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종류의 일군』
1. 어떻게 함으로써 여호와의 일군이 되며 또 그의 일군임을 입증할 수 있는가?
히랍어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일군 (히랍어—디아크노스)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종이라는 뜻이다. (디모데전 4:6, 신세) 이것은 여기에서 여호와의 공중(公衆)의 종인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엄숙한 맹서로서 헌신의 첫거름을 밟은 후에 하나님께 임명받은 자들을 말한다. 이런 일군은 그 이름에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보존하기 위하여 『위에 있는 권세』로부터 그에게 주어진 명령이나 사명은 어떤 것이라도 충실히 수행하고저 노력할 것이다. 또 이런 일군은 필연적(必然的)으로 하나님의 일군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밀접하게 따르는 추종자임을 입증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것과같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진 여호와의 천국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으로서의 첫째가는 의무를 인식할 것이다. 이처럼 예수와 같이 그는 진리를 증거함으로써 여호와의 증인의 하나임을 입증할 것이다.—로마 13:1; 요한 18:37, 신세; 이사야 43:10.
2. 여호와께 드리는 봉사에 있어서 종이나 노예에게 책임을 맡길 수가 있는가?
2 일군이란 말에 딸려있는 근본 의미는 종 혹은 심지어 노예라는 뜻을 가진 것이지만 종이 타인을 돌보고 감독하는 일까지 포함된 중요한 책임의 지위에 앉을 가능성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전 항목 끝에 인용한 성구 마태 24:45-47은 바로 뒤에 계속되는 예수의 비유와 함께 이것의 매우 좋은 실예이다.—마태 25:21, 23, 신세를 보라.
3. 어떠한 사회의 초기 형식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으며 그것으로써 인도권(引導權)에 관한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3 사람들이 같이 살게된 이래로 혹 그것이 가족적이든 국가적이든 또는 어떤 종류의 집단 생활이든지 어떠한 형식의 조직적 사회가 필요하게 된것이다. 이것은 즉 어떤 이들을 권위 있는 지위 혹은 인도자의 지위에 앉히고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며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책임을 갖도록 할것을 의미하여 왔다. 이런 제도는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제도이다. 왜냐하면 특히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과 그의 자녀들에게 이르는 때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때 있던 족장 제도(族長制度)의 형식을 인정하는 것을 기초로하여 그 사람들과 그들의 동료들을 취급하셨던 것이다.—영문 파수대 1952년 7월 15일호를 보라.
4. 노아는 어떻게 좋은 인도자의 본이었는가?
4 예로서 노아를 들어보자. 그는 주로 여호와께 드리는 참다운 경배에 있어서 좋은 지도권의 본을 보여 주었다. 그뿐 아니라 자기 가독권(家督權)밑에 있던 가족 일곱명을 잘 훈련시켰음에 틀림없다. 가족의 각인은 각기 맡은 바가 있었으며 그 큰 배를 짓는 일 즉 가장 거대하고도 이상한 힘든 일을 하였던 것이다. 또 그들이 모든 조롱과 반대를 받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도 기억하여야 한다. 튼튼한 믿음으로서 노아는 얼마나 굳은 투쟁력을 보였는가. 또 그가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을 때 그는 얼마나 굳건한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자기가 돌보는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부드러운 사랑을 표시하였는가.—히브리 11:9; 창세기 6:9; 8:20.
5. (ㄱ) 이 점에 있어서 어떤 면으로 보아 아브라함은 좋은 본이 되는가? (ㄴ) 아브라함의 제일 늙은 종에게 어떤 특별한 사명이 주어졌는가?
5 아브라함도 역시 충실한 인도자의 훌륭한 본이었다. 그것은 먼저 여호와께 드리는 순결한 경배에 관한 것이다. 그는 올바른 본을 자기자신의 행동에서만 보인것이 아니다. 그가 여호와의 의로우신 행동을 위하여 투쟁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또 신권적 요구 조건에 일치함에 있어서 몇백명의 노예들까지 포함한 자기 온 집안을 충분히 훈련하고 인도하였다는 증거가 뚜렷이 있다. (창세기 14:13-20; 17:9-14, 22-27) 그런데 노예에 관하여 말하는 김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가족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노예를 회고(囘顧)하고저 한다. 그는 천사의 인도하에 하란에 있는 주인의 친척을 찾어 가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될 여자를 발견하여 다리고 올 사명을 받았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종은 자기 책임을 잘 인식하였으며 자기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세한 일까지 잘 살펴보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자신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주인이 갖었던 것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그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시를 바랐던 것이다.—창세기 24:1-27.
6. 이미 고려한 본들로 부터 종합하여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6 이와같이 우리는 예수의 말씀이나 사도들의 말을 생각하여 보든지 혹은 성경에 기록된 인간 역사의 그 옛날의 그림자를 더듬어 올라가 보든지 또는 그것이 배를 손으로 짓는 실천적인 일이거나 혹은 자기 주인의 아들이며 상속자인 사람의 아내를 구하여 오는 섬세한 사명이든 그일에 있어서 여호와의 종과 노예들은 중대한 책임진 시위에 쳐하게 되는 일이 여러번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인도권의 가치있는 특질을 행사하여야 될 것을 의미하고있다. 그러면 오늘날의 여호와의 백성들에 관하여는 어떠한가?
훈련사업
7. 오늘날 어떤 개인적 질문이 우리 앞에 직면하게 되는가 또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회피하게 되기 쉬운가?
7 오늘날 과거 인류 역사상 보지못한 거대한 사업이 바로 이 지상에서 행하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진리를 알게 된 후 헌신의 단계를 걸쳐 그 단계를 밟은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당신은 그 단계를 밟았는가? 그러한 맹서를 하고 하나님의 신권적 노예로써 영원히 여호와의 봉사에 들어 왔는가? 아마 당신은 대답하기를 「네 나는 그 단계를 밟었읍니다. 그러나 나는 기름 부음을 받은 남은 자의 반열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세상일과 여러가지 제한을 받는 것들 때문에 집회에 참석하고 틈있을 때 증거사업에 나가는 정도 이상은 책임이 없읍니다.」고 할런지 모른다. 혹은 「나는 형제들이 책임진 지위를 다 차지하고 있는 회중에 소속된 하나의 자매니까 어느 모로 보든지 인도자로써 행동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은 일일 것입니다.」라 할찌 모른다. 자 그러면 이 문제를 좀더 세밀히 들여다 보기로 하자.
8. (ㄱ) 그리스도교국에 있는 선의자들을 위하여 어떤 일이 이루어저야 하는가? (ㄴ) 이들이 시온에 모여들은 후에는 우리의 일이 다 끝나는가?
8 이미 공부한 성경 구절에서 똑똑히 안바와 같이 이 말일(末日)에 이루어저야 할 거대하고 긴급한 일이 있다. 그것은 진리를 선포하며 왕국 복음을 전하고 바벨론의 멸망을 경고하며 지금 도피할 긴급한 필요성을 웨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우리의 사명은 완수되는가? 아니다. 그리스도교국에서 범하여 지고있는 가증한 일들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과 경고의 소식에 귀를 기우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할일이 더 있는 것이다. 이미 아는 바와같이 이런 선한 사람들은 흔돈하고 굶주린 영적 상태에 있기 때문에 흔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본적 진리를 통 아지못하거나 조곰밖에 모르며 그들이 보호받기 위하여 도피하여야 할 곳이 여호와의 신권적 조직 시온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런 백성들이 진리의 지식을 배우도록 도울뿐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 분별하도록 바삐 도와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벨론으로 부터 시온으로 인도하는 대로(大路)로 올라와서 결국은 통지하는 왕 예수 그리스도 즉 높여진 기호의 안전한 통치하에 모이도록 돕는 것이다. 이제 그러면 결국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게된 이 다른 양들을 위한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였다고 할수 있는가?—에스겔 9:4; 이사야 62:10; 요한 10:16.
9. 참된 신자전부에게는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가 또 이것이 성경에는 어떻게 표명되었는가?
9 답을 구하기 위하여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명령과 실예로써 그 변론의 형식을 반복하여 찾아 볼수 있다. 성경은 빛의 소식인 복음의 진리를 받아드리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빛의 소유자가 되어야 할것을 표시하고있다. 그들은 다윗과 같이 되어야한다. 다윗은 여호와의 양(羊)의 하나였으나 자기 아버지의 실질적 양을 올바로 칠수 있는 자격을 구비하도록 훈련받은 후에야 서서히 여호와의 유업인 이스라엘의 목자로 불리워졌던 것이다. (시편 23:1; 78:70-72) 혹은 달리 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헌신할 점에 이를 정도로 믿음을 실천한 사람들은 그후에 적절한 일을 함으로써 올바른 종류의 믿음을 실천하여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공중앞에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처음 제자들을 취급하실 때에 이것과 꼭같은 원칙을 실천하셨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메시아로서 받아드린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었다. 주는 그들의 단지 신자(信者)되기만을 원하지 않었다. 대신 예수는 당장 그들이 가졌던 어부와 같은 보통 직업에서 불러내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훈련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자들이 그들 스스로 「그것을 지키고 인내로 결실」하여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그런 사람들에게 임하는 책임에 관하여 그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자는 더 받겠고』 또 그와 그에게 응답하는 제자들과의 밀접한 연결을 강조하여 말씀한바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니라』고 하셨다. 짧게 말하자면 모든 올바른 종류의 신자들은 올바른 종류의 일꾼이 되도록 훈련을 받어야 한다는 것이다.—로마 10:10; 마가 1:17; 누가 8:15-21, 신세; 마태 5:14; 야고보 2:17.
10. 이 원칙은 어떻게 오늘날에 특히 적용되는가?
10 만일 예수당시에 방금 말한 원칙이 참된 것이었다면 그리고 또 초기 신자들의 무리들이 성령으로 힘입은 후에 더욱 참된것이었다면 오순절(五旬節)에 베드로가 인용한 바와 같이 요엘의 예언이 마지막으로 성취되는 오늘날에야 얼마나 더 강력하게 적용되겠는가! 여기에 우리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진리의 전도에 응한 사람들은 동일한 왕국복음의 믿음직하고 능률적인 전도인이 되도록 스스로 훈련과 교육을 받아야한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행하여져야 할 거대한 일이기 때문에 또 그들자신의 복리를 위한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진리에 들어온 사람은 『화목(和睦)하게하는 직책』에 활동적으로 참가하는 방법을 배우며 『화목하게하는 말씀』을 적절히 설명함으로써 남에게 효과적으로 권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울이 기록한 것은 이것과 매우 깊은 연결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목적으로 헛되히 하는자가 되지말라.』—고린도후 5:18–6:1; 사도 1:8; 2:18, 17.
11. 오늘날의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성경구절을 또 인용하여보라.
11 이 모든것은 하나님의 조직인 시온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전부를 위하여 철저한 훈련이 긴급하게 필요한 것을 알리고있다. 초기에 『하나님의 권속』이며 『동일한 시민』이된 사람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훈련과 교육을 받은] 자라 …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의 처소와 성읍의 동일한 표징(表徵)을 사용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말일』을 위한 훈련계획에 관하여 이사야는 이같이 기록하였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道)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에베소 2:19-22, 신세; 이사야 2:2, 3.
12. 이 사업이 협회의 임명받은 종에게만 제한된 것이라면 어떤 난관(難關)이 생기게 되며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
12 그러나 이 모든 훈련과 가르치는 일을 누가 할것인가? 반드시 왙취타워 성서책자협회에서 특별한 지위에 종으로서 임명된 회중의 장성된 남자형제나 또 협회에서 여행하는 대표자들로 임명한 순회의 종이나 지역의 종이라야만 하는가? 만일 그것이 대답이라면 지금 각국에서 주의 목소리에 응하고있는 주의 다른 양들의 수가 많은것으로 보아 그들이 믿을만하고 정규적인 전도인이나 일군이 되도록 필요한 훈련과 개인적 도움을 받으려면 대단히 장시일을 기다려야 할것을 의미함이 틀림없다. 그뿐아니라 조직에 들어온지 상당한 시일이 지난 사람들도 아직 도움을 더 필요로 하는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러므로 정당하고 실천적 대답은 진리안에서 세워진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발전을 덜한 사람들을 훈련하는 이 중대한 사업에 일부를 담당할수 있다는 것이다.
13. 신권적인 방법으로써 훈련사업을 성취시키는 필요성은 어떻게 응하여졌는가?
13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식으로 방임하여서 각자가 자기가 남을 훈련할수 있는지 결정하고 누구를 도와줄 필요가 있으며 어떻게 할것이라는 것을 마음대로 판단하도록 할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대신 1953년에 양키 스태디움의 커다란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기억하듯이 바로 이 문제는 긴급한 호별방문 훈련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참으로 신권적이며 실천적인 방법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때 전도인 각자는 호별방문에서 복음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또 정규적으로 전도할수 있어야 된다는 점을 힘차게 발표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마련이 발표되었으며 이것으로써 임명된 종들은 누구나 이사업에 필요한 주의를 기우릴수 있을것이다. 따라서 이 종들은 진리안에서 세워지고 일을 믿음직하게 하는 회중의 사람들을 청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한자나 경험이 없는자 일명이상을 훈련할수 있는 특권과 책임을 마낀다. 이 훈련계획이 이미 실천된지 한참 되었는고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자가 아니라도 또는 자격있는 남자 형제들이 많은 회중의 자매라도 당신이 믿음직한 전도인이라면 이 사업에 참예하도록 초대를 받었을 것이다.
각 개인의 책임
14. 『올바른 종류의 일군』이 되기위하여 무엇을 지킬것이며 무엇을 피하여야 하는가?
14 당신은 협회에서 직접 임명받은 종의 하나인가? 혹은 이런 종들이 훈련사업에 일부를 담당하도록 초대한 사람중의 하나인가? 만일 그렇다면 마치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과 같이 우리는 당신에게 『올바른 종류의 일군』이 되기를 호소한다. 일에 태만하고 뒤로 물러 서거나 거절하지 말라. 당신은 여호와께서 이같은 태도를 싫어하시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누가 9:62; 히브리 6:11, 12) 또 한편으로는 이런 책임을 맡었다고 하여 거만하게 되지말라. 오히려 건전한 마음을 갖고 사물에 대하여 균형잡힌 견해를 갖도록하라. 이 점에 있어서 로마 12:3-8에 기록된 바울의 훈계가 가장 적절한 것을 알수있다. 그것을 잘 공부하고 명심하라. 자기는 후방의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남을 용감한 말로 인도한다든지 혹은 거만한 야심을 가지고 활개치며 선두에 나서는 일과 같이 잘못하면 극단으로 흐르기 쉬운 세상적 지도자들의 잘못을 저질르지 말라. 오히려 반대로 하나님의 조직의 정신과 보호받을 필요가 있는 자들을 위한 투쟁정신 그리고 또 자기가 옳게 지도하는 자들의 발을 씻어준 스승이며 주인인 분이 나타낸 사랑과 겸손의 정신을 기억하라. 바울은 다시 기록한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였다. 이런것들을 당신이 언제나 명심하여 둔다면 당신에게 맡기워진 사람들에게 대하여 결코 교만하거나 강요하거나 인내심없이 대하지 않을것이다. 반대로 당신은 위대하신 인도자 여호와와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내신 것과 동일한 인내와 온유를 나타낼 것이다.—로마 12:10, 11, 신세; 요한 13:12-17.
15, 16. (ㄱ) 성경은 훈련사업에 있어서 어떠한 격려와 도움을 주고 있는가? (ㄴ) 동시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15 그러나 당신은 아직도 남을 훈련할수는 도저히 없다고 생각할찌 모른다. 그 이유로써 일이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하거나 조직에서 마련한 모든 준비를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이라든지 혹은 또 호별방문에서 경험할찌도 모르는 반대나 가시 돋은 질문들을 생각하여 볼런지 모른다. 대답으로서 우리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들은 자기 멋대로 독립하여 나가지 않고 그리스도의 명령하에 순종하여 일하는 방법을 충분히 배운것과 같이 바로 이것과 동일한 것을 그들이 다른이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야만 되었던 것이다. 더 부가할수도 없고 감할수도 없었던 것이다. 사실 당신 자신이 훈련받은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남을 돕는다는 것은 과히 어려운 일이 아니나 특히 오늘날에도 초기시대와 같이 조직이 여러가지 지위에 임명한 종들이 있으며 이들은 특히 『성도를 온전케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도록 임명되었음을 기억한다면 과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일을 당신의 자력이나 지혜로서 하고저하면 안된다. 완전한 종이었던 예수께서도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자기를 보호하며 인도하는 일에 그의 아버지의 성령과 말씀을 완전히 의지하였던 것이다.—마태 28:19, 20; 에베소 4:12.
16 당신의 봉사에 대하여 균형잡힌 옳은 견해를 갖게 하기위하여 훈련사업에 있어서 이것은 자기의 지위와 남의 지위를 대조하는 것이 않임을 지적하고저 한다. 당신이 선교인이든 순회의 종이나 지역의 종이든 혹은 경험이 적은 다른 자매를 돕도록 회중의 종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자매든지 필요한 지도권의 자격은 어느 경우에나 마찬가지다. 당신은 마치 청직이와 같다. 그래서 『청직이에게 구할것은 충성이니라.』 같은 원칙을 강조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것에 불의한 자는 큰것에도 불의하니라.』—고린도전 4:2; 누가 16:10, 신세; 또 마태 25:14-30을 참조하라.
17. (ㄱ) 고린도전 4:15의 바울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ㄴ) 이 점에 있어서 디모데의 관한 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수 있는가?
17 이 공부에 결론에 이름에 따라서 우리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말을 상기하게 하고저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고린도전 4:15, 신세) 스승과 아버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보수를 받는 스승은 주로 자기에게 요구되는 교훈이나 훈련을 베품으로써 자기의 의무만을 완수하고저한다. 그리하여 자기학생이 더디 알어듣더라도 학과를 너무 여러번 반복할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임무를 마치면 만족하고 그것으로 다 끝났으며 자기의 보수를 바란다. 그러나 참된 아버지는 자기자신에 대하여만 관심을 가진것이 아니라 자기 아이를 진정으로 발전시키고저 도우며 의무 이상으로 사랑해서 한 없이 오래참고 관용하며 기쁨과 비 이기주이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하고저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형제들에게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하였는지에 관하여는 고린도 전서 4:11-13에서 찾아볼수 있다. (신세) 재미있는 것은 16절과 17절에 잘 훈련된 디모데를 가리켜 바울이 참다운 아버지 노릇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미 말한 교육 방법에 관하여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보낸 두 통의 사도의 편지로부터 좋은 의견을 얻을수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 젊은 일군을 도와 남을 훈련하는 그의 책임을 완수할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실천적인 세밀한 점까지 성경적으로 경고와 경계에 관하여 충고한것을 볼수있다. 바울이 말한바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육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렇다. 디모데는 자기 앞에있는 지도를 충실히 딸았으며 그렇게 하여 봉사할때 남에게 좋은 인도자가 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우리도 오늘날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들이며 다른 이가 복음의 전도인이 되도록 도울수 있기 위하여 훈련 받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을 완수할수 있기 원한다.—디모데 전 4:6, 신세.
18. 우리는 지상에 계셨을때의 예수를 머리에 그려 보는데 있어 어떻게 주의하여야 할것인가?
18 이미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밝혀진바 여호와의 종이며 지도자인 그리스도 예수의 예언적 견해에 주의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육신에 처한고로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 계셨을때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으며 어떤 종류의 인도자 였는지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그려 보기로 하자. 우리는 종교적 서적이나 그림으로부터 얻은 거짓된 인상을 우리 마음으로부터 제하여야한다. 그런것들로부터 사람들은 흔히 예수께서는 육신의 모양도 다른사람과 틀리며 아무도 거절할수 없는 미혹적 웃음을 띄우고 아무도 감히 불순종할수 없는 명령적 눈초리를 가지셨다는 인상을 받고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그의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없수히 여긴것으로 보아 예수는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도록 그의 완전한 권능을 시위하거나 강요하지 않은것이 명백하다. 천만에! 예수는 완전하고 선한 견식(見識)과 중용(中庸)을 실천하셨던 것이다.—마태 13:54-56.
19. 예수는 어떤 종류의 인도자임을 입증하셨는가 또 예수 자신의 말씀이 이것을 어떻게 표시하고 있는가?
19 그러나 좀더 현실에 비추어 생각할때 예수께서는 할개치고 선두로 행하여 능력과 조직에 있어서 더 말할것없는 자로서 남의 결점이나 잘못을 참지 못하는 지도자로서 예수를 상상하게 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잘 알어 둘것은 어느 점으로나 그는 완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과실이나 낭비하는 것이나 실언을 하신일도 결코 없었다. 그러나 그를 자기들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추종자들도 예수께서 자기들 보다 멀리 앞선 분임으로 아주 다른 분류(分類)에 속하는 것처럼 느낌으로써 그의 개성의 위압(威壓)을 받지는 않았다. 반대로 그리스도는 가끔 할수없는 때만 제외하고는 정신이나 행동에 있어서 그의 추종자들과 매우 친밀하였으며 친구처럼 사괴이기 쉬운 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친밀감은 마치 아버지가 아이를 지도할때나 개가 소경을 인도할때와 같이 지도자와 연결된 가장 중요한 느낌인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추종자가 되도록 권하셨을 때에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그의 인자하신 말씀에 주의하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영혼(신세)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훈련하는 사람들에게 온유하며 합리적이고 자비로우며 생각이 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사소한 일에 동요하지 않었다. 또한 예수는 완전하였으나 그들에게 겸손한 태도로 대하셨으며 자기를 잘난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남보다 우월(優越)하다는 인상을 남에게 주고저 하지 않으셨다. 그는 참으로 가장 사랑스럽고 사랑할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생기를 주는 벗이 되었다. 물론 바리새인들은 이런 인상을 받지않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예수를 그의 벗들 즉 제자들의 인도자이며 훈련자로 본다.—마태 11:28-30.
20. 훈련계획을 실천함에 있어 우리는 무엇을 마음에 간직 하여둘 것인가?
20 비록 예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보이게 계시지는 않지만 그의 성격은 조곰도 변하지 않은것을 우리는 안다. (히브리 13:8) 예수는 우리의 본이며 모범이시다. 그리고 크든 적든 자기 형제들을 옳게 인도하는 일에 참예할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본을 밀접하게 잘 좇고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예수와같이 언제나 당신의 형제들에게 생기를 줄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것으로 당신도 남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수 있으며 남에게서도 최대한의 유익을 받게될 것이다. 우리 이익과 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의 『종』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성취시키고 계시는 인도권의 성령에 감동받은 묘사(描寫)를 언제나 가슴속에 간직하기로 하자.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이사야 40: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