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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섬길자를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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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섬길자를 택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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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6
파56 4/1 68-73면

「당신이 섬길자를 택하라」

1, 2. 오늘날의 세상 지도자들과 여호와의 증인들은 각각 생각하는 면이 어떻게 다른가?

오늘날의 세상 지도자들이 여호수아의 말을 청종하고 지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일가!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오늘날 그리스도 교국의 지도자들이 섬긴다고 주장하는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이같이 말하였다.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리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백성이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라 하였다. (여호수아 24:14-16, 신세) 그러나 세상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세계 사회의 각자는 그들의 생애에서 언제인지 한 때는 이 낡은 세상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유브라테강 동편의 신들을 섬기고저 하지 않는다. 즉 그것은 바벨론 혹은 애굽의 신들이며 그들은 병력(兵力)을 의지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다음의 말을 청종하여왔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요한계시록 18:4.

2 『다른 양』들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바벨론으로부터 건저내신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자진하여 나왔으며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적 왕국이 이미 하늘에 설립된 것과 『이 세상 신』인 사단이 땅으로 쫓겨난 것을 알며 악마가 내려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지상의 거민들 사이의 현재의 환란을 이해한다. 곧 악마와 그의 마귀적인 조직 전부는 지존하신 우주 주권자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하지 않은것 때문에 무저갱에 던지울 것이다.

3-5. (ㄱ) 사람이 여호와께 자신을 헌신하기로 하면 순종의 어떤 다른 단계를 취하는 것이 정당한가? (ㄴ) 침례의 필요성을 우리가 반문하는 것이 정당한가 왜 당신은 그렇게 대답하는가?

3 죽기를 원치않고 살기를 원하는 남녀는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바쳐야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각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봉사에 자기 생명을 바칠 것과 그의 계명을 순종하기를 자진하여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으로 그가 하나님을 사랑함을 증명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 (요한 15:10) 이것은 여호와의 계명 전부를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지킬 계명을 고른다. 예를 들면 침례를 받는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이 헌신한 것을 표상할 필요가 없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여호와의 증인들과 연결하고 있는 한 여호와의 축복을 얻으며 의로운 신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어떤 조직에게나 그렇게 꼭 매어있기는 싫다. 그러니까 나는 침례를받지 않겠다. 증거하러 나가기는 하지만 자유로히 있기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조직에 매어 산다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당신이 살기를 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바치는 문제인 것이다. 침례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침례가 그로 의무를 갖게하며 더 큰 책임을 그에게 지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지식을 가졌으면 이미 책임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람이 하나님과 흥정할수는 없다. 생명을 원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바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행하고 자기가 헌신한 것을 공개적으로 대중에게 고백하기 위하여 기쁘게 침례를 받는다.

4 방문하고 다니는 순회의 종은 55명으로 된 회중에서 전부가 매월 정규적으로 나가서 천국복음을 전하며 기쁘게 봉사하는 상태를 가끔 발견한다. 그러나 기록을 조사하여 보면 55명 중에 20명은 침례 받지않은 것을 알게 된다. 순회의 종은 그 이유를 알고저하여 질문하여 본다. 결국 그는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한 헌신을 표상하는 것은 그들이 너무 큰 책임을 지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자문(自問)하여보라. 그들은 참으로 여호와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들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는가 혹은 한쪽 발은 낡은 세상에 두고 또 하나는 새세상에 두기를 원하는가? 여호와께서 자기 아들이 취할 행동을 정하셨을 때에는 즉 그로하여금 물의 침례를 받게 하셨다면 하나님의 신세계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각자가 그 행위를 좇아 실천하여야 한다. 아무도 침례의 가부를 결정할 권리는 없다.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며 신세계에서 생명을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침례 받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다. 침례는 어리석은 형식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으나 이런 이들은 자기가 하나님보다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침례 받는다는 것은 구습(舊習)이라고 그들은 경솔하게 결론 짓는다! 심지어 어떤이는 『글세 그점만은 내가 동의하지 못하겠소 다른 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는데』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은 더 조사하여 보면 단순한 다른 여러가지 일에 대하여도 동의하지 않고 자기를 비평하는 지위에 세워서 창조주를 비평한다. 여기서 비평하는 그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지음을 받은 자가 지존하신 통치자께서 자기 피조물들중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하신다 하여 반문하거나 비평하거나 책을 잡을 권한이 있는가? (로마 9:20, 신세) 여호와께서 물의 침례가 우리의 헌신의 표상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으면 각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여야 할것이다.

5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 28:19, 20, 신세) 살기를 원하며 여호와의 사랑을 받고저 하는 각인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을 위하여 마련하신 것을 인정하여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계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러므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도리켜 너의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여호와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어두리라 모세가 말하대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야 너희 형제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드를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다. (사도 3:19-23, 신세) 그러면 청종하라. 이런 명령은 어떤 피조물에게도 너무 과한 것은 아니다.

6. 어떻게 하여 이해를 얻게 되는가?

6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일이나 지금은 완전히 명확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빛은 완전한 날이 이르기까지 점점 밝게 비췬다. (잠언 4:18)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연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생활할수록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알게된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은 그의 수중에 놓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상식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높은 곳에서 나온 지혜이다. 그 말씀을 따르라.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

7, 8.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이 『이 세상』에 대하여 어떤 올바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7 여호와의 증인들은 여호와의 왕국 사업에만 전적으로 헌신 하기를 원하는 평화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장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대표하여야 될 자기들의 지위를 인식한다. 이 세상의 나라들은 자기들에게 관계가 있는한 그들의 선거민들이 중립태도 취하기를 원치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일단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바친 이상 이 세상의 정치적 종교적 또 상업적인 동향과 혼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그 일부는 아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이들은 전부 천국과 여호와의 의를 먼저 찾으며 그리하면 기타의 모든 것이 그들에게 더하여 질것이다.—마태 6:33 신세.

8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전도인들은 이 낡은 세상의 도덕에 관한 규칙에 따라 살수 없다. 이 세상에서 이 규칙들은 간음과 음행을 허용하며 술취하는 것이 똑똑한 일인줄 생각한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자기 말씀 속에 정하여 두신 훌륭한 충고를 잊어 버림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범죄하게 되었다. 또한 각 나라의 지도자들은 범죄사건을 더욱 더 근심하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지존하신 주권자와 왕위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을 표시한다. 유다가 묘사한 것과 같은 세상의 악은 그것이 하나님의 회중에까지 스며들찌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을 부패시키고저 노력하는 자들에게 관하여 그는 말하였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16) 물론 이런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바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과 섞일수 없으며 그들의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섬길수 없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신명기 6:15.

종인가 또는 주인인가?

9, 10. (ㄱ) 여호와의 유일(唯一)하심을 우리는 어떻게 묘사할수 있는가? (ㄴ) 그리스도 예수와 사단은 여호와께 대한 정당한 태도와 나쁜 태도의 본을 우리에게 어떻게 보였는가?

9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바친다는 것은 매우 심중한 요구이다. 이 문제를 여호와 하나님의 견지에서 고려하기로 하자. 『전적』 이라는 말은 다른 것들을 허용치 않는 것 또는 제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독 혹은 단일 또는 홀로 그에게만 몸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도 하나님의 지위에 부가될 수 없다.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만이 차지할수 있는 이 존귀하신 지위 아래 서지 않는 자는 없다. 하나님만이 홀로 우주에서 자기의 높은 지위에 서신다. 아무도 자기에게 첨가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영광을 남에게 주시지 않으신다. 그리스도 예수는 그의 아버지가 우주에서 가지고 계신 지존한 지위를 인식하였으며 이 점에 대하여 바울은 기록하였다. 『그리스도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형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주에 죽으심이라.』 (빌립보 2:5-8, 신세) 예수 자신도 말씀하신 바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한 14:28.

10 악마 사단은 여호와 하나님을 이 지고하신 자리에서 밀어내고저 하였다. 그리고 물론 사단은 여호와께 전적으로 몸을 바치지 않었다. 그는 지존자와 같이 되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였으며 모든 피조물의 마음속에 그들도 선악을 알게되어 하나님과 같이 되는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넣어 주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심판관이 되어 우주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성경의 어떤 부분은 다만 옛날 이얘기라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비난하고 조전하는 종교 교직자들을 가끔 본다. 그들은 이같이 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같이 높여 전능하신 하나님께 반문하고 토론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거만한가!

11, 12. (ㄱ) 여호와께 대한 순수한 경배에는 무엇이 포함되는가? (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비교할수있는가?

11 여호와께 몸을 바친 겸손한 사람은 열성과 충성에 충만할 것이다. 『몸을 바친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 대한 열심이나 강한 애착, 열열한 사랑 혹은 열정을 의미한다. 몸을 바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종교심과도 관계가 있다. 오늘날 참 종교를 이해하는 이는 예수께서도 예언하신 것과 같이 순결한 경배를 실천한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 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 4:23, 신세)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바친 사람은 누구나 그 헌신을 깨뜨리거나 파괴할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런일을 묵인하실수 없다. 따라서 각개인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를 받지 말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헌신은 사랑으로 충만되어야 하되 그 사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한 뜨거운 사랑이라야 한다. 분련된 사랑은 안된다.

12 불어역문(佛語譯文) (Abbe Dricux역 1884년)은 출애굽기 34:14을 이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은 단독히 사랑을 받고저 원하신다』―즉 그는 자기만이 당연히 우세하게 사랑받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 예수는 지상에 계셨을 때 두가지의 계명을 말씀하셨다. 첫째로 마음과 생각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아버지를 사랑하며 둘째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단일의 혹은 유일 무이한 위치에 두며 다른 사랑으로부터 구별하고 분리시키고 있다. 그는 뛰어나신 분이며 지존자로써 그 지위에 홀로 서신다. 분렬하지 않은 사람이 그에게 직접 간다. 그것은 전적으로 몸을 바치는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둘째 계명은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같이 우리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사랑은 인류를 포용하는 더 광범위한 것이지만 그리고 인류는 우리를 대신 사랑할수 있지만 이러한 무사적인 사랑을 독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모든 인류를 포함한다. 그러나 창조주만은 독점적인 헌신을 요구할수 있으며 또 그리하는 것이 정당하다.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나 단일(單一)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웃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사랑을 표시할 뿐이다. 그러나 여호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경배와 봉사, 순종을 포함하며 이일에 그는 어떠한 대적도 무건하시지 않는다.

13, 14. 예수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더욱 명확히 비교하셨는가? 또 이제 그것을 이해하는 것에서 어떤 이익을 우리는 받게 되는가?

13 이러한 개인적 사랑의 원칙을 예수께서는 표현하셨다. 그는 자기 아버지들 잘 알고 있었으며 아들을 아는 이는 아버지를 아는 것이라고 할수 있으리만치 그는 아버지와 친근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국에 전적으로 몸을 바치는 원칙을 세움으로써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도 여호와의 이름을 밝히는 일과 천국에 대하여 더 큰 사랑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한 예수는 지적하였다. 피조물들이 하늘의 아버지께 도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이제 아들을 통한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바 『누구든지 사람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라 하셨다. 아들을 통하여 표시된 아버지께 대한 이 사랑이 얼마나 커야 한가를 명시하기 위하여 예수는 말씀하셨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형주를 지고 나를 좇지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요한 14:6, 7; 마태 10:32, 37, 38, 신세.

14 여호와의 「아마겟돈 전쟁」이 지난 후에는 살아남은 자 전부가 그를 알며 그에게 그들의 첫번째 사랑을 드릴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그러한 사랑을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로 창조주와의 유일 무이한 관계를 맺게하는 것이다. 「그는 단독히 사랑을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 경배는 영과 진리로써 행하여지며 전적인 것이 될것이다. 이 사랑과 경배에는 어떤 타인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고로 이 경배는 홀로선다.

15. 성경은 종의 지위를 어떻게 정당한 것으로 보고있는가?

15 이렇게 전적으로 몸을 바치게 되면 그것은 둘 사이에 또 하나의 유일 무이한 관계를 갖도록 제안한다. 즉 주인과 종의 관계이다. 상전은 여호와이다. 그는 창조주이며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이나 소유되고 있는 자들은 그의 주인의 뜻을 행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는 피조물들의 유일무이하신 소유자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으며 자기 아들로 인류를 사게 하셨다. 그런고로 성경은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린도 전 7:23) 바울은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종들에 대한 매우 흥미 있는 변론을 기록하였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욕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린도 전 7:20-24.

16. 오늘날 여호와의 종 되기를 택하는 것은 무엇을 표시하는가?

16 초기 그리스도인 때에는 사람이 자유자이든 종이든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예수에게는 전부 마찬가지였다. 어떤 지위에 있든지 그리스도 예수와 천적 영광 중에 합동 후사(後嗣) 노릇을 하는 높은 지위에 부르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매인 자나 자유자이나 어떤 상태에 처한 사람이든지 이렇게 불리움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이런 방법으로만 그들은 하나님과 사귀일 수 있었다. 또한 여호와께 나아가 그의 봉사를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자기를 헌신한 사람도 이제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취하는 일에 그리스도인은 위선적으로 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계명을 순종하는 본을 보인 것과 같이 우주 주권자에게 전적으로 몸을 바치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여긴다. 이 종과 같은 관계는 가슴으로부터 울어난 것이다. 그것은 헌신한 이의 속에서 나온 소원이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의향(意向)이 들어 있다. 그가 참 하나님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사람은 고의적으로 종되기를 선택한다. 헌신한 사람은 자기를 낮춘 올바른 주인 여호와의 종과 같은 관계를 맺기 원한다.

「미정된 기간의 종」

17, 18. (ㄱ) 고대 이스라엘시대에 어찌하여 사람이 『미정한 기간의 종』이 될수도 있었는가? (ㄴ) 이 고대의 행동에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전도인은 어떤 건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17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는 히브리인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야 될때가 가끔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같이 우리에게 말한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며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그 아내가 자녀간 낳았으면 그 아내와 그 자식들을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하나님 가까히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미정된 기간을 그 상전을 섬기리라.』—출애굽 21:2-6 신세.

18 여기에서 자기 상전에게 전적으로 몸을 바친 종을 찾어 볼 수 있다. 그는 심지어 『내가 상전을 사랑한다』고 까지 말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이것을 정당한 심적 태도이다. 생명과 모든 축복을 주고 계신 주인 여호와께 그는 언제나 자기를 종과 같은 위치에 두고 그에게 열심히 봉사하여야 한다. 아무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하여 자기 멋대로 행하고저 원하지 말것이다. 처음으로 이런 잘못된 욕망을 품은 자는 마귀었으며 그의 종말은 멸망일 것이다.

19, 20. 여기에 우리가 공부하는 데서 각자의 선택의 자유는 어떻게 명시되고 있는가?

19 여호와 하나님이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전적인 헌신을 우주 주권자에게 드릴 때에는 각자의 선택에서 우러나서 드려야 한다. 강요를 받어 헌신하여서는 안된다. 그는 기쁘게 자진적으로 몸 바치기를 원하지 않으면 안되며 아무도 이런 지위에 그를 끌어 넣거나 여호와 하나님께 봉사하도록 그를 밀어 넣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였고 여호와의 뜻 행하기를 그는 원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에 조화하며 그의 종노릇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바이며 기쁘게 여기는 바이다. 여호와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의 계명 지키기를 기뻐하신 것과 동일하다.

20 여호와께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한 사람은 미정(未定)의 기간을 종노릇하기로 자원한 이 히브리인의 종과 같다. 신세계 사회의 성원에게는 영원히 이렇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는 그 세상을 그처럼 사랑하셔서 자기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서 그를 믿는 지상의 사람들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로 인류를 사도록 마련하셨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종이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고저 하며 이 사신 값 아래로 들어오기를 거절하고 자기들의 길로 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길은 『이 세상』의 길이며 그것은 그들의 사망을 의미한다.—요한 3:16; 요한 1서 2:17.

21. 여호와 섬기기를 택하는 것은 어떤 의무를 동반하는가?

21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잠언 10:7) 대속물을 거부하는 자들은 영원히 죽어 소멸되고 다시는 존재를 갖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아를 통하여 기록하신 것과 같다.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 그들이 영영히 자고 깨지 못하리라.』 (예레미아 51:57) 여호와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헌신한 이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심중한 일임을 인식하여야 하다. 모세가 말한 것과 같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에게는 면죄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 20:7)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고 물에 침례를 받었다 하여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만사를 행하실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여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축복과 보호로서 동의하는 바 자기의 책임을 반드시 실천하실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몸을 바치겠다고 한 종도 약속대로 자기 할바를 완수하여야 한다. 그는 자기가 종이며 지존하신 주권자에게 순종하는 자임을 표시하여야 한다. 사람의 목숨은 참되고 순결한 경배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은 『전적으로 몸 바치기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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