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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의 벗 혹은 세상의 벗—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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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의 벗 혹은 세상의 벗—어느 쪽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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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파76 6/1 245-250면

여호와의 벗 혹은 세상의 벗—어느 쪽인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야고보 4:4.

1. 벗이란 말의 뜻은 무엇이며, 벗을 선택할 때에 무엇을 고려해야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를 벗으로 삼을 것인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벗이란 “마음이 서로 통하여 친근한 사람”,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뜻합니다. 당신은, 싫어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 사고 방식과 견해가 항상 당신과 반대되는 사람, 당신의 원수와 교제하거나 그의 편을 드는 사람 등을 친근한 벗으로 삼겠읍니까? 우리도 벗을 선택하는 일을 조심스럽게 하기 때문에 우주의 지존자이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할 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여호와의 벗이 되는 방법, 그분과의 벗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그분의 벗이 되는 것을 막으셨읍니까? 하나님께서는 벗을 선택하실 때 어떤 면을 보십니까?

2 여호와께서는 인류가 그분의 벗이 되는 것을 막지 않으셨읍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셔서 매우 소중한 “독생자”를 주셨읍니다. 그것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 3:16) 그러나 여호와께서 아무 사람이나 다 벗을 삼으실 것으로는 기대할 수 없읍니다. 시편 5:4에서는 여호와의 벗이 나타내서는 안될 태도와 행실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리이다].”

3. 예수와 ‘야고보’는 세상의 벗이 되는 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 예수의 추종자들은 세상과 그의 부패 상태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야 함을 알고 있읍니다. (베드로 후 1:4) 요한복음 17:16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예수의 이부 동생 ‘야고보’는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 오는 좋지 않은 결과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읍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야고보 4:4.

세상의 벗이 아님

4. (ㄱ) 세상의 벗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ㄴ) 육체의 일은 무엇이며, 그러한 것을 따르면 어떤 결과를 당합니까?

4 세상의 벗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세상과 같이 되는 것, 세상과 같이 생각하는 것, 세상의 욕망을 가지는 것, 세상적 야심을 가지는 것, 세상의 편견과 증오심을 나타내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벗인 사람은 현 사회에 편만해 있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에 관해 말하였읍니다. (에베소 2:2) 그 영은 우리를 ‘바울’이 갈라디아 5:19-21에 열거한 세상적 습관에 빠져들게 할 수 있읍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그러한 세상적 습관을 따르면 어떤 결과를 당합니까? 우리는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있읍니다.

5. 그리스도인은 무슨 행로를 가야 하며, 무슨 열매가 여호와께 기쁨이 됩니까?

5 그러니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그러한 습관에 빠진다면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멀어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과 태도를 반영함으로써 그와 반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영의 열매는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자제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정욕과 욕망과 함께 못박았읍니다.” (갈라디아 5:22-24, 신세 ) 그러므로 그러한 열매를 나타내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6. (ㄱ) 세상의 목표들과 그리스도인의 목표들은 어떻게 다릅니까? (ㄴ) 생활 필수품을 구하는 점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격려하셨읍니까?

6 세상의 목표들은 그리스도인의 목표들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목표들은 물질주의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의로운 원칙을 희생하는 것도 보통입니다. 친근한 벗이 피해를 입어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생각은 모두가 더 부유해야 한다는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읍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걱정합니다. (마태 6:25-30) 그러한 물질주의적 견해를 본받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활 필수품을 얻으려고 하는 노력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있으며 또 축복하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는 머리둘 곳도 없으셨지만 그분의 아버지께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셨읍니다. (누가 9:58)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생활 필수품을 얻는 일에 관해 염려하지 말라고 권고하셨읍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부터 30절에서 자기의 논점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교훈을 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1-33.

7. 무슨 세상적 견해를 우리는 피해야 하며, 이 점에 있어서 무슨 성경 귀절들이 도움을 줍니까?

7 세상 사람들이 ‘안락한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열망하다가 “생활의 염려”에 빠지는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 21:34)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힌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3:22)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는 누가복음 12:15의 말씀도 실로 참됩니다. 안락한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부를 축적하려고 시간을 바치는 것이 어리석음을 ‘야고보’는 잘 설명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야고보 1:11) 후에, 그는 인생이 무상함을 지적하여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계획에 자신을 갖는 대신 우리는 “주[여호와]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하고 말해야 합니다. (야고보 4:13-15) 이러한 성경 귀절들을 볼 때에 하나님과의 벗관계를 길러나가는 것이 재물을 축적하여 안락한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함이 분명합니다.

8, 9. (ㄱ) 세상은 유명한 사람들을 어떻게 보며, 그러나 청소년들과 어른들은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ㄴ) 하나님의 벗들의 어떠한 본을 우리는 따르고자 하며, 무슨 목표를 가져야 합니까?

8 세상에서 추앙받는 사람들과 탁월한 사람들, 연예, ‘스포오츠’, 과학 및 기타 분야에서 명성을 떨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세상에서는 그러한 남녀가 높이 존경받고 있읍니다. 그들이 유명하기 때문에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그들을 우상화하고 그들의 성격과 길을 모방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벗은 이러한 세상의 본을 따르지 않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한 남녀들의 사상과 행동은 여호와의 길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과 친근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과 행동에서 그 사람들의 말씨, 의복, 몸차림 및 행동을 따른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벗이 아니라 그들의 벗이 되는 것입니다.

9 청소년들은 선천적으로 어른들을 본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을 모방하지 않도록 특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 유명한 사람들은 만일 행로를 변화시켜 여호와의 표준을 따르지 않는다면 ‘아마겟돈’에서 죽을 불완전한 인간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길을 모방하여 그들과 동행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겠읍니까? 청소년들이나 어른들이, 하나님의 벗임을 나타낸 사람들, 곧 ‘모세’, ‘여호수아’, ‘다윗’, ‘바락’, ‘입다’ 및 예수와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읍니까? ‘룻’, ‘라합’, ‘드보라’ 등등 기타 많은 사람도 여호와와 벗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우리의 추앙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읍니다. (히브리 11:4-38) 하나님과 벗관계를 유지하였던 현대인들의 예는 어떠합니까?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나 공산 정권 등 독재 정권의 학대를 이겨낸 우리 형제들의 충성과 인내를 당신은 본받고자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여호와의 벗 신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과 기타 역사상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큰 환난” 후에도 살게 될 것이지만, 이 세상의 유명한 벗들은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시 37:10, 34, 38; 마태 24:21, 22.

우리의 말과 행실

10, 11. (ㄱ) 세상과 사귀면 우리의 말씨에 영향을 받습니까? 설명하십시오. (ㄴ) 행실과 옷차림에 대해 성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며, 고린도 전서 15:33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에 이를 수 있읍니까?

10 또한, 하나님의 벗들은 덕이 되는 말을 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에베소 4:29) 세상의 벗들이 이러한 교훈을 따른다고 할 수 있읍니까? 그들은 덕이 되는 말을 합니까? 그들은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있읍니까? ‘야고보’는 혀에 대해 많이 설명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야고보 3:2-12)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야고보’가 묘사한 바와 같은 혀를 가지는 것이 현명하겠읍니까?

11 또한, 우리의 행실은 어떠합니까? 세상을 본받은 행실입니까, 아니면 ‘베드로’가 권고한대로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입니까? (베드로 전 2:12) 우리의 옷차림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최근 유행을 따르려고 노력합니까? 우리는 그렇게 하면서도 ‘바울’이 권고한대로 “정숙하고 신중하게” 단장할 수 있읍니까? (디모데 전 2:9, 새번역; 잠언 11:2; 미가 6:8) 우리는 자신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강력하게 말하기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5:33) 결국, 이상 고려한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생각과 행동으로 세상과 가까이 사귀면서 하나님과 벗관계를 유지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12. 베드로 후서 3:11-14에서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행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12 하나님의 벗 신분을 유지하려면 다음과 같은 ‘베드로’의 영감받은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베드로 후 3:11-14) 이러한 행실 중에는, 좋은 소식 전파에 참여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 등이 있읍니다. (마태 24:14; 히브리 10:25; 야고보 1:27) 이상과 같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매우 바쁘게 행동하여 세상과 섞이거나 세상의 길을 생각할 시간 여유가 없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벗이 되는 데는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형제들 사이의 벗관계

13. (ㄱ) 우리는 형제에게 어떻게 세상적 태도를 나타낼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요한 1서 4:20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ㄴ) 예수께서는 우리 형제와 어떻게 하라고 격려하셨으며,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이 또 있읍니다. 형제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당신은 그들을 사랑합니까? 그들과의 교제로 사랑을 나타냅니까? 당신은 그들 모두와 함께 거리낌없이 이야기를 나눕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과는 사소한 갈등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말을 하지 않는 일이 있읍니까? 어떤 사람과는 이런 저런 이유로 멀리합니까? 당신은 전도 활동에 시간을 많이 바칠지 모릅니다. 모든 집회에서 해설을 많이 할지 모릅니다. 회중내의 모든 활동에 몰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형제를 멀리 하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벗이 될 수 있읍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한 1서 4:20) 그러므로 예수께서 권면하신대로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형제에게 사랑이 없는 태도는 우리가 여호와의 벗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23, 24; 베드로 전 1:22.

14. (ㄱ)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세상의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다른 사람들의 불완전을 묵과 혹은 용서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14 세상 사람들의 또 한가지 특징은 자기 벗들에게 무자비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흠잡고 불평하고 얕잡지 않습니까? 성서는 그들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잠언 16:27) 그러나 여호와의 벗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행동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약점과 사소한 잘못을 눈감아 주는 점에서 다릅니다. 우리는 기꺼이 용서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께서 본을 보여주시지 않았읍니까? ‘다윗’은 시편 103:9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켜 줍니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그리고 14절은 이러합니다.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가 따라야 할 참으로 훌륭한 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잘못을 범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하시는 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용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가지 점을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불완전성 때문이었는가? 그것은 그가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가? 섭섭한 감정을 감소시킬 방법이 있는가? 그를 의심할 것이 아니라 좋은 동기로 보아주는 것은 어떠한가?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전 4:8; 에베소 4:32; 골로새 3:13; 베드로 전 3:8, 9)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벗이 아니라 하나님의 벗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벗관계를 유지함

15. 마귀는 하나님과의 벗관계를 파괴하기 위하여 무엇을 사용하며, 우리는 세상의 길에 빠지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읍니까?

15 우정이 없고 적대감이 강한 이 세상은 오늘날 하나님의 벗들에게 굉장한 압력을 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벗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부지런히 활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귀는 그 벗관계를 끊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읍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세상을 매우 매력적이고 매혹적으로 만듭니다. 요한 1서 2:16에서 ‘요한’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하면서, 세상으로부터 유래하고 또 ‘사단’이 도구로 사용하는 것들 중 현저한 것 세 가지를 지적하였는데, 그것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요한’은 세상을 정확히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길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벗으로서의 신분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세상을 저항해야 합니다.

16. 예수께서는 ‘사단’을 어떻게 저항하셨으며, 우리도 그와 같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임금”과 그의 보조자들을 항거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인 조처를 취해야 합니다. (에베소 6:10-18; 야고보 4:7)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세번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 어떻게 하셨읍니까? 예수께서는 “기록되었으되”라는 말로 대답하셨읍니다. (마태 4:1-11) 완전한 인간이신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기 인생 행로를 정하셨읍니다. 예수께서 본을 보이셨으니 우리는 모름지기 그분의 본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시편」 필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시 119:105) 이와 같이, ‘사단’을 저항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행동을 결정하면 우리는 우리의 벗이신 여호와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읍니다.

17. 앞날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필요로 하며, 만일 우리가 항복한다면 어떤 손실을 당할 것입니까?

17 지금부터 이 사물의 제도가 끝날 때까지, 마귀를 대항하는 데 있어서 우리 힘으로는 승리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장차 당할 시련과 유혹을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지혜와 인도를 간청해야 합니다. (야고보 1:5) 마귀의 책략에서 면제된 사람은 하나도 없읍니다. 마귀는 우리를 그릇된 욕망과 세상의 압력에 항복시키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복한다면 하나님과의 소중한 벗관계를 상실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영원한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야고보 1:14, 15) 그러한 행로는 그만한 희생을 치를 가치가 있읍니까?

18. 하나님께서는 벗들을 돕기 위해 또 어떻게 하셨으며, 우리는 이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8 또한, 여호와께서는 벗들을 격려하고 또 그들이 이기적인 욕망을 저항하도록 돕기 위해 부가적인 조치로 장로들을 임명하셨읍니다. 장로들의 충고를 따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히브리 13:17; 갈라디아 6:1) 때로는, 장로들의 말이 달갑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듣기를 원하는 말과 반대되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벗이 되려면 그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겸손하게 그것을 적용해야 합니다. 「잠언」 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언 12:15.

19. 사람이 심각한 죄를 범하면 희망이 완전히 사라집니까? 설명하십시오.

19 만일 어떤 사람이 “미련”하게 되어 심각한 죄를 저지른다면 어떠합니까?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야고보 5:13-16) 그러므로, 장로들의 도움을 청하고 죄의 길에서 회복하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잠언 28:13) 일시적으로 하나님과의 벗관계를 상실하였다가도 우리가 회계하고 하나님의 길에 일치하는 행로를 간다면 신뢰받는 벗의 입장을 회복할 수 있읍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이사야 55:7.

20. (ㄱ) 세상에서 얻는 유익은 영속적입니까? (ㄴ) 누가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였으며, 왜 그는 그러한 행로를 택하였읍니까?

20 세상과의 벗관계는 어떤 면에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일시적으로 죄를 즐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그것은 장래가 없는 인생입니다. 기껏해야 그것은 이 낡은 세상이 존속하는 동안, 앞으로 잠간 지속될 것입니다. ‘모세’의 훌륭한 본을 따르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읍니까? 성서는 그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 11:24-26) ‘모세’는 여호와로부터 오는 상을 바랐기 때문에, 세상의 벗이 되어 그 재물과 매력적인 것들을 차지할 기회를 거절하였읍니다. 그렇게 한 데 대한 보상은 무엇이었읍니까? 그는 하나님의 벗 신분을 유지하면, 하나님에 의해 기억될 것이며, 의로운 새 질서에서 부활받을 것을 알았읍니다.

21. (ㄱ) 하나님의 벗들에게 주어질 보상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ㄴ) 우리가 받는 보상은 무엇입니까?

21 우리의 믿음과 희망도 ‘모세’처럼 강해야 하겠읍니다. 우리는 생애의 모든 부면에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의 벗을 멀리 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우리의 친근한 벗인 여호와를 기본으로 하여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욕망은 하나님의 친밀한 벗으로서 그분께 애착심을 가지고 계속 밀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 자”이든지 “큰 무리”의 일원이든지, 그렇게 한다면 지금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더 큰 보상으로, 여호와의 벗들만이 사는 의로운 새 질서에서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디모데 전 4:8.

[247면 삽화]

햇빛 아래서 꽃이 시드는 것처럼 부하려 하는 자는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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