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행할 신권적 실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하게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골로새 3:18-21.
1. 가정을 다스리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마련하신 것은 무엇이었는가? 아담은 어떻게 실패하였는가?
가정을 처음 마련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땅을 지어 거기서 사람이 살게 하셨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을 좋게 생각지 않어 그를 돕는 배필을 지어 주셨으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수 있도록 자녀를 출생시키는 능력을 주셨다. 아담이 가정을 이루어 아내와 자녀를 가지며 다툼이나 충돌로 인하여 가정 불화를 초래하지 않으며 가정을 잘 다스리게 할 것이 근본 여호와의 뜻이 었다. 그 가정을 화평과 일치 조화로운 가운데 유지하기 위하여 아담에게 가독권(家督權)을 주셨으나 아담은 주인 노릇을 잘 못하고 우울한 실패자가 되고 말았다. 해와는 그의 권위를 무시 하였으며 아담은 해와가 속임을 당한 것을 정당하게 해결하지 못하였다. 해와가 죄로 인도하는 대로 아담도 딸아갔다. 아담은 범죄한 책임을 아내에게 밀었으나 죄의 무거운 짐은 도리어 자기 등에 지게 되었다. 그는 가정의 으뜸으로서 잘 처사하지 못하였으며 그의 아내 역시 순종하지 않었다. 그의 맏아들은 살인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가족은 반역과 죄와 책임전가와 사망으로 파괴(破壞)되었는데 그 책임은 아담에게 있었다.
2. 이 문제에 관하여 오늘날 사람들은 얼마나 타락되었는가?
2 오늘날에 있어서도 가정은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여전히 파괴되어 있다. 남자나 여자나 할것 없이 가정을 다스리는 면에서 여호와께서 정하신 행동으로 부터 매우 멀어지게 되었으며 남편이나 아내나 그들이 맡은 책임에서 너무나 떨어져 있다. 남편은 가독권(家督權)을 남용하고 있으며 부인들은 이에 반항하고 있다. 자녀들은 그것을 무시하며 방탕하며 지금까지 보지못한 타락에 뻐쳤다. 결혼의 청결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으나 집안 분쟁과 타락 이혼등은 급속도로 늘어간다. 오늘날 각 가정은 여호와의 신권적 교훈을 물리치고 인간의 지혜를 심어 어리석은 것을 거두고 있다. 세상은 그들의 생각이 현명한것 같이 생각하나 그 열매는 세상 지혜의 어리석음을 웨치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고치는 단 하나의 길은 가정에서 행할 신권적 실천 뿐이다.
3. 결혼과 하나에 관하여 어떠한 훌륭한 예가 있는가?
3 가족들 사이에 놓여있는 의무와 책임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기 위하여 훌륭한 본을 살펴보자. 우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우주 조직의 긴밀한 관계를 명시하기 위하여 결혼으로 상징하여 자기를 남편으로 우주 조직을 여인으로 말씀하셨다. 또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긴밀한 관계를 알리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상징하며 하늘에서 혼인 예식을 하는 것으로 말하였다. (이사야 54:5; 고린도후 11:2; 계시록 19:7) 에덴에서 남자와 여자를 『한 몸』으로 말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결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또 여호와와 우주 조직에서 여호와 다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라고 하였으며 또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를 하나로 말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와 그리스도가 어떤 이교도에서 들어온 오묘한 삼위일체로 하나라고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도 문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며 부부에 있어서도 두 사람이 실지로 한 사람이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여기 하나라고 한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목적과 목표와 원하는 것과 노력의 방향이 하나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마태 19:4-6; 요한복음 14:10; 17:21-23.
4. 가정에서 머리가(어른이) 왜 필요하며 누가 머리인가?
4 두 사람 이상이 모인 곳에는 조직이 있어야 하며 모든 힘을 한데 집중시키기 위하여 현명한 지도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사회에 있어서 좋은 의견을 택할 때나 옳은 방법을 채택할때에 한 사람 보다 두 사람이 더 나은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일을 마지막으로 결정할 때에는 한 사람이 더욱 좋다. 머리 없는 단체는 총 역량을 집중시켜 일할수 없으며 따라서 둔한 사람의 두 머리는 다툼과 분렬을 초래할 뿐이다. 우리가 모다 명심할 것은 여호와를 제외하고는 모다 머리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린도 전서 11:3) 이러한 질서는 어떠한 피조물이 만든 것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주의 법측인 것이다. 이 법에 일치하여 행하는 것은 여호와께 순종하는 것이요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여호와께 거역하는 것이다. 신권적 아내와 자녀들은 남자가 그 집의 머리가(어른이) 되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남편들에게 강요된 의무
5, 6. 어떠한 예가 남편들에게 강요된 의무를 밝혀주는가?
5 어떤 나라에서는 부녀들이 가독권(家督權)을 나누려하여 혹은 차지할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그리하여 남자가 집에서 주장을 하며 여자가 복종하라는 이 거룩한 요구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발생된다. 이러한 요구는 마치 그들에게 차별을 두며 억누르는 것 같이 생각하며 그들은 이러한 짐을 견딜수 없는 것 같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더 무거운 짐과 더 무거운 책임은 남편에게 있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을뿐 아니라 거기다 법을 세워 그 법을 따라 행함으로 존속되게 하셨다. 우리는 여호와의 본을 받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친히 행하실 때에도 이 법을 무시하지 않으시며 만물의 머리로서 온전한 의와 지혜와 인내 긍휼 자비와 더욱 사랑으로 다스리신다. 땅에 사는 우리를 격려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 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였다.—시편 103:14.
6 우주 조직에 대한 여호와의 놀라운 주권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반렬에 대한 그리스도의 통치 내에서도 인간 남편들이 본받을만한 아름다운 본을 보여주셨다. 예수께서는 교회 지체가 될 성원을 위하여 친히 일하셨으며 가르쳐주시며 전도하시며 우리의 육신의 빵보다도 더 필요한 령적 양식을 준비하여 주시지 않으셨는가? 그의 인내와 오래 참음은 본이 되지 못하였는가? 그의 지적 제자들에게 베픈 긍휼과 연약한 육신에 동정하며 용서하여 주신 것을 생각해 보라! 예수께서는 여호와께 충성을 바치기 위하여 형틀에서 심한 고통을 받으시지 않으셨는가? 그리하여 우리에게 훌륭한 본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또 나중에는 그와 신부이며 아내인 교회 반렬을 위하여 자기 생명까지 바치시지 않었던가?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으뜸으로서의 본분을 놀랍게 나타내셨다. 그의 뜻있는 준비와 부드러운 관심 현명한 이해 끊임 없는 용서와 애호와 특히 그의 사랑을 보라. 그 사랑의 절정에서 그의 생명을 바쳤다. 인간으로서 그 보다 더 큰 사랑을 나타낼수 없다.—요한복음 15:13.
7. 올바른 지도권에는 어떠한 의무가 따르는가?
7 남편된 자들은 가정의 머리로서 그러한 본과 천적 예를 잘 상고(詳考)하여 그에 맞추어 완전한 신권적 실천을 가정에서 살리라. 남편된 자는 아내를 위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곳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의 의무는 이러한 물질적 필수품을 준비하여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만 한 일은 가축에게도 한다. 그는 동시에 아내의 정신적 기쁨과 령적 양육을 위하여 고려하여야 하며 자기 몸과 같이 아내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 또 남편은 아내의 감정적인 것과 연약한 것을 너그러히 돌보아 주어야 한다. 『그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같이 여겨 지식을 따라 동거하고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베드로 전서 3:7) 현명한 결정으로서 모든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게 하여야 하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어떠한 난관이 있을지라도 그들을 위하여 그 결정을 수행하도록 하라. 남편된 자는 끊임 없이 옳은 원측을 좇으며 인내로서 오래 참으며 긍휼로 용서하며 염려와 이해를 나타내라. 무엇 보다도 특히 노력할 것은 우주 조직에 대한 여호와의 사랑과 그리스도인의 교회 조직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활동적이고 살아있는 사랑을 그들에게 베풀라. 정말로 그러한 높은 요구를 이행하는 것은 올바른 지도 밑에서 순종하는 것 보다 훨신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성 있는 여인으로서 그러한 지도 밑에서 순종할 것을 거부할 자가 누구일 것인가?
아내의 순종에 대한 본
8. 부부는 각각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8 이 제목을 읽는 여자들 중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그러한 지도권 밑에서 기뻐 순종할 것이나 지도를 올바루 행하는 남자가 얼마나 되는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지당한 말이라고 불수 있다. 이 높은 표준을 완전히 이행하는 남자는 없다. 그러나 아내된 자들이 순종할 것을 거절할 조건으로 그것을 내세우기 전에 아내된 자들 자신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을 흠없이 이행하고 있는가를 반성해 보라. 여호와께서 생각하시는 것과 같이 결혼한 상대자는 각각 인간이 진토로 만들어졌으며 연약하므로 긍휼을 베풀어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서로 비난을 퍼붓기 전에 부부된 자는 각각 예수의 말씀을 명심하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태 7:1-5.
9, 10. 아내된 자는 순종에 대한 어떠한 본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누구를 본받지 않을 것인가?
9 여호와의 우주 조직 내에서 여호와 다음으로 으뜸 되시는 분도 위대한 남편 되시며 조직의 으뜸 되시는 이에게 순종하는 것을 괴롭게 생각하시지 않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셨으며 한때는 하나님의 사업을 행하는 것이 그를 존속시키는데 불가피한 양식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시편 40:8; 히브리 10:7; 요한복음 4:34) 그는 여호와께 대한 애착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주검의 고통까지 참으셨으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입증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이름을 크게 입증하였다. 예수께서 여호와의 지도권에 완전히 순종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며 또 예수께서는 순종하는 가운데서 큰 기쁨을 얻으셨던 것이다. 순종은 언제나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지도권을 강탈하려거나 여호와와 동등된 자리를 얻으려고 생각한 일은 전혀 없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형상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된 자리를 탈취(奪取)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틀에 죽으심이라.』—빌립보 2:5-8, 신세.
10 그리스도인의 아내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것이로되 이 세상적 많은 부녀들의 마음을 품지 말라. 저희들은 가끔 남편과의 동등권을 부르짖으며 때로는 남편을 지배하려 든다. 참 그리스도인의 아내라 할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부여한 가독권을 일부나 혹은 전체를 차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비신권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이 정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친히 정하신 것을 인정한다면 아내 된 자는 남편에게 순종할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반대한다는 것은 어떠한 인간에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반항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에덴에서의 덮는 그룹의 경우와 일치된다. 그는 여호와의 지도권 밑에 있는 것을 불만하게 생각하여 어떠한 속박이나 억압을 받는 것 같이 생각하여 여호와께 반항하였으며 불명예스러운 마귀 사탄이가 된 것이다. 그처럼 남편에게 순종치 않는 아내들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본받는 것이다.
11. 아내된 자들에 대하여 또 어떠한 본이 있는가? 그들은 어떠한 길을 피할 것인가?
11 아내된 자는 머리인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교회 반렬의 순종에서 또 본을 얻을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 반렬은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뜻을 버리며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협조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뜻에 일치하여 전도할 의무가 있다. 이로 인하여 얼마의 핍박과 육신의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지도권 밑에서 섬기는 기쁨이란 이 육적 고통을 제하고도 남음이 많다. 그러한 옳은 지도권 밑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자기를 낮추는 일이 아니다. 완고하고 교만한 자들은 수십세기 동안 그렇게 생각하여 왔으나 이 끝날에 있어서 그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지도권 밑에서 탈퇴하므로 『악한 종』의 반렬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순종하므로 참된 기쁨을 발견한 자들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반렬인 것이다. 『악한 종』이 그리스도의 지도권에서 탈퇴하여 큰 기쁨을 가져오는 자유나 석방을 얻었는가? 얻지 못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섭리를 버리고 외식하는 위선자들과 결택하였으므로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이다. (마태 24:45-51) 남편에게 순종치 않는 그리스도인의 아내들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을 본받지 않고 『악한 종』을 본받는 것이다. 그들이 거짓 자유를 얻고저 여호와의 준비를 거부할지라도 그들이 얻는 것은 참다운 행복과 만족이 아니라 심적 고통과 령적 범죄 뿐일 것이다.
남편과 아내에 대한 실천적 교훈
12. 성경 교훈이 비 실천적이라는 현대적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무엇이 증명하여 주는가?
12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수 없노라』 하셨다. 교훈에 대하여서도 이 말이 합당하다고 볼수 있다. 아름다운 교훈을 따르면 좋은 결과를 맺을 것이요 썩은 교훈을 따르면 나쁜 결과에 이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교훈이 비 실천적이라고 비난하여 부부에 대한 충고를 위하여 현대적 권위자들에게 귀를 기우리려 한다. 그러나 이혼과 청소년 범죄의 홍수는 현대적 교훈이 극도로 비 실천적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주는 명백한 사실이라 할수 있다. 그와 반대로 성경을 존중히 여기며 그 교훈을 따르면 이혼과 청소년 범죄는 적어진다. 그러므로 성경이 비 실천적이라고 던지는 비난은 이러한 사실로 말미암아 그들 얼굴에 되 떨어지게 된다.—마태 7:17, 18.
13. 부부가 지켜야 할 관계는 무엇인가?
13 성경은 부부가 지켜야 할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나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깊이(신세) 경외하라.』—에베소 5:22, 25, 28-31, 33.
14. 남편이 아내의 깊은 존경을 받으려면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14 남편된 자가 아내로 부터 깊은 존경을 받고저 하면 주인으로서 행할 바를 다하라. 머리로서 그의 특권은 주장하나 행할 바를 행하지 않을 때에는 허울은 좋아도 실속 없는 주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은 주도권만 잡고 최후의 결정을 한다는것 뿐만 아니라 건전한 지식과 훌륭한 이해와 절제가 있어야 하며 난관에 봉착 할 때도 평온하며 참으며 합리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 어떠한 남자가 가사를 돌보지 않으며 전도에 충실치 않으며 포식(飽食)과 과음을 즐기며 생각이 깊지 못하며 말이 난잡하며 남의 여자와 지나치게 사귀며 자기 아내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아내로서 그를 존경하기 어렵다. 남편이 천박하다면 아내의 깊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아마 여자가 도덕상 외면적으로 경제적 혹은 신권적 이유로서 남편에게 순종할찌 모르나 만일 남편의 아름다운 행위로 인하여 그를 사랑하며 존경한다면 여자에게도 쉬운 일이요 남편에게는 기쁨을 주는 것이다.
15. 아내가 순종하기를 거부할때에는 어떠한 결과가 생기는가?
15 이와 반대로 남편이 순종하지 않는 여자를 참으로 사랑하며 애껴보고 보호한다는것은 심히 힘든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독립적(獨立的) 행동으로 여자는 남편이 필요없다고 주장(主張)하게되기 때문이다. 남편이 정당하게 갖인 지위를 아내가 도둑질하며 강탈(强奪)하는 것이 된다. 아내가 남편과 하나가 되지 아니하며 그에게 대적하며 분리(分離)되어서 협력하는 대신에 그와 경쟁(競爭)하는 여자를 어떻게 남자는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겠는가? 감사치 않는 경쟁자(競爭者)를 위하여 무엇때문에 아낌없이 모든것을 마련하겠는가? 그는 자극이나 솔선적(率先的) 정신을 잃어버리고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여자 마음대로 하게 둘런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여자는 세대(世帶)를 얻은대신에 남편의 사랑을 잃을것이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지위를 횡량(橫掠)하고 남자는 여자를 그렇게 하도록 둔 까닭으로 둘이 다 여호와로부터 버림을 받게된다. 남편이 아내의 주장대로 하게둔다면 여자는 남편에게 대한 깊은 존경심(尊敬心)을 잃게되며 남편은 자존심(自尊心)이 꺾기어서 아내에게 대한 사랑이 증오(憎惡)로 변하게 될것이다. 동등권(同等權)에 관한 현대의 어리석은 주장이 모두 없어진후에도 남편이 정당한 머리가 되고있는 가정에만 만족과 깊은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만이 남게된다. 만일 여자가 가정을 주장(主張)하면 하나님과 남자의 목전(目前)에 그것을 망칠것이다.
16. 아내는 요리인이나 소제하는 사람으로써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여러가지 즐거운 직업을 갖었는가?
16 아내는 가족의 일에 관하여 말도 못한다는 것을 이것이 의미하는가? 아니다. 성경적 입장은 그러하지 않다. 여자는 『집안을 관리(管理) 하게』 되어있다. 아내가 잘 처리하는 이상 남편은 이점에 있어서 아내자신의 독창력(獨創力)을 사용케 하는것으로 만족할것이다. 많은 아내들은 가족을 위하여 고려할만한 가계취급(家計取扱)을 한다. 예산(豫算)을 세우며 모든사람에게 유익하도록 돈을 쓰며 장래를 위하여 저금한다. 가정을 관리하는데는 집을 장식하고 그것을 미화(美化)하기 위하여 물건을 사드리며 효과적으로 운영되도록 준비하는 일도 포함된다. 가정은 가족의 성원전부를 포함한다. 유능(有能)한 아내는 성원 전부가 잘 먹으며 적당히 옷입도록 하며 살기좋고 깨끗한 집이 되도록하는 일에 큰 힘이 된다. 그는 요리인(料理人)이나 소제하는 사람보다도 관리하는 지위에 있음으로 남편과 자녀의 이익을 위하여 돌보는 좋은 직업여성(職業女性) 노릇을 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자녀와 초기 발육기(發育期)를 함께하므로써 어린이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된다. 그는 어린이를 옳은 방향으로 지도하며 좋은 습관과 절조(節操)와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여호와의 진리를 가르칠수있다. 어린 생명에게 좋은 출발을 준다는것은 가장 중한 책임의 하나인 동시에 제일 큰 기쁨의 하나가 된다. 남편이 머리로써 필요한것을 구비하는것이 힘든것과 같이 아내가 집을 관리하는데 요구되는바를 다하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아내가 자기의 직분을 잘 이행할 때에 그여자는 공중사이의 자기 가족에게 영광이 되며 이를 소유한 남자는 여호와께 축복받은 자이다.—디모데 전서 5:14; 잠언 18:22; 19:14; 31:10-31.
17. 어떤때에 남자가 결정하여야 하며 여자는 어떤 태도로 응할것인가?
17 남편과 아내는 둘이 다 자기의 임무와 책임 질 일의 범위가 결정되어있다. 그리하여 각자가 맡은바 짐을 지도록 할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일을 의론(議論)하지도 못할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복지(福祉)는 남편과 아내 두사람의 임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협력함이 있어야 하며 함께 노력을 하며 짐을 가치 나누고 한 팀(짝)으로써 끄으러 나가야한다. 양편이 서로 양보하며 때에따라 상대방에게 굴복할만한 아량(雅量)도 있어야된다. 그러나 가족에 관한 일이나 결정지어야할 어떤일 혹은 취할 행동에 대하여 합의(合意)를 보지 못할때에는 남자가 결정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는것만이 정당한 것이다. 좋던지 나쁘던지 결과에 관한 책임을 지는것은 바로 남자이다. 결정한것이 잘못되었을 때에 재산의 손실이나 기타 이것에 포함된 어떤일이라도 보충하고 결과를 잘 처리할자는 남자인 것이다. 아내가 동의하지 않은것을 남편이 결정하였을때 아내는 입을 내밀고 원한을 품으며 뒤로 물러나 『내가 말하지 않었오!』 하고 비웃을수 있기 위하여 실패할것을 원하여서는 안된다. 이와 반대로 그는 신권적이라야 한다. 즉 가족을 위하여 그 사업이 성공하도록 협력할것을 말한다.
부모와 자녀
18.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결정하는 어떤 충고가 있는가?
18 여호와께서는 가정내에 어린이들을 무시치 않으신다. 그들은 부모의 지배밑에 있으나 학대 하거나 화나게 하여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두가지 길을 명하셨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헌신한 부모의 자녀된 자들이여 만일 땅에서 오래 살고 신세계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부모가 주는 『여호와의 교양과 훈계』를 들으라 부모된 자여 이 교양과 훈계를 화나도록 혹 격동케 하는 방법으로 하지말고 견고와 사랑으로 하라.』—에베소 6:1-4, 신세계역.
19. 청년은 성인을 성인은 자기의 자녀를 어떻게 볼것인가?
19 몇년전만 하여도 청년들은 나이 먹은자를 존경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비판적시대인 동시에 범죄로 충만한 마지막날에 청년들은 일반적으로 존경을 모욕으로 바꾸어 늙은이를 시대에 뒤떠러진 구페자(舊幣者)로써 내려다 본다. 그러나 신권적 청년들은 오랜 해의 연구와 경험을 통하여 나이에서만 올수있는 장성된 판단과 지혜가 있음을 기억할것이다. 엘리사 때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늙은 『대머리』라고 조롱하고 비웃음으로써 슲음을 맛본 범죄자 같이 그들은 되지아니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기억한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욥기 12:12; 열왕기하 2:23, 24) 한편 부모는 그들의 자녀를 짐으로 생각하여 기회만 있으면 면할것으로 생각지 말것이다. 보기만 하고 들려서 안될것으로 생각지 말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말 하도록 명령된바 연사로써 발전되도록 할 필요가있다. 여호와는 그들을 위하여 그에게 드리는 봉사에 자리를 예비하셨으며 조직으로 하여금 회중의 일에서도 그들을 인정하도록 마련 하셨다. 그중에는 신권전도학교도 있다. 그리고 부모는 성경의 진리를 자녀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항상 깨어있으라고 명령하셨다. 부모는 자기 자녀를 집에서나 집회에서나 왕국봉사에서 돌볼것이다. 때때로 다른이가 도와줄수도 있다. 여호와께서 그의 지적(地的) 자녀들에게 행하시는것 같이 성인(成人)은 청년들을 취급할것이며 청년들은 인정받은 자들이 하날의 아버지께 하는것 같이 헌신한 성인에게 충실한 순종을 표시하여야 한다.
20. 어떠한 일반적 충고가 제출되었는가?
20 가족의 성원은 서로 멸시치 아니하고 다소의 위엄(威嚴)을 가지고 항상 서로 존경할것이다. 고처야 할것이 있으면 당신이 충고를 감사할수 있는 태도로 하라. 당신은 친구들 앞에서 불의(不意)하게 공개적 비난 받기를 원하는가? 결혼 상대자에게 이러한 짓을 하지마라. 당신은 쓸데 없는 적은 잘못 하나하나에 대하여 잔소리 듣기를 원하는가? 이처럼 하여 당신의 자녀를 분내게 하지마라. 당신이 부모로써 자녀를 시정(是正)할때 언제나 동일한 말을 서로 하는가 혹은 서로 모순되는 훈계를 하는가? 개인의 기질(氣質) 혹은 기분과 정신적 혼란을 바꿀만한 여유를 주라. 감정적 폭풍이 불고 있는것을 보거던 인내(忍耐)와 자기절제(自己節制)를 기억하라.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싸움을 끝치라. 이것이 더 쉬운 일이다. 끝처야 될때를 아는 대신 시작 하지 않이 할만한 지식을 가추라. 남편은 적은 일을 넘겨볼수 있을만한 남자가 되어야 하며 아내는 불평이 잔소리를 퍼붓는 정도의 슲은 단계까지 이르지 않게 하여야한다. 잔소리하는 아내는 돕는 배필보다 오히려 방해자(妨害者)가 된다. 성경은 이런 여자의 끊임없는 구부러진 잔소리를 떠러지는 빗물로 비유하였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이치적이며 합리적이고 모순이 없으며 쉽사리 화해(和解)되고 속히 용서하며 일이 잘되었을때 곧 칭찬하라.—잠언 19:13; 27:15, 16 (次號繼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