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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은 진리(眞理)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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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은 진리(眞理)에 산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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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5
파55 7/1 127-135면

그리스도인은 진리(眞理)에 산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에베소 4:25.

1. 왜 하나님의 회중에 거짓말이 있어서 안되는가?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운행중(運行中)인 신세계사회를 가지고 계시다. 전세계를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을 선택하여 신세계에서의 생명을 위하여 그들을 훈련시키신다. 그는 이들이 정결케 되며 깨끗하게 보존되고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낡은 조직제도로부터 분리(分離)될것을 기대하신다. 이세상에서 행하여지는것과 같은 행위를 허용할 공간(空間)이 그곳에는 없다. 행하여야 될 일의 몇가지가 골로새 삼장에 기록되어있다. 골로새 3장 9절과 10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였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정확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지금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생활할것인가에 대하여 주의하여야 할때이다. 거짓말하는것과 진리와 반대되는 곳으로 인도하는 일들을 피하는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러나 너의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야고보 3:13, 14) 만일 누구던지 나쁜마음이나 질투와 싸움하기 좋아하는 마음을 갖었다면 얼마 못가서 그는 거짓말을 할것이다. 한가지의 범죄는 다른 범죄를 낳고 한번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덮게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회중에서는 어떤 모양의 거짓말이라도 있어서는 않된다. 거짓말은 나쁜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용서치 아니하신다.

2. 회중에서 거짓말을 한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가 왔는가?

2 고금(古今)을 통하여 하나님의 회중내에서 거짓말을 해보고저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것은 언제나 환란과 고난(苦難)을 갖어왔으며 특히 거짓말 한 사람들에게 그리하였다. 보통 거짓말이나 거짓을 말하는것 혹은 기만적(欺瞞的)행동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서 나오며 개인적인 자만심(自慢心)에서 오는 것이다. 사도행전 5장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저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저 숨이 끊어지니(신세계역)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아나니아의 아내도 남편과 함께 거짓말을 한 까닭에 똑 같은 심판을 받게되었다. 그들은 위선적(僞善的) 행동을 하였다. 그들은 사실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써 남에게 보이기를 원하였든 것이다. 참말을 하고 자기들이 받은 값의 일부분을 헌금한다고 말하였더라면 죄가 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옳지 못하였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마음속을 드려다 보시고 어떤 동기로서 그런 일을 하는가 살피셨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한것을 보셨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여호와로 부터 불리(不利)한 심판을 받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예를 보건데 거짓말때문에 제명처분(除名處分) 당할수 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영영히 제명처분 하셨기 때문이다. 거짓된 것과 거짓말로써 받는 삯은 결코 좋은것이 되지못한다.

형제들 사이에도 진리를 말하라

3, 4. (ㄱ) 회중의 종들이 심문할때에 증인으로써 어떠한 증언을 하여야하는가? (ㄴ) 거짓말로 인도하는 어떠한 요소를 그리스도인은 피할것인가? (ㄷ) 거짓증인이 남을 상하게 한 어떠한 성경적 예가 있는가?

3 우리는 형제들에게도 참말을 하여야 한다. 우리는 회중을 깨끗하고 순결하며 참된것으로 지킬것이다. 잠언 6:19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는 거짓 증인을 미워한다고 하셨다. 언제나 진리를 말함으로써 옳게 행할수 있다. 비난을 받은 형제가 회중에 있는 종들 앞에서 매우 솔직한 질문에 대답할 기회를 가질때가 있을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잘하였는가 잘못하였는가 하는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증언(證言)을 하도록 지명 받으면 세상적 마음을 가진 사람의 비난이나 박해를 약간 받게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형제에게 관한 진리를 말하여야한다. 어떠한 보복(報復)이 있을것을 두려워 하여 증언(證言)에 색칠을 하여서는 않된다. 세상적인 어떤 원시인(原始人)들은 마력(魔力)을 두려워하여 거짓말을 하기도 하였으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써 그들은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에베소 6:11-20) 가족적이나 족벌적(族閥的) 관계나 부당(不當)한 충성으로 인하여도 행악자(行惡者)를 덮기 위하여 구브러진 증거를 하여서는 않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보다 윗사람이 듣기 좋아할만한 말을 하여서 그사람을 기쁘게 하고저 하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다. 그러나 회중앞이나 혹은 다른 장소에서도 사람의 귀에 구수한 말을 하기 위하여 거짓을 말하여서는 결코 않된다. 여호와를 기쁘게 하는자는 반드시 깨끗하며 참된 증언을 한다.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거짓말과 참말이 함께 나올수 없다.—야고보 3:10, 11.

4 여호와께서는 어떤 뇌물이나 이익으로 매수(買收)되어 거짓 증언을 하는 거짓말쟁이를 좋아 아니하신다. 심문(審問)할때에 피고(被告)에게 나쁜 결과를 갖다주기 위하여 거짓을 말하여서는 않된다. 거짓을 만드는자를 하나님은 미워하신다. 거짓된 증언을 함으로써 그는 어떤자에게 호감(好感)을 사거나 개인적으로 이익을 본다고 생각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는 위치에 서게 되는것이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잠언 14:5) 거짓된 증언으로 남을 많이 상하게 할수있다. 거짓된 증언으로써 나봇은 죽엄의 고통을 당하였다. (열왕기 상 21:8-13) 거짓증인들은 예수를 대적하여 말함으로써 그를 사망케 하였다. 거짓 증인은 스데반에 대하여도 거짓증언을 하였다. 거짓된 증언을 하는것은 나쁘다. 이것은 거짓말의 한 형체이다. 거짓말은 거이 언제나 남을 상(傷)하게 하며 이러할 때는 특히 악하다.—마태 26:60, 61; 사도행전 6:10, 11.

5. 어떻게 또 언제 거짓 증거와 싸우는 것이 합당한가?

5 자기에게 대한 쓸데 없는 쏙싹거림을 듣고도 그것을 넘겨드릴수도 있다. 그러나 법정(法廷)에서 어떤자가 거짓된 증언을 할때에는 자기를 변호하는것이 정당하며 그가 말한 거짓말을 반증(反證)할만한 증거를 내놓을수 있다. 거짓된 증언이 당신에게 불리(不利)하게 문서에 기록되도록 놔두어서는 않된다. 사도 바울은 통치자들 앞에서 자신을 당당히 변호하였다. 예수의 경우는 이것과 같지 않다. 그는 폭행자(暴行者)들과 공의(公義)를 아지도 못하는 사악한 자들 앞에 있었든 것이다. 길게 변론한들 아무 효과도 없었을 것이다. 그뿐아니라. 그때 예수는 자기의 생명을 바칠때가 이미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악인들이 우리에게 대한 거짓된 증거를 할때에 잠시 동안은 우리의 화를 격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절제하며 거짓말로써 보복하고저 하지 말것이다.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배우며 의로운 원칙을 쫓는 한편 진리를 말할것이다. 악한자가 행한 책임은 악인이 지게된다.—시편 119:69, 70.

6, 7. 형제들의 안녕을 보장하며 회중의 통일을 보존하기 위하여 어떻게 행할 것인가?

6 형제들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하여 고려하여야 할때가 있다. 회중의 종의 책임을 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개인적 성질의 질문을 한 형제에 대하여 할때에 그리스도인의 형제로써 자기 일만을 돌보고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형제를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 회중의 책임진 종에게도 그들이 그때에 질문할 권리를 갖지 않었으면 마찬가지이다. 남의 일에 참견 하고저 하는 사람들을 막으라. 다시 말하면 쏙싹거리는 것이나 소문을 시작하는것 혹은 고자질 하는것 또는 형제들의 결점을 찾아내는 일을 피하는 것이 좋다. 거짓을 말하는 거짓증인뿐만 아니라. 형제간에 불화를 이르키는 자들도 여호와께서는 미워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떤 형제에 관하여서도 쏙싹거리는 일을 피하라. 어떤이가 매우 크게 잘못하였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관하여 한마디 하기를 당신이 원하면 그에게 직접가서 말하라. 쏙싹거리는 일을 시작하지 말라. 쉽게 말하자면 각자가 자기 하는일을 돌볼것이며 그 하는일은 여호와의 말씀에 일치되어야 한다. 이렇게하면 그는 남의 일에 참견 하는데서 오는 문제나 곤란을 받지 않을것이다.—잠언 16:28; 18:8; 마태 24:48-51; 베드로 전서 4:15.

7 그런고로 영적으로 도와주어야 할 형제가 당신에게 와서 자기의 문제 혹은 개인적인 곤란이나 제명처분에 해당될만한 것은 아니나 오래전에 행한 나쁜일 등에 관하여 이야기하면 장성된 그리스도인 형제로써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것인지 충고하여 줄것이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를 도우라. 그러나 모든것에는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환란때에 당신의 형제의 곤란을 도아주라. 누구에게나 당신이 안것 전부를 말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형제를 도우라. 그러나 그가 필요한 때에 당신을 믿고 말한문제나 가족의 곤란한 점등을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라. 당신의 형제에게 사랑을 보이라. 이것을 하나님의 조직의 통일을 위하여 하라.—잠언 11:13.

8-10. (ㄱ)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형제들에게 대한 어떠한 태도로써 증명할수 있는가? (ㄴ) 쏙싹거리는 것이나 무익한 말은 어떻게 형제들을 상하게 하며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부족함을 나타내는가?

8 누구던지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칭하면 역시 그의 형제도 사랑하여야 한다. 만일 그가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짓에 살고 있는것이 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한 1서 4:20, 21.

9 한 형제가 20년전에 잘못된 일을하였다 하자 그때에 자기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용서를 받었다면 남이 이런 문제를 계속하여 끄집어 낼 필요는 없다. 그것은 형제에게 대하여 사랑을 표시한것이 아니다. 참으로 당신이 당신의 형제를 사랑한다면 그에 대하여 남에게 말하거나 쏙싹거리지 않을것이다. 우리가 말할때에는 참말을 하여야 하되 형제에 관하여 우리가 아는것 전부를 반드시 말하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가 참으로 용서를 받었다면 그 일은 임이 일단락(一段落)짓고 끝났기 때문에 왕국회관이나 회중에서 매주일 끄집어 내어 말하여서는 않될 것이다. 형제의 흉을 들어내고 계속적으로 고자질 함으로써 어떻게 자비를 나타내겠는가? 이것이 어떻게 통일을 갖어 올 것인가? 이것이 어떻게 회중의 일치조화와 즐거운 정신을 보존할수 있는가? 말하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왕국진리나 야외의 경험담등 할말이 많이 있다.

10 쏙싹거리거나 무익한 말 혹은 거짓교리로써 속임으로 불화를 이르키는 자들은 여호와의 조직의 유익을 도모하고 있지 않다. 디도서 1:10-12에서 바울은 마음을 속이며 무용한 말을 하는 자들이 거짓을 가르침으로써 어떻게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지 설명하였다.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라하고 그는 말하였다. 이것과 관련하여 그는 9절에서 회중의 감독자들이 진리에 반대되는 자들을 책망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회중내에는 진리가 보존되어야 한다.

공의롭고 정직하게 행함

11. (ㄱ) 정직과 참은 어떠한 관계을 가졌는가? (ㄴ) 정직하지 못단자가 하나님의 회중과 일시적으로 관계를 맺을수 있는가?

11 『사람아 여호와께서 선한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공의롭게 혹은 정직하게 행하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과 잘 일치한다. 이런것들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찾어 볼수 있어야할 성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도우며 정직하게 행하는 형제들이다. 그러나 좋은 마음의 동기를 갖지 않은 사람이 조직에 들어왔을때에 자비로운 그리스도인이 그 악행을 계속하여 참을 필요는 없다. 깊은 마음속은 정직한 사람이 아니며 의로운 진리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이 때때로 집회에 참석하여 여호와의 신세계사회와 관계를 맺는 일이 있다. 이런자를 흔히 『기생자(寄生者)』라고 부른다. 이들은 사기(詐欺)와 기만을 행하며 형제들의 돈이나 물건이나 소유물을 빌리되 속으로는 다시 갚을 생각도 갖지 않은 자들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겉으로 그리스도인인척 하나 그들은 단순히 이기주이적 관심만을 갖이고 있다. 유다는 가난한 자에게 위선적인 동정을 한 도둑이였다.—요한 12:6.

12. (ㄱ) 형제들로 부터 돈을 빌리는 것은 좋은 습관이라 할수있는가? (ㄴ) 고대 이스라엘민족이 정직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는 어떠한 마련을 하셨는가 또 죄인은 일을 올바로 시정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 필요가 있었는가?

12 형제가 다른 형제들에게서 돈을 빌리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라 할수없다. 어떤때는 돈을 빌려주는 것이 사랑을 나타내기도 하나 때때로 이것은 회중내에 문제를 이르킨다. (누가 6:35) 혹시 형제들이 같이 사업을 할때에 돈을 지불하기로 약속 하거나 물건으로 지불하기를 동의하였거든 그들은 약속을 지킬것이며 참을 말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은 피할것이다. 기억이 불완전하며 비난을 피하게되는 점으로 보아 이런 처사(處事)에는 전부 적절한 문서(文書)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사기(詐欺)와 기만과 정직하지 않은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범죄인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범죄를 대속하는 마련을 준비하셨다. 범죄한 자는 형제와 더부러 일을 올바로 처리하며 여호와의 목전에 시정하여야 되었다. 『한 영혼이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집하거나 빼았거나 늑봉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유실물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빼았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 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일을 더하여 돌려 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그는 또 그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 올찌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 올 것이요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들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레위기 6:2-7; 19:11-13.

13. 오늘날에 일으러 정직에 관한 여호와의 원칙이 변하였는가?

13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대 이스라엘과 같은 제사장제도밑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한 것이나 빚진것 전부를 옳게 처리하며 정직하고 공정하여야한다. 우리는 형제를 속이지 않으며 모든것을 공의롭게 행하고 우리가 저질른 잘못에 대하여 여호와의 용서를 구할것이다. 형제들은 모든 사업에 있어서 서로 공정히 행하며 그들중에 거짓말이나 정직지 못한것 혹은 사기(詐欺)를 없이하여야 한다.

14. 그리스도인으로써 자기가 빌려준것을 다시 돌려 받고저 할때 어떠한 행동을 하여야 적절한가?

14 개인 형제나 회중으로 부터 정직지 못하며 부도덕(不道德)한 사람들이 회중에 슬며시 들어왔다는 보고를 협회는 때때로 받는다. (유다 4) 부도덕한 자를 어떻게 대할것인가는 확실 명료하다. 그러나 돌아다니며 형제들을 괴롭게하고 시인이 말한 것과 같이 돈만을 취할 목적으로 형제인척 하는자들에 관하여는 어떠한가? 『악인은 꾸고 갚지아니하나』라 하였다. 시편(37:21) 그들에 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할것인가? 어떤형제가 형제인 척하는 사람에게 사랑과 친절로서 얼마동안을 돈이나 물건을 빌려주었다하자 그런데 그빌려간 사람이 약속한 기간이 지난뒤에도 돌려주기를 거절할때에 빌려준형제는 돈이나 물건을 빌려간 사람에게 가서 전부 돌려주도록 말할수 있다. 형제에게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그에게 가서 직접 이얘기하는것이 정당하다. (마태 18:15-17) 만일 그가 적당하게 처리하고저 하지 아니하면 문제에 관련된 형제가 회중의 종에게 말하여 피고(被告)와 함께 위원앞에서 심문(審問)의 기회를 갖도록 한다. 이런때에 상호 간에 한 말로만 하지않고 서명을 한 문서가 있으면 매우 유리(有利)할것이다. 유죄(有罪) 하다는 것이 결정되면 위원은 피고가 빚을 갚기 위한 혹은 그릇된 일을 고칠만한 합리적 기간을 정한다.

15. (ㄱ) 형제가 빌린것을 적절하게 갚지 아니할때 혹은 갚기를 거부할때에 회중은 어떠한 행동을 취할것인가? (ㄴ) 빌린것을 청산(淸算)하기 위하여 세상 법정에 나가는 것이 합당한가? (ㄷ) 법정에 내놓기 전에 무엇을 먼저 생각하여 볼것인가?

15 피고가 올바르고 정당한 처리 하기를 거부할때는 빌려 준 형제가 빌린형제를 법정(法廷)에 고소하는 것이 합당한가? 성경에서는 이같은 일을 회중의 장성된 형제들에게 갖어가고 법정에 제출하지 말도록 충고하고 있다. (고린도 전서 6:1-10) 그러나 그가 만일 착취자(搾取者)이면 회중으로부터 제명처분 당할수있다. 그후로는 그로부터 피하여야 한다. 회중에서 제명처분 당한다는 것은 이런 자가 인간의 손에서 받는 형벌중에 가장 큰것이다. 왜냐하면 장성된 형제가 성경의 교훈에 따라 행할때에는 사실상 여호와를 대행(代行)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심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제명처분 된 사람을 법정에 끌고 나가느냐 않느냐는 속임받은 사람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다. 제명처분 된자는 임이 형제가 아니며 회중으로써 힘을 다 하였는고로 마지막으로 남은 수단(手段)은 그나라의 법률재판에 맡기는것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나 혹은 돈의 비용을 고려하여 보는것이 좋다. 법적으로 고소하는데는 비용이 많이 들며 때때로 모든것이 수수료(手數料)로써 볍률가 손에 들어가 버리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이같은 공개적 행동을 통하여 사업에 미치게 되는 비난을 또한 생각하여 볼것이다. 이런 이유로써 형제가 자기 형제를 법정에 끌어드리지 않을수도 있다. 조직이 비난받게 될런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회중이 비난을 받게 되는것보다 속임받는것이 낫다고 변론하였다. 그러나 비록 보통사람들이 고소당한자가 제명처분 당하였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에 대하여는 처지가 달러진다. 법정행동을 취하였을때에는 복수를 목적으로 하지말고 잃어버린것을 다시 배상하도록 하는것을 본의로 할것이다. 빚을 갚도록 하기위하여 이 정도의 단계까지 진행시킬때에는 처음부터 문서를 구비하여 가질것이다. 해(害) 받은 형제가 그일을 잊어 버리기로 결정한다면 그일은 여호와의 손에 맡기우게 된다. 여호와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며 그들의 동기를 아신다. 그리하여 의로운 행실을 한자에게 생명으로 상주신다.—로마 12:17-19; 고린도 전 5:11-13; 히브리 10:26-31.

16. 형제는 빚진자에게 어떻게 자비를 보일수 있는가?

16 언제나 어떤경우에 있어서나 자비를 나타내야 한다. 어떤사람이 몇백환을 빌려간 후에 속이려는 마음이 없는데도 깜빡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그에게 빚을 갚도록 여유를 줄것이며 그의 마음이 의롭다면 형제에게 진 빚을 청산하기를 그는 원할것이다. 여유가 있어 빚을 갖지 않게 하기를 원하는 형제도 있을것이다. (마태 6:12; 18:23-35; 누가 7:41-43) 누구던지 빚을 갚지 않어도 용납되리라고 기대하여서는 않된다. 그러한 법이 없으되 형제의 사랑으로써 갚지 않어도 용서받는 수가 있을수 있다. 빚진사람이 좋은 마음과 양심을 갖었다면 자기의 빚을 청산하기 원할것이며 적어도 노력이라도 하여야 될것이다. 어떤 적은 일에 있어서는 회중의 위원이 아프거나 빈곤한 사람의 빚을 용서하여주라고 심문시(審問時)에 제안할수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제안에 지나지 않으며 최후적 결정은 빌려준 사람이 한다. 회중의 위원을 구성하는 종들은 장성되고 지혜로운 형제로 될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것으로 알수 있다.

17. (ㄱ) 정직하지 못한자에 관하여 회중에게 경고할 때 종은 어떤것을 주의할것인가? (ㄴ) 피고는 회중에 복구될수 있는가?

17 빚 갚기를 거부하는 자나 돌아다니며 회중의 형제들에게 돈이나 다른 것을 취하여 가는 사람에 관하여 회중에게 발표하려거든 회중의 종이 하되 중상적(中傷的)인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할것이며 단순히 사실 그대로를 보고하거나 정직지 못함으로 혹은 속임으로써 제명처분 당하였다는 사실만을 보고할 것이다. 이렇게하면 회중에 있는 자들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앎으로써 자기자신이나 형제들의 복지(福祉)를 보존할 수 있게된다. 『그 악이 회중앞에 드러나리라.』 (잠언 26:26, 18, 19) 어떤 사람이 제명처분을 당하였다가 빚을 갚으면 그가 취한 의로운 행실로써 올바른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였는고로 복구될수 있다. 복구는 위원의 임의(任意)로 할수있다. 이것은 빚을 갚도록 하기 위하여 형제를 법정에 내놓지 않은 좋은 이유의 하나이다.

18. 누가 16:1-8에서 예수가 말한 비유가 정직지 않은 것을 시인한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이 나타내고 있는가?

18 누가 16:1-8의 비유를 보면 예수께서도 정직하지 않은것을 시인하지 않으며 칭찬치 아니하였다. 예수는 결코 불의(不義)를 승인치 않는다. 어떤이는 『주인』이 비유를 말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였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정직하지 못한 청직이를 칭찬한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부정(不正)한 청직이의 주인에게 적용되며 그 주인은 충실치 못한 청직이의 기민(機敏)한것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장래를 보장하기 위하여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를 보이신것이다. 『빛의 아들들』도 장래를 내어다보고 여호와를 기쁘게 하며 영생의 영원한 부귀를 얻기 위하여 그들의 소유와 능력을 사용하여야 된다. 자세한 것은 1948년2월15일號 영문 파수대를 참조하라.

적에 대한 방어(防禦)

19. 적과 대할때 그리스도인은 그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수 있는가?

19 악한자가 한 그리스도인이나 형제중에 어떤이에게 또는 하나님의 조직을 해치고저 하여 개인문제를 캐내고저 할때 그리스도인으로써 이런 악한자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있는가? 특히 환란과 박해때에 그리스도인을 보호하며 자기방어(自己防禦)를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것인가? 악인이 한 형제에게 해를 끼치고저 하고있음을 당신이 안다면 그 형제있는 곳을 물어도 대답할 필요가 없다. 가끔 예수는 다른 질문으로써 받은 질문을 반대로 공격하였으며 이것은 대적을 곤란한 입장에 서게하였다. 이것으로 보아도 우리가 악인을 어떻게 적당하게 피할수있는가를 알게된다. (마태 15:1-6; 21:23-27; 22:15-21) 독일의 나치 정권에서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이 된다는 자체가 범죄로써 여김을 받은 일이 있다. 어떤자가 와서 한사람에게 여호와의 증인인가를 질문하여 그가 증인이라고 대답만 하면 즉시로 검거(檢擧)되어 투옥(投獄) 당할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행하는가는 각자가 결정하여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요』라고만 하던가 말을 도모지 하지 않는것이 적절하다고 결정 지을 사람도 있을것이다. 이렇게 하여도 마태 10:33에 기록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사람이 되는것이 법률을 범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잔혹(殘酷)한 법률은 독재자(獨裁者)가 그곳에 전도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중지 시키기 위하여 세운것이다. 그런고로 자기가 여호와의 증인의 하나임을 모든 사람들에게 다니며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성경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는 동시에 묻는 사람에게 일일히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여호와의 조직과 자기자신의 안녕을 보존할수 있다.—시편 29:1.

20. 미국에서는 어떤때에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수 있는가?

20 미국합중국(美國合衆國)의 헌법은 자기에게 불리할 때에는 증언(證言)을 피할수 있게 되어있다. 헌법은 범죄사건에 있어서만 증언을 강요한다. 이것은 자기를 불리하게 할만한 질문에 대답할 것을 법적 혹은 공적(公的) 수속시에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증인들에게 준다. 남의 입장을 불리하게 한다는 이유로써 대답하기를 거부할 권리는 부여(賦與)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침묵(沈默) 지키기를 택하고 모욕죄(侮辱罪)로써 형벌을 받을수도 있다. (22항의 설명을 참조하라) 면제(免除)는 다만 개인적인것이며 대답하는 것에서 면제될것을 주창하는 사람자신만을 위한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질문에 대하여 대답할것을 거부한다 하여 직장을 잃도록 법률이 제정된 곳도 있다. 고용(雇傭)된 경우에도 어떤이를 강요하여 그에게 죄를 씨워 버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가 대답하기를 거부하면 죄명을 쓰게 되든 않되든 이것으로써 해고(解雇)시킬 법적 근거들 갖게된다. 그런고로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느냐 혹은 침묵에 따르는 형벌을 받느냐 하는 것은 각자가 결정할 문제이다.

21. (ㄱ)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언제 질문에 대한 불리한 대답을 거부할수 있는가? (ㄴ) 언제 대답하여야 하는가? (ㄷ) 예수께 공정치못한 어떠한 일을 행하였는가?

21 그러나 알만한 권리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 불리한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 하였다 하여 해를 끼치지는 못한다. 이 예로써 영어를 말하는 나라에서는 구속(拘束) 당하였을때 원한다면 불리한 질문을 하는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 이것은 법적으로 승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경찰관이 관계할 바가 아닌고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수 있다. 이것은 법정(法廷)에서 취급할 문제이다. 그러나 법정에 들어가 증언대(證言臺)에 서서 진실을 진술하겠다고 서약한때에는 그 사건에 판하여 비밀에 속한것이나 자기를 불리하게 할만한것일찌라도 모욕죄에 해당되지 않고 대답하기를 거부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재판관은 대답을 요구할만한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유죄(有罪)한것으로 소송(訴訟)된 사람이 피고(被告)로써 죄목(罪目)에 관하여 증언할때에는 질문에 대답할것을 면죄(免罪) 되도록 주장할수 없다. 증인(證人)도 조사 당하고 있는 특별한 범죄에 관하여 자기가 아는것을 말하여야 한다. 그러나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또 하나의 범죄하나를 구성할만한 불리한 말은 하도록 강요되고 있지 않다. 조사당하고 있는 사건에 관한 사실은 전부 대답하여야 한다. 혹 피고가 질문에 대하여 자기에게 불리한 대답하기를 피하고저 한다면 그나라의 법률이 허락 하고 있는한 증언대(證言臺)에 서지 않을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증언대에 설것을 거부할수도 있다. 피고는 증언을 거부할찌라도 증거하도록 소환장(召換狀)을 받은 증인은 증언대에 서기를 거부 할수 없다. 문제되어 있는 사건, 혹은 범죄에 대하여 증언대에 설때에는 그 특별한 범죄나 사건에 관하여 침묵을 지킬수 있는 권리를 상실한다. 그러나 다른 범죄나 사건에 관하여는 이 면제를 주장할수있다. 이러한 면제는 미국의회조사위원(美國議會調査委員)앞에 선 증인들 전부에게 적용된다. 여기에는 특별한 범죄나 사건이 포함되어있지 않다. 이런 위원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그 특권을, 주장하는것이 합당하다. 자기자신을 죄에 빠치는 것으로 부터 면제된다는 일은 보통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만 볼수있다. 예수의 경우를 마태 26:63-65(신세)에 의하여 보면 법정은 그 자신의 법적특권 이상의 것을 행사하여 대제사장은 예수로하여금 서약(誓約)케 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인가 아닌가를 말하게 하였다. 예수는 이 같이 대답하였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人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예수는 공정치 못한 방법으로 대답하도록 강요되었으며 그의 대답전부가 암시하는 바로써 대제사장은 그의 대답이 질문에 대한 긍정(肯定)임을 이해하였든 것이다.

22. 전체주의적 통치하에서 그리스도인이 선서를 하게 될때 어떠한 길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는가?

22 선서(宣誓)밑에 열리는 법정에서도 힛틀러의 정권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형제들이 어느 쪽을 취하여도 불리한 결과가 오는 두가지 길을 직면(直面)한 일이 있었다. 하나는 아는 것을 전부 말함으로써 죄를 쓰고 형제들을 박해와 형벌의 위험에 내놓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처벌 받는것 또한길은 증언대에 섰을때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하고 모욕죄로써 구속을 받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경우에 대답할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각개인에게 달려있다. 거부한다는 것은 형벌을 의미한다. 그는 침목을 택함으로 옥에 갈수도있으며 말함으로써 그의 형벌을 몇배나 더하거나 혹은 형제들을 위험에 빠트릴수도 있다. 거짓말은 절대 하여서 않될것이나 대답을 계속 거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몇년간의 감욱생할이 될찌도 모르는 가이사의 형벌을 갚어야 된다는 것을 기억할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선서(宣誓)하고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 그런고로 독일의 나치 정권하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에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공정한 재판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인 되는 것 자체가 범죄하는 것이였다.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견딜수 있는 힘과 지혜를 그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공정치 못한 법정에서는 언제나 침목을 직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않이다. 담대하게 증거하므로써 여호와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되는때가 많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추종자들이 증거하기 위하여 지배자앞에 서게 되면 말할 것이라고 하였다. (마태 10:17-20) 사도 22장과 26장은 바울이 당국자(當局者)앞에서 어떻게 담대하고 지혜로운 증언을 하였는가를 알리고 있다. 그런고로 고소(告訴)된 그리스도인 자신이 자유로히 말할것인가 아니할것인가를 환경에 따라 결정할것이다. 그러나 일단 말할때에는 진심을 말하여야 된다.

23. 예수는 선서하고 거짓말을 하였는가?

23 독일의 나치 정권과 같은 환경내에서는 선서한 후에도 거짓말 하는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예수는 선서하에서 비록 짤막하나 진실을 말하였다. 성경 어느곳에도 예수가 거짓말 한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요한 7:8에 그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아니 하노라.』 (미표역) 그러나 예수께서 후에 명절에 올라 간 것을 근거로하여 거짓을 말한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영문 신세계역과 한국어 성경은 예수께서 거짓말을 한것이 않임을 증명한다. 『나는 … 이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 하노라』고 그가 말하였기 때문이다.

24. 베드로의 쓰라린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24 베드로는 선서한후에 예수를 부인하였다는 기록이 마태 26:69-75에 있다. 선서하면 반드시 참을 말할 것이다. 베드로는 참으로 잘못된 일을 하였다. 그는 그것을 알었기 때문에 후에 통곡한 것이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었다. 예수는 그에게 그러한 본을 주어 따르게 하시지 않었다. 베드로는 잘못을 저질렀으나 여기에서 여호와는 베드로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보이시고 그를 용서하신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후에 그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사업을 진행시키며 형제들을 봉사하는 일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행동과 베드로의 쓰라린 경험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이 된다.

25.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이르키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수 있는가?

25 야곱 라합 기브온사람 다윗 기타 성경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이 거짓말 한것으로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는 성경기록은 없다. 이러한 거짓말의 실예를 어떻게 이해할것인가 하는 문제는 파수대의 다른 항목에서 취급할수 있기를 우리는 희망한다.

선서(宣誓)와 옳은 행동

26, 27. 사람이 어떻게 거짓에 살수있는가?

26 여호와의 신세계사회와 연합되여 자기 자신을 여호와의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선서(宣誓)를 한다. 그러나 이 약속을 어기면 결과로 거기에 합당한 형벌을 받는다. 이같은 약속을 하는자는 헌신의 모든 조건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의미한다. (신명기 23:21-23) 또한 진리의 지식을 얻어 무엇이 옳은가를 안때에는 여호와의 목전에서 옳은것을 행할 의무를 갖게된다. 그런고로 헌신 한자나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이라 자층만 하는 사람이나 불문하고 옳은것을 행하고 진실을 지킬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어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 (요한 1서 1:6, 7) 만일 우리가 사실이 아닌것을 주장한다면 마치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거짓에 살고 있다고 할수 있다. 예수시대의 악한 교직자들은 역시 이러하였다. 충실하지 못한자는 모두 스스로를 거짓말 쟁이로 한다. 나쁜 행동을 취한다는것은 사실에 있어 그리스도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요한 1서 2:22.

27 여호와는 그의 진리의 말씀 가운데 여러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신세계에서 얻을 생명을 위하여 준비할수 있도록 하셨으며 동시에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킬것을 기대하신다. 여호와께서는 처음의 커다란 거짓말로 인하여 우리에게 온 죄악과 무능(無能)을 없애버리도록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비로운 마련을 준비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긴다면 여호와께서 그의 아들을 통하여 주신 계명을 우리는 순종할것이다. 그리스도인 이며 하나님의 종이라 주장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사실상 거짓말 쟁이며 거짓에 사는자이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나니라.』—요한 1서 2:3, 4.

양심

28.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무엇인가 또 그것은 선행을 하고록 어떻게 인도하는가?

28 여호와는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다. 그 양심은 선할수도 있고 악할수도 있다. 바울은 말일에 사람들의 양심이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을 디모데에게 편지하였다. 이런자는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돌아 선 자들이다. 그들은 악행(惡行)을 하여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양심을 가저야 한다. 자기는 선한 일을 하며 범사의 진리를 쫓고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저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성공 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여호와 앞에 선한 양심을 가저야 된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디모데 전 1:19) 우리는 진리의 지식을 알 때 악한 양심은 버리고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것을 통하여 자신을 정결케 한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 10:22) 하나님의 말씀에 가르침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선한 행동의 좋은 안내의 역할을 한다. 탈과 같은 법전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개인 개인이 여호와의 말씀의 충고를 상고할 것이며 무엇이 옳은가를 아는 동시에 대답할것인지 하지 않을것인지를 선택하게 될때 어떻게 할 것을 결정할것이다.

29. 어찌하여 선한 양심이 축복이라 할수 있는가?

29 옳은 일을 하고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우리는 박해자나 선을 싫어하는 세상사람에게 가끔 고통을 받는다. 옳게 행하므로써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하게되며 그의 이름을 밝히 나타내는 일에 참예하게 된다. 선한 양심을 갖는 것은 상쾌한 일이나 거짓말을 하고 나쁜 길을 걸으며 악한 양심을 갖인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진실을 말할 때에는 자기 이야기를 똑바로 할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거짓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의 발자취를 감춘다. 어찌하여 거짓말을 덮고저 하여 일생동안 아슬아슬 하게 살 까닭이 무엇인가? 왜 언제나 진실을 말하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즐겁게살지 않을 것인가? 참을 말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으면 여호와 앞에서 양심에 확신을 가진 이상 고통을 쉽게 견딜 수 있다. 옳은 일을 하고 선한 양심을 지킴을 인하여 고통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다.—베드로 전 2:19, 20.

30.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의 조직에 가까히 함으도써 우리자신과 자녀에게 어떠한유익을 갖어오는가?

30 우리 생시(生時)에 하는 모든것 중에서 우리는 첫째 여호와를 기쁘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합의하시는 일을 하고저한다. 그런고로 여호와께서 세우신 조직에 연결되어 그의 말씀이 명하신 것을 한다. 이 낡은 세상의 악한 영향을 피하고 환경으로부터 풍기(風紀)를 배우지 말것이다. 우리는 전력을 다하여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의무가 있다. 진리로 마음을 충만케하라. 그러면 진실을 말하게 될것이다. (마태 12:34; 빌립보 4:8) 여호와는 우리 마음의 깊은곳에 있는 생각을 감찰하시며 동기를 살피시고 선악을 판단 하심이 확실하다. 우리가 참을 말하면 여호와의 사랑을 받을수 있다. 또한 자녀들도 부모의 옳은 본을 받어 여호와의 목전에 진실할것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자녀들의 성장초기(成長初期)에 참을 말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중요한것은 물론이다.

31. 신세계사회를 조성하는 사람들 간에 어찌하여 참과 공의가 필요한가?

31 사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나 이 끝날에 여호와께서 신세계 사회에게 주신 일에 전력을 다하며 여호와 하나님과 형제들의 사랑을 의뢰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의와 진리의 원칙을 지키며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꼭 하나 있으며 그것은 신세계 사회를 조성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종들인 이들이 순결하고 의로우며 깨끗하고 진실을 말하며 형제들과 공정하게 또 정직하게 사귀며 조직의 평화와 통일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신권조직에 연결된 사람중에서 악행을 허용치 말자 서로 공정히 행하며 지금부터 신세계를 위하여 사는 방법을 배우자 그리하면 완전히 운행될때에 신세계에서 살수 있게 될것이다.—에베소 4:1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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