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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책의 “갑절” 축복으로부터 유익을 얻음
  • 우리의 왕국 봉사—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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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왕국 봉사—1975
사 75/9 3-10면

새 책의 “갑절” 축복으로부터 유익을 얻음

‘욥’이 어려운 시험 후에 받은 축복에 관하여 욥기 42:10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그 기사가 계속해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갑절”이라는 표현은 ‘욥’에게 큰 축복이었음을 상기시켜 주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최근 지역 대회에서 받은 두 가지 새로운 책으로 된 “갑절” 축복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부)의 발표를 기뻐하였고, 그 책을 읽고 야외 봉사에서 사용할 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우리는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 성공을 거두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유)을 받고 우리가 12월부터 회중 서적 연구에서 그 책을 연구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대회에서의 우리의 즐거움은 “갑절” 이상이었다. 얼마나 훌륭한 축복인가!

특별 강연

우리는 또한 11월과 12월에 이 새로운 책들을 근거로 한 일련의 특별 강연들이 있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대부분은 지난 여러 해의 경험을 통하여 그러한 강연으로 새 책의 내용을 빨리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가를 알고 있다. 그런 강연은 책의 내용들을 속히 잘 알게 해 주고, 우리가 이미 책들을 읽었다면 훌륭한 복습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 우리에게 부가적 유익이 있다. 우리는 「현 생명」 책을 9월에 야외 봉사에서 사용하고 「영원한 목적」 책은 11월에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강연에서 이 책의 내용을 듣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들을 전해 주고자 하는 열정을 자극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한 이 강연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내용을 익숙하게 해 주지 않겠는가?

물론, 당신이 이러한 강연을 다룰 연사 중의 한 사람이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꼭 연설에서 다루어지는 장들을 미리 읽도록 계획하라. 그 강연들이 당신의 대화의 일부가 되게 하라. 친척과 관심자들을 열정적으로 초대하라. 그들이 책을 가지고 와서 당신이 하는 바와 같이 강연중에 그 책을 따라서 볼 수 있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모두가 온전한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계획

8월호 「왕국 봉사」에 발표된 바와 같이 가능하다면 이 강연들이 11월과 12월의 9주간에 걸친 일요일에 행해지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처음 다섯번의 강연은 「영원한 목적」 책에 근거한 것이 될 것이며, 이어서 네번에 걸쳐 「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를 근거로 한 강연이 있을 것이다. 이 기간에 만일 순회 감독자의 방문이나 순회 대회가 있다면 이 강연은 그러한 행사 전 후에 마련되어야 한다.

회중의 장로들(과 어떤 봉사의 종들)이 이 강연 모두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지 않거나 실용적이 아니라면 두 회중에서 이 강연들을 나누어서 장로들인 연사들을 교환할 수 있다. 이러한 마련을 한다면 한 장로가 두 회중에서 강연을 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한 회중은 같은 강연을 다른 회중보다 한 주 후에 가져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홉가지 강연을 순서대로 연속적으로 하도록 계획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강연들이 정확하게 언제 있을 것인가를 회중에 알게 해야 한다.

연사의 준비와 연설

만일 당신이 이 강연을 하도록 임명된다면 임명된 장과 그것에 해당하는 골자를 철저히 연구할 것이다. 연사는 단지 내용을 망라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 하에 교육적인 강연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연사에게 임명된 장들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골자에 나와 있는 주요 사상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라. 청중을 의식하고 그들과 관련시키고 그들과 함께 추리하고 그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당신은 아마 책에 나와 있는 주요한 인용구나 그림 등을 청중과 함께 참조하여 그들이 책을 직접 따라 보게 함으로써 책의 내용에 더욱 친숙하게 되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유익을 배가시킬 것이다.

1.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을 알게 됨 (유 1-4장)

다행하게도 모든 인종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있다. (5분) 우리 주위에는 여러 가지 배경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개념이나 인간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알지 못했었다. (5면)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 중에도 그와 같은 일이 있었으며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다. 이곳에 참석한 분들 중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다. (갈라디아 4:8, 9; 6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점진적으로 더 잘 알고 있는가? 그것은 유익을 위하여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목적을 가지신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그분을 알게 됨. (20분) 우리는 그분을 영원하신 분으로서 알아야 한다. (시 90:2-4; 7면) 그러므로 그분은 영원한 목적을 가지실 수 있다. (에베소 3:10, 11; 12면) 그분의 이름도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준다. (12-15면) 참으로 그분을 아는 데는 관련된 것이 더 있다. 우리는 그분이 자기의 뜻을 수행하는 데 믿음직하심을 인식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확신을 가지고 그분의 목적을 중심으로 우리 생활을 세워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믿음직하심은 ‘앗수르’ 제국에 대한 그의 단호한 뜻으로서 나타났다. (이사야 14:24-27; 17, 18면) 그분의 “충고” 혹은 명령은 반드시 유효하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악에 대하여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올바로 인식하는가? (잠언 16:3, 4; 16면 22, 23항; 21면 34항) 그것은 그분의 예언의 확실성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강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고에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한 목적과 일치하게 생활하고 있는가? (시 33:9-12; 22, 23면)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하도록 창조되었다. (15분)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될 목적을 가지시고 먼저 영들을 만드셨다. (24, 25면) 천사들은 그분의 뜻을 수행하고 우리를 거룩하도록 돕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27, 28면)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관심을 반영한다. (시 103:13, 14; 29면) 그분은 사랑을 가지신 공급자이심이 증명되었다. (30, 34면) 사람을 완전하게 만드셨고, 목적을 가지고 그를 낙원에 두셨다. (창세 2:7, 8, 15; 32, 34면) 그는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졌었다. (35, 36면) 죽음은 다만 불순종으로 오게 되어 있었다. (36면, 33항 낭독; 52면 25항)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시키도록 결심함. (15분) 남자와 여자는 아무런 목표없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목적과 일치하게 창조되었다. (37면) 발표된 목적은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었으며, 지상을 낙원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창세 1:27, 28; 39, 40면) 천사들은 하나님의 목적이 진행되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41, 42면) 목표는 일곱째 “날” 끝에 가서 행복한 숭배자들로 땅이 가득 차는 것이었다. (18항 낭독) 그날은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면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인가? (43, 44면, 24항 낭독)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는가? 우리의 생활을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알고 있는 모든 점과 조화시켜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분의 목적이 성공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확신하는가?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행복이 그것에 달려있다. (23면, 40항)

2. 하나님의 목적은 반항을 직면해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유 5-7장)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가? (5분) 반항이 보편적이다. 어떤 경우는 선생에 대한 학생의 반항처럼 개인적인 것이다. 흔히 국가적인 것도 있다. 반항에 대하여는 보통 엄격한 조치가 취해진다. (잠언 17:11) 그러나 북미 식민지의 영국에 대한 반항처럼 어떤 경우는 성공한다. 하나님에 대한 반항도 성공할 수 있는가? 반항은 하나님의 목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적을 완수하실 것에 대하여 얼마만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목적은 하늘과 땅에서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다. (15분) 원 목적은 참 숭배자들로 땅을 채우는 것이었다. (51면, 21항)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에스겔 18:23; 44, 45면) 보이지 않는 한 영이 뱀을 통하여 ‘하와’로 반항하게 하였다. (47면, 11항 낭독) ‘하와’는 그 반항적인 영의 길을 따랐다. (49면, 16항) 반항을 직면해서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포기하셨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적을 계속 유지시키신 것은 ‘아담’과 ‘하와’로 후손을 낳게 하신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창세 3:16) 반항자를 멸할 기름부음 받은 자를 가지실 목적을 세우심으로써 그것을 재확정하셨다. (창세 13:14, 15; 49-51면; 53면, 29항)

하나님의 목적과 협력한 자들의 본. (20분) 첫 사람 부부가 반항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씨”를 산출하실 수 있는가? 성서는 그분이 그렇게 하시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54면, 2항) ‘아벨’의 죽음은 하나님의 목적을 실패케 하였는가? 아니다, ‘셋’을 사용하셨다. (55면) ‘에녹’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고착하였다.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인가? (57-59면; 15항 낭독) ‘노아’는 여러 세기 동안 중단함이 없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우리는 참을성 있는 순종을 나타내는가? (창세 6:9, 10; 60면)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악을 짧게 하시기 위하여 홍수를 가져 오셨다. 그분이 지배하심을 나타내셨다. (60, 61면) ‘노아’와 가족을 보존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또한 “씨”의 계열을 보존하셨다. (63면 29항; 64면, 35항 낭독) 악한 영들은 아직도 활동하고 있었다. (66면, 38항) 반항이 하나님의 목적을 실패케 하지 못하였다. 충실한 자들이 그것에 고착하였다. (66, 67면)

“씨”의 계열의 역사는 목적이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려 준다. (15분) ‘사단’이 “씨”의 나타남을 방해함으로써 목적을 실패케 할 수 있는가? (68면, 1항) 계열은 ‘셈’을 통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셈’의 존경으로 말미암아 축복이 주어졌다. (70면) 여러 세기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한 “씨”를 약속하셨다. (창세 12:1-3; 71, 72면) ‘이삭’의 출생은 하나님께서 “씨”를 산출하실 수 있음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창세 3:15; 73면, 15항)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장차 올 왕 “씨”를 전영하였다. (74, 75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 되었다. (이사야 41:8; 76면)

우리는 ‘에녹’, ‘노아’ 및 ‘아브라함’과 같이 아무 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실패케 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참을성 있고 충성스러울 것인가? (67면)

3.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진전시키는 데, 한 민족의 역할 (유 8-10장)

하나님께서는 한 민족을 꼭 필요하게 사용하실 수 있다. (5분) 오늘날 나라들은 세력과 온전한 독립을 쟁취하려고 한다. 그래서 강력한 군대와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민족도 하나님의 승인을 받아 그분의 목적을 완수하도록 사용되고 있는가? 어떤 민족이 그분의 뜻을 저항할 수 있는가? 대답은 우리의 인생관과 우리가 생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영향을 미친다. ‘느부갓네살’은 정확한 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니엘 4:34, 35)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꼭 필요하게 사용하도록 택하실 능력을 성서 기록에서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친히 선택하신다. (15분)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씨”를 가져오실 언약을 하셨다. (창세 12:1-3, 7) ‘이삭’의 두 아들 중 하나를 택하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장자권에 구속되셔야 할 이유가 없다. (78, 79면, 4항 낭독) ‘야곱’이 선택되었기 때문에 성서는 그의 계열에 초점을 두고 있다. (80면) 어느 아들을 통하여 메시야가 올 것인가? 다시 하나님께서는 환경에 적응하여 ‘유다’를 택하셨다. (81, 82, 84면) 왕으로서의 지도권은 장자에게 구속되어 있지 않다. (역대 상 5:1, 2; 85면) 성서 기록은 목적의 진행 상태를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장래가 관련되어 있음으로 관심을 기울일 만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택하셨다. (20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기 전에 그 민족이 성장할 기회를 주셨다. (창세 15: 18-21; 88면) 그분은 자기의 시간 계획에 따라 행동하심을 증명하신다. (89, 90면) ‘모세’를 언약의 중보로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였다. (90면, 11항) 강력한 ‘애굽’의 반대가 목적을 정지시킬 수 없었다. (92, 93면) 중보를 통하여 이 민족은 기꺼이 언약을 맺고자 함을 나타냈다. (출애굽 24:6-8; 96면) 만일 그들이 흠 없이 율법을 지켰다면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씨”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레위 18:5; 99, 100면) 계속, 율법을 가진 민족이 “씨”로 인도하고 목적을 진전시키도록 사용되었다. (98면)

이 민족에서 하나님께서는 “씨”로 인도하는 왕들의 계열을 선택하셨다. (15분)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이 사사들의 지도를 받도록 하셨다. (102, 103면)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관해서 말씀하신 뜻을 버리셨는가? 아니다. ‘사울’이 악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의 ‘다윗’을 택하셨다. (사무엘 상 13:13, 14; 105면) 택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전 민족의 통치자가 되게 하실 때를 기다렸다. (105면) 하나님께서는 왕조를 위하여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 (사무엘 하 7:12-16; 107-109면) ‘다윗’ 계열의 인간 왕이 끝났을 때 하나님의 목적은 중단되지 않았다. 계열은 계속 예수와 영원한 왕국으로 인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 혹은 민족에 대하여 자기가 원하시는 바를 하실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욥 34:29) 우리는 오늘날 그분이 연합된 백성을 인도하시는 것에 따르고 있는가? 그분이 목적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것은 축복으로 인도한다.

4.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메시야 (유 11, 12장)

여러분은 앞에 열려져 있는 생명의 기회를 받아들일 것인가? (10분) 건전한 사람이라면 부와 보람있는 생활을 즐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스라엘’이 생명과 죽음 중 하나를 택하도록 되었을 때, 올바로 택하였다. (신명 30:19, 20; 여호수아 24:15-18) 후에 약속된 메시야의 신분을 알고 그를 받아들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믿는가? 우리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의 생활은 우리가 그분의 인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증명하는가?

하나님의 목적에 메시야가 나타나는 데 하늘이 관련되어 있다. (25분) 기름부음 받은 자의 임하심은 하나님의 목적을 완수하는 데 중요하였다. (53면, 29항)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나타날 시기와 장소를 알리셨다. (다니엘 9:24-27; 미가 5:2; 110-114면) 그리하여 예수의 나타나심은 그분이 메시야임을 증명한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메시야임을 지지하는 데 하늘이 관련되었다. 천사들이 그의 탄생 전에 ‘마리아’와 ‘요셉’에게 소식을 전달하였다. 그 소식은 왕과 그리고 죄를 제거할 메시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누가 1:26-33; 마태 1:20, 21; 114면, 10항, 118, 120면) 그분은 ‘다윗’의 후사의 올바른 계열에서 나왔다. (115, 116, 120면, 32항) 잉태된 어린 아이는 거룩하였다. (116면) 천사로 말미암아 목자들이 출생의 목격자가 되었으며 어린이의 생명이 구출되었다. (119-121면) 또한 하나님께서 예수를 기름부으신 것에 목격 증인이 있다. (122면) 아직도 남아 있는 질문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받아들였는가? 우리는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메시야의 행로는 예언을 성취시켰고 우리에게 장래에 대한 보증을 해 준다. (20분) 메시야는 고통을 받고 ‘모세’와 같게 되어 있었다. (이사야 53:7, 9, 12; 신명 18:15, 18; 124, 125면)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으며 ‘모세’보다 더 크셨다. (출애굽 7:2, 3; 요한 2:23; 3:1, 2; 126면) 우리는 그의 기적이 의미하는 바를 올바로 인식하는가? 그분이 메시야임을 증명한다. 또한 그분이 병 고치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일을 장차 하실 수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그분의 통치 아래 사람들이 앓지 않고, 굶주리지 않고 슬퍼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가? 예언자로서 그분은 자기의 죽음과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관하여 예언하셨다. (127면) 희생으로서의 그분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완수하는 데 중요하다. (이사야 53:9, 12; 128, 129면) 영으로 일으킴을 받으셨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필수적인 생명의 가치를 하늘에서 제공하실 수 있게 되셨다. (130, 131면, 22항, 23항 낭독)

심지어 죽으실 때에도 예수께서는 지상 낙원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셨다. (129면, 17항) 이제 하늘에서 다스리고 계시다. 우리는 그분의 인도를 따르고 있는가? (히브리 5:8, 9; 마태 24:14, 43, 44)

5. 당신은 하나님의 목적의 성공으로부터 유익을 얻고 있는가? (유 13-15장)

여러분은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참으심을 올바로 인식하는가? (5분) 모든 사람들은 때때로 참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에 대하여 참는가? (157면, 3항) 목적을 참을성있게 발전시키고 계심은 우리로 그것을 배워 알고 그것에 따라 생활할 수 있도록 유익하게 한다. 온전한 “씨”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분이 인간이 유익을 얻기를 원하심을 나타낸다. (베드로 후 3:9)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씨”가 관련된 목적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키셨다. (20분) “씨”의 신분과 씨가 수행할 일은 오랫 동안 비밀에 부쳐졌었다. 예수는 메시야와 주요한 “씨”로 오셨다. 그러나 그 이상이 관련되어 있다. (창세 22:17, 18; 136면, 12항) 하나님의 목적에는 시행 곧 그리스도 아래 통일을 가져올 일들을 하는 그의 길이 관련되어 있었다. (132, 133면) 기원 33년 오순절날 예수께서는 회중을 세우기 시작하셨다. 영적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육적 ‘이스라엘’을 대치하는 것이다. (133-135면)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씨의 일부가 되었다. ‘유대’인들이 먼저이다. (사도 3:24-26; 136면) 후에 이방인들에게로 확장되었다. 그들은 이전에 한때 “희망이 없는” 자들이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참으심은 그들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 (에베소 2:11, 12; 138면) 이것은 “거룩한 비밀”을 해결하였다. (에베소 3:5, 6, 10-12; 140, 141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그분의 지혜와 참으심을 확증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유익을 얻을 위치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인가?

점진적 목적은 우리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다. (20분) 하나님의 목적을 실패케 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목적이 성공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142면)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는 아무런 유익도 얻을 수 없다. (베드로 후 2:1-3; 143면 4, 5항 낭독) 1914년 이래 위급한 때에 살고 있다. (145-149면) 기름부음 받은 자들은 여호와를 영예롭게 하는 데 기회를 충분히 사용하였다. 이름을 갖기까지 하였다. (150면) 목적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는 명백하다. (151면) “모든 민족”이—영적 ‘이스라엘’뿐만 아니라—축복을 받게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목적을 옹호하고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152-154면) “환난”이 앞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목적에 충성스러운 자들에게는 문제와 불편함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큰 무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155면)

여러분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금 결정해야 한다. (10분) 목적의 완전한 성취는 큰 즐거움을 가져올 것이다. 죽은 자들이 부활을 통하여 유익을 받게 될 것이다. (156, 157면) ‘사단’과 기타 반역자들은 유익을 받지 못할 것이다. 멸망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그러한 자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가? 회중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에베소 3:10, 11) 우리는 충성스럽게 회중과 함께 일하고 있는가? 천년 동안 왕국으로부터 유익을 얻도록 우리로 준비하게 해 준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성공으로 영원한 즐거움을 얻을 것인가? (160면)

6. 사람—살도록 창조되었고 죽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부 1-5장)

인간은 더 오래 살아야 이치적이다. (7분) 우리는 생명을 사랑한다. 그것이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 성서의 많은 충고는 우리가 생명을 사랑하는 것에 근거하였다. (베드로 전 3:10; 잠언 3:1, 2) 우리는 생명을 배우고, 즐기고, 경험하는 것과 관련시킨다. 사람이 그렇게 짧은 생애를 갖는 것은 이치적인 것같지 않다. (4면과 22면에 나오는 그림을 간단히 토론하라)

죽음은 온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에 영향을 준다. (15분) 대부분의 종교들은 사망 지향적이다. 흔히 사는 동안 사람의 노력은 죽음에 대한 의식에 따라 틀잡혀진다. (5, 6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널리 퍼져있는 숙명론적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성서는 숙명에 의하여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9-11면, 그림에 주의를 이끌라) 죽음이 불가피한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순간을 위해서 산다. (고린도 전 15:32; 12, 13면) 성서를 믿는 자들까지도 죽음의 의미를 반영하고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전도 7:1-4; 14, 15면) 성서는 우리가 대답을 요구하는 생명과 사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인정한다. (8면, 1항)

사람은 살도록 만들어졌다. (8분) 사람의 신체적 구성과 영원의 개념은 그가 살도록 만들어졌음을 증명한다. 죽음은 부자연한 것이다. (전도 3:10, 11; 16-20면) 그러면 사람은 왜 죽는가? (21-23면)

죽음이 있게 된 유래 (10분) 많은 사람들의 신화는 불순종에서 죽음이 나왔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24-26면) 성서는 사람이 생명의 전망을 가지고 창조되었으며, 불순종으로만 죽음이 온다는 것을 알려 준다. (27-29면; 28면 토론; 창세 2:16, 17) 죄는 죽음을 가져왔으며 ‘아담’의 후손에게 퍼졌다. (로마 5:12; 30, 31면) 그러나 살아 남는 것이 있는가?

전체 “영혼”이 죽는다. (15분) 많은 이교인들과 다른 사람들은 사람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31-33면) 하지만 성서는 인간과 동물이 영혼 곧 호흡하는 자들임을 알려 준다. (창세 2:7; 고린도 전 15:45; 신명기 24:7, 신세; 33-37면; 36면 토론) 사람은 그의 생명을 하나의 영혼으로서 잃을 수 있다. (창세 35:18; 38, 39면) 불멸의 영혼이라는 생각은 이교에서 기원한 것이다. 아마 고대 ‘바벨’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39-41면) 성서는 이 거짓 교리를 옹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치는 조직에 속하는 것이 이치적인가? 창조주께서는 여러분이 살기를 원하시며 또 살도록 만드셨다. 성서가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알려 주는 바를 배우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사도 13:48)

7. 죽은 자의 영이 당신의 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부 6-10장)

사후 생명에 관한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5분)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사후 생명에 믿음을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은 의식을 가진 영이 죽은 몸을 떠난다고 믿는다. 아마 천당이나 지옥 혹은 연옥으로 간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영들을 두려워해서 그들을 쫓아 내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과 통신을 하려고 한다. 어떤 것들은 낯익어 보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산 일이 있었는가 의아하게 생각한다. 성서는 지침이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디모데 후 3:16, 17)

몸이 죽은 후에 살아 남는 의식을 가진 영은 없다. (20분) 성서는 죽은 자가 무의식이라고 알려 준다. (시 146:4; 전도 9:5, 10; 64면, 4항) 성서는 몸이 죽을 때, 의식을 가진 영이 몸을 떠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가? 고려해 보자. 전도서 12:7은 이것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영”은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다. (시 104:29; 전도 3:19; 42-44면) 그것은 어떤 면으로 전기에 비교할 수 있다. (44-46면, 그림 토론) 하나님께로 “돌아 간”다는 뜻은 그분이 그것에 대한 권위를 가지신다는 의미이다. (누가 23:46; 46, 47면) 이전에 산 일이 있다는 생각은 어떠한가? (48면, 1, 2항 낭독) 낯익어 보인다는 것이 재생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서와 반대된다. (48면) 요한 9:2의 뜻은 어떠한가? 그것은 상충하지 않는다. (52, 53면)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자들을 도우려고 하거나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10분) 때때로 죽은 자들을 달래기 위한 노력이 장례식에 반영된다. (54-57면) 연옥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전통에 근거한 것이요, 성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성경과 반대된다. (마태 15:6-9; 6:7, 8; 58-61면; 56, 57면에 있는 그림에 주의를 이끌라) 공동 묘지를 피하거나 ‘주주’ 사제에게 가는 것 등은 죽은 자들의 영을 두려워한다는 증거이다. (61-65면) 성서는 우리에게 올바른 견해를 갖도록 도와 준다. (전도 9:6)

“죽은 자들과 이야기하는 것”과 그와 비슷한 비성경적 행위를 피하라. (20분)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어떻게 ‘사울’ 왕은 죽은 ‘사무엘’과 접촉하였는가? (사무엘 상 28:12-15; 65, 66; 67면 그림 참조)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일이 있는 것을 승인하시지도 않고 허락하시지도 않는다. (레위 19:31; 67, 68면) 그러한 음성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와’의 경험과 비슷한 것이다. (창세 3:1-6) 예수께서는 거짓말의 근원이 ‘사단’임을 알려 주셨다. (요한 8:44; 70, 71면) 다른 영물들이 ‘사단’에게 가담하여 악귀들이 되었다. 지금 “타타루스”에 있다. (창세 6:1-4; 73, 74면) 우리는 인간과 접촉하고 인간에게 영향을 주려는 그들의 노력을 경계해야 한다. (75면 2, 3항 낭독) 성서는 우리에게 영매술적 행위를 피하라고 경고한다. (레위 20:27; 76면)

죽은 자나 악귀들을 끊임없이 무서워하면서 살지 말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그를 섬기라. (계시 14:7; 21:8, 3, 4)

8. 사랑의 하나님께서 영혼을 괴롭히실 것인가? (부 11-15장)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라.—사랑과 자비와 친절한 분이시다. (5분) 성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친절과 사랑에 대하여 풍부한 증명을 해 준다. (시 103:8, 13, 14) 우리는 그분이 모두를 위하여 심지어 그를 무시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마련해 주시는 좋은 것들로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사도 14:17) 어떤 가르침들 심지어 성서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러한 가르침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왜곡된, 참이 아닌 사실을 알려 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명백히 해야 하고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옥불의 고초를 가르치지 않는다. (25분) 이 일련의 강연의 첫 부분에서 죽은 자는 의식이 없고 사람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없고 사람이 곧 영혼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충실한 자들을 부활시키실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나 이교를 포함해서 지옥불에서 형벌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믿는 자들이 많이 있다. (77-79면, 그림에 주의를 이끌라) 성서에서 말하는 “지옥”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어 ‘스올’과 희랍어 ‘하이데스’가 때때로 “지옥”으로 번역되었으며 죽은 자들의 장소, 인류의 공통 무덤을 의미한다. (시 16:10; 사도 2:30, 31; 79-82면) 하나님께서 괴로움이 아니라 죽음의 형벌을 세워 놓으신 것은 사실과 일치한다. (신명 30:19, 20; 81면) 지옥의 고초의 교리는 아마 희랍과 ‘로마’에서 기원한 것이다. (83면 3항 낭독) 그것은 하나님을 중상한다. (83, 84면)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16:19-31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성귀를 읽고 86, 87면에 나오는 그림에 주의를 이끌라.) 교직자들의 견해는 논리적이 아니다. (잠언 30:8; 87, 88면) “부자”와 “나사로”는 상징적 인물이다. (마태 23:5-7; 21:31, 32; 88, 89면) 그들의 “죽음”은 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로마 7:2, 4; 91면) “부자” 반열은 그리스도교 소식에 의하여 고초를 받았다. (사도 5:33; 92, 93면) 이 성경적 견해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고칠 수 없는 자들을 멸망으로 형벌하신다. (17분)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고칠 수 없이 악한 자들을 형벌하신다는 것은 이치적이다. 그러나 그분의 특성과 일치해야 한다. 영원한 고통은 그분의 특성에 맞지 않는다. ‘게헨나’에 관한 성서 주석의 견해, 오예물의 완전한 파멸에 근거해 있다. (마가 9:43-48; 역대 하 28:1, 3; 열왕 하 23:10; 95-98면) 영원한 멸망의 상징이다. (99면, 1항) 그렇게 멸망된 사람들과 물건들은 영원히 고초를 받는 것으로 말해져 있다. (계시 20:10; 100-102면) 영원히 모독을 받으며 감금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마태 18:34, 신세, 난외주; 103면 1항)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성서의 다른 곳의 증명과 일관성있는 것이다. (신명 25:4; 애가 3:32, 33; 105, 106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죽음을 포함한 인간의 원수를 정복하실 것이다. (8분) 죽음까지도 멸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고린도 전 15:26; 107, 108면) 아들을 통하여 그렇게 하실 것이다. 아들은 지금 하늘에 계신 능한 영이시다. (110면) 그리스도는 하늘에 보조 통치자들을 가지실 것이다. (로마 16:20) 그들의 통치를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성인 사랑과 인자와 친절과 조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20:25-27; 112, 113면)

9. 병과 죽음이 없는 땅—가까왔다! (부 16-21장)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 (5분) 우리의 자녀, 친척 혹은 벗들이 우리가 한 일을 고맙게 생각할 때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셨고 하실 일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섬기게 움직이는가? (이사야 12:4, 5) 미래의 축복들을 고려해 보자.

병과 죽음이 없는 지구가 바로 우리 앞에 있다. (25분) 계시록 21:3, 4을 잘 알고 있는가? 그러나 어떻게 성취될 것이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충분한 양식이 있을 것인가? (114-117면; 이사야 25:6) 예수께서는 병을 고치실 것이며 점진적으로 필요에 따라 혹은 즉석에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이사야 25:8; 117, 118면) 예수와 그분의 보조 통치자들이 동정심을 가지고 다루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히브리 4:15, 16; 119, 120면) 병이 없는 상태에서 영원한 생명은 지루한 것이 아닐 것이다. 배우고,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122-125면)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끝없는 기회 (126, 127면; 127면 3항 낭독) 우리는 새 질서의 문턱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가까왔”다. 다니엘 4장에 나오는 “나무”의 꿈은 왕국이 설립될 때를 예언적으로 알려 준다. (128, 129면) 2,520년이란 기간을 의미한다. (131-137면의 내용에 간단하게 관심을 이끌고, 그림을 설명하고, 137면 2항 낭독) 악한 제도의 끝은 이 “세대” 안에 오게 되어 있다. (마태 24:34; 137, 138면) 새 질서의 축복 뿐 아니라 결코 죽지 않는 전망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우리를 움직이는가?

심지어 수십억에 달하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20분) 새 질서에서 이사야 65:17이 참됨이 증명되려면 죽은 자들이 일으킴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140면) 과거에 있었던 부활들은 그것이 수행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사도 17:31; 141, 142면)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실 수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144-146면; 시 139:16) 이것은 횡사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야 한다. (히브리 2:14; 146, 147면) 부활된 자들을 위한 마련의 모든 자세한 점들을 지금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148, 149면) 성서는 부활된 자들이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준다. 죽음은 현재 결혼을 종결시키며 살아 있는 배우자는 그들이 원한다면 재혼할 자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친절이다. (150, 151면) 성서는 어떤 자들은 일으킴을 받지 못할 것임을 알려 준다. 지금 충성스러움을 유지해야 할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152, 153면) 어떤 부활된 자들은 의의 길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지금 의의 길을 추구하도록 훈계가 되어야 한다. (155, 156면)

우리는 현 생명 이상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인가? (5분) 하나님의 약속들은 우리로 그분께 가까이 가도록 이끈다. 남은 시간은 짧다. (스바냐 2:2, 3; 157면) 생명에 대한 근시안적 견해를 버리고 일상 생활에서 창조주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나타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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