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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57 10/1 189-194면
  •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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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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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7
파57 10/1 189-194면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마태 19:27.

1. 신세계 사회란 무엇이며 의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 사회와 보조를 맞춘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신세계 사회는 확장하는 전도인의 사회이며 그의 영향은 땅끝까지 미치고있다. 이 사회는 살아 움직이고 호흡하는 사회로서 그 영적 번영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무쌍(無雙)한 것이다. 어느 곳으로 돌아서든지 그가 발휘하는 영향은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그들을 감동시킨다. 그것은 그의 경계선 내로 들어오는 사람 전부에게 소망과 생명의 말씀을 밝혀주는 이 낡은 세상에 있는 봉화(烽火)인 것이다. 의로운 신세계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머지 않어 이 사회는 그 성원들을「아마겟돈」의 가장 큰 환란 전부를 안전히 통과케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나는 신세계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인류는 영원한 평화와 번영과 행복을 즐길 것이다.—마태 24:21.

2. (ㄱ) 우리는 왜 여호와께서 신세계 사회 배후에 계시다고 말할수 있는가? (ㄴ) 어떤 방법으로 신세계 사회는 여호와의 마음을 반영 하는가?

2 이 놀라운 조직이 성공하는 배후에는 이 사회를 설립하시고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 여호와께서만 자기 백성을 보존하기 위한 놀라운 준비를 생각하여 낼수 있으시다. 그분만이 이 어지러운 때에 이같이 큰 사업을 진행 시킬수 있는 권능을 가지셨다. 또 그분만이 자기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그 사회를 인도하는 지혜와 성령을 소유하신다. 그런고로 여호와야 말로 이 사회의 존재와 경탄할 만한 성장상태(成長狀態)와 성공을 책임지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적절한 말과같이 모든 찬송과 영광은 마땅하게 여호와께 돌아간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 즉 심은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으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경작한 밭이오 하나님의 집이니라.』 하나님의 집이며 『경작하는 밭』으로서 신세계 사회는 인류에게 대한 여호와의 마음을 반영(反映)한다. 이 사회는 참된 경배를 지상에 확장시키며 점점 증가하는 지식으로 전진하고 영적 성장(成長)과 번영을 위하여 공급하며 온전한 날까지 길을 인도하는 이 사회의 머리인 그리스도 예수와 보조를 맞춤으로 여호와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고린도 전 3:5-9; 시편 127:1.

3. 여호와께서는 신세계의 소망을 어떻게 베프셨으며 이 소망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3 인간이 신세계를 바랄수 있게 되기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기초를 세우기 시작 하셨으며 신세계의 소망을 두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감동케하여 의가 거하는 오는 세상에 관하여 예언 하도록 하셨다. 이러한 예언들은 전 세대를 통하여 생존한 선의자(善意者)들에게 칙량할수 없는 기쁨과 소망과 격려가 되었던 것이다. 이 예언은 인간에게 필요한 자극을 주어 믿음 안에서 전진 하게 하며 최종적 성취를 기대 하도록 하였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명하여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셨을때 「아브람」은 주저치 않고 순종 하였다. 그는 신세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아브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때 갈바를 아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 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아 이삭과 야곱으로 더부러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읍이니라』고 기술 하였다. 「아브라함」이 자기 본토를 떠나고도 약속 받은 것을 기업으로 받기 위하여 만족하여 외국인처럼 할수 있도록 한것은 여호와의 약속된 신세계에 살고저하는 커다란 소망이 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 「사라」도 그와 함께 기뻐 여행 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입증하였다. 믿음으로 그들은 신세계의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땅으로 행진하였다.—창세기 12:1-3; 히브리 11:8-10.

4-6. (ㄱ) 신세계의 약속을 바라본 또 다른 어떤이들이있었는가? (ㄴ)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약속에 자진하여 참여하는 것을 어떻게 실지로 보여 주었는가?

4 질문할 것이 아직 남아 있다. 즉 우리도 이같이 행하기를 원하는가?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동일한 믿음과 자진적 행동을 실천하기 원하는가? 「아브라함」이 생전(生前)에 약속된 기업을 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인하여 「이삭」이나 「야곱」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자기 자손들에게도 동일한 길을 전하는 일에 「아브라함」의 행적(行跡)좇기를 끝치지 아니하였다. 「아브라함」에 관하여 예수께서 말슴 하신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 하였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충실히 믿은 충신자들의 믿음은 그들이 자기 소유하는바 전부를 심지어는 그들의 생명까지도 기뻐 바치고저 할만치 큰 것이었다. 그들은 신세계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기 위하여 이렇게 행하였다.—요한 8:56; 히브리 11:39.

5 「모세」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동일한 믿음을 실천 하였다. 「바로」 앞에 섰던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모세」는 그가 80세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목자(牧者)의 생활을 떠나 「바로」에게 대한 여호와의 증인(證人)이 되고 「이스라엘」 나라의 영도자(領導者)가 되었다. 「이스라엘」 나라가 총동원 하여 신세계에 대한 여호와의 약속에 희망을 둔 실예를 우리는 알고있다. 「바울」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모든 것을 제쳐 놓고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한 것을 말하고 있다—히브리 11:26, 27; 12:1.

6 이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의 수령(首領)은 그리스도 예수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였음에도 약탈 즉 그는 하나님과 동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비게하고 종의 형체를 취하였으며 사람들과 같게 오셨다 더욱이 그는 그 자신이 인간과 같은 형상임을 발견하시자 그는 자신을 나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렇다 그는 형주에서 죽으셨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은 지위로 올리셨던 것이다.』 예수는 자기 전부를 바쳤다. 전 인류가 다 합하여 제공할수 있는것 보다도 더 큰 가치의 것을 바침으로서 여호와의 약속하신 신세계에 참예할수 있게 된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진하여 행할 의사를 수개의 비유 안에서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취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룰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도라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예수께서는 자기를 좇고저 하는 어떤 서기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수 있으리만치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셨던 것이다. 즉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이『모든 것』 즉 희생한 것을 한탄하는 대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천국에 참여 하고저 한다면 동일한 행로(行路)를 걸을 것을 권면하였다.—빌립보 2:5-9; 마태 13:44-46; 8:20; 골로새 1:15, 16, 신세.

7. (ㄱ) 신세계를 얻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어떤 충고를 주셨는가? (ㄴ) 그리스도를 좇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7 예수는 이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고져 원한다면 그는 자신을 부정하고 그의 형주를 지고 나를 계속하여 따르라. 이는 누구든지 그의 영혼을 구원코져 원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그의 영혼을 잃는다면 그것을 찾을 것이다. 사람이 만일 온 세계를 얻고도 그의 영혼을 잃는다면 어떠한 이익이 있겠는가? 사람이 무엇으로 그의 영혼과 바꾸겠는가? 인자가 그의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올것이다. 그러면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의 행동에 따라 갚으실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교를 실천(實踐)하는 것 즉 그리스도교의 원칙에 자기 생명을 헌신하므로써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형주』도 질머지며 예수께서 경험한 고난과 고통의 일부분까지도 견딜 것을 요한다. 또 그것은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쌓고저 하는 자신의 욕망을 버릴 것을 의미한다. 선지자 「욥」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언제 금(金)으로 내 소망을 삼고 정금(正金) 보고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던가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니라.』 그런고로 그리스도를 좇는다는 것은 이 낡은 세상을 또는 필요에 따라서는 세상 전부와 생명까지 포기할 것을 의미한다. 마치 군인이 독립과 자유의 길을 위하여 하듯 그리스도에게 충성과 진실함을 충분히 바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울」은 다음의 말로써 이 점을 명확히 하였다. 『군사(軍士)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로 기쁘게 하려함이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고?』 하는 말씀을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한 선지자 「이사야」의 자진적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직무에 응할 만단의 준비를 가추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이 낡은 세상에 미련(未練)이 없었기에 여호와의 부르심에 거리낌 없이 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기타 충성된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통하여 가졌었던 부러워 할만한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이들 전부의 것이 되어야 한다.—마태 16:24-27, 신세; 욥기 31:24, 28; 디모데 후 2:4; 이사야 6:8.

전부 바칠 것을 요구하심

8.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이 어떻게 할것을 요구하셨는가? 또 그들은 어떻게 응하였는가?

8 그리스도교의 창설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갖일 것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그의 친근한 사도들은 그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 예수의 부르심에 그들이 얼마나 자진적인 태도로 응하였는가에 특히 주의하라. 성령에 감동받은 기사(記事)는 예수께서 당시 그물을 펴고 고기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손짓하여 부르셨을 때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고 하였다. 그물을 수선하고 있던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는 이렇게 기록되여 있다.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한 제자가 자기 아버지 장사 하기 위하야 돌아 가기를 원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답변하셨던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직업이든 가족 친구 등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으며 아무 것도 그들의 길을 방해하지 못하게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둘째로 돌렸으며 가장 열망하는 것인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 생애의 첫째로 놓였 었다. 그들은 자기 직업을 내놓기 전에 몇달씩 지체하여 돈을 저금하거나 또 그 길의 가치 여부를 조심하여 계량하여 보는 일을 하지 않었다. 또한 자기를 위하여 어떤 것이 예비되었는가를 사도들이 질문한 일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즉시로 부르심에 응하였으며 이로써 여호와와 그의 아들과 또 계속하여 존재하도록 마련하신 것에 둔 그들의 큰 믿음을 입증하였던 것이다.—마태 4:18-22; 8:22.

9. 그들은 천국의 특권을 어떻게 평가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9 예수께서는 천국에 참여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제자들이 깊히 감명(感銘)하도록 하셨다. 그것을 얻기 위하여서는 전부를 희생하여도 아까울 것이 없다. 믿음의 결승점(決勝點) 즉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는 자신을 희생하며 수고하고 인내와 꾸준함이 있어야 할 것을 그는 역설(力說)하였다. 예수를 계속하여 좇는다는 것은 세상적 연결이나 부채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는 것도 강조하였다. 의식주(衣食住)나 기타 생활 필수품은 부수적(附隨的)인 것이 되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의 천부(天父)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게 있어야 할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게 더하시리라 그런고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제일 중요한 것은 천국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이것과 비교하여 볼 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바울」은 자기의 견해를 이 같이 기록하였다. 『내가 그(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으려 함이다. 사도 「요한」은 이와같이 말하였다.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천국을 위하여 아낌없이 완전히 자기를 헌신할 이유로써 이보다 더 좋은 이유가 어디 있는가? 만일 제1세기의 그리스도인 교회에 장성함에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여호와와 그리스도 예수께 절대적인 믿음을 둘 필요가 있었다면 오늘날의 필요 조건이 그것보다 적은 것이겠는가?—마태 19:27; 6:32-34; 빌립보 3:8; 요한 1서 2:17.

10. 「온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에 충실히 응한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10 가서 『온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을 충실히 복종함으로써 그리스도인 회중은 오늘날 하나님의 설립된 천국의 기쁜 소식을 선명하는 헌신한 전도인들이 온 땅에서 대표하게 되리만치 확장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과거 38년간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나온 이 세대의 생명을 주는 소식임을 인정하여 왔다. 이런 이들은 고대 선지자들과 또 예수의 제자들이 가졌던 동일한 믿음과 기쁨을 가지고 응하였으며 그들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천국의 이 빛나는 등불을 높이 쳐드는 일에 참가하고 있다. 이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모두 합하여 이 낡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한 사회를 구성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의 신세계를 위한 자들인고로 신세계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마태 28:19, 20; 24:14.

11. 신세계 사회의 성원도 제1세기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동일한 희생을 바칠 것이 요구 되는가?

11 그러면 이제 신세계 사회 성원들도 제1세기 당시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소유하였던 동일한 믿음을 입증하고 동일한 희생을 바칠 필요가 있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을 위한 전도와 행실의 법칙은 세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다 같은 본 즉 그리스도 예수를 추종한다. 「베드로」는 이 같이 기록하였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최를 따르게 하려 하셨느니라.』 또 「바울」의 경고(警告)는 이러하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자 되라.』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본 받는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연구할 수 있는 유익한 재료로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본에 부가하여 우리 전에 있었던 「아브라함」과 기타 모든 선지자들의 본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베드로 전 2:21; 고린도 전 11:1; 히브리 6:12; 로마 15:4; 고린도 전 10:11.

12.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자의 정신적 태도는 어떠하여야 할 것인가?

12 우리중 누구든지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고저 한다면 우리도 충성된 선지자나 사도들과 같이 여호와의 지도에 자진적으로 기뻐 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점점 명확하게 되어 가고 있다. 이 낡은 세상에 자신을 매여둔체 전도인으로써 구성된 그리스도인 사회와 보조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낡은 세상에 염려를 자진하여 포기하고 부르심에 응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주인의 부르심에 응할 때가 이르기를 고대하여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는 대답을 온전히 하도록 하라. 「롯」의 아내와 같이 『모든 것』에 미련을 남긴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유감 없이 기쁨으로 포기할 기회가 우리들 전부에게 임하였다. 모든 것을 버린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결심하고 헌신할 바인 것이다.—마가 10:21; 마태 19:27; 사도 21:13.

13. 낡은 세상에 아직도 매어 달리고 있는 이들에 관하여는 무엇이라 말할수 있는가? 또 그들에게는 어떤 충고를 줄수 있는가?

13 그러나 아직도 신세계 사회와 낡은 세상에서 겸하여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러나 더디 이해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저 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헌신은 온전한 것이 못되었다. 이들은 참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좇지 아니하여 왔다. 그들의 헌신은 『조건부』이며 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나갈 조직 제조의 사치와 쾌락을 아직도 갈망한다. 그들은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낡은 세상의 쾌락에도 시간이 필요한 것을 안다. 마침내 쌍방에서 잡아오는 정열의 시련을 받으며 그의 결과는 긴장한 마음과 실망을 갖게 된다. 이 같이 두 마음을 가지고 흔들리는 사람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못한다. 「야고보」는 『사실상 그러한 사람이 여호와께로부터 무엇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는 결단력이 없는 자요 그의 하는 모든 일은 확고하지 못하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 가까히 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가까히 오실 것이다 너희 죄인들아 너희 손을 깨끗게 하라 그리고 너희 결단력이 없는 자들아 너희 마음을 정결케 하라 고통하며 슬퍼하고 울라 너희 비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 여호와의 눈 앞에서 너희 자신을 겸손하게 하라 그리하면 그는 너희를 높이실 것이다.』 이중(二重) 생활을 하고저 하는 자들은 참으로 겸손한자가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분기점(分岐點)에서 망서린다. 그들은 여호와의 지혜로운 충고를 무시하고저 하며 낡은 세상에서 깨끗이 분리되는 것을 과히 신통하게 여기지 않는고로 새것에 겨우 매달려 있다가는 낡은 세상이 마침내 그들을 잡아 끌어서 실종(失踪)케 한다. 경계선 양 쪽에 발을 디려 행하고저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두 주인을 섬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 하면 그는 하나를 미워하고 다른 것을 사랑하든지 혹은 하나에 고착하고 다른 것을 경멸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종이며 동시에 부의 종이 될수 없다.』—야고보 1:7, 8; 4:8-10; 마태 6:24, 신세.

결단력 없이 방황할 때가 아니다

14, 15. (ㄱ) 왜 지금은 결단력없이 행할 때가 아닌가? (ㄴ)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려면 왜 결심과 용기가 필요한가?

14 지금 증가된 신세계 사회의 보조는 결단력 없는 행동을 허용치 않는다. 조금만 주저하는 것도 퇴보(退步)를 의미한다. 더 주저하거나 더 장기간 망서린다는 것은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려면 그만치 좇아갈 거리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더 많은 노력과 더 큰 결심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슬픈 사실은 뒤떨어진 거리는 언제나 재난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신세계 사회의 약진 상태는 온전한 날까지 계속하여 지체치 않기 때문이다. 이 사회와 보조를 맞추려면 믿음과 용기와 결심이 필요하다. 우리의 시간이 더욱 요구되는 오늘날이야 말로 더욱 그러한 것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대답으로 응할 수 있는 파이오니아와 선교인과 「베델」 봉사의 부르심이 있다. 더욱 돌보아야할 것은 호별방문 전도와 새로운 천국 전도인을 훈련시키는 일 천국에 소식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을 재방문하는 것 또는 선의자들과 가정성경 연구를 사회(司會)하는 일 등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시간과 정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은 이미 바친 것임으로 마땅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이사야 6:8; 고린도 전 6:19, 20; 마태 22:21.

15 돌보아야 할 것이 이것뿐은 아니다. 회중(會衆)의 연구와 집회에도 참석하고 그것들을 바뜰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미리 사색(思索)하고 준비할 것을 요구한다. 개인적 연구나 가족적 의무도 태만하여서는 안된다. 지극히 적은 낡은 세상과의 관련이 신세계을 향한 우리의 발전을 방해 속박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서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는 자신을 부인하고 형주를 지며 그를 항상 추종하라고 충고하셨던 것이다. 「바울」도 이와 비슷한 충고를 하였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서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지도자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만일 우리가 이 지혜로운 충고에 청종한다면 신 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춘다는 것이 이 생활의 일로 무거운 짐진 자들처럼 어렵지 않을 것이다.—히브리 12:1, 2; 마태 16:24.

16. 신세계 사회의 각 성원은 무엇을 자문(自問)할 것인가?

16 이 낡은 세상에 쓸데 없이 매어 산다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정신을 좌절(挫折)할 뿐이다. 그것은 항상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는데서 얻는 기쁨을 소멸하며 우리의 발전을 방해한다. 실로 낡은 세상의 오락을 절제(節制)치 않으며 마침내 우리를 사망의 종점으로 끌어 넣을 것이다. 신세계 사회의 각 성원은 신세계를 지향(指向)한 자기 자신의 발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문(自問)하여 보라. 『나는 신세계 사회와 어떤 관계를 가졌는가? 나는 그 사회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가? 나는 낡은 세상의 오락으로 인하여 신세계에 관한 유익을 게을리 하고 있는가?나는 신권적 부르심에 충성스러웠던 선지자나 사도들과 같이 응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나의 세상 일로 내 시간을 삼켜 버리게 하는가? 여생을 얻기를 소망한 부하고 도덕있는 청년에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라.』 돈이나 물질주의(物質主義) 또는 이 세상사로 인하여 생명을 얻는 일에 실패하지 않도록 하라.—마가 10:17-30.

17. 낡은 세상에서 깨끗이 분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은 손해를 보는가?

17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베드로」가 말한 것은 이 청년과 예수가 담화(談話)한 후의 일이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게 이르노니 나와 믿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으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자가 없느니라.』 바꿔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낡은 세상을 포기하는 것으로써 아무 것도 잃지 않으며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이 신세계 사회와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낡은 세상을 버려도 실상은 아무 손해도 보지 않는다고 예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포기한 것의 백배(百倍) 이상을 얻는다. 이뿐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로써 하늘의 영화로운 생명을 얻고 주의 다른 양은 낙원의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믿음을 잃지 않고 또 신세계로 달리는 신세계 사회와 더불어 확신을 가지고 전진하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이 이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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