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될 대열에 서 있는 죽은 자들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마태 22:31, 32.
1. 부활의 때에 왜 많은 사람들이 부활되는 것에 놀랄지도 모릅니까?
고대 역사상의 많은 남녀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바라보았읍니다. 한편 수많은 사람들은 그러 한 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러한 부활을 기대하지도 않았읍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다르게 배웠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으로 땅을 다스릴 때에, 그의 권능을 사용하시어 죽은 자로부터 부활시키시는 것에 놀랄 것입니까?
2, 3. (ㄱ) 그 질문에 대답해 주는 고대의 권위있는 책은 어느 것입니까? 그리고 그 처음과 마지막 장들이 그것을 어떻게 읽혀 줍니까? (ㄴ) 부활에 관한 최종 진술은 무엇입니까?
2 그 단지 종교에 관한 하나의 고대 서적만이 그 질문에 대하여 권위있게 대답해 줍니다. 그 책만이 하나님의 왕국을 통하여 죽은 자들이 부활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그 왕국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그의 아들이 모든 인류를 축복하기 위하여 왕국으로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 독특한 종교적 서적은 성서입니다. 그 책은 완성된지 십 구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종교적이든 아니든 땅의 모든 서적 가운데서 첫째가고 있읍니다. 성서는 그 처음 오십장에서 죽은 사람의 부활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 책 마지막 스물 두장에서 (1) 하나님의 충성스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2) 『첫째』 부활이라고 불려지는 그의 충실한 제자들의 부활과, (3) 일반 인류의 부활을 말하고 있읍니다. (계시록 1:17, 18, 5; 2:10; 20:4-6, 12-14을 참조하십시오.) 성서의 그 마지막 부분의 필자는 부활에 관한 최종 진술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3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의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 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하데스)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 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하데스)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시 20:11-15, 신세.
4. 「요한」이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이 부활되는 것을 봅니까? 그리고 그때 그들은 적어도 지존성에 관한 무슨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까?
4 방금 인용한 성귀 12절에서, 필자인 그리스도인 사도 「요한」이 부활된 자들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지 않은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는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좋은 자와 나쁜 자가.」라고 말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라고 하였읍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모든 생활 계급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크고 작고 간에, 모든 창조물의 심판관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기 위하여 그들 모두가 나온 것입니다. 이전에 그들이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때에는 시편 83:18이 하나님이신 최고의 심판관에 관하여 말한 바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그러므로 죽은 자들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읍니다.
5. 계시록 20:11-14을 기록함에 있어서, 「유대」인인 「요한」은 왜 「스올」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5 사망은 죽어 있는 자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20:11-14이 예언하고 있는 죽은 자들이 어디에서 나올 것입니까? 13절은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올 내어 주고 또 사망과 (하데스)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바다가 무엇인가를 알며, 많은 사람들이 바다 물의 무덤에 묻힌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데스」는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성서적으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잘못 이해하고 있읍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히브리」인 즉 「유대」인으로 태어났읍니다. 그는 당시의 국제적 언어인 보통 「희랍」어로 계시록 20:11-14을 기록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희랍」어 「하데스」란 말을 사용했읍니다. 그러나 만일 「요한」이 그가 「히브리」어로 기록했더라면, 「히브리」어 「스올」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사실상 아홉개의 근대 「히브리」어 번역은 요한 계시록에서 「스올」이란 말을 사용했읍니다. 그리고 중동에서 읽혀지고 있는 「시리아」 번역은 관련된 말 「싀울」을 사용하고 있읍니다.
6. 성경 전서에 있어서, 「스올」과 「하데스」는 이떻게 사용되고 있읍니까? 그리고 거기에 누가 있는가를 찾아봄으로써 우리는 또한 무엇을 알 수 있읍니까?
6 바꾸어 말하여,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과 영감받은 「희랍」어 성경으로 된 성경 전서에 있어서, 「하데스」와 「스올」은 동일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데스」 즉 「스올」은 땅 속의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을 의미합니다. 사실상 「흠정역」 즉 「제임스왕 역」은 「스올」이란 「히브리」어를 31회나 『무덤』으로 번역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이제 「스올」 즉 「하데스」에 누가 있다고 말해 주고 있는가를 성서에서 찾아 봄으로써, 우리는 바다 외에 거기에서 누가 부활될 것인가를 알 수 있읍니다.
「스올」 (하데스)에 있는 자들
7, 8. (ㄱ) 서기전 18세기에 중동에서 스올이란 말이 무엇과 관련있게 사용되었다고 보고되었읍니까? (ㄴ)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애굽」에서 그 「스올」이란 말은 무엇과 관련있게 사용되었읍니까?
7 서력 기원 천 칠백 여년 전에, 중동 사람들은 바다에서 죽은 자들이 아니라 육지에서 죽은 자들의 보통 무덤을 말하는데 「스올」이란 말을 사용했읍니다. 서기전 1750년에, 「요셉」이 유괴되어 「애굽」에 팔려갔을 때, 그의 책임있는 형제들은 「요셉」이 죽임을 당하였다고 보고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 「야곱」 (혹은 「이스라엘」)은 다른 그의 아들들이 위로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슬퍼하며 (스올)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고 하였읍니다. (창세37:35, 신세) 그로부터 이십 이년 후에, 「야곱」의 아들 아홉명은 기근 때문에 「애굽」에서 식량을 얻기 위하여 그의 가장 어린 아들 「베냐민」을 데려 가고자 했읍니다. 처음에 「야곱」은 그것을 거절하면서 말하였읍니다. 『내 아들은 너회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머리로 슬피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창세 42:38, 신세) 그후 「야곱」의 네째 아들 「유다」는 「베냐민」이 「애굽」의 노예로서 거기에 남게 될 위협이 있는 것같이 보였을 때, 그의 아버지의 이 말을 되풀이했읍니다. (창세 44:29) 「유다」 역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8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창세 44:31, 신세. (「희랍」어 「70인역」은 「스올」을 「하데스」라고 번역했읍니다.)
9. 「야곱」은 그의 임종시에, 그가 누구와 함께 누워야 할 것을 말하였습니까?
9 그 위기에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은 「애굽」에서 식량 관리관으로서 일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모든 아들들의 재연합이 거기에서 행복하게 행하여졌읍니다. 사람을 보내어 나이 많은 「야곱」도 「애굽」으로 데려왔으며, 거기에서 일백 사십 칠년의 여생을 보냈읍니다. 그의 죽음이 가까왔을때, 「야곱 은 「애굽」의 총리가 된 그의 아들 「요셉」에게,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고 말하였읍니다. (창세 37:30) 「요셉」은 그렇게 할 것을 맹세하였읍니다.
10. 죽어가는 「야곱」은 그의 아들들에게 그가 누구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하였읍니까? (ㄴ) 죽어서 매장되자, 「야곱」은 어디 누구에게로 내려갔읍니까?
10 「야곱」은 그의 임종에서 그의 모든 열두 아들을 축복하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땅 「마므레」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창세 49:29-31, 33) 「야곱」의 이 마지막 요청이 실행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지적 육체가 같은 매장지 「막벨라」의 굴에서 함께 쉬게 되었읍니다. 그 곳은 나중에 「유다」 구역이 되었읍니다. (창세 50:12-14) 이처럼 하여 마침내 「야곱」은 그의 아들 「요셉」에게로가 아니라 「스올」에 있는 그의 조상에게로 내려갔읍니다.
11. (ㄱ)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디에 있었읍니까? (ㄴ) 예수께서 누가 복음 16:22-26에서 「아브라함」을 포함하여 말씀하신 것이 비유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11 이처럼 성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스올」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여러 세기 후에,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셔서, 『한 부자』와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에 관하여 말씀하셨을 때도 아직 거기에 있었읍니다. 우리가 「스올」 즉 「하데스」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안다면, 이 『부자』와 『거지』에 관한 예수의 말씀이 하나의 비유 혹은 예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상징적 말을 사용하셨으며, 심지어 「아브라함」도 그림으로 사용되었읍니다. 이것을 당신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어떻게 누가 복음 16:22-26에서 말씀하셨는가를 보십시오. 미국 표준역 성서는 이러합니다.
12.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서 「아브라함」과 「하데스」를 어떻게 포함시켰읍니까?
1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하데스) (「히브리」어로는 「스올」, 「시리아」어로는 「싀울」)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13. 예수의 말씀이 문자 그대로인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무슨 질문을 자문해 보아야 합니까?
13 자, 독자들이여, 자문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실제로 천사들이 헌데가 가득한 「나사로」의 죽은 몸을 「에브론」시 앞 「막벨라」굴로 가져 가서, 「아브라함」의 죽은 아내 「사라」를 밀어 내고 죽은 「나사로」를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하였읍니까? 그런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모두 「하데스」 즉 「스올」에 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자』가 죽어 장사되었다고 말씀하신 「하데스」즉 「스올」에 실제로 불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읍니까? 그리고 그 불꽃이 「하데스」 즉 「스올」의 어떤 자들에게는 괴로움을 주고 어떤 자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까? 「하데스」 즉 「스올에 있는 자들이 『큰 구렁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보고 말을 주고 받고 할 수 있읍니까? 그리고 「하데스」 즉 「스올」에 사람이 손가락으로 찍을 수 있는 물이 있읍니까?
14. (ㄱ)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전설적 매장지에 『부자』와 『나사로』가 매장되어 있다고 오늘날 사람들이 말합니까? (ㄴ) 예수의 비유에 있어서 문자적 「하데스」 즉 「스올」이 무엇이 아니라고 성서는 가르칩니까?
14 종교적인 많은 성서 독자들은 예수께서 비유나 상징적 예를 말하고 있지 않고, 실제적인 것을 말씀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를 어리석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데스」 즉 「스올」에 관하여 성서가 말하고 있는 나머지 부분과 반대되게 만듭니다. 오늘날의 중동에 가서 즉 회회교 사원 지배 아래 있는 「에브론」시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매장지가 있었다는 전설적 장소에 가서 물어 보십시오. 그들이 거지 「나사로」나 『한 부자』 (소위 「다이비이즈」)가 매장되어 거기 누어 있다고 말할 것입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성서는 「하데스」 즉 「스올」이 어떤 죽은 자들에게는 낙원이며, 또 어떤 자들에게는 고통의 장소라고 말하지 않읍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침묵의 장소요 무활동의 장소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죽은 자들은 거기서 말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지도 않읍니다. 그리고 「하데스」 즉 「스올」에는 아무 일이나 계획도 없으며 지식이나 지혜도 없읍니다.—이사야 38:18; 전도 9:5, 10; 시 6:5.
15. 예수께서는 비유에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사용하셨으며, 왜 그렇게 보는 것이 적절합니까?
15 정직한 마음을 가진 성서의 독자들은 누가 복음 16:19-31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유나 상징적 예를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한 독자들은 예수께서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는 데 「아브라함」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그의 벗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아브라함」의 씨 혹은 후손을 통하여 땅의 모든 가족들을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마치 하나님의 명에 의하여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인간 희생물로 바친 것과 같이, 실제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나라를 축복하시기 위하여 참다운 「아브라함」의 약속의 씨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셨읍니다.—창세 22:1-18; 요한3:16.
16. 그러므로 부자와 「나사로」는 누구를 묘사한 것입니까? 그리고 이 설명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읍니까?
16 따라서 『한 부자』와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는 실제적 인물들이 아니었읍니다. 그들은 단순히 두 반열의 사람들을 상징했을 따름입니다. 한 반열은 더 큰 「아브라함」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받은 위치를 잃고, 그 후에 땅에서 종교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다른 반열은 불리한 종교적 상태에서 벗어나 더 큰 「아브라함」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그의 희생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의 권능으로 인도됩니다. 예수의 예언적 비유에 대한 이해와 설명은 예수의 날에 족장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들 사이에 있었던 두 가지 일반적 종교 반열의 실제적인 역사적 경험에 근거하고 있읍니다.a
17.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읍니까? 그리고 이에 대한 믿음을 「아브라함」은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7 「스올」에 있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은 자가 부활 되는 계시록 20:12-14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 때 「스올」은 그들을 내어 줄 것입니다. 오래 전에 「아브라함」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순종 가운데 희생하려고 했을 때, 그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읍니다. 히브리서 11:17-19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내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을 것이니라.』
18. 그처럼 「아브라함」은 언제 「이삭」을 다시 받게 되었읍니까? 이것은 무엇을 예시하며, 시편 어느 귀절의 성취입니까?
18 그처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제단으로부터 다시 받고 어린 양이 대용 제물로서 바쳐졌을 때, 그것은 더 큰 「아브라함」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을 통하여 죽은 자로부터 다시 받게 되는가를 예시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리하여 시편 16:10, 『이는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는 말씀이 성취케 되는 것입니다.
19, 20. (ㄱ)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부활이 확실함을 예수의 부활에 관한 토론이 어떻게 증명합니까? (ㄴ) 그리하여 하나님의 무슨 목적을 예수께서는 알려 주셨읍니까?
19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부활이 있을 것은 확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것이 확실함을 강조합니다. 예수 당시의 종파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읍니다. 부활이 이치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들은 올무가 되는 질문을 예수께 던졌읍니다. 그 질문은 일곱번 결혼한 여자가 관련된 것입니다.
20 그들의 문제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부활에 아무런 난관도 주지 않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이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론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마태 22:29-32) 바꾸어 말하여 그 세 사람의 족장들이 영원히 죽은 상태로 머물러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관하여, 「나는 하나님이요」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는 하나님이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적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충실한 세 사람을 부활을 통하여 다시 「살게」 하실 그의 목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그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요』라고 말씀하셨읍니다.—마가 12:24-27.
21. 어떠한 의미에서, 세 사람의 족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산 자』들입니까?
21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다시 부활을 통하여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는 것이 아주 결정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치 살아 있는 『산 자』처럼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복음 20:37, 38에 의하면, 예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그들 모두가) 살았느니라.』 (신세)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라비아」 광야의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에서 말씀하셨을 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때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시지 않았읍니다. 만일 그들이 그때 즉 「모세」의 시대에 살아 있었다면, 그들을 다시 「스올」 즉 「하데스」에서 부활시킬 필요도 없을 것이며,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은 증명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족장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읍니다. 앞으로 부활된다는 견지에서 보았을때, 그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산 자』들입니다.
조상들에 대하여는 어떠한가?
22. (ㄱ) 「아브라함」의 조상에 관하여 무슨 질문들이 생깁니까? 그리고 그 질문들이 어떻게 대답됩니까? (ㄴ) 「아브라함」이 죽어서 누구에게로 갔읍니까? 그리고 언제 이 일이 성취되었읍니까?
22 하지만, 이제 우리의 주의는 「아브라함」의 조상들에게 이르게 됩니다. 그들이 죽은지 수천년이 되는데 도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읍니까? 그들 역시 부활될 것입니까? 이 질문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의해서입니다! 창세기 15:15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말이 성취된 것은 그 때로부터 구십년 후였으며, 그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아브라함」의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창세25:8-10.
23. 「아브라함」은 죽어서 누구에게로 돌아갔읍니까? 그러므로 그 사람들에게 역시 무엇이 참될 것입니까?
23 그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그의 조상들에게로 평안히 갔읍니다. 그리하여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읍니다. 「아브라함」의 조상들이란 누구였으며, 그의 백성은 누구였읍니끼? 「아브라함」의 직접적 조상은 「갈대아 · 우르」시의 「데라」였읍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에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아홉 세대를 소급하여 「노아」의 아들 「셈」에까지 이릅니다. 「노아」는 「아브라함」이 출생되기 이년 전에 죽었읍니다. 그런데, 「셈」은 단지 「아브라함」이 죽기 이십 오년 전에 죽었읍니다. 「아브라함」은 죽어서 그의 백성들인 이 사람들에게로 돌아갔으며, 그의 조상들인 이 사람들에게로 평안히 갔읍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만일 「아브라함」이 죽어서 「스올」 즉 하데스」에 갔고, 「이삭」과 「야곱」도 그의 뒤를 따라서 그 곳으도 갔다면, 「노아」까지 소급하는 「아브라함」의 백성 혹은 조상들 역시 「스올」 즉 「하데스」로 가서 그들 또한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 아래서 죽은 자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4.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은 죽어서 누구에게로 갔으며, 그 곳은 어디였을 것입니까?
24 「이삭」의 이복 형제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애굽」인 첩 하갈」에서 난 아들이었읍니다. 「이스마엘」은 일백 삼십 칠세를 살았으며, 창세기 25:17이 말한 대로,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읍니다. 그의 열조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포함합니다. 그는 「이스마엘」과 「이삭」보다도 구십년이나 먼저 장사되었읍니다. 이처럼 「이스마엘」도 또한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인 「스올」 즉 「하데스」로 가게 되었으며, 땅속에 눕게 되었읍니다.
25. 「모세」의 형 「아론」은 죽어서 누구에게로 돌아갔읍니까? 그리고 어느 때에?
25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은 죽어서 조상들에게 돌아간 다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애굽」에서 족장 「야곱」이 죽은지 꼭 백 십오년 후에, 그의 현손 「아론」이 태어났고, 그보다 삼년 후에 예언자 「모세」가 된 그의 동생이 태어났읍니다. 「아론」이 백 이십 삼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제사장 「아론」은 약속의 땅 동편 「호르」 산에서 죽었읍니다. (민수 20:23-29) 그후 같은 해에,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라고 하셨읍니다.—민수 27:13.
26. 「모세」가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간 곳은 어디였읍니까? 그리고 지금 그는 어디에 있읍니까?
26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시켜서 원수인 「미디안」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게 하셨읍니다. (민수 31:1, 2) 서기전 1473년 「모세」가 죽은 날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느보」산에 올라가서 거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본 다음에, 그의 백성에게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신명 32:48-52) 「모세」는 이 명령에 순종하였읍니다. 그에 관한 사후의 보도는 이러합니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느니라.』 (신명 34:5, 6) 그러나 「모세」의 무덤이 어디에 있든지, 그는 「스올」 즉 「하데스」로 내려갔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왕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부활을 통하여 그 곳으로부터 그를 구출하시며 「아론」역시 구출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7. 「여호수아」와 그의 동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어서 누구에게로 돌아 갔읍니까? 그리고 그 때 그들은 어디로 내려갔읍니까?
27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의 보이는 심판관으로서 「모세」를 계승한 사람은 누구였읍니까? 그 사람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였읍니다. 그는 선택된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 갔읍니다. 그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충실하였읍니다. 「여호수아」와 그 당시의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사사기 2:8-10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 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이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그들 모두가 「스올」 즉 「하데스」로 내려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8. (ㄱ) 「다윗」 왕은 죽어서 누구와 함께 누워 있읍니까? (ㄴ) 사도 「베드로」는 서기 33년 오순절에 「다윗」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였읍니까?
28 수세기 후에, 「베들레헴」의 「다윗」이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왕이 되었읍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통치한 처음 「유대」왕이었읍니다. 「다윗」이 기록한 여러 편의 시에서, 그는 「스올」 즉 「하데스」로부터의 구출에 대하여 말하였읍니다. (시 16:10; 18:5; 30:3; 86:13) 그는 그의 현명한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보좌에 그의 후계자로서 앉은 것을 살아서 보았읍니다.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누워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 (열왕 상 2:10; 사도 13:36) 그는 「스올」 즉 「하데스」에서 그의 조상들과 연합하였읍니다. 오랜 후에 즉 서기 33년 「샤부오드」 (오순절) 날에, 「다윗」이 아직도 「스올」 즉 「하데스」에 있다는 것이 보도되었읍니다. 그날에, 그리스도인 사도 「베드로」는 (「다윗」이 작성한) 시편 십육편이 그 때 「다윗」의 약속된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취되었다는 것을 말하였읍니다. 「베드로」가 「다윗」에 관하여 말한 바는 이러합니다. 『그가 미리 보는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하데스)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사도 2:1-34, 신세) 「베드로」의 말에 의하면, 「다윗」의 부활은 아직 장래 일로 남아 있읍니다.
29, 30. (ㄱ) 여자 예언자 「훌다」는 「요시야」왕이 누구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였읍니까? 그리고 어떻게 이 일이 성취되었읍니까? (ㄴ) 「요시야」왕 이전의 모든 왕들이 같은 장소에 장사되었읍니까?
29 「다윗」의 충실한 후계자로서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은 사람 중의 하나는 서력 기원전 칠세기의 「요시야」였읍니다. 그의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으로 돌이킴으로써, 「요시야」는 그들 위에 임하고 있었던 국가적 재난을 방지하려고 하였읍니다. 그의 여자 예언자 「훌다」를 통하여 그의 국가의 장래가 어떠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요시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약속을 받았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 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열왕 하 22:20.
30 「요시야」는 「므깃도」 전쟁에서 다쳐 죽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때는 「예루살렘」에 임한 무서운 재난의 때가 아니었읍니다. 「요시야」가 치명적 부상을 입었을 때, 『그 신복이 저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역대 하 35:22-24) 「요시야」왕 이전의 「예루살렘」의 모든 왕들이 「예루살렘」의 같은 장소 즉 『「이스라엘」 열왕의 묘실』에 장사된 것은아닙니다.―역대 하 28:27; 21:20; 24:25; 32:33; 16:14.
31, 32. (ㄱ) 고대의 그러한 사람들이 그들의 백성에게로 돌아갔지만, 그들 개인의 무덤은 어떠합니까? (ㄴ) 그들 모두는 똑같이 어디에서 나올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31 이 왕들과 족장들이 모두 그들의 백성 즉 그들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놓는다 하여, 그들 모두가 같은 무덤 혹은 묘에 장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읍니다. 족장 「아브라함」이 죽어서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 갔을 때, 확실히 그는 그의 아버지 「데라」와 같은 무덤에 묻히지 않았읍니다. 「데라」는 「메소보다미아」 골짜기에 있는 「하란」 북쪽에 장사되었지, 「노아」와 「셈」과 같은 무덤이나 묘지에 장사되지 않았읍니다.
32 대제사장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고, 그의 동생 「모세」가 「느보」산에서 죽었을 때, 그들이 그들의 백성에게로 돌아간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약속의 땅에 있는 「에브론」 근처 「막벨라」의 굴에 장사되지 않았읍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스올」 즉 「하데스」로 돌아갔읍니다. 그들 모두는 죽어서 하나의 「스올」 즉 「하데스」에 누어 있읍니다. 계시록 20:13은 죽은 자가 부활을 통하여 거기서 나올 것을 말해 줍니다.
[각주]
a 「종교는 인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라는 서적 246-256면의 제 19장 『가난한 자가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지다』와 307면의 11항을 참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