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못찻으며 하느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 하신지라」—묵시 6:4, 5.
1. 어떠한 결론이 논리적이며 또한 성경 적인가?
말세를 당한 오늘날은 심히 부패되었으며 세상의 모든 활동분야는 더럽혀져있다. 그정치는 부패되었으며 상업은 압제적(圧制的)이며 군사는 낭비적이며 그종교는 또한 위선적이다. 그오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와 부도덕적 행위로 달리게 하며 그경기는 부정하고 사악한 행위를 조장 시키고 있다. 인간의 대부분은 이러한 일을 잘알면서도 그러한 부패된 세상과 협조하여 나아가며 거기 참예하며 또한 방관적이며 심지어 비웃으면서도 그것을 영접한다. 많은 상습자들은 이세상의 부패에 대하여 대하여 겉으로는 분노한 연설을 열광적으로 하고 있으나 참으로 그것을 우려하는 자가 몇사람이며 그것에 반항하여 싸우는 자가 몇사람이나 되는가?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악한 세상에 꼭 붙어 그것을 지지하며 그것을 위하여 싸우며 심지어 죽기까지 하여 그부패된 지배자들을 받들어 권력을 행사하게 하며 또는 자기 자신도 완전히 그일당으로 화해 버린다. 그들은 자기의 운명을 이세상에 던져 육욕의 씨를 뿌려 나중에 그재화를 거두게 된다. 이것은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성경적이다.
2. 큰바벨론에게 임할 재앙들을 우리는 어떻게 피할것인가?
2 묵시 18장에는 사탄악마로 말미암어 통치되고 있는 이세상조직 또는 제도 전체를 「큰 바벨론」이라 하였다. 바벨론의 함락은 그리스도께서 즉위하신 주후 1914년에 사탄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땅으로 내려쪼낀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마게돈 때에 보이지 않는 악마의 대군은 완전히 진멸되어 무저갱에 가치우게 되며 그때에 사탄의 보이는 부분도 완전히 멸망될것이다. (묵시 19:11-21, 20:1-3) 그러나 그조직을 소멸하는 불의심판을 피할자도 있을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 천년 끝에있을 부활로 말미암을 것인가? 성경기록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말라. 그죄는 하늘에 사못찻으며 하느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런고로 하루동안에 그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와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여호와 하느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묵시 16:4, 5, 8, 신세.
3. 재앙들은 어떠한 것인가? 그리하여 논리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되는가?
3 그가 받을 재앙은 결정적인 불의 멸망이다. 바벨론 제도는 결코 부활될수 없으며 불로 말미암은 멸망의 침례로 부터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것이다. 만일 이것이 그를 멸망시킬 재앙이며 또한 그중에 참예하는 자가 있다하면 그와 함께 불의 침례를 받어 멸망된 자들이 다시 인간의 부활에 참예할수있다고 말할수 없으며 또한 성경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다시말한다면 그 조직 가운데 남어있는 각자의 운명은 그 조직의 운명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만일 그들 각자가 복귀한다면 그조직도 복귀할것이다. 그러나 그조직이 복귀하지 않는한 그개인개인도 복귀하지않을것이다. 구원의 길은 그조직이 함락되기 전에 그속에서 피하는 것이다. 「거기서 나오라.」 고대 바벨론에 포로잡혔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악한 조직에서 도망할 경고를 받었든 것이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말지어다 그가온대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자여 스사로 정결케 할지어다.」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중에서 나와 각기 나 여호와의 진노에서 스사로 구원하라.」 (이사야 52:11; 예레미야 51:45) 묵시 18장 4절에는 같은 교훈을 더큰바벨론의 함락때에 적용됨을 알린것이다.
4. 인간의 관점과는 반대로 바벨론 석방에 관한 올바른 관점은 어떠한가?
4 많은 인간들은 인간의 입장으로부터 사물을 관찰하기 때문에 인간 구원 문제를 지나치게 중요시 하고있다. 바벨론의 포로들을 석방시키는 것은 제이차적 목적에 지나지 않었다. 문제는 여호와의 생각여하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석방에 관한 중요한 이유를 명시하신바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오 너희가 들어간 그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방중에서 뫃아 다리고 고토에 들어가리라.」 (에스겔 36:22-24) 또 한광야에 있을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멸망 시킬려고 하셨다. 그때 모세는 여호와께 탄원하여 그들을 구하시게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 인간의 구원을 위함이 였는가? 아니다. 여호와의 크신 이름을 위함이였다. (출애굽기 32:9-14; 민수기 14:11-24; 16:44-50; 신명기 9:18, 26-29; 에스겔 20:9) 며뚜기의 구원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겠는가? 우리 인간은 하느님 보시기에는 며뚜기와 같은것이다. (이사야 40:22) 그리하여 우리가 심판기의 마지막에 여호와의 멸망시킬 일을 경시하고져 하면 여호와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인간적 관점집중하여 인간의 구원을 여호와의 증명보다 더 중요시 한다면 초점을 잃은 사진과 같이 성경말씀은 우리귀에 반가히 들리지 않고 군소리 같이 들려 나종에는 거기 걸려 넘어지게된다.—이사야 55:8, 9; 요한복음 6:60, 66.
5. 어떠한 심판기들이 설명되었는가?
5 지상에 살든 대부분의 인간들의 심판기는 죽은사람들이 부활할때 곧 그리스도 천년 통치의 마지막때 일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앞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심판기를 들었던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어떠한 시기에 인간사회에 심판기를 정하시고 그 기간에 그들의 행동을 살피셨다고 하였다. 그들이 그시기에 참된 심판을 받기위하여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미리 증거를 주사 그사태를 잘알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담으로부터 온 유전죄와는 관련없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케하였다. 이러한 심판기의 하나로서는 노아시대의 홍수다. 그 홍수 전에 노아는 의를 전파하였다. 또 하나는 소돔과 고모라의 불로 말미암은 멸망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성읍들은 불꽃비가 나리기 전에 천사들로 말미암은 경고의 기적을 보았으며 롯의 증거도 들었든 것이다. 예수 당시도 또한 심판기였다. 예수께서는 유대의 어떠한 성읍들에 대하여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과 같이 될 것을 경고하였으며 영원한 멸망 곧 께헨나의 형벌에 합당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심판 하셨다. 우리가 살고있는 오늘날도 심판기에 처하여 있으며 이세상이 멸망될 아마게돈 때에 그들의 운명은 결정될 것이다.
물과 불의 소낙이
6. 어찌하여 노아시대의 홍수를 참작하는가? 그 시대의 사태는 어떠하였는가?
6 우리는 오늘날을 예표한 과거의 심판기들을 살펴봄으로서 현 심판기에 관하여 잘알수 있다. 처음것은 노아시대의 대홍수였다. 예수께서는 그것이 오늘날 심판기의 예표라고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드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나니라.」 (누가 17:26, 27) 왜 그들은 멸망되었는가? 그들의 부패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결정하시기를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쓰러 바리대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탐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피하게 되어 있었다. 그이유는 무엇인가? 「홀로 노아만 당세에 의인이오 경건한자라 노아는 하느님과 동행한지라.」 노아 이외의 사람들에게 집행된 멸망은 그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이었으며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하신 강한 말씀을 보아 더욱 명백하다.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함으로 그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절하리라 … 그러나 너와는 너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안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방주로 들어가라.」—창세기 6:5, 7, 9, 13, 18, 미현대역.
7. 베드로는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최후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말하였는가?
7 이것이 마지막 멸망이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용하신 「멸절」이라는 말과 예수께서 사용하신 「멸망」이라는 말로서 확실할 뿐만 아니라 베드로 후 2:5-9에 입증하고 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의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외로운 룻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중에 거하여 날마다 그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외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여호와께서 경건한 자들을 시험에서 건져내시는 방법을 아시며 불의한 자들을 끊어버리기 위한 심판날까지 두시며.」 또한 베드로는 고대 멸망된 사람들의 예를들어 그리스도 회중의 거짓 예언자 거짓 선생과 파괴적 종파를 가져오며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임박한 멸망을 스사로 취한자」들의 운명을 알리셨다. 이처럼 그리스챤 회중을 더럽힌 자들의 멸망이 최후적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하겠는가? 노아시대의 사람들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멸망도 최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베드로가 말한것을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베드로 후 2:1-4.
8. 소돔의 멸망은 왜 중요시 되는가? 또한 그것이 마지막 멸망이었다는 어떠한 증거가 또 있는가?
8 예수께서는 현심판기의 모형인 홍수를 말하신후 소돔과 고모라도 오늘날의 모형인 것을 말씀하셨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으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든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나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라라.」 (누가 17:28-30) 우리가 먼저 공부한 베드로 후 2:5-9에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어 소돔과 고모라에서 멸망된 자들은 영원한 「끊어버림」이라는 것이 명시되어있다. 이것을 더욱 확증하여 유다서 7절에 기록된바 이성읍들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나니라.」 하였다. 「영원한 불」이라 함은 께헨나(지옥)와 같은 것이며 곧 둘재 사망인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마지막 멸망인것이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유다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의 정죄를 받을 모독자들의 운명을 설명하기 위하여 「영원한 불」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다서 7절에는 「영원한 불의 형별」로 말미암어 심판을 받었다고 말하였으므로 그 고대 성읍들은 그당시에 벌써 심판날을 가졌다는 것이 명시 되어있다. 아무리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여 보아도 주로 말미암어 멸망된 자들이 다시 장차 부활한다고는 해석할 수 없다. 그성에 남은 자들은 하나도 구원 받지 못하였다. 토착민이 아니고 잠시 거주 하였든 롯과 그의 딸들만 구원받은 것이다.—로마서 9:29.
9.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또 어떻게 소돔의 멸망이 마지막 멸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하는가?
9 주로 말미암어 소돔에서 멸망된 자가 부활이 없으면 아마게돈 때에 그로 말미암어 멸망되는 자들도 부활이 없을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전것은 훗일의 영지인 까닭이다. 불로 멸망된 소돔사람들이 부활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아마게돈 때에 멸망되는 사람들이 다 영원히 죽엄속에 머물러 있지않다는 주장을 입증할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에스겔 16:53-55를 인용한다. 「내가 그들의 사로잡힘 곧 소돔과 그딸들의 사로잡힘과 사마리아와 그딸들의 사로잡힘과 그들 중에 너의 사로잡힌자의 사로잡힘을 도리켜서 너로 네 수욕을 담당하고 너의 행한 모든일을 인하여 부끄럽게 하리니 이는 네가 그들에게 위로가 됨이라 네아우 소돔과 그딸들이 옛지위를 회복할 것이오 사마리아와 그딸들도 그 옛지위를 회복할 것이며 너와 네딸들도 너희 옛 지위를 회복할것이니라.」
10. 예루살렘과 그딸들의 회복에 관한 에스겔의 예언을 성취한것은 무엇인가?
10 문장의 전후를 통하여 보면 이것이 천년 통치 기간에 일우어질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이 아니라 사로잡힌 자들의 복귀(復歸)를 말한것이 명백하다. 70년의 황폐기(주전 607-537)가 끝나고 유대사람과 느디님 사람들과 가타 외국인들이 그들의 땅에 살기 위하여 돌아왔을때 유다와 예루살렘에는 축도적인 회복이 이루어졌다. 더큰 회복은 예수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계속하고 있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셨을때 유대백성들은 큰 바벨론으로 상징되어 있는 사탄제도에 사로잡혔든것이다. 즉 로오마 정치의 포로인 동시에 죄와 거짓 종교의 포로였든 것이다. 그때에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죽으시고 부활되어 희생에 가치를 가지고 하늘에 오르사 대속의 토대를 세우셨다. 다음에 그의 이름으로서 대속을 구하며 충성을 지킨 유대의 남은자들에게 해방을 주는 진리에 대하여 그들의 심명을 열어 실제적 바벨론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켰다. 그리하여 그때에 그들은 여호와 하느님의 신권조직에 돌아왔든것이다. 오순절후 삼년반동안 이 해방의 복음은 유대아에 국한되었고 남은 자들은 회복되었다. 모두 이것은 예루살렘과 그의 딸들이 회복함을 기록한 에스겔 16:53-55이 성취된 것이다.
11. 사마리아와 그딸들은 언제 회복시켰는가?
11 박해가 심하여 짐에따라 믿는 유대 그리스챤들은 사방에 흩어져 간곳마다 전파하였다. 전도자 빌립은 사마리아에 갔다. 그곳은 예수께서 미리 전파하신 곳이다.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믿게되어 더많은 전도자들이 그곳에 가게 되었으며 그들에게도 성령이 내리게 되어 그들도 하느님의 회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사마리아에 나타난바와 같이 에스겔 16:53-55이 이루어졌다.—요한복음 4:39-42; 사도 8:1-25.
12. 유대백성이 소돔과 개와 이방인을 어떻게 관련시킨것을 무엇으로 잘 알수 있는가?
12 그후 복음은 이방인에게 전파되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개와같이 생각하였다. (마태 15:26, 27; 마가 7:27, 28) 개들은 성적으로 타락된것 같이 생각되어 정결치 못한 동물로 취급되어 남색하는 소돔과 연관 되었었다. 「이스라엘 여자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것이오 이스라엘 남자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의 번돈과 개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誓願)하는 일로든지 네 하느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둘은 다 네 하느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신명기 23:17, 18) 창기가 번돈은 춘매부가 번돈에 비하였고 남창(男娼)이 번돈은 개값에 비하였다. 미현대역은 「개」 대신에 「남창」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모활역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목적을 위하여 보존하는 소년이라는 뜻으로 「연동(戀童)」이라 하였다. 그러한 성적 타락은 소돔에 있어 심하였으며 그성읍의 이름으로부터 발원한 남색=소돔(영어로 소돔은 남색이란 뜻이있음)의 심한 죄악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비추어 보아 유대백성들이 소돔과 개와 이방인을 어떻게 관련시켰는가를 잘 알수 있다.
13. 어떠한 인용문이 이것을 또한 지지하는가?
13 또한 이 견해를 더욱 지지하여 지난해 발행된 「주석성경」 제7권 서론에 「도덕」이라는 제목하에 시작된 80페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었다. 「이교도 나라의 도덕 생활은 초대 그리스챤의 저술가들로 말미암어 자조 언급되었다. 그 당시 도덕에 관하여 그리스도 신도들이 가졌던 견해는 그들 선조들이 받아온 견해와 꼭 같었다. 유대사람들이나 그리스챤 저술가들의 견해는 이방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치되어 있다. 주께서 불과 유황의 비로서 멸망시킨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구약의 얘기는 애급인이나 가나안인 블레셋 사람 앗스루 바빌론 혹은 로마인들 그누구를 막론하고 이교도의 악에 대하여 희브리 사람이 취한 태도를 잘 나타내고있다.」
14. 고로 「소돔과 그딸들의」 회복은 어떻게 성취 되었는가?
14 사도 베드로도 이방인 소돔이나 또는 개와같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고로 하느님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에 대하여 복음을 전파시킬려고 하였을때 베드로는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기 곤란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이해하자 곧 순종하였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의 신도들에게 성령을 부어 그들도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과같이 회복하여 회중에 들어오게 하였다. (사도 10:9-48) 충성된 유대아의 남은 자들은 전에 개나 남색하는 소돔과 같이 생각하였든 무할례의 이방인이 그들과 함께 접대를 받었을 때 그들은 수치를 느꼈던 것이다. 유대인은 특히 정결하여 하느님께서는 유대인들만으로서 메시아의 신부로 지정될줄 생각하였다. 그들은 지금 비로서 그들만이 그처럼 중요하지도 않고 순결하지도 않어 하느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뿐만아니라 무할례인 이방인까지도 왕국에 들어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었든 것이다. 그리하여 에스겔 16:53-55절의 성취는 초대그리스도 시대에 시작된 것이다. 에스겔은 실제적 소돔을 가리켜 말한것이 아니다. 요한이나 예수께서 소돔에 죽었다 한 기록도 실제적 소돔을 가리켜 말한것이 아니었든 것과 동일하다. (이사야 1:10; 묵시 11:8) 에스겔은 무할례의 이방인에 대하여 소돔이란 말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였고 또한 인간의 부활이 아니라 신권조직의 회복에 관하여 말하였든 것이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15.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예수당시의 소돔과 유대사람들에 대한 심판이 장차 또있다고 주장한가?
15 멸망된 소돔사람들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느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또 하나의 심판기를 끄낸다 유대의 성읍인 고라신과 벳세다가 예수의 크신 권능을 많이 보고도 회개치 않음을 보고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책하셨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 까지 높아지겠나냐 음부에 까지 나자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성이 오늘날 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게 일아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대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태 10:14, 15; 11:20-24; 누가 10:10-15)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장차 천년기 통치에 있어 소돔과 기타 유대의 성읍들에 대한 심판이 있다고 말한다.
16. 유대아의 성읍들 보다 소돔이 더 견데기 쉬우리라는 예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였는가?
16 만일 이 말이 그것을 의미한다고치면 소돔이 벌써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었다」는 유다의 말과 모순된다. 사실을 보면 예수께서는 성경 시대에 흔히 사용되었든 말투를 사용하셨다. 즉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것도 그와같은 말투였든것이다. (누가 18:25)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간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불가능한것이 다른일보다 쉽다고 한말을 그행하여 질일이 아조 불가능하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여 말한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의 재산과 떠나기 어려워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갈수없다는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처럼 소돔은 심판날에 견데지 못하고 완전히 멸망된 것이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소돔의 운명이 결정된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소돔이 얼마나 구원받기 어려웠다는 것을 잘 알었으므로 완전히 타락된 소돔이 유대아의 성읍들 보다 견데기 쉽다는 예수의 말씀을 곧 깨달았든것이다.
17. 유대의 교직자들과 그 추종자들과 또한 개종한 이방인들을 부활시키는 것이 왜 헛된 일인가?
17 유대아 성읍들은 미리 경고를 받고 권능 있는 이적들을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공정한 심판을 받고 그들의 결정에 따라 그들은 영원한 멸망을 받기에 합당하였다. (마태 10:5-15; 누가 10:8-12; 요한복음 12:37) 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기적적인 치료를 목격하고도 그복음을 받어드리지 않음으로 그성읍의 거민들은 성경에 대한 죄 즉 사함을 받지 못한는 둘째사망에 해당된는죄를 지었든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마귀에게 잡힌자들을 고치는 것을 보고도 그성령의 활동은 인증하지 않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이 현세에서나 장차올 새세상에서도 사함을 얻지 못할것을 선언하였다. 이 낡은 세상에서나 새로운 새세상에서나 사함을 받지 못할 판결을 받은 그들을 천년기에 부활시킨다는 것은 헛된일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판결을 내린 말씀은 이렇다. 「배암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나냐」 또한 소경인 지도자들이 함정에 빠진다면 그들을 쫓는 소경들 곧 유대인들도 다같은 운명에 빠졌을 것이다. 또한 거짓 종교가들이 어떤 이교도들을 개종(改宗) 시켜도 그들을 참된 숭배로 인도하여 그들이 과거에 하느님께 대하여 범한죄를 씻어버리기 커녕 도리혀 종교적 범죄와위선으로서 과거에 지은 죄에 거듭죄를 지게 할뿐이었다. 그리하여 개종한 사람들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이 배로 「지옥 자식」이 되었다.—마태 12:22-33; 15:14; 23:15, 33.
18. 마태복음 12:41, 42절이 그당시 유대인들의 부활을 말한다는 것이 어찌하여 논리적이 아닌가?
18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19세기전에 벌써 심판날을 가졌다는 사실을 조곰도 부인하지 않는다. 「심판때에 니네웨 사람들이 이러나 이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 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있으며 심판때에 남방 여왕이 이러나 이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랴고 따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 보다 더큰이가 여기있나니라.」 (마태 12:41, 42; 누가 11:31, 32) 이것은 니네웨 사람들과 남방의 여왕이 예수시대의 유대사람들과 천년기 심판때에 서로 맞나리라는 것을 말한것이 아니다. 다만 유대인들이 전세에 행한것을 정죄하기 위하여 그렇게 할이가 만무다. 천년기에서는 사람들이 전세에 행한것으로 말미암어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천년기에서 행한 그행동으로 말미암어 심판을 받게된다. 벌써 19세기전 그둘이 살고있을때 즉 그들의 심판기에 요나보다 더 큰이 솔로몬 보다 더 크신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부인함으로 불행한 심판을 받어 정죄된 것이다. 그들은 천년기에있을 심판기에서 또다시 심판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
19. 예수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9 예수께서 의미하신 것은 니네웨 사람들의 회개의 예로 말미암어 그당시의 유대사람들이 정죄받음을 말한것이다. 그예는 희브리어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심판기에 있었든 유대인들에게 부디쳤든 것이다. 그와같이 남방의 여왕의 기사도 회개치 않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일어났든 것이다. 그 이방인들은 요나나 솔로몬 같은 사람도 영접하였는데 언약의 백성은 그들의 메시아도 영접하지 않었다. 그들의 심판기가 끝나기 전에 그들 유대 사람들은 실지 니네웨 사람이나 남방의 여왕같은 이방인의 입장에 있었다. 즉 그이방인들도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든 것이다. 그때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을 생명에 합당치 못한 심판에 그들 자신을 이끌었든 것이다. (사도 13:44-50) 아벨의 피가 가인의 비행을 땅에서 호소하기 위하여 아벨 자신이 살어 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아벨은 죽었으나 그의 충성스러운 걸음과 그 기록이 말한 것이다. (창세기 4:10; 히브리 11:4) 그와같이 니네웨 사람들과 남방의 여왕의 걸음과 그 기록은 그당시 유대인의 심판기에 일어서 유대인을 정죄한 것이다.
20. 당시 유대인에 대한 대한 심판기였다는 것을 요한복음 12:47-49절은 어떻게 부인하지 않는가? 또한 예수께서는 심판에 관하여 어떻게 미래를 사용할수 있었는가?
20 그당시가 유대인에 대한 심판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하여 어떤사람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사람이 내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온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오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나를 저바리고 내 말을 받지아니하는 자를 심판 할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것이 아니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한것과 이를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음이니라.」 (요한복음 12:47-49) 그때는 세상에 대한 심판기는 아니었으나 유대인에 대한 심판기었다. 예수께서는 세상까지 심판하실 필요가 없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예수 자의로서 나온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었다. 그말씀은 빛과 책임을 가져왔으며 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동은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입장과 그들이 심판중에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있다. (신명기 18:18, 19; 요한복음 3:18-21; 히브리 4:12) 「마지막 날이라」 한것을 보아 이구절은 유대인에 대한 심판이 미래에 있는것같이 들린다. 그러나 예수께서 당시 유대인의 심판을 말하였을 때는 아직 심판기의 대부분이 경과되지 않었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을때 심판기는 바로 시작하였든 것이다. 그마지막 날은 약40년후 즉 주후 70년에 비로서 왔든것이다. 주후 70년에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은 결정에 이르러 여호와께서는 로오마 황제 티도를 사용하여 그들이 40년간 거듭된 심판을 행하셨다.
21. 예수께서 화가 있으리라고 하신 갈릴레 지방은 주후 70년에 어떻게 심판을 받었는가?
21 또한 어떤 사람은 반박하기를 그재앙은 티도가 포위한 에루살렘 안에있는 유대인에게 한하였다고 한다. 예수께서 화가 있으리라한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베나움등 그타 갈릴레 성읍들에 대한 심판은 어데서 이루어 졌는가? 그렇게 질문한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로오마 군대는 무서운 파괴력으로서 갈릴레 지방일대를 파괴하였든 것이다. 유대의 역사가인 요셉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갈릴레 전지역은 불과 피로 가득 찻스며 그 비참한 재앙을 면한자는 하나도 없었다. 다시 말하면 고라신 벳새다 가베나움에 심판날이 이로렀을때 그성읍들은 전멸상태에 이르렀든 것이다. 그들은 존재조차 없어졌으며 그성읍들이 있었든 자리조차 확실히 아는자가 없다. 그것은 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알어야 할것은 티도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주후 70년은 유월절에 시작되었고 그성읍들에서 잡힌자들 중에는 그성읍들의 도착민 뿐만아니라 온 팔레스티나로부터온 유대인들 즉 메시아의 새로운 언약을 부인하고 모세의 율법에 쩌들은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중에는 고라신 뱃새다 가베나움의 주민들도 많이 섞겨있었을 것이다.」
22. 이스라엘 백성의 심판은 어떻게 마태복음 24장의 소규모적 성취라할수 있으며 오늘날은 어떻게 대규모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는가?
22 예수 당시에 유대의 제도는 그마지막 때에 이르렀든것이다. 특히 예수께서 형틀에서 죽엄을 당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의 율법을 형틀에 도말하여 그힘과 효력이 없어졌을 때다. 그러나 성전에서 하는 행사 즉 제사 직분이나 희생 등의 실제적 종말은 주후 70년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죽우신후 부활되어 승천하신 후에 성전에서 행하는 행사는 그효력이 상실되었다. 완전히 종말된것은 주후 70년이었다. 그때는 이스라엘 민족의 「마지막 날때」였든 것이다. 예루살렘이 함락 되었을 그때에 산으로 피하라는 예수의 경고에 귀를 기우리지 않은 사람들은 결정적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때 마태복음 24장의 유명한 예언이 소규모적으로 성취되었다. 그예언의 대규모적 성취는 우리가 살고있는 오늘날 이루어 지고있다. 사탄의 세상은 주후 1914년에 그종말에 이르러 그 지배에 대하여 묵인 되었든 권세는 여호와께서 보실때는 벌써 끝났다. 그러나 유대백성이 당하였든것과 같이 그완전한 종말까지는 얼마의 기간이 남어있다. 연새있는 사탄제도는 오늘날 그심판기에 처하여 있으며 그 마지막 집행은 이세대에 있을 아마게돈 전쟁에서 행하여 진다. 열국의 각 개인에 대한 심판은 과거 집행된 영자적 심판 즉 노아 홍수와 소돔 고모라의 멸망과 주후 70년에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것과같이 결정적이며 마지막 심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