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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그리스도인은 노인을 존경한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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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7
파87 6/1 4-7면

참 그리스도인은 노인을 존경한다!

“노인은 경제적 관점으로 볼 때 우리 문화가 개개인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경의와 지위와 존경과 포상에 기초가 되는 생산적 생활의 끝에 와 있는 사람들”이라고 연구원인 수잔느 스타인메츠는 말한다. 따라서 노인에 대한 현대 사회의 견해는 어둡고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노인들이 무시당하고 학대받고 있다는 기사를 흔히 읽게 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인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어떠한가? 늙는 일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적으로 인정한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시 71:9) 노년에, 그는 여호와의 지원을 받을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느꼈다. 또한 성서는 우리도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적극적인 견해를 밝힌다.

솔로몬이 노년기를 ‘아무 낙이 없는 곤고한 날’이라고 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전도 12:1-3) 그러나 성서는 또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는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과 연관시킨다. (잠언 3:1, 2) 이에 대한 예로서,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장수하다가 ·⁠·⁠· 장사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세 15:15)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충실한 아브라함에게 그가 “아무 낙이 없다”고 하게 될 쓸쓸하고 “곤고한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을 선고하신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말년에 평온하고 고요한 생활을 보냈으며, 여호와의 봉사에 바친 자신의 인생을 만족스럽게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성” 즉 하나님의 왕국을 기대할 수 있었다. (히브리 11:10, 새번역) 따라서 아브라함은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만족하여, 신세]” 사망하였다.—창세 25:8.

그렇다면, 왜 솔로몬은 노년기를 “곤고한 날”이라고 하였는가? 솔로몬은 노년기에 일어나는 격심한 건강의 악화에 관해 말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청년의 때에 자신의 창조자를 기억’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만년이 특히 곤고한 날임을 알게 된다. (전도 12:1) 자신의 인생을 낭비해 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노인은 말년에 ‘아무 낙이 없게 된다.’ 신을 믿지 않는 그의 생활 방식은 결국 신체적 문제마저 일으키게 되어 노년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킬지도 모른다. (비교 잠언 5:3-11.) 그러므로 앞을 내다보면, 무덤 외에는 아무런 장래가 없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생명을 바친 사람도 몸이 약해짐에 따라 “곤고한 날”을 경험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그는 유용하게 보낸 생애와 남아 있는 힘을 하나님의 봉사에 사용하는 데 대한 즐거움과 만족을 발견할 수 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성서는 말한다.—잠언 16:31.

사실, 노년기라 할지라도 확실한 이점이 있다.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고 솔로몬은 말한다. 젊은이들은 활기찬 건강을 즐길지는 몰라도, 흔히 그들은 경험과 판단력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노년기는 경험의 일생이다. 종종 경솔하게 악으로 달려가는 경향의 충동적인 젊은이와는 달리, 노인은 ‘악으로 물러가게 한다.’ (전도 11:10; 디모데 후 2:22) 솔로몬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잠언 20:29.

그러므로 성서는 노인을 존경하라고 말한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노인을 대하는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노인 앞에서 ‘일어섬’

하나님께서는 노인에 대한 존경을 이스라엘의 국가 정책으로 정하셨다. 모세 율법은 다음과 같이 명하였다.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 (레위 19:32) 그후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이 법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분명하였다. 새뮤얼 버더 박사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관습」(Oriental Customs)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대인 저술가들은, 네 규빗 이내에 노인이 있으면 일어서고 노인이 지나간 후에 다시 앉도록 되어 있는 이 규칙으로 볼 때, 노인을 순전히 존경하는 뜻에서 일어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한 존경심은 탁월한 사람들에게만 표현하게 되어 있지 않았다. “노령으로 인해 학식을 더는 사용하지 못하는 노인에게까지도 존경을 나타내라”고 탈무드는 분명히 밝혔다. 한 랍비는 무식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노인도 이러한 존경의 범위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랍비는 “나이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 정도 존경을 받아 마땅하였을 것”이라고 추리하였다.—「유대인 백과 사전」

모세의 율법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더는 구속력이 없다. (로마 7:6)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더는 노인에게 특별한 존경심을 나타낼 의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점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 감독자 디모데에게 한 이러한 교훈으로 볼 때 분명히 알 수 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라.]” (디모데 전 5:1, 2) 바울은 앞서 젊은 디모데에게 “명”할 권위가 있다고 말했었다. (디모데 전 1:3) 그렇지만,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특히 감독자로 봉사하는 사람—이 판단을 잘못하거나 부정확한 말을 하였다면, 디모데는 그를 열등한 자로 여겨서 “꾸짖”어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아비에게 하듯” 존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였다. 디모데는 회중 내의 나이 든 여자들에게도 그와 유사한 존경심을 나타내야 하였다. 그렇다. 사실상, 디모데는 여전히 “센 머리 앞에 일어서”야 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노인을 존경하는 종교다. 하지만, 노인 학대의 많은 사례가 그리스도교국이라고 공언하는 나라들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서 표준에 고착하고 있는 숭배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 가운데 수많은 노인이 있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며 그들을 짐이나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체력이 딸려 이전만큼 활동적으로 일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오랜 기간 충실히 봉사한 기록을 가진 연로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으며, 이것은 그들의 믿음을 본받도록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가 된다.—비교 히브리 13:7.

하지만, 노인이라고 해서 회중 내에서 소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에 건전하고] ·⁠·⁠· 행실이 거룩”한 면에서 훌륭한 본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지혜와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디도 2:2, 3, 난외주 참조.) 요엘은 성서의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 “늙은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요엘 2:28, 공동 번역) 확실히 독자 자신도 많은 연로한 여호와의 증인이 호별 방문 전파 활동에서 여전히 활동적으로 즐겁게 참여하는 것을 관찰하였을 것이다.

“더 많이” 노인에게 존경을 나타냄

여호와의 증인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인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나타내기 위하여 노력한다. 예를 들면, 연례 종교 대회에서 증인은 흔히 노인을 위한 좌석을 별도로 배정한다. 개인적으로도 노인에 대한 배려를 나타낸다. 일본에서, 한 증인은 가족 차의 자기 좌석을 87세된 할머니에게 양보하여 그 할머니가 회중 집회에 타고 갈 수 있게 한다. 그는 어떻게 집회에 가는가? 자전거를 타고 간다. 브라질에서는 92세 된 할아버지 전 시간 복음 전파자가 있다. 그곳의 증인들은 “그를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며, 그와 대화한다. ·⁠·⁠· 그는 회중의 유용한 분”이라고 그를 관찰한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은 노인을 존경하는 면에서 전연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라.]” (데살로니가 전 4:9, 10) 오늘날에도 우리가 노인들을 대할 때 이와 유사한 교훈을 따를 필요가 있다. 85세 된 한 할아버지 그리스도인을 예로 들어 보자. 그는 성서에 근거한 새로운 출판물을 받지 못하게 되어 매우 낙심하였다.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그 할아버지는 청력을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에, 그 책을 주문할 것을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켜 주는 광고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회중 내의 아무도 그 할아버지에게 주문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지 않았다. 물론, 그러한 상황은 즉시 시정되었다. 그렇지만 이 일은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일들에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음을 잘 예시해 준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 “더 많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스도인 집회는 노인들에게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히브리 10:24, 25)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는 이미 젊은이와 노인들이 자유로이 교제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 부면에서 좀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이 회중의 어른 성원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접근하여 그들과 이야기하도록 격려할 수 있다.

또한 사적인 자리에서도 노인에 대한 존경을 계속 나타낼 수 있다. 예수께서 누가 복음 14:12-14에서 말씀하신 원칙과 일치하게, 사교 모임에 노인을 초대하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설령 참석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 준 데 대해 분명히 감사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일층 “손 대접하기를 힘쓰”도록 권고받고 있다. (로마 12:13) 이렇게 하는 데 꼭 최상의 것이나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한 증인은 이렇게 제안한다. “노인에게 차나 한잔하시자고 초대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과거 경험을 말하게 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말했다. (로마 12:10) 여호와의 증인 중, 특히 임명된 회중 장로들은 연로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존경을 나타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흔히 장로들은 능력에 맞는 적절한 일들, 이를테면 새로운 사람을 복음 전파자로 훈련시키거나 그리스도인 집회 장소의 유지 관리를 돕는 일 등에 그들을 임명할 수 있을 것이다. 회중의 장로로 봉사하는 젊은 남자들은 연로한 감독자들에게 조언을 얻고자 겸손히 접근하고 그들의 장성된 견해를 얻어내기 위하여 분별력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에게 존경을 나타낸다. (잠언 20:5) 그러한 장로들과 모임을 가질 때, 젊은 장로들은 청년 엘리후의 성서적 본을 따라 연로하고 보다 경험 많은 장로들에게 존경심 있게 양보하고 그들이 먼저 의사를 표시할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욥 32:4.

누구나 다 아는 바이지만, 노인은 젊은이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급해지기가 쉽다. 로버트 N. 버틀러 박사는 노령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일부 문제를 이렇게 잘 기술한다. “사람이 자신의 물리적 힘과 남만큼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극도의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청력이나 시력과 같은 중요한 감각 능력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점을 인식한다면, 젊은 사람들은 동료감과 동정심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베드로 전 3:8.

그렇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가운데 있는 노인들에게 진정한 사랑, 진정한 염려, 진정한 존경을 나타낼 의무가 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은 본이 되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연로한 그리스도인—또는 그리스도인의 부모—이 아프거나 궁핍에 처하게 될 때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는가? 그들을 돌볼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성서의 답을 계속되는 기사에서 검토할 것이다.

[7면 삽화]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 내에서, 노인들은 만족감을 주는 할 일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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