미운 것이 서서는 안될 곳 즉 성지인 하나님 자신의 땅 “거룩한 곳에 서” 있읍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즉 다른 짐승의 군대에게 “에워싸”여 있읍니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세상 끝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이해하고 알아야 합니다. ···

      48. 1926년에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는 무엇으로 밝혀졌으며, 언제 그렇게 밟혀졌읍니까?

      48 “멸망의 가증한 것”이 당시 국제 연맹이었다는 결론은, 마태복음 24:15과 마가복음 13:14의 문자적 적용에 근거하고 있었지만 결국 정확하였읍니다. 몇해 후,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그 국제 기구는 성서 예언의 여덟째 세계 강국으로 밝혀졌읍니다. 그것은 1926년 5월 30일 일요일 밤 영국 ‘런던’ ‘로오열 앨버트 홀’에서 “세계 강국들이 비틀거리고 있는 이유 및 그 해결책”이라는 제목으로 있었던 공개 강연에서 밝혀졌읍니다. 연사인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회장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는 “예언된 연맹”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세계 강국 즉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바사’, 희랍, ‘로마’ 및 대영 제국을 예언하셨으며, 또한 일곱 강국 가운데서 여덟째 강국이 나올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여덟째 강국은 또한 짐승으로도 상징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의 목적이 땅의 사람들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그것의 탄생, 짧은 존속, 영원한 종말을 예언하셨읍니다.—계시 17:10, 11; 이사야 8:9, 10.—1926년 7월 15일호 「파수대」(영문) 215면 참조.

      49. ‘택하심을 받은’ 자들의 남은 자들은 왜 큰 ‘바벨론’이 군대에게 포위되는 것을 보기 전에 지체하지 않고 나왔읍니까?

      49 그리하여 1918년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여호와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인 기름부음받은 생존한 남은 자들은 “멸망의 가증한 것”을 보기 시작하였고, 그것과 그것이 세계 무대에 출현한 것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제 1차 세계 대전 중 큰 ‘바벨론’과 그것의 정치적 군사적 애인들에게 속박되었으며 이제 그들은 거기에서 나오라는 천적 부름에 응하였읍니다. 그 후에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들에 부가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큰 ‘바벨론’에서 떠났읍니다.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실체 즉 그리스도교국은 지적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 땅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국에서 도망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국이 여덟째 세계 강국(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세계 기구)의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볼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읍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천사의 명령은 그 사건이 있기까지 기다리지 않았읍니다.

      50. (ㄱ) 여호와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그와 같이 일찍 도망한 것은 무엇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누구를 위한 좋은 본이었읍니까? (ㄴ) “가증한 것”이 어떠한 경험을 한 후에 큰 ‘바벨론’이 멸망될 것입니까?

      50 그러나,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그 사건이 있기 전에 도망하는 것은 불충실한 ‘예루살렘’과 큰 ‘바벨론’의 나머지 부분이 황폐될 때가 임박하였음과 이 세대 내에, “일시” 즉 한 시간과 같이 짧은, 여덟째 세계 강국의 존속 기간 중에 그 일이 있게 되어 있음을 알리는 주목할 만한 일이었읍니다. 여호와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의 즉각적이고 조속한 도망은 기원 1935년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다른 양”의 “큰 무리”가 따라야 할 믿음직한 본이었읍니다.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실체인 그리스도교국과 큰 ‘바벨론’의 남은 부분이 “가증한 것”의 군대에 의하여 황폐될 때는 이제 먼 장래일 수 없읍니다. “가증한 것”은 여덟째 세계 강국으로 “무저갱”에서 올라온 후에 큰 ‘바벨론’을 황폐시킬 것임에 유의하십시오. 여덟째 세계 강국은 국제 연맹의 형태로, 1939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돌발하면서 죽음과 같은 무능력의 “무저갱”에 떨어졌다가 1945년에, 국제 연합의 형태로, “무저갱”에서 나왔읍니다. (계시 17:8, 11, 12) 그것은 거의 30년전 일이었읍니다. 도망하는 일을 더 지체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유례 없는 “큰 환난”인 이유

      51. (ㄱ)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실체에 임하는 환난은 왜 참으로 “큰” 환난이 될 것입니까? (ㄴ) 큰 ‘바벨론’에서 도망하는 것을 지체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입니까?

      51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현대 실체 즉 그리스도교국의 황폐는 실로 “큰 환난”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마태 24:21) 그리스도교국의 영역은 전세계적이며, 지상 ‘예루살렘’ 시가 수도였던 ‘이스라엘’ 땅보다 훨씬 큽니다.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바벨론’의 영역은 단순한 그리스도교국의 영역보다 더욱 큽니다. 따라서, 상징적 “열 뿔”과 붉은 빛 “짐승”의 나머지 부분이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을 미워하고 황폐시키기 시작할 때에, 그것은 지구 전체를 망라하는 유례없는 종교적 대재난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은, 부도덕하고 유혈죄가 있는 큰 ‘바벨론’의 나머지 모든 부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기원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공했고 그것이 예언적 사건이었다면, 이 세계적인 대재난도 가공할 것입니다. 그 때에,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청종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머물러 있는 종교가들은 큰 ‘바벨론’의 죄에 참여한 자로 간주될 것이며 당연하게도, 큰 ‘바벨론’이 받을 재앙의 일부를 맛볼 것입니다.

      52. (ㄱ) 왜 큰 ‘바벨론’의 멸망은 “큰 환난”의 전부가 아닙니까? (ㄴ) 여덟째 세계 강국이 황폐시키는 자로 행동한 후 그것은 어떠한 일을 합니까?

      52 큰 ‘바벨론’의 멸망은 다가오는 “큰 환난”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큰 환난”의 첫 부분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정치적, 상업적, 사회적 요소는 종교적 큰 ‘바벨론’과 쾌락을 추구하고 물질면으로 치부를 노리는 더러운 관계를 맺어 왔읍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과 함께 유혈죄에 가담하였으며,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반대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을 함께 박해하였고,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증거하기 위하여 전파하는 것을 함께 방해하였읍니다. 이에 대하여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답변해야 합니다. 정치적 요소들은 또한 여덟째 세계 강국인 국제 연합을 지지하였으며, 그 나라들이 국제 연합을 형성하고 있읍니다. 이 비그리스도교 여덟째 세계 강국은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을 무시하고 반항하여 서 있읍니다. 그것은 지상에서,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의 승인을 받아,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정당한 왕국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그것이 이전의 애인인 큰 ‘바벨론’을 황폐시킨 후에 그것은 전투력을 총동원하여 여호와의 통치하시는 왕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반종교적으로 싸울 것입니다.

      53. 계시록 17:12-14에 묘사된 것이 왜 “큰 환난”의 절정이 될 것입니까?

      53 사도 ‘요한’은 이 최종적 결전을 이러한 상징적인 언어로 묘사합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여덟째 세계 강국의 회원국이 됨으로]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계시 17:12-14) 이것은 “큰 환난”의 절정 즉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의 큰 날에 전쟁”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 우주적 전쟁에 대한 더욱 자세한 설명이 계시록 19:11-21에 있읍니다.

      5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얼마나 많은 지상의 적들과 싸우실 것이며, 그 대살륙은 이전의 살륙과 비교할 때에 어떠할 것입니까?

      54 이것은 30억 이상의 지상 거민에게 관련이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된 이래 단지 1,656년 후 족장 ‘노아’의 시대에 있었던 대홍수도 전 지구적인 것이긴 하였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관련이 있지는 않았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큰 날에 전쟁”에서 지상 모든 나라의 핵폭탄의 모든 위력을 능가하실 수 있으며 지상의 적들 모두와 한꺼번에 싸우실 수 있읍니다. (계시 16:13-16) 그것은 이 지구가 이전에 결코 경험하지 못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대살륙을 예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기원 70년 고대 ‘예루살렘’의 황폐보다 먼 앞을 내다 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 주[여호와]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마가 13:20.

      55. (ㄱ) 환난의 날들을 감하는 것은 어떻게 “택하신 자들을 위”한 것입니까? (ㄴ) 이 마련으로부터 누가 혜택을 얻습니까?

      55 어떤 육체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기적일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는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큰 환난”의 날들을 감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택하신 자들”을 지면에서 떠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단죄 받은 사물의 제도와의 모든 제휴 관계에서 나오게 하심으로 그리고 “큰 환난”을 위하여 예정한 때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게 하심으로 여호와께서는 환난의 날들을 감하시는 것을 좋게 보십니다. 그분은 자기의 기름부음받은 “택하신 자들”을 그의 보호를 받는 안전 장소로 나오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적 형제들의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도 선을 행하는 양같은 “의인”들의 “큰 무리”도 나오게 하십니다. (마태 25:31-40)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의 “택하신 자들”과 “큰 무리”를 염소같은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심으로 세계적인 사물의 제도에 속해 있는 자기의 모든 원수에게 복수를 집행하시는 일을 “짧은” 기간에 해내실 수 있읍니다.—로마 9:28.

      56.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에 구원받은 “육체”는 누구였으며, 어떠한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였읍니까?

      56 이것은 “육체”가 바로 이 땅에서 구원을 얻을 것임을 보증할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핵폭탄이나 하늘의 집행군에 의하여 지상에서 일소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기원 70년에 “육체” 즉 97,000명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구원받았읍니다. 이들 97,000명은 ‘예루살렘’이 기원 66년에 ‘로마’ 군대에게 포위되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 짧은 포위 공격과 “가증한 것”이 서서는 안될 곳 즉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은 그들의 “큰 환난”의 일부가 아니었읍니다. “환난”은 두 부분으로 되지 않았읍니다. ‘세스티우스 갈루스’ 장군에 의한 그 포위 공격은 의외로 거두어졌으며, ‘로마’ 군대의 철수는 패주로 변하였고 ‘유대’인들은 즐거운 승리를 거두었읍니다. 그러나 “큰 환난”이 기원 70년 봄에 시작하였을 때에 그 97,000명은 오직 환난의 날들이 감하여졌기 때문에 생존하였읍니다. 그 97,000명은 여호와의 “택하신 자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존되기는 하였지만 ‘로마’ 제국 전역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여생을 보냈읍니다.

      57.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구원받을 “육체”는 누구일 것이며, 그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까?

      57 다가오는 “큰 환난”의 날들을 감하는 것은 다시 “육체”가 구원을 받을 것임을 보증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육체”가 고대 ‘예루살렘’에 갇혀 있던 그 반역적인 비그리스도인 ‘유대’인들과 비슷한 하나님의 원수의 일부가 아닐 것입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의 원수 모두가 멸망에 이를 것입니다. “택하신 자들” 외의 그 “육체”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멸망이 정해진 사물의 제도(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하여)를 버리고 그분의 편에 선 양같이 순종하는 사람들의 “큰 무리”일 것입니다. 이 “육체” 즉 “큰 무리”가 하나님의 새 질서로 생존하여 들어가 그리스도의 천년기 통치를 받을 때에 이러한 말이 그들에게 해당될 것입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 (계시 7:14) 그 생존자들의 “큰 무리”는 그 때에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또한 환난을 감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참으로 커다란 은혜입니다!

      거짓 메시야에 대한 메시야의 경고

      58, 59. (ㄱ) 예수께서 예언하신 거짓 그리스도들은 어떻게 실망을 안겨다 주었으며,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에 ‘유대’인들이 누구를 기대하게 하였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관련하여 사용될 책략을 어떻게 더욱 예언하셨읍니까?

      58 예수께서는 자기의 “임재”(‘파로우시아’)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관한 예언에서,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황폐되기 전에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하셨읍니다. 그분은 질문하는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 점에 관한 예언을 시작하셨읍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태 24:4, 5) 그러나 그들은 거짓된 자들, 사기군들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의 어떠한 구출도 전혀 아무런 구출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에,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은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육체로 오실 것을 계속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은 참 메시야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약속된 “임재”(‘파로우시아’)를 계속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로마 군단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문자 그대로 황폐될 것을 예언하신 후에, 속이는 자들이 관심있는 사람들을 유인하여 가면적인 메시야를 따르게 하는 데 사용할 책략을 설명하셨읍니다. 그분은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59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파로우시아’]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마태 24:23-28.

      60. 거짓 그리스도가 “광야” 혹은 “골방”에 있을 이유가 무엇일 것입니까?

      60 “인자”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이 어떻게 오시며 임재하실 것인지를 지상의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아셨읍니다. 그분은 지상의 “여기”에도, “저기”에도, 혹은 어떤 특정 지점에도 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어떤 격리된 장소 즉 “광야”에 나타나, 메시야를 찾는 사람들이 그 땅의 정부 당국자들의 눈을 피하여 그곳으로 나가 그분을 만나고, 그들이 그분의 인도를 받아가며 그 곳에서 훈련을 받고 정치적인 공격 즉 ‘쿠데타’를 일으켜 메시야를 세상이 메시야 통치자로 추대하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사도 5:36, 37; 또한 사무엘 상 22:1, 2, 비교) 또한 그분은 선택된 소수인에게만 자신의 소재가 알려지도록 어떤 “골방”에 숨어 그곳에서 눈에 띄지 않게, 남모르게 음모를 꾸미고 공모자들과 함께 세계의 정부를 전복할 비밀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약속된 메시야로 기름부음받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열왕 하 9:4-14 비교) 이와는 반대로, 예수께서 왕으로서 오시고 왕으로서의 임재를 시작하는 것에 대하여 숨길 일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61, 62. (ㄱ)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는 어떠한 면으로 번개와 같을 것입니까? (ㄴ) 널리 알려지는 점에 관하여 사도들에게 하신 예수의 어떠한 말씀이 오늘날 그분의 제자들에게 적용됩니까?

      61 그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의 영향은 번개와 같을 것입니다. 그분의 ‘파로우시아’는 번개가 갑자기, 불시에, 순식간에 빛을 내는 것과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번개가 예고없이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점이 아니라 동쪽에서 서쪽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비취는 점이 강조되어 있읍니다. (누가 17:24) 번개의 조명력은 시편 97:4에 묘사된 바와 같습니다.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마찬가지로, 땅의 거민들은 인자의 ‘파로우시아’에 관하여 어두움 가운데 있게 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지평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사람이 왕으로서의 그분의 ‘파로우시아’에 대하여 환히 알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것은 번개의 조명력 즉 멀리까지 비취는 힘에 의하여 번개가 번쩍이듯이, 널리 알려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를 알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19세기 전에 그분이 사도들에게 하신 이러한 말씀이 적용됩니다.

      62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마태 10:26, 27.

      63. (ㄱ) 이들 예언된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ㄴ) 충실한 “택하신 자들”은 어떻게 참으로 시체가 있는 곳에 모이는 독수리와 같습니까?

      63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을 일으키는 목적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려는 것입니다. (마태 24:23-25; 마가 13:21-23) 그러나 충실한 “택하신 자들”은 끝없는 헛된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보이는 육체를 가진 자칭 그리스도를 찾으려고 여러 방향으로 두리번 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라고 자처하며 자신이 그러한 신분이라고 증명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선전을 하는 육체를 가진 어떤 보이는 사람에 이끌리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17:22, 23) 성경을 통하여 그들은 어디를 보아야 할지를 알고 있읍니다. 그들은, 멀리 아래로 지상에 있는 조그마한 것을 확대하여 정확하게 보는 독수리와 같습니다. (욥 39:27-29) 그러므로 그들은 거짓 그리스도에게 모이지 않으며 영적으로 주리지 않습니다. 멀리서도 먹을 수 있는 시체를 찾아낼 수 있는 그리고 함께 먹기 위하여 그곳에 모이는 독수리와 같이, “택하신 자들”은 참다운 영적 양식이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즉 보이지 않게 ‘파로우시아’ 하신 참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을 식별합니다. 그곳이 바로 그들이 함께 모여서 영적 영양분을 발견하는 곳입니다.—누가 17:37.

      64. (ㄱ) 거짓 그리스도들은 어디에서만 나타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 이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 날 환난 후 그분의 징조가 어디에 나타날 것입니까?

      64 ‘파로우시아’ 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지상 어느 곳에도 육체로 보이게 나타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혈과 육을 가진 단순한 인간들인 거짓 그리스도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부활되시고 영화롭게 되시고 통치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다릅니다. (디모데 전 6:14-16) 그분은 예언을 계속 말씀하시면서 바로 이 사실에 사도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신 것입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태 24:29-31; 마가 13:24-27.

      그 “후에 즉시” 일어날 천체 현상

      65. 예수께서는 그 때에 어느 “환난”을 가리키신 것이며, 그분이 예언한 일들이 “그 후에 즉시” 즉 그러한 “환난” 직후에 중단 기간 없이 발생하였읍니까?

      65 예수께서는 “그 날 환난 후 즉시”라는 표현으로 분명히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하여 중동의 ‘예루살렘’에 임한 “큰 환난”의 날을 가리키고 계셨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역사적 기록을 조사해 보아도, 예수께서 묘사하신 그러한 일은, 연쇄적인 사건과 같이 중단 기간없이 그 “후에 즉시” 발생하지 않았읍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끝난 “큰 환난” 직후에 “인자의 징조”는 “하늘에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로마’의 공격군들과 그 외의 “땅의 족속들”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을 가지고 오시는 인자를 보고 “통곡”하지 않았읍니다. 믿을 만한 역사에 의하면, ‘로마’ 군단이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후에 그들은 ‘유대’인의 마지막 요새, 사해 서안의 ‘마사다’ 산 꼭대기에 있는 요새를 포위 공격하여 기원 73년에 그것을 공략하였으며, 그리하여 ‘유대’ 도 전체에 대한 정복을 완료하였읍니다. 그러면 예수의 예언은 이 점에서 틀렸읍니까?

      6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거짓 예언자이셨읍니까? 아니면, “즉시”라는 말에 관하여 무엇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합니까?

      66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이 점에서 거짓 예언자가 아니셨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하에 있었으므로 틀릴 수 없었읍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릇된 것은 무엇입니까? 분명히 그 “후에 즉시”라는 표현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입니다. 분명히 여기의 “즉시”라는 말의 의미는 요한복음 6:21의 의미와 같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에 오르신 후에 “배는 곧[즉시, 흠정역]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읍니다. 그들이 상륙하기 전에 순간보다 긴 시간이 흘렀음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계시록 1:1에 있는 “속히”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신 것이라].” 여기 “속히”라는 말은 사도 ‘요한’이 기원 96년경에 계시를 받은 때로부터 현 이십세기에 「계시록」이 성취될 때까지의 기간으로 넓어집니다. (로마 16:20에 있는 “속히”라는 말이 망라하는 기간과 비교).

      67. 그러면 그 “후에 즉시”라는 예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67 마태복음 24:29의 예수의 예언을,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사실과 조화시키기 위하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후에 즉시”라는 표현이 현 이십세기까지 여러 세기의 기간을 뛰어넘는다고 이해해야 합니다.c 오늘날, 기원 1914년 이래 인자의 ‘파로우시아’중에, 예수께서 그 귀절에서 예언하신 바와 분명히 상응하는 일들과 사건들이 확실히 일어나고 있읍니다.

      68, 69. (ㄱ) 1914년 이래의 세상 상태는 어떻게 예수께서 천체에 관하여 예언하신 것의 영향과 같았읍니까? (ㄴ) 자조 능력의 부족 때문에 사람들은 어떻게 이사야 59:9, 10 및 스바냐 1:17, 18에 묘사된 사람들과 같았읍니까?

      68 역사가들은 기원 1914년 이래 인류가 인류 존속 기간 중 가장 어두운 기간에 들어와 있음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것은 태양이 낮에 “어두워”진 것과 같으며, 달이 밤에 “빛을 내지 않”은 것과 같으며, 달빛이 없는 그 밤에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밤의 어두움 속으로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하여 멸망이 정해진 사물의 제도에게 낮에도, 밤에도 장래에 대한 밝은 전망이 없읍니다. 그리스도교국 내의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인간은 인간 자신의 수단으로 세상의 상태에서 헤어날 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고대 성서 예언에 다음과 같은 말로 잘 묘사되었읍니다.

      69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 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우리가 소경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이사야 59:9, 10) “내(여호와)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될찌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스바냐 1:17, 18.

      70. (ㄱ) 과학적으로 관찰할 때, 하늘들은 어떻게 그들의 온화한 모습을 상실하였읍니까? (ㄴ) 하늘의 권능들은 어떠한 면으로 흔들려 왔읍니까?

      70 하늘은 온화한 모습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현대 과학에 의하여 우리는 수천 ‘킬로미터’의 하늘로 분사되는 원자 ‘에너지’의 거대한 화염을 알고 있읍니다. 그것은 태양 흑점같이 보이지만 지구에까지 도달하여 영향을 주는 입자를 막대하게 분출합니다. 이 지구는 계속적으로 외계의 미지의 영역에서 우리를 향하여 쏟아지는 핵‘에너지’의 보이지 않는 방사선의 사격을 받고 있읍니다. 전파 망원경은 가장 강력한 망원경을 사용해서도 볼 수 없는 별들로부터 오는 전파의 신호를 포착합니다. 그러한 전파는 우주 공간에 그러한 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지금까지 여섯번 달에 착륙하였으며,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그 달을 지상의 적에 대항하는 전쟁을 지휘하는 군사기지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초음속 전투기와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핵폭탄을 장비한 탄두를 가진 대륙간 탄도탄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는 예수의 말씀의 엄숙한 의미를 더욱 더 인식하게 됩니다. (마태 24:29) 사람들은 하늘과 외계에 침입하여 사물의 정상적인 균형을 깨뜨렸읍니다.

      71. (ㄱ) 바다는 어떻게 위협을 주는 존재가 되었으며, 대기권이 어떻게 악영향을 받았읍니까? (ㄴ) 1970년에 ‘런던’에서 발행된 「메디칼 뉴우스 트리뷴」지는 어떠한 경고를 실었읍니까?

      71 이전에는 숨겨진 영역이었던 바다도 이제는 위협을 주는 영역이 되었읍니다. 바다에는 무방비 상태의 육지 거민들에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미사일’을 해저에서 발사하는 최신식 장비를 갖춘 인공 잠수함이 많습니다. 이에 부가하여, 생명을 파괴하는 폐기물이 깊은 바다에 쌓이기 때문에 바다는 오염되고 있읍니다. 바다는 지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인 중동의 사해와 같이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읍니다. 동시에, 육지와 바다 위에 있는 대기권은 공장과 자동차, 대륙과 대양을 횡단하는 비행기에서 나오는 치사적인 배기 ‘가스’의 증가로 오염되고 있읍니다. ‘런던’(영국) 「메디칼 뉴우스 트리뷴」지가 1970년 3월 27일호에서 “1984년까지는 지구가 사멸할 수 있다”는 경고를 표제로 실은 것은 어느 정도 올바른 선견지명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

      72, 73. (ㄱ) 지구라는 혹성 자체가 아니라면 무엇이 파괴될 것이며, 어떻게 파괴될 것입니까? (ㄴ) 메시야에 관한 어떠한 표적이 19세기 전에 주어졌으며, 그러나 그분은 ‘파로우시아’ 기간 중에 어떠한 징조가 보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72 그러나 이 지구는 결코 인간의 핵전쟁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는 결코 “막을 내린 위대한 혹성 지구”라고 불리우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의 창조주께서는 지구가 결코 인간 생명을 포함하여 어떠한 피조물의 생명도 없는 곳이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파괴될 것은 지상의 현 국제적 사물의 제도입니다. 그것의 파괴는 메시야 왕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휘하에 있는 거룩한 천사들 모두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올 것입니다. 회의적인 ‘유대’인들은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계실 때에 인자라고 불리운 예수께 그분이 참으로 약속된 메시야라는 증거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어 달라고 요청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지적인 표적 즉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땅 속에 사흘 동안 계시다가 세째 날에 죽은 자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셨을 때에 그 표적이 주어졌읍니다. (마태 16:1-4; 12:39, 40) 그러나 이제, 그분이 영으로 보이지 않게 계시는 ‘파로우시아’ 기간 중에 지상의 거민들은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다음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73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 24:30.

      74, 75. (ㄱ) 마태복음 24:30에서 ‘오심’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며, 그 ‘오심’은 어떻게 성취됩니까? (ㄴ) ‘하늘의 징조’에 관한 이 예언은 ‘다니엘’의 어떠한 예언과 관계가 있읍니까?

      74 이것은 그분의 ‘파로우시아’의 시작 혹은 영으로서의 도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창세로부터 ··· 없었”던 “큰 환난”시에 그분의 “오심”(희랍어: ‘에르코메논’)을 가리킵니다. 그분의 ‘오심’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보이지 않게 오시는 것, 그분이 이 땅에 장기적인 주의를 돌리고 또한 파괴적인 위력을 가진 그분의 능력을 땅에 뻗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능력이 인간들로부터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대표자로 행동하시는 영화롭게 되신 인자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언자 ‘다니엘’이 본 하늘의 징조와 관계 있으며, 그분은 그것을 이러한 말로 묘사하십니다.

      75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다니엘 7:13, 14.

      76. (ㄱ) ‘다니엘’의 그 환상은 언제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까? (ㄴ) 모든 족속은 인자가 ‘오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며, 그들의 이기적인 통곡에 누가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까?

      76 ‘다니엘’의 그 환상은 기원 1914년 이래 영적 하늘에서 성취되어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정하신 때에 영화롭게 되신 인자는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하여] 큰 ‘바벨론’과 이 땅의 호의적이 아닌 국가들에 대하여 그분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오십니다. 그들을 대하여 그분이 오시는 증거를 그들이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 증거가 그들에게 ‘하늘의 징조’로 나타날 것입니다. 임박한 절멸에 직면하여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의 남은 자와 양같은 자들의 “큰 무리”는 모두 큰 ‘바벨론’과 그의 애인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그들은 두려움에 질린 땅의 모든 족속과 함께 이기적인 통곡에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통치하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의 우편으로 모아져 있을 것입니다.—계시 7:9-17; 마태 25:31-40.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천사들이 모음

      77. (ㄱ) 그 때까지는 모으는 어떠한 일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며, 언제 이후로 모아질 것입니까? (ㄴ) 모으는 이 일은 어떻게 “큰 나팔 소리”에 의한 것 같이 수행되었읍니까?

      77 그 때까지는 예수께서 그 다음에 설명하신 일이 완성될 것입니다. 즉,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 24:31)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천사들이 모으는 이 일은 그분의 ‘파로우시아’중에 진행되어 왔읍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큰 ‘바벨론’의 속박에서 떠나 하나님께서 주신 지상의 영적 토지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종전후 첫해인 1919년이었으며, 이 일은 기원전 537년에 ‘유대’인 남은 자들이 ‘바벨론’에서 고토로 돌아온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하늘에 건설되었다는 그리고 그들이 천국 편에 굳게 서서 전세계에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해야 한다는 선포가 그 때 이후로 “큰 나팔 소리”와 같이 울려 퍼졌읍니다. 좋은 소식의 이 발표는 “사방에서” 나팔에 의한 것같이 큰소리로 전해졌읍니다. 이 발표는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들렸읍니다.

      78. (ㄱ)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천사들이 모으는 이 일은 특히 어떠한 때에 모든 사람에게 분명해져 왔읍니까? (ㄴ) 특히 누가 그러한 모으는 일을 의식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하여 왔읍니까?

      78 인자의 ‘파로우시아’중에 그분을 섬기는 천사들은 “큰 나팔 소리”의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음색과 일치하게 지구상의 모든 방향에서 그분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모아왔읍니다. 이 모으는 일은 모든 사람이 보기에 분명하였으며, 특히 1919년 9월 1-8일에 열린 ‘만국 성경 연구회’ 대회로부터 시작하여 1973년 중에 전세계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승리”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대회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대규모 대회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1973년 2월 1일 영문 「파수대」 94, 95면 전세계 대회에 대한 발표문 참조.) 특히 “큰 무리”는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중에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천사들이 모으는 일을 의식하고 있으며 그들도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 편에 서서, 모아진 ‘택하심을 받은 자들’과 함께 모이며 일합니다.

      79. 지금까지 예수의 예언의 성취로 보아 땅의 족속들의 어떠한 감정의 표현이 가까왔음이 분명합니까?

      79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예수의 예언의 지금까지의 성취로 볼 때에, 그분의 제자들은, “땅의 모든 족속들”이 영화롭게 되신 인자의 손에서 자기들이 받는 위협에 대해 “통곡”할 때가 매우 가까왔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것이 가까왔음을 확실히 알게 하는 비유

      80. “큰 환난”이 위험하게 가깝다는 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께서 그분의 예언의 이 중대한 시점에서 하신 어떠한 말씀에 유의할 필요가 있읍니까?

      80 우리는 현존하는 전체 “사물의 제도”에 대한 “큰 환난”이 돌발할 정확한 해의 날과 시간을 알 필요는 없읍니다. 지금 그 때가 위험하게 가깝다는 것을 알려면 예수께서 이 중대한 시점에서 그분의 예언 가운데 말씀하신 바에 유의하기만 하면 됩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 24:32-35.

      81. 이 세대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징조”가 완성될 때가 가깝다는 것을 어떠한 증거를 보고 알 수 있읍니까?

      81 1914년에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을 본 이 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을 알기 위하여 예수의 예언이 얼마나 더 성취되는 것을 보아야 합니까? 우리가 무슨 증거를 더 원하겠읍니까? 우리는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이래 지상에서 발생해 온 일들의 의미에 대하여 불안한 무지 상태에 방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성있고 이해력있는 성서 연구생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완성될 때가 가깝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마태 24:3.

      82. 예수께서는 그분의 ‘파로우시아’중에 세계 사건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까?

      82 이것 때문에 우리는 침울합니까? 이것이 현재의 생활에서 모든 즐거움을 빼앗아 갑니까? 그렇게 해서는 안되며, 그렇지도 않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자기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기간 중의 세계 사건들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야 할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의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니라.”—누가 21:25-28.

      83. 그러므로 지금은 ‘택하심을 받은 자들’과 “큰 무리”가 어떻게 할 때가 아니며 구출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83 이 세대의 사람들은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는 것을 보아 왔읍니까? “이런 일”이 기원 1914년 이래 수십년 동안 발생해 온 것을 보아 왔읍니까? 우리는 그러한 것을 보아 왔읍니다. 그러므로 국제적 “곤고” 때문에 머리를 숙일 이유가 없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하여 큰 ‘바벨론’이 강요하는 종교적 노예 상태 하에 더 이상 매어 있을 이유가 없읍니다. 지금은 지존하신 하나님이시며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자유로운 숭배자와 같이 일어날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절망하여 땅을 내려다 보기에 적절한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머리를 하늘로 들고 인류를 위한 가장 확신을 주는 장래에 대한 증거를, 예수의 예언을 포함한 성경의 밝게 비춰주는 빛에 따라 살펴 볼 때입니다. 이러한 증거의 의미는 오해의 여지가 없읍니다. 구출은 실로 가까왔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과 그들의 동료 숭배자들의 “큰 무리”가 바로 앞에 있는 “큰 환난”을 생존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우리가 그 “큰 환난”에서 나올 때에 우리는 죽음을 가져오는 현재의 사물의 제도의 회복 불가능한 폐허를 뒤로 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가 영광스럽게 열려질 것입니다!

      [각주]

      a 다니엘 9:26, 27은 이러하다. “그리고 62주 후에 메시야가 끊어질 것이다. 그에게 죄는 없다. 그리고 장차 올 통치자와 함께 그는 그 도시와 성소를 멸망시킬 것이다. 그들은 홍수로 멸망될 것이며 정해진 전쟁의 끝에 이르러 황폐될 것이다. 그리고 한 주 지나면 많은 사람을 위한 언약이 확정될 것이며, 그 주의 절반에 나의 희생과 헌주(獻酒)는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성전에는 황폐의 미운 것이 임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끝에 그 미운 것이 종말을 고할 것이다.”—‘차알즈 톰슨’역 「칠십인역 성서」(영문).

      b ‘요세퍼스’ 저 「유대인 전쟁사」 제 2권 19장 1-7절 참조.

      c 「파수대」 1971년 4월 1일호 162면 30, 31항과 비교. 예수께서 마태복음 24:36의 같은 예언에서, 그분이 이 사물의 제도를 멸하시기 위하여 오실 “그 날과 그 때”를 어떠한 피조물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으므로, 그 “후에 즉시”라는 표현이 ‘예루살렘’의 멸망 후 얼마나 짧은 기간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19세기 후에 사는 우리는 그러한 짧은 표현이 그러한 긴 기간에 다리를 놓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마가’의 기록에 나오는 평행 귀절에 “후에”라는 말에 “즉시”라는 부사가 사용되어 있지 않음에 유의한다.—마가 13:24.

  • 살아서 “징조”를 본 “종”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17장

      살아서 “징조”를 본 “종”

      1. 하늘의 빛의 창조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떠한 면에서 자기와 같기를 원하셨읍니까?

      인간의 창조주는 시간 엄수자이십니다. 그분은 인간도 시간을 지키도록 의도하셨읍니다. 그분의 영감받은 말씀 제1장에 나오는 창조 기사에서 이러한 기록을 볼 수 있읍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니라].” (창세 1:14-16) 그러므로 성서는 인간의 존속 기간에 대해 시간을 재며 계절과 날과 해로 그렇게 합니다.

      2, 3. (ㄱ) 성서는 기원 1914년까지 이르는 시간을 어떻게 계산하게 해 주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자기의 ‘파로우시아’중에 발생할 “큰 환난”에 그분이 오시는 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 시간에 대한 성서 기록은 ‘에덴’에서 인간이 창조된 이래 성서 연대가 세속 역사의 믿을 수 있는 연대와 연결된 때까지 이어져 있읍니다. 연대적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 성서 예언은 더 나아가 미래에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간섭없이 이방인이 인류를 지배하는 “일곱 때”의 끝 즉 기원 1914년까지의 때를 계산하게 해 줍니다. (다니엘 4:16, 23, 25, 32; 누가 21:24) 그 해는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가 시작된 때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파로우시아’중에 일어날 유례없는 “큰 환난”에 대하여 예언하셨지만 그 전례없는 고난의 때가 전체 인류 세상에 임할 특정한 날과 시각을 정확히 지적하지는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희랍어: ‘에르케타이]’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태 24:36-42; 마가 13:32, 33.

      4. 그러므로 예수의 ‘파로우시아’중의 인류 사회 상태는 누구의 시대와 같을 것이며, 특히 어느 때와 같을 것이 예언되었읍니까?

      4 이 예언에 의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중 지상의 남녀의 사회 상태는 세계적인 대홍수가 있기 전 ‘노아’ 시대와 같을 것입니다. 분명히 “‘노아’의 때”라는 예수의 말씀은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방주를 준비하고 있던 “홍수 전”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대홍수 전 사람들이 홍수가 그들 세대에 임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방주를 준비하는 이 특정한 “‘노아’의 때”는 대홍수 전 100년 중 곧 ‘노아’의 나이 500년대의 어느 기간에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대홍수가 ‘노아’의 나이 육백세 되었을 때에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록은 이러합니다. “‘노아’가 오백세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세 5:32; 7:11.

      5. (ㄱ) 또한 방주를 건축하는 데 소요된 “‘노아’의 때”는 어떠한 사실로 볼 때 한계가 있는 기간입니까? (ㄴ) “‘노아’의 때”와 비교해 보면 ‘파로우시아’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음이 분명합니까?

      5 그 때에 관해 한계선을 긋는 또 다른 것은 ‘노아’가 자기의 아내와 세 아들과 “자부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점입니다. (창세 6:18) 이것은 방주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노아’의 세 아들이 결혼하였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 특이한 일의 진행을 주시할 수 있었던 홍수 전 기간은 세계적 대격변이 있기 전 약 오십년으로 줄어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심각한 태도로 주시하도록 사람들에게 허락된 “때”는 상당한 기간이었읍니다. “인자의 임함도 그러”할 것이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가 긴 기간이며 단순히 특정한 날 어떤 시각에 “큰 환난”이 시작되는 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파로우시아’에 관한 그러한 견해와 일치하게, 누가복음 17:26에 나오는 예수의 이와 유사한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그러나 ‘노아’가 방주를 건축한 시대는 서서히 진행되어 마침내 ‘노아’와 그의 직계 가족이 그 거대한 건조물에 들어간 것과도 같이, 보이지 않는 ‘피로우시아’는 한동안 계속되고 세계적인 “큰 환난”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6. (ㄱ)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노아’ 시대는 어떠한 면으로 그분의 ‘파로우시아’의 때와 유사할 것입니까? (ㄴ) 그러면 사람들의 잘못은 무엇이었읍니까?

      6 ‘노아’ 시대에 땅은 폭력으로 가득차 있었고 파멸에 이르고 있었읍니다. (창세 6:11, 12) 물론 그것은 참으로 악하고 그릇된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노아’의 때와 자기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시의 유사점을 설명하실 때에 그것을 지적하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느니라].” (누가 17:27) 언급된 그러한 일 자체는 올바르고 적절한 것이었읍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이었읍니까? 그들이 그러한 평범한 일상사에 몰두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노아’의 소식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노아’가 믿음의 증거로 방주를 건축함으로써 자기의 소식을 절대로 참된 것으로 지지하는 데 대해 진지하게 생각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읍니다. (히브리 11:7) 사람들의 잘못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지적하여 예수께서는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읍니다.—마태 24:39.

      7. (ㄱ) 홍수에서 멸망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단죄되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1914년 이래 사람들이 어떻게 동일한 특징을 나타내 왔읍니까?

      7 세계적인 홍수에서 멸망된 사람들은 불의하게도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단죄를 받았읍니다. 그들은 불경건하였읍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읍니다. (베드로 후 2:5)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는 예수의 예언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파로우시아’ 즉 보이지 않는 “임재”중에 오늘날 사람들의 행하는 일과 태도를 조사하여 보도록 자극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동일하게 믿음이 없음을 보십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평범한 일상사에 동일하게 몰두하고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에 비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동일하게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십니까? 기원 1914년에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육십여년 동안 여호와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과 근년에 나온 양같은 다른 사람들의 “큰 무리”가 하나님의 설립된 왕국과 다가오는 “큰 환난”에 대하여 전세계적으로 선포하여 왔지만, 일반 사람들은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읍니다.

      8. (ㄱ) ‘노아’와 그의 가족은 마지막 주간 중 어느 날에 방주로 들어갔으며, 다음에 무슨 일로 일이 매듭졌읍니까? (ㄴ)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는 일이 없도록 경고가 됩니까?

      8 ‘노아’ 시대에, 보존되어야 했던 동물과 새들의 표본이 홍수 전 마지막 주간에, 방주 안에 들여 보내졌읍니다. 그 중대한 주간의 마지막 날 즉 기원전 2370년 둘째 달(‘노아’의 달력) 17일에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도 방주에 들어갔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창세 7:1-16) 이렇게 문을 닫은 조치는 방주 안에 있는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는 구원을 의미하였고 세상 일에 몰두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멸망을 의미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오늘날 자기의 ‘파로우시아’ 혹은 “임재”의 때에 살고 있는 자기의 모든 제자들에게 경고의 본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불경건한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의 이기적인 방심과 믿음없는 냉담을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예수의 예언의 성취에 따라 주위를 기울이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세상과 함께 멸망될 수 밖에 없읍니다. 파멸적인 “큰 환난”은 부주의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알 수 없는 날과 때에 느닷없이 닥칠 것입니다.

      개인에 따라 생명 아니면 멸망에 이름

      9. (ㄱ) 예수께서는 구원과 멸망이 선택적일 것임을 어떻게 지적하셨읍니까? (ㄴ) 독수리와 같이 예리한 눈을 가지는 것이 어떠한 면으로 중요합니까?

      9 그때에 구원과 멸망은 선택적일 것입니다. 심지어, 들에서 농사를 짓거나 집에서 맷돌을 가는 것과 같은 세속일을 함께 하는 가까운 동료 가운데서도 선택적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태 24:40, 41) 이 예언을 하시기 몇주일 전에 예수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을 때에 그분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주여 어디오니이까?” 하고 질문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누가 17:34-37) 그러므로 구원을 위하여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들은 독수리와 같이 영적으로 예리한 눈을 가지고 여호와께서 그분의 안전 장소에 마련하시는 영적 연회에 모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멸망으로 버려지는 사람들은 예수의 예언의 성취에서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고 냉담한 태도로 이기적인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적인 수단으로 자기들의 인간 영혼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다가 돌연한 “큰 환난”에서 그들의 영혼을 상실할 것입니다.

      10.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자기 일에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떻게 강조하셨읍니까?

      10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을 포함하여 자기의 일에 몰두한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비슷한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비유의 교훈을 강조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희랍어: ‘에르케타이’]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 24:42) 만일 우리가 기원 1914년 이래의 주의 ‘파로우시아’를 믿는다면, 그릇된 일에 열중하다가 불시에 “큰 환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깨어 있고 경계해야 합니다.

      11, 12. (ㄱ)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큰 환난”시에 여호와의 집행관으로 오시는 정확한 때를 알리지 않으셨읍니까? (ㄴ) 밤에 도적의 침입을 당하듯이 불시에 “큰 환난”을 당하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의 비유는 지적합니까?

      11 주 예수께서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후에도 없을 큰 환난’에 여호와의 집행관으로 오실[희랍어: ‘에르케타이’] 특정한 해, 특정한 달의 정확한 날과 시간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정확한 때를 알려주심으로 제자들 중 아무도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적인 일을 추구하는 데 몰두하다가, 이미 알고 있는 정확한 시간 직전에 경건의 모양을 보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봉사에 분주해지는 일이 있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계속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줍니다. 도적과 같이 “큰 환난”이 불시에 닥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순결한 숭배에 활동적이 아니라면 영원한 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12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밤의]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희랍어: ‘에르케타이’]”—마태 24:43, 44.

      13. (ㄱ) 주께서 여호와의 복수를 집행하기 위하여 오시는 정확한 때를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으신 데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읍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이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13 이처럼 여호와의 복수를 집행하기 위하여 즉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사물의 현 제도를 처벌하기 위하여 주께서 오시는 정확한 때를 적자들에게 확실히 알리지 않으신 데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읍니까?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항상 언제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계속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바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에 항상 열심인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기회주의자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그들이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고 마침내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일을 마치도 언제나 전적으로 수행해 오기나 한 것처럼 분주해야 한다고 생각될 때까지 기다립니까? “인자가 오”시는 것은 “생각지 않은 때”이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우리 주께서 승인하시는 숭배와 봉사에 활동적이어야 합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14. 예수께서는 어떠한 질문을 제기하심으로써, 자기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를 결심할 수 있게 하셨읍니까?

      14 여기에서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주의 깊음과 준비태세에 관하여 언급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제, 여호와의 메시야께 대한 개인적인 전념에 있어서, 그리고 메시야를 섬기는 데 주의깊은 분별, 선견지명, 통찰력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면에서 제자들 각자에게 도전이 되는 질문을 제기하셨읍니다. 제자들은 각기, 다음과 같은 주인의 질문을 듣고 자기가 어떠한 종류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지를 결심할 수 있었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마태 24:45.

      15. (ㄱ) 예수께서는 충실성을 보일 종에 대하여 왜 질문을 제기하셨읍니까? (ㄴ) 그 종이 누구인가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기며, 「마태복음」에 관한 ‘메이어’의 저서는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5 예수께서는 자기의 아버지의 말씀에 있는 영감받은 예언 통하여, 참다운 그리스도인 믿음과 봉사에서 반역적으로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을 분명히 아셨으므로, 그분이 제자들 각자에게 영향을 주는 이 예리한 질문을 제기하신 것은 매우 적합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분은 이 질문 형태로, 특정한 사람, 즉 어떤 제자 개인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그 분은 제자들로 구성된 한 반열을 언급하신 것입니까? 신학박사 ‘에이치. 에이. 더블류. 메이어’ 저 「마태복음의 비평 및 해석 편람」(1884년판)의 한가지 설명은 이러합니다. 즉, 그 책 429면에서 “누구뇨”라는 표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기에 암시된 준비 태세의 필요성을 고려함. 그 추리 자체는 비유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즉 ‘도울로스’[종]는 주께서 자기의 교회의 인도자들로 임명하신 제자들을 대표한다. 그분의 교회에서 그들은 충실(고린도 전 4:1)과 주의깊은 분별을 나타내야 한다. ···” 그러나, 이처럼 “종”을 열 두 사도로 제한하는 것은 사도승전 즉 감독 직분의 계승, 성직 수임(授任)의 종교적 의식에 의한 주교(감독) 직분 계승의 교리를 인정하는 견해일 수 있읍니다.

      16. “종” 반열이 제자들의 전체 집합체인지 아니면 감독자들만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마가복음 13:34-36은 어떻게 말합니까?

      16 그러나,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영적 감독자들을 포함한) 제자들의 전체 집합체라는 견해를 받아들일 때에, 역사가 알려주듯이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엄청난 해악과 압제를 초래한 “감독 직분 계승”과 같은 교리는 배제됩니다. 제자 ‘마가’가 이 문제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묘사한 방식은, 제자들의 전 집합체가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마가복음 13:34-36을 보면 이러합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희랍이: 에르케타이]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17.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종”에 비기신 것은 왜 불쾌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노예의 신분은 무엇을 의무화합니까?

      17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종”에 비기신 것이 다소 불쾌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그와 같이 분류하는 데는 합당한 근거가 있었읍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 전서 6:20과 7:23에 이러한 말이 있읍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사도 ‘바울’의 그러한 말 외에도,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썼읍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 전 1:18, 19) 이와 일치하게, 그리스도의 이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는 소개의 말로 두번째 편지를 시작하였읍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라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겸연쩍어 하지 않았읍니다. (빕립보 1:1) 그리고 주의 이부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는 말로 자기의 편지를 소개하였읍니다. (유다 1) 그러한 기초를 가진 종 혹은 노예의 신분은 그리스도인의 충실성을 더욱 더 의무화합니다.

      18. 고대 ‘이스라엘’은 왜 여호와의 종들로 구성된 민족이었으며, 어떻게 그 분은 그 모든 종들을 일 개인에 비기셨읍니까?

      18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학대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하고 이의를 제기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떠한 학대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노예 상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읍니다. (예레미야 2:14)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충실한 종으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스라엘’ 나라는 이방인들에게 “포로”가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고대 ‘애굽’에서 구출하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여호와의 종들로 구성된 민족이었읍니다. 그 분은 ‘애굽’의 ‘바로’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특별한 권리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실 때 이 선민을 일 개인에 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애급 4:22, 23.

      19.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민족을 자기의 일개 종으로 비겨 말씀하셨읍니까?

      19 칠세기 이상이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마치 일 개인으로서의 자기의 종인 것처럼 그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사야 41:8, 9) 이 복합적인 “종”이 많은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창조주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증인들, 신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 여호와가 말하노라 ···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증인들, 신세]이라.”—이사야 43:10; 44:1-8; 또한 42:19; 44:21; 48:20; 49:3; 예레미야 30:10.

      20. 육적 ‘이스라엘’은 언제 배척되었으며, 누가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이사야 43:10의 말씀은 왜 그 ‘이스라엘’에게 적용됩니까?

      20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신 지 오십일 후인 기원 33년 오순절에, 할례받은 육적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약 50-52년에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로마’령 ‘갈라디아’ 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 (갈라디아 6:15, 16) 참 그리스도인 회중은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에 관한 그 법칙에 따라 질서있게 행한 조직이었으며, 이제, 육적 ‘이스라엘’은 배척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주총자들의 회중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었읍니다. 그것은 영적 ‘이스라엘’이었읍니다. 연합된 회중이었던 그 회중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종”이었읍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들],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라는 이사야 43:10의 말씀은 영적으로 그들에게 적용될 수 있었읍니다.

      21. (ㄱ) 예수께서는 그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셨지만, 그 복합적인 “종”이 누구인지 아셨읍니까? (ㄴ) 그 “종” 반열이 언제 출현하였는지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1 예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하셨지만 이 “종”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셨읍니다. 분명히 예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 “종”, 그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염두에 두셨읍니다. 그 복합적인 “종”을 택하는 데 실수가 없을 것이었읍니다. 그 분은 자기 피의 가치로 하나님의 그 ‘이스라엘’을 자기의 종으로 사셨으며, 예언 중에 말씀하신 비유에서 그 분은 그 ‘이스라엘’을 복합적인 “종”으로, 즉 “충성되고 지혜있”음을 증명할 “종”으로 언급하실 수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종”을 자기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관한 예언에서 말씀하셨으므로 그 복합적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1914년 이래 그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 기간 중에 처음으로 존재하게 되었읍니까?

      22. (ㄱ)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왜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기간 중에 처음으로 존재할 수 없었읍니까? (ㄴ) “종”이 양식을 공급해야 하는 “집 사람들”은 누구였읍니까?

      22 아닙니다. 왜냐 하면 예수의 비유는 “종”의 주인이 여행길에 오르는 것 즉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는 사람으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마가 13:34) 그러므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사람입니다. (마태 24:45) 그 복합적인 “종”의 “주인”이,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라는 교훈을 “종”에게 남기고 여행길에 오른 것은 천 구백여년 전, 그 분이 승천하실 때였읍니다. (마태 28:16-20) “집 사람들”은 주인의 가족이 아니라 그의 “가정의 하인들”(‘에이치. 에이. 더불류. 메이어’) 혹은 그의 “집의 하솔”(신 영어 성서)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진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과 마찬가지로, 종들이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종들의 한 집합체였으며 동일한 “주인”에게 모두 순복하였읍니다. 모두는 “충성되고 지혜있”어야 하였읍니다.

      23. (ㄱ) 그러므로 그 복합적인 “종”은 언제부터 존재하였읍니까? (ㄴ) 그러한 “종”이 그의 주인의 ‘파로우시아’의 “징조”를 살아서 보았음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23 예수의 비유는 기원 33년 그 분이 떠나실 때에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복합적인 “종”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 마침내 144,000명에 이르게 될 영적으로 출생하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의 회중은 그때부터 존재하였읍니다. (계시 7:4-8; 14:1-3)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1914년 이방인의 때의 끝에 “주인”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기간이 시작되었을 때에 지상에는 아직도 이 “종” 반열의 남은 자가 있었읍니다. 따라서, 그 복합적인 “종”은 주인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의 “징조”를 살아서 보았읍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라

      24. 그 “종”은 무엇을 하도록 임명되었으며, 그 일에 왜 “집 사람들”이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까?

      24 이 비유에서 “종”은 장사 기금으로 쓸 은 “달란트”를 받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 “달란트”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명된 “종”은 때를 따라 그의 동료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줄 특별한 책임이 있었읍니다. 임명된 “종”에게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주인의 집에서 일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양식이 정기적으로 필요하였읍니다. 만일 주인의 집 사람들의 수가 많다면, 임명된 “종”은 그들 모두에게 개인적으로 가서 각자에게 직접 식사를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 현명한 수단으로, 그 “종”은 양식을 충분히 장만하고 모든 “집 사람들” 혹은 “집의 하솔”에게 양식이 제공되게 조처할 것입니다. “집 사람들”의 일부는 그들의 동료 집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 사람들이 서로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읍니다.

      25. ‘때에 알맞게’ 언제 누구에게 “종” 반열이 “양식”을 나눠주기 시작하였으며, 그 날 어떠한 결과가 있었읍니까?

      25 기원 33년 오순절에 ‘때에 알맞는’ 영적 “양식”이 마련되자마자, 임명된 “종” 반열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영의 감동을 받아 그 “양식”을 나눠줌으로써 “충성되고 지혜 있”음을 입증하였읍니다. 약 120명의 제자들로 된 회중이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하여 각기 말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작은 원래의 회중은 그 “일”을 자기들 속에만 간직하지 않았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는, 영적으로 굶주린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 “일”을 듣기 위하여 모였읍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 영적으로 굶주린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이제 시효가 지난 오순절을 축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온 개종자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을 솔선하였읍니다. 마음으로 그들은 메시야 “주인”의 “집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였으며, “집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양식을 공급받을 필요가 있었읍니다. 바로 이 ‘알맞는 때’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였읍니다. 그 결과 그들 중 약 삼천명이 신자가 되었고 침례를 받았으며, 성령의 선물을 받았읍니다. 이제 그들은 참으로 주인의 “집 사람들”이었지만 아직도 더 많은 양식을 필요로 하였읍니다.—사도 2:1-42.

      26, 27. (ㄱ) 양식을 공급하는 일이 확대되었을 때, “집 사람들”이 될 가망성 있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누가 사용되었읍니까? (ㄴ) 이것은 주인께서 떠나시기 전에 주신 어떠한 명령과 일치하였읍니까?

      26 그 후 삼년 반 이내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양식을 공급하는 노력은 “집 사람들”이 될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장되었읍니다. 이들은 “모든 족속” 즉 비‘유대’인 곧 이방인 가운데서 나오게 되어 있었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일에 솔선하도록 사용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에 의하여 지중해 동쪽 해안에 있는 ‘가이사랴’에 파견되어 그 곳에서 이태리 백부장 ‘고넬료’와 그가 자기 집에 불러 모은 관심가진 사람들을 개종시켰읍니다. (사도 10:1에서 11:18) 그리하여 이방인들이 메시야이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집 사람들”이 되는 문이 활짝 열렸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집 사람들”이 될 가망성이 있는 이들에게 그들이 영적 ‘이스라엘’인들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영적 양식을 가지고 가서 그들을 먹여야 하였읍니다. 이들이 영적 “집 사람들”이 된 후에 그들도 또한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가담해야 하였읍니다. 이것이 주인께서 떠나기 얼마 전에 주신 다음과 같은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읍니다.

      27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 28:19, 20.

      28. (ㄱ) 오늘날도 먹을 수 있는 영적 양식의 어느 영속적인 부분이 기원 제 1세기에 마련되었읍니까? (ㄴ) 오늘날 우리에게는 “종” 반열이 처음에 먹은 영적 양식이 필요합니까?

      28 영적 급식 사업에 영속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마태복음」에서 「계시록」에 이르는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신뢰할 수 있는 스물 일곱권의 책을 썼읍니다. 제 1세기의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그리스도인 “집 사람들”에게 제공한 영적 양식의 이 달콤한 부분은 현 이십세기의 그리스도인 “집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용합니다. 이 부분까지 포함하여, 완전한 성서 즉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된 설흔 아홉권과 제 1세기 일반 희랍어로 된 스물 일곱권으로 이루어진 66권의 영감받은 책이 있게 되었읍니다.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성경 뿐만 아니라, 전체 성서가 필요합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제 1세기에 출현하였을 때, 그 반열에게는 양분이 될 기록으로 된 영적 양식으로서 영감받은 히브리어-아람어 성경만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인 “집 사람들”이 당시 최초로 양분을 취한 동일한 원천에서 오늘날 우리도 양분을 취할 필요가 있읍니다. ‘예루살렘’의 원래 회중은 ‘히브리’어를 사용하였고 읽었읍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히브리’어 성경의 번역판이 필요합니다.

      29. (ㄱ) 기원 제 1세기 후, “종” 반열의 급식 사업은 어떻게 계속되었읍니까? (ㄴ) 십구세기 후반에는 급식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읍니까?

      29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어떻게 존속하였으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에 어떻게 여러 세기 동안 일해 왔는지에 대하여는, 뚜렷한 역사적 기록이 없읍니다. 분명히 한 세대의 “종” 반열이 다음 세대에게 양식을 공급하였을 것입니다. (디모데 후 2:2)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성서의 영적 양식을 사랑하고, 단지 거룩한 서적으로 간주하고 읽음으로써 즐거움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양분을 섭취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주일 학교와 교회들과 관계없는 성경 연구반들이 여러 곳에 조직되어 성경의 기본 진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진보를 보았읍니다. 이들 성경 연구생들 가운데 성실하고 비이기적인 사람들은 영적 양식의 이 중요한 부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를 열망하였읍니다. 그들은 “때를 따라” 필요한 영적 “양식”을 “집 사람들”에게 주도록 임명된 “종”의 충실한 정신을 나타냈읍니다. 그들은 당시가 올바르고 알맞는 때라는 것과 양식을 공급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데 “지혜”로왔읍니다. 그들은 양식을 공급하고자 노력하였읍니다.

      30. (ㄱ) 그 때에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의 교리와 관련하여 어떠한 위험이 존재하였으며, 그것의 어떠한 옹호자가 ‘알맞는 때’에 일어났읍니까? (ㄴ) 「파수대」지의 편집자는 1881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대하여 무엇을 발표하였읍니까?

      30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은 성서의 기본 교리 중 하나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영적 식탁에 제공된 이 중요한 음식물이 고등 비평과 진화론의 신봉자들에 의하여 제거될 위험이 증대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제 알맞는 때’라고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때에, 그리스도의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의 비타협적인 옹호자가 나타났읍니다. 그것은 성서 애호자들을 위한 아주 새로운 잡지인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의 형태로 출현하였읍니다. 이 잡지의 창간호는 1879년 7월호였는데, 6,000부가 발행되었읍니다. 편집겸 발행인은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어그’의 성경 연구 모임의 일원인 ‘차알즈 테이즈 러셀’이었읍니다. 이 학구적인 그리스도인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관한 예수의 비유에 유의하고 1881념 11월호 「파수대」(영문) 5면에서 그것에 관한 자기의 이해를 발표하였읍니다. “포도원에서”라는 기사의 마지막 4항과 5항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몸의 모든 성원이 직접 간접으로 믿음의 식구에게 때에 맞게 식사를 제공하는 축복받은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집 사람들을 맡아” 때에 맞게 식사를 제공하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누구입니까? 성별의 서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성별된 종들의 그 “적은 무리”—그리스도의 몸—믿음의 식구에게 때에 맞게 식사를 개인적으로 또한 집단적으로 제공하는 집합체 전체—신자들 단체가 아닙니까?

      주께서 오실(희랍어, 엘톤) 때에 그 일을 하는 종(그리스도의 몸 전체)은 복이 있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그가 모든 것을 상속하리라.”

      31. (ㄱ) ‘시이. 티이. 러셀’이 자신을 가리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라고 주장하였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ㄴ) 그가 그 “종” 반열의 충실한 일원으로 봉사하였음을 어떠한 기록이 증명해 줍니까?

      31 이로 보건대 「시온의 파수대」지의 편집겸 발행인은 자기 자신이 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라는 일체의 주장을 부정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결코 그러한 주장을 한 일이 없읍니다.a 그러나, 그는 1916년 10일 31일에 사망하기까지 「파수대」지를 계속 편집하였읍니다. 그는 1881년에 ‘시온의 왙취 타워 협회’를 조직하고 1884년 12월에 ‘펜실베이니아’ 주 법에 따라 그 협회를 법인체로 만들었읍니다. 그는 또한 1886-1904년에 「성경 연구」 전 6권을 저술하였고, 성서의 여러 가지 제목에 관한 많은 소책자를 발행하였으며, 또한 1914년 1월에 상영되기 시작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창조의 사진극’을 제작하였읍니다. 그 후에 그것은 전세계에서 상영되었읍니다. 그는 세계 각처에서 수없이 여러 번 공개 강연을 행하였읍니다. 그는 미합중국을 횡단하는 마지막 공개 강연 여행중에 사망하였읍니다. 그가 1916년에 사망하기까지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데 있어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일원으로 사랑을 가지고 일하였음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읍니다.

      32. ‘러셀’의 사후에, 어떻게 그에 대한 종파적인 경향이 자랐으며, 그러나 이 경향은 언제 어떻게 정지되었읍니까?

      32 예수의 비유의 “종”이 단순한 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름부음받은 회중이므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시이. 티이. 러셀’의 사후에도 계속 일하였읍니다. 그러나, ‘러셀’에 대한 인식과 감사의 관념에 젖은 그의 동료 중 많은 사람들은 그를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의 성취라고 보았읍니다. 이러한 견해가 ‘뉴우요오크 브루클린’의 ‘만인의 설교단 회’가 1917년 7월에 발행한 책에 현저히 나타났읍니다. 이 책은 「종말을 고한 비밀」이라는 책으로서 「계시록」과 「에스겔」과 ‘솔로몬’의 「아가」에 관하여 해설하였읍니다. 발행자의 ‘페이지’에서 그 책은 ‘패스터 러셀’의 유작이라고 불리웠읍니다. 그러한 책과 종교적 태도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종파를 일으키려는 경향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1927년 초에 2월 1일자 2월 15일호 「파수대」(영문)에 “아들과 종” 및 “착한 종과 악한 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발행되면서 그러한 종파적인 경향이 정지되었읍니라. 이러한 기사들은 마태 24:45의 “종”이 복합적인 종임을 지적하였읍니다.—이사야 43:10-12.

      33. ‘러셀’의 저서와 「종말을 고한 비밀」의 재고가 처분되자 그리스도의 “집 사람들”에게 “양식”이 없었읍니까?

      33 그 후 1929년에 ‘러셀’ 저 「성경 연구」 6권 및 「종말을 고한 비밀」의 재고가 일반 사람들 가운데 모조리 배부되었읍니다. 그러면 이 때문에 주의 “집 사람들” 즉 “집의 하솔”에게 ‘때에 알맞는’ 영적 양식이 없었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렇지 않았음을 이제 살펴보겠읍니다.

      “복이 있”는 종

      34.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대하여 누가 질문을 제기하셨으며, 누가 어떻게 질문에 대답하셨읍니까?

      34 마태복음 24:45에서 예수께서는 주인의 “집 사람들”을 맡아 양식을 나눠주도록 임명된 “종”에 대하여 그리고 이 “종”이 어떻게 충성과 지혜로움을 증명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하시지 않았읍니까? 바로 다음 귀절(마태 24:46)에서 예수께서는 또한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주인이 올[희랍어: ‘엘톤’]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그 “종”은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하라고 주인에게 임명받은 일 즉 집 사람들에게 ‘때에 알맞게 양식을 나눠주’는 일을 계속함으로써 그의 주인에 대한 충성과 지혜를 증명하였읍니다. 이 결과 그의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종”은 커다란 행복을 얻게 되어 있었읍니다.

      35. (ㄱ) 일찌기 제 1세기에, “종” 반열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어떠한 소란한 기간을 생존하였으며, ‘요한’은 일세기 말에 무엇을 썼읍니까? (ㄴ) 이와 상응하여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 “종” 반열에 관한 어떠한 질문이 생겼읍니까?

      35 십구세기 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에 그 반열은 마태복음 24:4-22과 마가복음 13:5-20과 누가복음 21:8-24에서 예수께서 예언적으로 설명하신 소란한 기간을 생존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이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하여 멸망된지 25년 이상이 지난 후에 사도 ‘요한’은 「계시록」과 「복음서」와 세 편지를 썼는데, 이것들은 모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을 위하여 그리고 천적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읍니다. 기원 1914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남은 자들은 “[그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관한 예수의 예언의 완전한 혹은 최종적인 성취의 때에 들어갔읍니다. 기원 33년부터 기원 70년까지의 모형적 기간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예수께서 예언하신 사건들이 기원 1914년에도 발생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기원 33년과 기원 70년 사이에 “종” 반열에게 임한 일과 상응하여 발생할 어려운 일을 생존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생겼읍니다.

      36.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종” 반열이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기가 어떻게 어려워졌으며, 「파수대」지는 어떠하였읍니까?

      36 1914년 10월 4/5일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 제 1차 세계 대전은 이미 2개월 이상 경과되었었읍니다. 이 전쟁은 인류 세상에 뿐 아니라 주인의 “종” 반열에게도 새로운 것이었읍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기원 33년에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여러 해 동안의 특징이었던 예언된 “난리와 난리 소문” 및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 일보다 훨씬 큰 폭력과 파괴력을 수반하였읍니다. (마태 24:6, 7) 세계 대전의 상태와 제약 때문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때에 알맞게 양식’을 천적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계속 나눠주기가 매우 어려워졌읍니다. 그들에게 사태는 더욱 악화하여 마침내 집 사람들 중 다수가 형무소 혹은 영창에 갇혔고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역원들과 「파수대」의 편집부원들이 1918년 여름에 중형을 선고받고 ‘애틀란타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지는 ‘브루클린’에서가 아니라 원래의 발행지였던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어그’에서 계속 발행되었읍니다.

      37.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에 “종” 반열에게 어떠한 고통스러운 상태가 있었으며, 그에 관해 어떠한 질문이 일어났읍니까?

      37 1918년 11월 11일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에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상태가 있었읍니다. ‘왙취 타워 협회’ 본부와 국외 지부와의 국제적 통신이 두절 혹은 방해받고 있었읍니다. 성서 서적은 정부 당국의 금지령 하에 들어갔거나 사람들에게서 회수되었읍니다. 성서 책자를 발행하는 데 사용되던 인쇄소의 금속판은 어떠한 이유에선가 파괴되었거나 분실되었읍니다. 이제 주인의 “종” 반열 앞에는 어떠한 전망이 놓여 있었읍니까? 이 “종” 반열은 당시 열려진 전후 기간에 어떻게 하기로 결의하였읍니까?

      종의 주인이 검열할 때

      38. 당시 상황에 합당했던 검열의 때에 적절하게,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교파에 대하여 그리고 국제적으로 미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겼읍니까?

      38 의심할 여지 없이, 그 때는 주인의 “종” 반열을 검열할 때였읍니다.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그 때에 주인이 검열하기 위하여 오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을 말라기 3:1-5에서 예언하였읍니다. 물론, 그리스도교국의 종파적인 여러 교회는 스스로 전시의 기록,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종들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중대한 관계가 있는 공개적인 기록을 만들었읍니다. 그들은 당시 1919년까지의 그들의 최신 기록으로도, 그들 자신이 하늘에 계신 주이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합적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임을 증명할 수 있었읍니까? 재판관으로서 그 분은 그 이후 그 분이 그리스도교국의 수백가지 종파를 다루신 방식으로 자신의 판결을 나타내실 것이었읍니다. 이제,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리스도께 순종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은 성실하고 성서를 연구하는 그리스인들에게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들도 또한 하나님의 검열을 받게 되었으므로 주인께서는 그들에 대한 그 분의 결정이 어떠함을 보이셨읍니까?

      39. 예수의 비유에 의하면, 주인은 어떠한 정신으로 귀가하셨으며, 어떠한 목적을 염두에 두셨읍니까?

      39 예수의 비유에 의하면, 종을 임명한 주인은 어떻게 자기 집으로 돌아왔읍니까? 집을 파괴하기 위하여 크게 노기를 띠고 돌아왔읍니까? 아니면 즐거이 귀가하여 그 분의 부재 중에 어떠한 일이 진행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셨읍니까? 그 분은 집으로 평화롭게 돌아오셨읍니다. 그 분은 ‘아마겟돈’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돌아오시지 않았읍니다. (계시 16:13-16) 오히려 그 분은 자기의 집안 일이 올바른 상태에 있음을 확인하기를 원하셨읍니다. 자기의 임명을 받은 종은 임명한 일 즉 “집 사람들”에게 ‘때에 알맞게 양식을 나눠주’라는 일을 해왔읍니까? 주인은 검열을 행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40. 정기적으로 올바른 종류의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 결정의 근거였으므로, 돌아온 주인은 박해받고 미움받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무엇을 발견하였읍니까?

      40 양식 곧, 올바른 종류의 양식을, 때에 알맞게 제공하는 것이 문제였읍니다. 돌아온 주인은 바로 이것에 따라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면 국제적으로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 단체는 어떠하였읍니까? (마태 24:9) 기원 1919년까지 그들은 천적 주인의 “믿음의 식구” 즉 “집 사람들”에게 ‘때에 알맞게 양식’을 나눠주고자 노력하였읍니다. 그들은 박해자들과 전쟁에 몰두하는 국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행하였읍니다. 영적 양식을 정기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양식 자체의 질도 고려되어야 하였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미움받고 박해받은 그리스도인들 즉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들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의 단체가 적격자임을 나타냈읍니다.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정부가 제시하는 전쟁 선전을 전달하는 점에서 그리스도교국이나 이교국에 가담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꾸준히 그 시대를 위한 성서 소식을 전파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 성서 원칙에 그리스도인이 고착해야 함을 역설하였읍니다.

      41.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검열하실 때에 주인은 무엇에 영향을 받지 않으셨으며, 그 분의 결정은 그 이후 어떻게 명백히 나타났읍니까?

      41 그러면 천적 주인은 이들 순종하는 그의 종들에 대하여 어떠한 결정을 내렸읍니까? 그 분은 전쟁에 미친 세상에서의 그들의 천대받고 박해받는 입장을 보고 영향을 받으시지 않았읍니다. 사실 그 분은 자기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즉 “임재” 중에 그들이 그러한 어려운 일을 겪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 종들의 그 단체가 세상의 천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의 부재 중에 행하도록 임명받은 일을 행함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발견하셨읍니까? 1919년에 시작된 검열에 따라 그 이후 그 분이 결정한 바에 의하면, 그 분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발견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주인의 행동, 그분이 그리스도인 종들을 다루신 방법을 볼 때 너무나 명백합니다.

      42, 43. (ㄱ)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밤에 어떠한 예언을 자기의 사도들에게 적용시키셨으며, 그것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ㄴ) 예수께서 1914년에 즉위하신지 삼년 반 후에 같은 스가랴 13:7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었읍니까?

      42 예수의 사도들의 경우를 잠깐 생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은지 삼년 반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배반당하셨읍니다. 그분은 스가랴 13:7의 예언을 인용하여 자기의 사도들에게 발생할 일을 이렇게 예언하셨읍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태 26:31, 32) 예수께서 ‘스가랴’의 예언을 그분의 사도들에게 적용시키신 것이 타당했음이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그 날 밤에 증명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마태복음 26:56에 있는 기록이 알려주듯이, 예수께서 배반당하신 후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양”들은 과연 흩어졌던 것입니다.

      43 이와 평행하게,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즉위하신지 삼년 반 후, 1918년 3월 26일 화요일에 주의 만찬의 연례 기념식이 있었읍니다. 천적 목자의 “양”들이 흩어지는 일이 그 때에 절정에 달하였으며 1918년 3월 1일호 「파수대」지(영문)는 “우리 왕을 기억함”이라는 주요 기사의 첫 항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다가오는 이번 기념식이 지상에서 마지막 기념 행사가 될 것인지는 물론 우리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의 완전한 성취의 때가 일년 더 가까와진다는 것은 우리가 확실히 압니다. 만일 우리가 이 기념식을 여러 해 더 기념하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신다면 우리는 기쁘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목자의 “양”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과 관계가 있었던 ‘왙취 타워 협회’의 탁월한 역원이 체포되어 부당한 재판을 받고 장기 징역형을 선고 받아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에 전망은 어두웠읍니다. 당시에는 스가랴 13:7이 성취되고 있다고 인식되지 않았읍니다.

      44. (ㄱ) ‘스가랴’의 예언의 밝은 면은 무엇이라고 말하며,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그 예언의 이 부분은 예수의 사도들에게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44 그러나, 이 예언에는 밝은 면이 있었읍니다. 그 예언은 목자를 치고 양들이 흩어질 것을 예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이러한 약속을 부가하였읍니다.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그것은 여호와께서 흩어진 양들에게 은총을 가지고 손을 드리우시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양이 흩어지는 데 대한 예언을 인용하신 후에 사도들에게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하고 부언하심으로 힘을 북돋아 주셨읍니다. (마태 26:32) 이것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신 후에 그들을 다시 모을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이 일이 실제로 있었읍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마태 28:16-20.

      45. 이 동일한 예언은 1919년에 충실한 “종” 반열에게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이 “종” 반열은 무엇 때문에 ‘행복’하게 되었읍니까?

      45 이와 유사하게, 1919년에 여호와께서는 “작은 자들 위에 ··· 손을 드리우”셨읍니다. (스가랴 13:7) 여호와의 목자이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흩어진 “양”들을 실제로 다시 모으기 시작하셨읍니다. 비유에 나오는 종의 주인과 같이, 주인이신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의 집에 돌아오셨고 그 집 안에 상태를 검열하셨읍니다. 그 분은 그 곳에서, 세상 상태에도 불구하고 명령에 순종하여 때에 알맞게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에서 나온 영적 양식을 주의 “집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노력하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을 참으로 발견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자기의 집의 잘 조직된 “집 사람들”의 단체 안으로 그들을 다시 모으심으로 자기의 은총을 나타내셨읍니다. 1919년 9월 1-8일에 ‘오하이오’ 주 ‘시다 포인트’에서 개최된 8일간의 대회는 보이지 않게 임재하여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충실한 “양”들을 다시 모으신다는 것을 전세계에 통고하는 역할을 하였읍니다. 그 대회는 돌아오신 주 예수께서 발견하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누구인가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종” 반열은 행복하였읍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천적 주인을 섬기는 봉사에 고용되고 있음을 의미하였읍니다.

      46. 예수께서는 충실한 “종”이 어떠한 상을 받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설명하셨읍니까?

      46 주 예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왜 행복한지를 설명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주인이 올[희랍어: ‘엘톤’]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마태 24:46, 47; 누가 12:42-44.

      주인의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받음

      47. 충실한 “종”의 승진은 그에게 무엇을 부과하며, 이것은 그의 주인의 새로운 자격과 어떻게 일치합니까?

      47 주 예수께서는 주인이 임명한 일을 행한 데 대한 상으로서 기다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읍니다. 그는 주인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주인에 대한 더 큰 책임을 받고 승진됩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의 주인 역시 더 큰 책임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확실히 주인은 단순히 관광차 혹은 휴양차 자기의 집을 떠나 여정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그는 더욱 중요한 목적, 즉 그의 지위를 높이고 그의 권능과 권위를 증가시킬 목적을 염두에 두었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늘로 떠나 아버지의 우편에서 오랫 동안 기다린 후에 왕국을 받을 것에 적용되는 비유를 여기에서 말씀하고 계셨음을 고려할 때에, 주인의 책임의 증가가 비유 가운데 암시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주인이 새롭고 더 큰 자격을 갖추고 귀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히브리 10:12, 13) 그러므로 “그 모든 소유”는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승진된 “종”은 그의 주와 함께 영예를 나눕니다.

      48. 돌아온 주인이 “종” 반열에게 맡긴 봉사는 그 이전의 봉사보다 왜 더 중요하고 영예로운 것이었읍니까?

      48 예언적 비유의 성취에서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1914년에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났을 때에 천국을 획득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즉 “임재”는 그 해에, 그 분이 천적 보좌에서 통치하는 왕으로서 면류관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읍니다. 그 분이 모든 “집 사람들”을 검열하시기 위하여 1919년에 “집의 하솔”에게 돌아오셨을 때에 그 분은 제 1세기에 이 지상에 계시던 때에 가지시지 못했던 왕의 자격으로 돌아오셨읍니다. 따라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그들이 그때까지 섬긴 분보다 더 큰 지위와 권위와 권능을 가지신 분을 섬기게 되었읍니다. 그 결과 그 분께 대한 봉사는 이제 더욱 중요하게 되었읍니다. 이제 그 분을 섬기는 것은 더 높은 영예가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분으로부터 승진의 영예를 얻고 따라서 더 큰 책임을 위탁받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상이었읍니다!

      49. 돌아온 주인이 “종”에게 “그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하는 것은 종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으며, 그에게 어떠한 기회를 주었읍니까?

      49 비유 가운데서, 주인은 떠나기 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에게, 제한된 책임을 주었읍니다. 그는 이 종에게 단지 그의 집 사람들 즉 집의 하솔을 맡아 그들에게 때에 알맞게 합당한 양식을 나눠주도록 의무를 부과하였읍니다. 따라서, 주인이 돌아와서 승인받은 종에게 “그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할 때에 그것은 승진된 종에게 더 큰 책임을 의미하였읍니다. 이제 그는 더 큰 방법으로 충실함과 지혜있음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더 많은 것을 감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상받을 만한 종이 됩니다.

      50. “그 모든 소유”는 어디에 있는 것을 가리키며, 그것은 무엇입니까?

      50 비유의 성취에서, 주인이 합당한 종에게 맡기는 “그 모든 소유”는 하늘에 있는 그의 모든 소유를 상징하지 않습니다. 영화롭게 되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분이므로,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이 그분을 섬기는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모든 “소유”를 돌보실 능력이 부족하시지 않습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맡겨지는 “그 모든 소유”는 그 분의 설립된 천국과 관련하여 지상에서 그분에게 속한 모든 영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인간이 세운 모든 정치적 체제를 운영하고 통제하는 분이 아니므로 그것은 이 세상 정부의 어떠한 부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체제는 모두 멸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소유”는 기원 1914년에 하늘에 왕국이 건설된 이래 적용되는 예언의 성취로서 지상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51. 충실한 “종” 반열의 대사로서의 지위는 어떻게 이전보다 지금 더 크며, 그들은 현재 예언에 대한 어떠한 특권과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까?

      51 기원 1919년에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의 남은 자들을 검열하실 때 통치하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임명받은 “종”이 자기의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충성되고 지혜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분명히 발견하셨읍니다. 따라서 그 분은 이 “종” 반열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기셨읍니다. 그들의 확장된 책임있는 지위는 이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왕국 예언의 성취에 이바지하는 것이었읍니다. 지금까지 여러 세기 동안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그리스도의 사절”들로 구성되었읍니다. 그 사절 즉 대사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권고합니다. (고린도 후 5:19, 20, 새번역) 그러나 1919년에 임명을 받은 이래 그들은 창건된 메시야 왕국의 대사들이며, 새로운 의미와 힘을 지닌 왕국 소식을 전하고 있읍니다. (마태 24:14; 마가 13:10) 기원 1914년 이래 최종적으로 성취되어 온 왕국 예언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요 책임입니다. 그들이 「계시록」의 놀라운 상징에 의한 예언과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에 관한 영광스러운 소식을 이루는 데 사용되는 것은 참으로 큰 영예입니다!

      52. 어떻게 이것은 “종” 반열의 지위를 높여 주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계시록」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읍니까?

      52 이 모든 특권과 책임과 영광과 영예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며 하늘에 계신 주인이며 통치하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수여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행복’하다는 선언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귀중한 것을 위탁받는 것은 그들이 참으로 높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원수에게 죽임을 당한 “두 증인”에 관한 계시록 11:11, 12의 묘사와 비슷합니다. 그들의 시체는 사흘 반 동안 ‘소돔’ 같은 “큰 성” 넓은 길에 눞여 있었읍니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53. (ㄱ) “종” 반열의 특권과 책임은 왜 이제 더 커졌읍니까? (ㄴ) 이전의 간행물이 처분되었지만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은 어떻게 계속되었읍니까?

      53 그들이 그러한 높여진 특권과 책임을 받는 것은 복합적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함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들은 더 많은 시간과 주의를 기울여야 하였으며, 또한 지상에서의 이 왕국 사업에 관한 성서 예언이 이루어지도록 더 큰 시설을 사용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또한 더 큰 밭, 즉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방방곡곡에서 일해야 하였읍니다. (계시 14:6, 7; 10:11) 물론, 주의 “집 사람들”에 대한 급식 계획은 계속 되어야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 식탁에서 참으로 훌륭한 성경적 식사를 즐겨왔읍니다! ‘시이. 티이. 러셀’이 저술한 「성경 연구」와 「종말을 고한 비밀」의 재고가 1929년에 처분되었지만 이들 “집 사람들”에게는 영적 양식이 부족하지 않았읍니다. 1921년에 「하나님의 거문고」라는 책이 나온 이래 새롭고 시기에 맞는 서적과 소책자와 책자가 계속 발행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1919년 10월에는 「파수대」의 자매지로 「황금 시대」(현재의 「깨어라!」)지가 발행되었읍니다.

      54. “종” 반열에게 「계시록」에 묘사된 무엇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하는 특권이 부가되었으며, 이 결과 어떻게 더 큰 책임을 받지만 또한 도움이 있게 되었읍니까?

      54 상을 받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부가된 특권과 책임은 사도 ‘요한’이 영감 아래 보고 그가 계시록 7:9-17에서 묘사한 아름다운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렇습니다. 1935년 이래 “종” 반열은 그 환상이 실현되는 것을 보아 왔읍니다. 그들의 축복받은 눈은, 지상 도처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그 분의 영적 성전에서 찬양하고 숭배하며 구원을 하나님과 그 분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영적 ‘이스라엘’인의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계속 증가하는 이 “큰 무리”를 돌보는 더 큰 책임을 의미하였지만, 그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이들 양같은 사람들이 지상에 있는 “그 모든 소유”의 귀중한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며, 따라서 그들은 이들 “다른 양”의 영적 필요를 기쁘게 돌보고 있읍니다. 한편, 이 “큰 무리”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주의 지상의 모든 “소유”를 돌보는 일을 돕고 있읍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55, 56. “종” 반열의 각 성원은 왜 자기의 충성과 지혜를 유지해야 하며, 예수의 어떠한 경고에 비추어 볼 때에 그러합니까?

      55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그 행복한 봉사가 끝날 때까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을 계속 두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 반열의 영으로 출생하고 기름부음 받은 각 성원은 오늘날 자신이 그 높이 은총받은 반열에 계속 머물기에 합당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행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충성되고 지혜 있음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종”이 된 사람과 같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위험을 경고하여 비유로써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56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문자적으로, 취하는(자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희랍어: ‘헥세이’] 엄히[문자적으로, 그는 그를 쪼갤 것이다]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 24:48-51; 누가 12:45, 46.

      57. (ㄱ)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주인이 당초에 “악한 종”을 임명한다고 혹은 임명된 종이 악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 문제를 소개하신 방식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무엇을 나타내신 것입니까?

      57 예수께서 여기에서 하신 말씀을 면밀히 살펴보면, 여기에서 여행을 떠나는 “주인”이 당초에 “악한 종”을 임명한다고 말하지 않았음에 유의하게 됩니다. 또한 그 분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악”하게 된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읍니다. 그분은 단지 의문을 제기하여 “만일”(누가 12:45과 「행간 번역」의 마태복음 24:48과 같이) 집 사람들을 맡은 종이 마음으로 “악”하게 된 후에, 주인이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부당한 행동을 시작한다면, 주인은 돌아와서 그를 이러한 식으로 다룰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종은 결단코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임명받은 종이 악하게 되어 충성과 지혜가 없는 행동을 한다면 주인이 갑자기 돌아올 때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 종은 예수께서 묘사하신 바와 같은 처분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원래의 임명받은 종이 확실히 혹은 거의 확실히 악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읍니다.

      58. (ㄱ) 다른 현대 번역판들은 그 귀절을 어떻게 의역하였읍니까? (ㄴ) 예수께서 임명하신 “종” 반열이 악하게 된다면 그 결과 예수께서는 어떠한 상태에 있게 되실 것입니까?

      58 예수의 말씀에 대한 몇가지 현대 번역판은 다소 의역을 함으로써 그러한 사상을 더욱 명백히 밝혀 줍니다. 「미국역」은 이러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악한 종이고 ‘주인은 오래 뒤에 올 것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다른 종들을 때리며 술군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 (마태 24:48, 49) 「신 영어 성서」도 비슷합니다. 「신 미어 성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만일 종이 무익한 자이고 ···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 ‘알. 에프. 웨이마우드’역 「현대어 신약」은 이러합니다. “만일 그 사람이 악한 종이어서 ··· 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면.” “악한 종”이 존재하게 될 것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확정적으로 예언하지 않으셨읍니다. 그 분은 단지, 종이 불충실하고 지혜없으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인지와 그러한 사람은 주인이 갑자기 돌아올 때에 어떠한 벌을 받을 것인지를 설명하셨읍니다. 만일 주 예수께서 임명하신 “종”이 악하게 된다면 그 분께는 성실에 대한 상을 줄 “종”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두가지 종 반열을 임명하지 않으십니다.

      59. (ㄱ) 예수께서는 어떠한 종류의 “종” 반열을 위하여 토대를 놓으셨읍니까? (ㄴ) 예언은 “종” 반열이 악하게 될 것으로 혹은 악한 일을 할 것으로 지적합니까? 아니면, 달리 지적합니까?

      59 예수께서는 십구 세기 전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 자기의 “집 사람들”을 악하고 무익한 “종”에게 맡기지 않으셨읍니다.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기록은 임명받은 “종” 반열이 악하게 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그 예언에 의하면 “종” 반열은 악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그분은 시험받고 자격이 증명된 사도들을 토대로 하여 충실한 종들의 집합체를 구축하셨읍니다. 계시록 7:3-8은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인 전원이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 인침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읍니다. 계시록 12:17은 용인 ‘사단’ 마귀가 하늘에서 추방된 후에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하나님의 “여자의 씨”의 남은 자에 대하여 전쟁을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14:1-4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144,000명 전부가 ‘시온’ 산에 그와 함께 설 것을 예언합니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60. (ㄱ) “그 악한 종”과 같이 행동하는 개인들은 주인으로부터 그러한 임명을 받았읍니까? (ㄴ) 그러한 모든 개인들은 전체적으로 무엇을 형성합니까?

      60 “그 악한 종”의 묘사에 따라 행동하는, 영으로 출생하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반열이 있다면, 그들을 임명하고 그의 집 사람들 혹은 “집의 하솔”을 그들에게 맡긴 분은 주 예수가 아닐 것입니다. 한 때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성원이었던 개인들은 개인적인 야망과 다른 사람을 누르는 권력과 자기 욕망의 과도한 추구와 같은 이기적인 이유로 떨어져 나올 수 있읍니다. 이들 이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목표를 추구하는 여러 종류의 집단을 형성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과 분리되고 구별된 전체적인 하나의 반열을 형성할 것입니다.

      61. 예수께서 “악한 종”에 관하여 말씀하신 바를 예시하는 사례가 있을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치적입니까?

      61 행위와 그 결과에 관한 한, 주 예수께서는 자기가 의도한 바를 예증하는 어떤 경우 혹은 일반적인 사례가 뒷받침하지 않는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실 것으로 믿는 것이 이치적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 악한 종” 반열 혹은 그러한 형태의 그리스도인들을 임명하셨음을 예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설명하신 바와 같이, 그 분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즉 임재 중에 신뢰할 수 없고 불충실하고 신용할 수 없고 지혜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실제로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예시할 것입니다.

      62. 특히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이에 대한 어떠한 사례가 있었으며, 이것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62 「파수대」의 편집자 즉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창립자가 기원 1916년에 사망한 직후에 이것을 예시하는 사례가 ‘만국 성경 연구회’ 성원들 가운데 있었읍니다. 협회 정관의 규정과 반대로 세력과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시도가 있었읍니다. 주께서 승인하시는 조직을 구성할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가 있었읍니다. 세력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합법적인 정관과 성서의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는 성실한 노력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욕구불만에 빠졌읍니다. 그들은 인쇄물로, 구두로 그리고 법정에서 ‘동료 종들을 많이 때렸’읍니다. 특히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영적으로 말하여 이 세상의 “술 친구들”의 편에 섰읍니다. 이 모든 일은 당시 증대하는 종교적 박해를 받고 있던 조직의 안정성을 크게 시험하였읍니다. 그것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 주었읍니다.

      63. (ㄱ) 예수께서는 그러한 “악한 종” 집단이 “집 사람들”의 집을 분열시키지 못할 것임을 어떻게 보증하셨읍니까? (ㄴ) 이 예언된 조치는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63 예수의 비유는, 그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 중에 “그 악한 종”의 특성을 가진 어떤 불충성스러운 자들이 그분의 “믿음의 식구들”을 분열시키거나 지배하거나 “때를 따라” 영적 양식을 나눠주는 임명에서 그들을 돌아서게 하는 일을 그분이 허락지 않으실 것을 보증하셨읍니다. 검열의 때에 그분은 그러한 악한 기질을 가진 반열을 매우 엄하게 벌하였읍니다. 마태복음 24:51에 사용된 희랍어 동사의 문자적인 의미에 의하면 “쪼개어 내고” 입니다. (난외주) 그분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로부터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의 반열을 “쪼개어 내”십니다. 이러한 조치는 독립을 요구하는 파업과 같은 그들의 행동과, 탈퇴하여 그들의 취향에 따라 머리 직권을 가진 독자적인 종교 집단을 형성하는 행동으로 나타났읍니다. 그들의 행위의 결과를 조사해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64. 주인은 “그 악한 종”같은 자들을 누구와 같이 처벌하며, 그러나 그는 그들이 누구와 같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64 “쪼개 내”어진 그러한 반열은 예수께서 묘사하신 “그 악한 종”의 특징을 나타내고 그 결과를 당하였으며, 적어도 제한된 의미에서는, “악한 종” 반열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비유 가운데서 주인이 그들을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4:51) 이와 상응하는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종”을 “청지기”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주인이 와서 ··· 신실하지 않은 자들이 받는 벌에 처할 것이다.” (누가 12:46, 새번역) 주 예수께서는 자기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 중에 자기의 “집의 하솔” 즉 “집 사람들” 안에 “그 악한 종” 혹은 “청지기”의 특성을 지닌 자칭 그리스도인들을 두기를 원하지 않으실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그리스도교는 위선적임이 판명되며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종교적 위선자들과 동류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그들에게 임명하신 일에 있어서 불충실하고 믿음이 없고 신뢰할 수 없고 신용이 없는 자들임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불충실한 자칭 그리스도인들과 동류입니다.

      65. “그 악한 종”같은 사람들이 울며 이를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5 “악한 종”의 특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위선자들과 불충실한 자들 가운데서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위선자들과 불충실한 종교가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 24:51)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때문이 아닙니다. (고린도 후 7:10) 그것은 그들의 괴로움과 쓰라린 실망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여전히 종교적으로 살아갈지 모르지만 주인의 “모든 소유”를 돌보는 승인받은 종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쁨과 축복을 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

      66.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징조”에 관한 자기의 예언 끝에서 제자들에게 어떠한 경고를 하셨읍니까?

      66 예수께서는 자기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대한 예언에서 “악한 종”의 운명을 알리는 비유로 끝이지 않으시고 그 이상의 경고를 주셨읍니다. 그분은 자기의 사도들에게 그러한 “악한 종”의 행로를 따르지 말라는 직접적인 경고의 말씀을 하셨읍니다. 예수의 놀라운 예언의 끝에 관한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누가 21:34-36.

      67. 돌아온 주인의 “모든 소유”가 충실한 “종” 반열에게 맡겨졌으므로, 그 주인의 경고에 유의하는 것은 그 “종” 반열의 성원들에게 왜 극히 중요합니까?

      67 보이지 않게 임재하신 주 예수의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게 “그 모든 소유”가 맡겨졌으므로, 이제 각자는 그 말씀에 유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례없는 “큰 환난”이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실체인 그리스도교국에 갑자기 임할 때는 매우 가까왔읍니다. 순간적으로 덮치는 덫과 같이, 전 지면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날이 닥칠 것이며 방심하는 모든 사람들은 지나치게 먹고 마시고 생활의 이기적인 일을 염려하다가 걸리게 될 것입니다. 덫과 같은 그 “날”에 그러한 사람들은 멸망될 것입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 속한 성원들은 “그 악한 종”같은 자들과 함께 그러한 이기적이고 부주의한 사람들에게 동조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68. (ㄱ) “징조”에 의하면, 단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존재하는 것 뿐 아니라 무엇이, 우리가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지를 알리는 증거입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성공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까?

      68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 대하여 모르고 있을 이유가 없읍니다. 우리는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에 관한 예수의 비유에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시점에 살고 있으며 무엇이 가까왔는지를 알고 있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의 비유는 성취의 절정에 이르렀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존재 뿐만 아니라 주의 모든 소유를 그 반열에게 맡기고 그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한 일—이것은 우리가 즉위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즉 보이지 않는 임재 기간에 살고 있으며 동시에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징조”의 뚜렷한 특징입니다. (마태 24:3, 신세)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전체 “사물의 제도”의 멸망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할 때는 가까왔읍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는 것이 시급합니다.—누가 21:36.

      [각주]

      a 1897년 발행 「아마겟돈 전쟁」(영문) 613면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분배함—마태 24:45-51; 누가 12:42-46.” 제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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